극동러시아(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톡)를 여행하며 서울특별시 2018.08

2022. 12. 6. 09:04아티클 | Article/특집 | Special

Far Eastern Russia Architecture Culture Exploration
광진구건축사회 건축문화 탐방 기행문(紀行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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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블라디보스톡 풍경

서울특별시 광진구건축사회(회장 오형진)는 2018년 4월 월례회에서 올해의 건축문화 탐 방지역을 극동러시아로 결정하고, 이윤규 건축사가 많은 해외여행을 한 이력으로 책임자 로 임명됐다. 5월초 20명의 참가자를 모집됐으며, 6월 24일 하바롭스크로 19인의 건축사 가 출발했다.

 

하바롭스크 투어하기

 

가이드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소련1)과 러시아2)를 다른 개념으로 생각하며 소련연방시기 를 부정적인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로부터 민생을 독립시킨 레닌3)에 비해 소련을 강철제국으로 만들어 철의 장막을 건설한 스탈린4)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그 의 동상도 모두 철거되었다고 한다.

 

사진 2) 하바롭스크 주도청사 앞에서 필자

하바로프(1603~1671)는 러시아의 벨리 키우스튜크(Veliky Ustyug) 지역 출신 으로 레나강(江)과 아무르강(江)을 탐 험한 탐험가인데 청나라의 땅인 하바롭 스크를 러시아 땅으로 편입시킨 공적으 로 그의 이름을 따서 지명이 붙었다. 지 금의 하바롭스크는 1858년 군사전초기 지로 건설되기 시작하여 1905년 철도의 부설과 함께 극동에서 가장 중요한 러시아 연방 극동러시아 관구 주도이다. 또한, 물류교역 의 거점이 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어지는 극동지역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시 인프 라는 128년 전 소련 스타일을 띄고 있다. 김일성은 붉은연대 출신이며 김정은이 여기서 태 어났다고 한다. 면적이 세계 1위인 러시아는 11개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으며, 모스크바와 하바롭스크는 7시 간의 시차가 있다. 공무원들은 모스크바 시간대에 맞는 생활을 하여 함으로 매우 불편하다 한다. 다민족 국가라 인종차별 개념이 없으며 슬라브 민족이 대부분이다. 러시아 3대 단점 은 너무 넓은 땅, 변덕스런 날씨, 루스끼(러시아 남자의 게으름)이라고 한다.

 

크렘린 광장

 

우리 일행은 호텔에 입실하기 전에 크렘린 광장에 들러서 하바롭스크 첫 관광을 시작했다. 크렘린 광장은 주 도청사를 중심으로 건너편에 태평양 국립의대가 자리하고 도청사의 우 측에는 소련시대의 공산당 당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상업용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떨어지다 만다. 하바롭스크의 6월 기온은 우리나라 4월 쯤 해당되며, 미세먼지도 없는 상쾌한 날씨이다. 알리 호텔(ALI HOTEL)에 여장을 풀고 로비에 나오니 오후 8시인데도 햇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하바롭스크는 전원의 도시 같다. 대로의 양측에 녹지 공간이 조성되고 그 중앙부에는 보도가 형성되고 쉴 수 있 는 의자가 있어 넓은 땅덩이가 부러워진다.

 

명예의 광장 ‘영원의 불꽃’ 기념탑

 

이튿날 우리는 구세주 사원 앞에 있는 ‘영원의 불꽃’이 타오르는 기념탑에 도착했다. 이곳 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몰자 기념탑으로 광장에서 보면 1개 층 높이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약 1,945개의 조각을 이루고 있다. 낮은 형태로 보이나 왼쪽으로 돌아서 내려가면 부지의 경 사로 인해 더 높은 층을 형성하며 반원형의 옹벽구조물에 검은색 대리석이 동심원으로 배 열된 형태를 띄고있다. 검은 대리석은 황금색 글씨의 명패를 붙여서 엄숙함과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했다. 동심원의 중앙부에 별모양의 조각물에서 영원의 불꽃이 타 오르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육각형의 검은색 기둥이 반쯤 묻혀진 지구본을 둘러싸는 모양을 하고있다. 러 시아는 큰 나라이고, 이 지구본은 각국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 기념탑은 2차 대전 당시 이름 없는 용사들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비(碑)로서 연합군 중에서 러시아 군이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고 하며, 아버지들의 전쟁이라고도 한다. 모든 도시의 랜드마크 (Landmark)로 러시아 승전 일에 푸틴 대통령이 의전 행사에 참석하여 의전을 치르는 동안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행사를 끝까지 마쳤다는 일화는 늘 회자(膾炙)된다고 한다. 

 

사진 3) 영원의 불꽃 기념탑

 

사진 4) 구세주 사원                                                                                                                                                                          사진 5) 성모승천 사원

광장의 중앙부에 있는 건물은 라디오 방송국인데 그 뒤로 아무르(Amur·黑龍江)강이 흐르 고 있다. 방송국 옆면에는 하바로프 출신들의 훈장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영원의 불꽃 기념 탑 맞은편에 ‘구세주 사원’ 프라오브라젠스키 사원이 내려 쪼이는 태양 아래 황금색 돔이 빛나는 그리스 러시아 정교 사원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원의 돔이 5개 인데 중 앙의 큰 것은 신을 나타내고 작은 돔은 마태, 루가 등 성인을 나타낸다고 한다.

 

성모승천 사원

 

우리는 걸어서 성모승천사원까지 가기로 했다. 거리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했으나, 아무 리 찾아보아도 영어는 잘 보이지 않았다. 꼼소몰스카야 광장에는 제정러시아시대에 내전 의 붉은 군대(공산당)의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기념탑이 있다. 성모승천 사원(현지어로 우 펜스키 사원)을 아무르 강변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서 보면 사원의 첨탑이 서서히 보이 면서 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우초스 전망대와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

 

사진 6) 우초스 전망대

우초스 전망대 옆에는 2001년에 김정일 이 방문했다는 안내 간판이 러시아어와 한글로 쓰여 있다. 우초스 전망대는 김 알렉산드라5)가 총 살을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김 알렉산 드라는 볼세비키 당원(공산당·赤派)이 었으며, 하바롭스크 외무위원으로 백파(白派·일본의 지원을 받음)와 싸우다 잡혔다. 하바롭스크가 함락되어 체포된 그녀가 총살당할 때 “내가 죽어서라도 조선의 13도 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열세 발자국을 걸은 뒤 돌아서서 당당히 총살당했다고 한다. 그녀의 시신이 아무르 강에 버려져 한동안 아무르 강에서 낚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 다. 100년이 지났지만 뭉클함과 가슴 한편이 저려옴을 느낀다.

 

아무르강의 유람선 관광

 

사진 7) 아무르 강 유람선에서

중국에서는 헤이룽강 또는 헤이허강[黑河]이라고 부르고,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Amur), 몽골인과 퉁구스인은 하라무렌(검은 강이라는 뜻)이라 부르지만 모두 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강은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발원한다. 오를렌 강은 4,350km로 세계에서 여덟 번 째의 긴 강이다. 유람선을 타고 약 30여분을 유람했다. 저녁은 현지식인 양고기 샤슬릭으 로 해결하고 저녁 8시 30분 블라디보스톡행 열차를 타기위해 하바롭스크역으로 이동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다

 

사진 8) 시베리아 횡단열차 객실 안에서

횡단철도 침실 1칸은 4인 1실이며 공안원은 사법권이 있어 권총을 가지고 있다. 공안원은 ‘ 주의하라’는 말과 ‘중간 역에서 정차하니 내려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아래층 은 창 쪽에 테이블이 고정되어 있고 출입문 양옆으로 의자가 있는데 출입 문 쪽의 레버를 누르면 등반이가 내려오면서 침대가 된다. 이미 시트와 이불과 베개가 모두 정갈히 비치되어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려면 출입문 양측의 레버를 누르면 작은 사다리가 툭 튀어 나온다.

가지고 온 짐은 양측 침대 밑에 적치 할 수 있고 2층에도 가방을 넣을 수 있는 공 간이 있다. 화장실은 열차의 양끝에 배 치되어 있다. 배철홍 건축사의 해박한 지 식과 풍자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 열차 내에 있는 식당칸으로 갔다. 긴 시간도 어느덧 흘러 아침 여섯시에 기상하니 블라디보스톡 근처에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평야 를 달리고 있었지만 불빛 하나 보이지 않다가 멀리 숲 사이로 건물이 하나둘 보이더니 바 다가 보이곤 했다.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관광

 

사진 9) 독수리 전망대에서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이라는 러시아어의 어원은 ‘동방을 정복하라’이다. 사실 듣기 가 거북한 뜻을 가진 지명이다. 중국 청나라와 러시아간의 분쟁으로 1860년에 불평등한 조약으로 블리는 ‘베이징 조약’이 맺어졌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을 포함한 우수리 강(江)동 쪽 40만㎢를 청나라에 넘겨주면서 본격적으로 동진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동쪽으 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는 교역과 군사항구로 블라디보스톡을 개발 하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9,288㎞ 거리 떨어져 있는 블라디보스톡은 코노발 로프가 설계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탈 수 있다. 횡단철도는 1907년부터 1912년까지 건설 되었으며, 블라디보스톡역은 횡단철도의 출발점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블라디 보스톡은 1917년 공산혁명으로 시작된 적파(볼세비키)와 백파(기존 기득권층 일본의 지원 을 받음)간의 내전 등을 거치면서 군사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커져 1992년 1월까지 외국인 은 물론 내국인까지 출입이 통제된 도시였다. 그런 사실들을 알고 나니 우리가 이곳을 관 광한다는 것이 꿈같았다.

한편 이 시기에 한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1863년에는 인접지역인 함경북도의 농가 10 호가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1910년 경에는 20만 명이 넘는 조선인이 거주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인들은 조선인학교도 건설하고 대일 항쟁을 하였지만,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주 정책에 의해 약 10만 명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약 7개국으로 강제 이주됐으며, 이 과정에서 30%가 사망했다. 목숨을 건진 조선인은 끈질긴 강인함과 부지런함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현재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

 

사진 10) 율 브리너 부조 사진                                                                                                                                                              11) 율 브리너의 동상

 

할리우드 대배우 율 브리너의 생가 방문

 

율 브리너는 미국의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이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태생으로 몽골의 광산가사와 루마니아 집시 사이에 태어났다.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Юлий Борисович Бринер)이다. 그가 태어난 집의 벽면에 그의 부조가 붙여져 있는데 왼손에 담배를 가지고 있다. 그 담배는 폐암에 걸려 죽기 전에 공익광고에 나와서 ‘당신은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이 생각난다. 그 부조의 오른쪽 하단에 ‘이준’이라는 한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집 앞에는 ‘왕과 나’에서 입었던 복장 장의 동상이 서있다.

 

신한촌 방문

 

사진 12) 신한촌 기념탑 앞에서

 

신한촌은 함경북도 지방에 들어온 한인들이 라게르 산비탈진 부근에 모여 살면서 건설되 었다. 디나모 스타디움 부근의 구한촌과 함께, 1937년까지 블라디보스톡 일대의 한인들의 양대 거주 지역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국내·외 애국지사들이 이곳에 집결하여 독립운 동단체를 결성했으며, 1919년에는 망명정부(대한국민의회)를 수립했다. 소련혁명 직후 일 본군이 블라디보스톡 일대를 점령하고 있을 때, 신한촌에는 비밀아지트와 빨치산 부대의 무기창고들이 있었다. 신한촌에서 몇 명의 일본군이 살해되자 일본군은 다수의 한인들을 루고바야 광장에서 총살했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현대식 건물과 문화회관이 세워졌으며, 1932년에 한국극장이 개관되는 등 한인 거주 지역으로서 체계를 갖추어 갔다. 그러나 1937 년 스탈린에 의해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면서 신한촌은 해체됐다. 1999년 8 월 15일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한민족연구소가 ‘신한촌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기념비 는 연해 지방 일대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기리고 재러시아 한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907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담 특사로 참석하여 분사(憤死) 한 이준열사와 이상설 선생과 이위종 선생을 잊을 수가 없다. 고종은 비밀리에 만국평화회 의 특사로 정사에 전 의정부 참찬 이상 설, 부사로는 전 평리원 검사인 이준 선 생과 전 주아 공사관 참서관 이위종으로 구성하되 이곳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 발하였던 역사적인 곳이다.

 

우리 일행은 신한촌을 방문하여 기념사 진을 촬영하고서 고려인 후손 관리인 리 아체슬라브 씨를 만났다. 그는 귀가 어 둡고 말을 잘하지 못하나 1년 365일 하루 8시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이 기념탑을 관리 한다고 전했다. 세 개의 돌기둥으로 된 기념 탑의 하단부에 얼룩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훼손한 것을 복원하면서 남은 얼룩이라고 했 다. 가이드에게 들으면서 숙연함과 비통스러운 역사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두성, 오형진 회장과 일행은 마음을 담아 역사의 현장에서 한화 42만원을 리아체슬라브 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사진 13) 리아체슬라브씨에게 성금을 전달하는 오형진 회장

 

그의 꿈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기념관을 번듯하게 지어서 자랑스럽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헤이그로 떠난 밀사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었으며, 100년 전의 조선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나라가 없으면 죽을 자리도 없다’는 독립운동가들의 절규가 통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끝 맺으며

 

서울특별시 광진구건축사회의 이번 건축문화탐방은 팀원들이 자랑스러웠으며 많은 것을 느끼게했다. 리더십이 빛나는 오형진 회장을 비롯해 임용상, 정동덕 전회장, 배철홍, 곽연 호, 정승식 건축사 등 이번에 처음 합류했지만 상황에 따라 무슨 일이든 척척 처리하는 모 습이 기억에 남는다. 건축문화 탐방을 준비하고 주선한 광진구건축사회의 여걸 이윤규 건 축사는 여행 중에도 항상 즐거움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반 대로 기대하지 않은 여행에서 가슴 뭉클함을 얻은 이번 여행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벌 써 광진구건축사회의 내년의 프로그램이 기대된다.

 

사진 14) 아르바트 거리에서의 회원들

 

 

 

 

 

글. 김형석  · KIRA ┃ 토방 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