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30. 10:4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Haenggung-dong Alley: Strolling Through Old Street Embracing History
수원의 상징을 꼽으라면 단연코 화성(華城)이다. 조선 르네상스라는 정조 치세, 백성을 바탕에 둔 신도시를 그 표징으로 삼았기에 더 그러하다. 그런 측면에서 화성을 품은 수원은, 아테네나 로마만큼 축복받은 도시임이 분명하다.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를 신원하려 했다. 정통성 회복이다. 왕은 세손으로 정통성에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왔다. 1789년 아버지 능을 중랑천 옆 배봉산에서 화성 화산(花山)으로 이장하면서, 장헌세자로 추존한다. 능도 영우원(永祐園)에서 현륭원(顯隆園)으로 높여 부른다. 그리고 현륭원을 참배하는 행행(行幸)을 한다. 그 길에 민심을 살피고, 민원을 직접 접수·처리한다. 행행 자체가 군사훈련이다. 현지에서 별시를 치러 인재를 뽑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목적의 행행이 매년 여러 차례다. 이로써 길이 넓어지고 만안교 등 다리가 놓인다. 서울∼수원을 잇는 주요 도로가 이때 생겨난다.
이런 배경에 왕은 화성에 신도시를 구상(1789)하고 실행(1794∼1796)에 옮긴다. 철저한 계획도시다. 효를 앞세운다. 아버지 능이 옮겨 간 화산에 살던 백성을 신도시로 이주시킨다. 이들이 최초 수원시민인 셈이다. 수원은 이처럼 정조의 신도시 화성에서 배태되었다.

성과 행궁동
행궁동이다. 화성 안팎을 아우른다. 십수 개 법정동이 속한 행정동으로, 수원이 수원이도록 만든 본류이자 태생지이다. 남문인 팔달문 밖, 수 개의 장시(場市)가 모여 경기 남부 상권을 장악했던 남문시장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공간은 뛰어난 문화유산인 화성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이 유산들이 230년이란 굴곡의 역사를 겪었으니, 온전했을 리 만무하다. 성곽과 문화재가 제 모습을 찾게 된 계기는 기록으로 남은 한 권의 책 덕분이다.

행궁도 일제의 손에 낙남헌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 자리는 민가는 물론 학교와 병원, 농업시험소와 경찰서 차지였다. 시민 자율로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회」가 구성(1989)되면서 열망이 제기되고, 1996년 복원이 본격화한다. 수많은 갈등과 해결이란 지혜를 찾아가면서, 2022년 행궁이 드디어 완전한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특히 초등학교 이전이 화두였다. 1백여 년 전통을 지키려는 동문회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소의 역사성은 쌓아온 시간만큼 두텁고 무겁다. 잘못 쌓인 시간일지라도 그만큼 허물기가 쉽지 않다.
일제 강점기 도로와 택지 조성 명분으로 사라진 팔달문 좌우의 성벽 역시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2030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으로 사유지 매입 등 노력을 기울이나, 상권 붕괴와 공간단절을 우려하는 의견도 만만찮은 실정이다. 한국전쟁 중 문루 절반이 파괴된 장안문의 처참한 사진은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이미지 중 하나다.

이렇듯 사라지고 파괴된 성곽과 문화재가 제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었던 핵심에는 「화성성역의궤」라는 훌륭한 기록유산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훼손된 성곽과 그에 딸린 문루, 돈대, 공심돈 등을 이 기록을 토대로 1964년 복원을 시작해 1975∼1979년 대부분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성안 곳곳에 발굴과 복원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이렇듯 끊임없는 노력으로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97)되었고, 유네스코에서 정한 규정과 세부 지침에 따라 보존·관리되고 있다. 아울러 화성 전 영역과 각종 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1963)되었으며, 성곽 안팎이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문화재 및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 모든 건축과 개발 행위에 엄격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지구단위 계획으로 세세한 건폐율과 용적률, 건축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이런 사유로 성곽 안팎 행궁동은 명암이 동시에 교차하는 공간으로 남았다.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슬럼화가 암(暗)이라면,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없는 옛 정취 물씬 풍기는 저밀도의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 분명 명(明)이다. 공간은 화성의 영향력 아래, 두 가지 상반된 가치를 지니고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낡았어도 변화하는 공간
이렇듯 강력한 규제로 성곽 안팎이 낡아가고, 인구가 줄어 침체기에 빠진다. 도시가 확산할수록 행궁동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화성의 문화적 영향력은 광역화·세계화한다. 주거 형태도 변해 가구당 거주자 수가 급감한다. 이게 자연스럽게 공간 노후화로 연결되어, 낡아 갈 수밖에 없었다. 낡아 감이 지대(地代) 하락으로 이어졌다.
지대가 낮아지자, 공간으로 새로운 기능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낡은 집을 활용한 카페라든지, 전혀 새로운 기능으로써 공방(工房) 유입이 대표적이다. 이런 기능의 유입이 복고풍을 쫓는 사람들 발길을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잦아지는 발길만큼이나 공간의 문화기능은 커졌고, 이는 다시 공간을 변화시키는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재생 노력이 더해져 화성이라는 뛰어난 문화유산과 시너지(synergy)를 이뤄나갔다.

성안을 크게 몇 구획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한가운데로 흐르는 수원천이 공간을 동서로 가른다. 동쪽 창룡문을 위시한 공간이 하나다. 학교 여럿을 제외하면, 창룡문 공간은 남수동뿐이다. 낡아가던 남수동의 슬럼화가 멈추고, 곳곳이 정갈해지고 있다. 수원시가 이곳에 2021년부터 한옥 체험 마을을 조성하면서 특화된 공간으로 탄생을 예비하고 있다.
서쪽은 행궁을 중심으로 크게 4구획으로 나눌 수 있다. 수원천과 정조로 사이 남북으로 긴 북수동은 예전 큰 우시장이었다. 화성 축조 때 동원된 소가 남긴 흔적이다. 수원천 변 매향중학교 맞은편 우시장이, 일제 강점기에 남문시장으로 옮겨간다. 오랜 기간 슬럼화하던 북수동은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벽화마을로 재탄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서문 동쪽, 행리단길로 알려진 행궁 북쪽 공간엔 젊은이 발길이 잦다. 카페 등 특색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독특한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공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슬럼화 그늘을 벗어난 행궁동에서, 반드시 걸어봐야 하는 오감 만족 거리로 변신하는 중이다.
팔달문 동북쪽은 수원 대표 먹거리로 떠오른 통닭 골목으로, 영화의 무대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1970년 문을 연 원조부터 십수 가게가 통닭과 문화를 튀겨내고 있다. 큰 가마솥에서 튀기는 게 이곳의 전통으로, 프라이드와 양념통닭의 특이하고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가격마저 저렴하다.
팔달문 서북쪽은 특색 있는 공방 거리다. 임대료 부담이 덜한 남창동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태어난 거리다. 특이한 간판과 건물 외관, 길거리 작업장은 물론 다양한 활동 예술가들의 작품이 수시로 전시된다. 거리를 찾는 사람을 위해 나무, 한지, 리본, 규방, 금속공예 등 다양한 체험과 공예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규제 완화가 답일까?
그러함에도 강력한 규제는 역시 시민의 재산권에 엄청난 제약일 수밖에 없다. 이에 화성 안팎의 규제를 축소하자는 움직임이 있나 보다. 숭례문과 전주 풍남문 사례로 반경을 500m에서 200m로 줄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남대문이나 풍남문은 점(點)이다. 반면 화성은 면(面)이다. 이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또한 같은 규제에서 해제되는 300m와 여전히 묶여야만 하는 200m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해제될 300m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불문가지다. 도시가 고층 아파트 일색으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500m 존치는 역으로 훌륭한 도시 문화자원이 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낡았으면 낡은 대로 세금 혜택과 개축 비용 지원을 통해 더 잘 보존할 방법을 찾아가는 건 어떤가? 오히려 도시의 옛 모습을 더 잘 간직하게 함으로써 미래 공간으로 남겨 두는 건 어떤가? 고도화한 문화자원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해 낼 가능성이 충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답을 찾을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기 계획으로 성 안팎 규제지역에서 신·개축하는 모든 건축물을 한옥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세제와 건립비 지원을 통해, 우선 성안에 한옥을 늘려간다면 또 다른 명물이 될 것은 자명하다. 화성이라는 뛰어난 문화유산을 품은 거리 아니던가. 품위 있는 한옥이 연이어 선 고풍스러운 거리를 상상해 본다. 활기찬 모습으로 그 길을 누빌 해맑은 얼굴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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