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31. 10:35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Anyang Ilbeonga (1st Street): How Has the Center Been Pushed to the Periphery?
그토록 화려했던 명성이 어디로 가버렸을까? 한 도시를 대표하는 영광스러운 이름 ‘안양 1번가’ 얘기다. 이곳이 안양 모태다. 명성에 걸맞게 공간은 1세기 넘게 중심지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경부선 개통(1905)과 함께 역이 탄생했고, 과천에 속했던 西(서)가 들어간 두 개 면(面)을 합해 ‘서이면(西二面)’으로 독립한다. 기차역을 중심으로 초기 도시화가 이뤄져 1941년 ‘안양면’이란 이름을 얻는다. 해방 후인 1949년 읍(邑)으로 1973년 시(市)로 승격하였으니, 무려 120년이다. 산업화와 함께 형성된 안양천 양쪽의 너른 공장지대 배후지로 도시가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안양은 1번가를 비롯해 원도심 쇠락으로 고민에 빠져있다. 정량화할 수는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매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며, 그 때문에 쇠락이 가속화하였다. 특히 원도심과 신도시의 차이가 극명하다. 지난 수십 년,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이런 원도심의 쇠락에 고민하는 도시가 부지기수다.

화려했던 명성
도시 내 공간들끼리도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의 결과는, 소비행태 및 구매 능력으로 결정되는 ‘지대(地代)’의 차이로 드러난다. 안양 1번가는 어쩌다 매력을 잃고, 신도시에 화려하던 명성을 내주게 되었을까? 한 공간의 최적 입지를 분석하는 기법이 ‘입지론’이다. 이의 시각에서 1번가는 분명 중심상업 기능이다. 계량된 수치가 있는지 모르겠으되, 쇠락 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매력도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방증이다.
무엇 때문일까. 복합적인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리적 여건은 가로환경이나 건물 밀집도, 노후도, 공원녹지 비율과 대중교통 접근성 등일 것이다. 인문 지리적으론 주변 토지이용과의 연계기능 및 인구밀도, 유동 인구 등이 영향을 미치는 인자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수년 동안의 소비행태 변화와 구매력 저하, 폐점 등 다각도에서 살펴야 한다.
안양 1번가는 한때 길을 걸으며 어깨 부딪치는 게 일상인 공간이었다. 좁고 긴 분지에 평면적으로 확산한 안양은, 비교적 균질한 토지이용 밀도를 보이던 도시다. 모든 도시 활동이 안양역으로 모였고, 흩어져 나갔다. 1번가 격자형 가로는 밀려드는 인파로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신도시 평촌의 등장이다. 1994년 신도시 광역 교통 대책의 하나로 생겨난 과천선(남태령∼금정, 지금의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신호탄이다. 인덕원∼평촌∼범계역으로 이어지는 결절점의 등장은, 안양에서 공간 경쟁에 불을 지핀 불쏘시개였다.

공간 경쟁
평촌은 1기 신도시다. 당시 3저 호황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에, 폭등하는 집값을 잡으려는 2백만 호 주택건설계획으로 탄생하였다. 즉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다. 결과로 고밀도 토지이용에, 고층 아파트 일색의 신도시가 탄생하였다. 획일화한 토지이용으로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용도지역 분할이 이뤄졌다. 주거지역에 상업이나 업무가, 상업지역에 주거가 침범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띠게 되었다. 결국 한정된 면적에 희소성을 갖춘 상업지역은 필연적으로 지대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신도시의 이런 모순이 원도심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된 역설을 만들어 냈다.
범계역이 표본이다. 이곳을 살피는 이유는, 범계역에서 쇠락하는 1번가의 문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그리 넓지 않은 상업지역이다. 대신 높은 용적률의 대형 필지로 나뉘었다. 주간선-보조간선-집산도로의 격자형 가로망 체계가 공간을 정형화하였고, 곳곳에 넓은 공원 등 쾌적성을 확보했다. 거기에 잇닿아 업무지구가 있다. 주변은 고밀도 아파트다. 이는 주간 이동인구는 물론 야간 인구까지를 담보하게 만든 요인이다. 좁은 상업지역은 밀려드는 유동 인구로 북새통을 이룬다. 높은 용적률은 백화점 등 대규모 판매시설을 끌어들였다. 공간은 한껏 새 얼굴로 단장하고 전성기를 구가한다.
반면 1번가는 어떠한가. 경부선 철도와 재래시장이 동·서·남쪽을, 북쪽은 수암천이 막아섰다. 재래시장과 1번가 기능 일부가 중첩하여 공간 차별화에도 명확한 한계를 보인다. 주변은 중밀도 토지이용이다. 입지론 시각에서 보면, 온갖 제약에 갇혀있음을 알 수 있다. 가로망 체계는 위계가 흐트러졌다. 특히 보조간선 기능이 미약해, 주간선 도로에 상당량의 부하가 걸린다. 필지 대부분이 긴 세장비의 들쭉 날쭉한 부정형이다. 이는 토지이용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공원녹지 비율은 형편없다. 내부는 보행자 전용도로이긴 하나, 폭이 좁아 위압감마저 든다.
1번가가 홀로 번성할 때는 대체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불과 수 킬로미터 거리에 범계역 같은 완벽한 대체 공간이 생겼다. 광명역 주변과 구로디지털단지의 영향도 있다. 이렇듯 공간구성에 한계를 안고 있어, 경쟁에서 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상생은?
의도했건 아니건 안양시 2개 구(區)는 공간을 두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행정구역도 원도심과 신개발지로 확연하다. 공교롭게도 18세기 후반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으로 행행(行幸) 하던 두 길로 구(區)가 나뉘었다.
장승배기 넘어 만안교를 지나던 길은 지금의 만안구로, 잇닿는 지역도 안양천을 따라 광명과 구로 등 옛 시가지다. 따라서 공간도 이들 지역이 가진 특성과 동질성을 띠고 상당 부분 영향을 주고받으며 번성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남태령 넘어 과천, 인덕원을 지나던 길은 동안구다. 각종 행정기관마저 신도시와 함께 동안구로 몰려들었다. 심각한 비대칭이다. 동안구의 공간 연결은 과천을 거쳐 강남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도시 활동과 재화가 이 길을 따라 같이 흐른다. 신개발지 일색이라는 공통점이 인식으로 굳어져, 신도시에 살면서 과천·강남을 동경하며 그들과 동류의식으로 연결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 지점이 가장 크게 벌어진 틈이다.
당연히 만안구와의 교류는 물론 생활 양태와 공동체 의식마저 희박할 수밖에 없다. 만안과 동안의 상생은, 공간의 물리적 재생과 상호 균형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지점에서부터 찾아져야 한다. 이는 비단 안양의 문제만은 아니다. 쇠락해 가는 원도심을 가진 모든 도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 시작은 인식 공동체 회복에 있다. 같이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 그 가치가 사회·문화적이건 경제적이건 말이다.

공간 되살리기
쇠락하고 있어도, 안양의 얼굴인 1번가의 명성이 휘발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경쟁하는 공간과는 다른 길로 걸어야 할 차별화가 절실해 보인다. 신도시 특성을 무작정 쫓아서는, 빈약한 물리적 토대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명만 밝아져도 공간은 변하기 마련이다. 신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 감성이 충만한 공간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음주가 아닌 오감(五感)이 충만한 문화공간으로 말이다. 오래된 공간에 세련미를 더해보자. 한옥마을인 가회동과 익선동에 젊은이 발길이 끊이지 않듯 말이다.
표본 하나가 있다. 문화재인 ‘서이면 사무소’가 1번가 활성화의 걸림돌이자 상권침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는 모양이다. 역발상으로 서이면 사무소를 1번가 문화 코어로 키우는 건 어떤가. 광화문이나 숭례문이 문화재 규제 반경을 축소했다면 그 방법을 준용하자. 그래도 걸림돌이라면, 200미터 반경 내 토지와 건물을 안양시가 사들여 활용하는 방안은 어떤가. 문화시설이나 취미·오락·패션의 5차 산업 중심가로, 그도 아니면 철거하여 공원 등으로 시민에게 돌려드리는 방안도 있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모일 것이다.
원도심을 살리려 안양시는 정책과 투자로 노력을 다하는 중이다. 안양 6동 옛 농림축산검역본부 땅을 활용해 시청 이전이 포함된 복합행정 몰(mall)을 구상 중이다. 행정·업무기능을 안양 1번가 가까이 둠으로써,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원도심과 신도시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경쟁은 비단 안양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도시를 끼고 있는 도시들 공통의 문제다. 인프라 불균형과 노후도 등 표피적 차이만 있을 뿐인데, 기저에는 차별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저 공간의 역할과 기능이 다를 뿐이란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공동체 의식과 실천이 우선이다. 물리적 치유에 앞서 이 부분의 회복이 먼저다. 그래야 원도심이 자연스럽게 되살아 날 것이다.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
'아티클 | Article > 연재 | Se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시 오딧세이 화성에서 배태해 결절점에서 자라난 도시, 수원 2026.2 (0) | 2026.02.27 |
|---|---|
| 도시 오딧세이 행궁동 골목, 시간을 품은 옛길을 거닐다 2026.1 (0) | 2026.01.30 |
| 도시 오딧세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이 도시의 기억 2025.12 (0) | 2025.12.31 |
| 도시 오딧세이 공간재생의 고갱이가 하루빨리 찾아지기를 2025.11 (0) | 2025.11.28 |
| 도시 오딧세이 독버섯보다도 강고한 고리, 부디 끊어내기를 2025.10 (0) | 2025.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