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오딧세이 독버섯보다도 강고한 고리, 부디 끊어내기를 2025.10

2025. 10. 31. 10:5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A Link Stronger Than a Poisonous Mushroom: Let’s Break It

 

 

 

도시 한가운데로 흐르는 냇물마저 얼굴을 찡그렸다. 물은 탁하고 수심도 얕다. 법원읍에서 발원해 문산천에 합류하는 갈곡천이다. 냇물이 동서로 흐르며 도시를 남북으로 갈랐다. 갈린 두 공간을 가느다란 연풍교가 힘겹게 잇고 있다.
연풍교에 서면 낯선 풍경이 시선을 빼앗는다. 하천 변에 덧세운 높다란 가림막에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당한다. 뭔가 내보이지 말아야 할, 혹은 보여주기 싫은 게 있다는 방증이다. 세칭 ‘용주골’로 불리는 파주읍 연풍리 풍경이다. 성매매 집결지다. 이곳도 외형은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면엔 엄청난 게 감춰져 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인권유린, 성매매, 착취와 은폐, 매매춘에 기생하는 업소 등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며 감춰왔던 부끄러움들이다.
갈곡천이 갈라놓은 두 공간은 전혀 다른 토지이용을 보인다. 북측은 군부대가 배후지인 소비 위주의 평범한 공간이다. 반대로 남측은 절반가량이 집창촌이다. 수십 년 동안 쓰라린 아픔을 겪었지만, 분명 지워내야 할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랜 싸움에도 쉬이 지워내지 못한, 독버섯처럼 되살아난 공간임도 각인해야 한다.

 

공간의 속살
해가 중천에 걸렸음에도, 이곳에 발길을 들이려니 껄끄러움이 앞선다. 곳곳이 스산하다. 폐업한 업소들이 즐비한 골목은 방치되어 슬럼화에 접어들었다. 몇 년 전 풍경과도 격세지감이다. 그럼에도 갈곡천에 잇닿은 곳에선 미세한 영업 흔적이 묻어나온다.
수년 전만 해도 비릿한 흥청거림에 공간이 흔들거렸다. 어둠에 기대어 버려진 너저분한 흔적이 골목 안팎에 적나라했다. 벌건 대낮에도 조명을 켜고 영업하는 가게마저 있었다. 간간이 스치는, 업주임이 분명한 이의 시선은 맹수처럼 날카로웠다. 사진을 찍으려 하면 거침없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몇 마디 묻고자 해도, 어떤 물음도 거부당했다.
늘어선 업소들로 밤이면 휘황했던 집창촌 남서쪽이, 눈에 띄게 헐렁해졌다. 임시막사에서 파수 서던 업주들도 보이지 않는다. 초소도 사라졌다. 파주시를 비판하던 현수막은 어디로 갔을까. 극렬한 업주 연합회의 주장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군데군데 헐려 나간 빈자리가 마치 이빨 빠진 노인장 같다. 파주시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보려나 보다.
튼실한 생활보장책을 요구하던, 가련한 여종업원들은 온전한 삶터를 찾았을까. 집창촌을 뒤로하고 연풍교에 잇닿은 교회 앞에 이르니, 재개발 현수막과 사무실 간판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연풍교엔 ‘청소년 출입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낀다.

슬럼화 © 이영천

기지촌에서
공간이 지쳐 보인다. 20여 년 가까이 철거와 폐쇄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치러왔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2004년부터니 참으로 고되고 긴 싸움이다. 비단 이곳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 현상이었으니, 야만의 세월을 지나온 셈이다.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몇몇 도시가 철거라는 성과를 거둔다. 수원과 평택도 일정 성과를 거뒀으나, 독버섯처럼 다시 고개를 쳐들곤 했다. 지방 여러 도시도 유사한 문제에 시달렸다.
집창촌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건 100여 년 전부터다. 17세기 초 일본에서 시작된 유곽이, 메이지유신 이후 일제가 허가한 이른바 ‘공창제’에 법적 근거를 두고 성매매업을 영위하는 시설로 탈바꿈한다.
한반도에선 개항장에 제한적이던 유곽이, 1920년대 집단화하기 시작한다. 이를 일본인들이 장악하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이때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축재(蓄財)하는 참으로 천박한 문화다. 한국전쟁 이후 대도시의 집창촌이 규모화한다. 미군이 주둔한 도시엔 ‘기지촌’이 형성되어 대도시의 그것과 구별되었다. 미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부대를 접수하여 한반도 요소마다 주둔한다. 특히 휴전선 서북부에 집중된 미군 부대 주변에 기지촌이 빠짐없이 자리했다.
연풍리에도 미군 부대 영향으로 기지촌이 생겨, 1960∼70년대 국가가 정책으로 지원한 혜택까지 톡톡히 누리며 성장해왔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치르며 무고한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분단된 남한은 미국 눈치를 보며 나라가 버젓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미군 부대 주둔지 어디에서나 벌어진 현상이었고, 지속된 아픔과 갈등만이 오롯이 지금의 숙제로 남겨졌다.

갈곡천 가림막 © 이영천

먹이사슬
이를 수십 년간 방치해 오던 공권력이, 2000년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서울 종암경찰서장으로 부임한 한 여성으로 인해서다. 각종 인허가 등에 불법적 행태가 들춰지고, 경찰력을 동원해 수요 차단에 나선다. 싸움의 서막이다. 그러함에도 단기적 충격파에 그치고 말았다. 법적 근거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가 2004년부터 순차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하기 시작한다. 부대 이전으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니던 기지촌이 쇠퇴기를 맞는다. 경기도에서는 의정부와 동두천, 파주가 유사한 상황이었다.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맞물려 싸움이 본격화한다. 서울은 물론 기지촌이나 집창촌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던 도시들에서 고단하나 격렬한 싸움이 터져 나온다.

여기서 집창촌이 작동하는 구조를 살필 필요가 있다. 먹이사슬 가장 상부에 토지와 건물 소유주가 있다. 업소를 운영하지 않는 한, 이들은 임대인으로서 안정적인 수익을 누린다. 다음이 흔히 포주라 부르는 업소 운영자다. 업소는 대부분 미등록이다. 이들이 토지나 건축주인 경우도 허다하다. 업주가 기둥서방을 고용해 여종업원을 감시·착취하는 이중구조를 형성시켰다. 기둥서방이 전면에 나서 업소를 운영하던, 이들 능력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던 시절도 있었다. 기둥서방 존재와 역할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최하위에 여종업원이 있다. 어떤 사정으로 집창촌까지 흘러들었는지 제각각일망정, 맨 밑바닥에서 인권유린과 착취, 고통을 당하는 직접적 당사자임에는 분명하다.

청소년출입금지 © 이영천
강제철거 © 파주시청

 

철거와 자립으로
집창촌 폐쇄에도 냉철한 자본 논리가 작동한다. 결과는 철거와 재개발에 따른 보상비다. 서울역이, 청량리와 용산이 같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영등포와 미아리가 예비하고 있다. 결국 최상위 포식자인 토지주와 건축주만이 쥘 수 있는 떡이다. 차상위 포식자인 업주들은 연합회를 구성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대는 논리가 ‘타 업종으로 전환할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을 끌면서, 상당한 이주 보상비를 손에 쥔다. 결국 빈손뿐인 여종업원만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인권마저 유린당하기 일쑤다.
타 도시의 폐쇄와 철거가, 거꾸로 연풍리 몸집을 불린 직접적 원인으로 작동했다. 서울역, 청량리와 용산, 영등포와 미아리는 물론 평택과 수원에서 밀려난 업주들이 연풍리로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오피스텔 등 더욱 음성적인 형태로 변화하기도 했다. 지독한 풍선 효과고, 독버섯 같은 악순환의 고리다. 이 고리를 끊어내는 첩경은 결국, 여종업원의 자립과 재활이다. 잔인한 역설이다. 그렇기에 집창촌은 반드시 지워내야만 한다.

철거 후 © 이영천

이를 위해 파주시가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몇 년째 총력을 모으고 있다. 예전 재개발 직전에서 실패한 경험까지 더해, 이젠 싸움의 끝장을 볼 기세다. 시민단체는 물론 지역주민까지 가세하였다. 하지만 자진 철거나 폐업이 아닌 이상, 행정력 개입에도 한계는 명확하다. 결국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불법과 탈법을 단속하는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걸리는 원인이다. 집창촌 내 불법 건물은 자
진 철거를 유도했다. 불응 시 강제 철거도 불사했다. 건물 몇 개 동을 파주시가 매입해 철거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워낸 건물이 77개 동이다. 아울러 여종업원의 자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매매춘 탈출을 전제로 2년간 직업훈련은 물론 자립 생활비로 1인당 4천여만 원을 지원해 오고 있다. 최소이니, 물론 충분치는 않은 액수다.
2025년 7월, 파주시가 성매매업소를 운영한 혐의가 인정된 토지주와 건물주 6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작년 10월엔 성매매업소로 운영 중인 토지, 건물 소유주 30명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 영향인지 2025년 8월 현재 10여 곳만이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다. 여종업원들이 차별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회 안으로 흡수될 수 있는 기반은 물론 최소한의 익성 보장마저 어려운 현실이다.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손을 맞잡아야 할 부분이다. 중앙정부의 노력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연풍리 싸움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부디 독버섯보다 더 강고한 고리가 끊어져 사람과 공간이 모두 재생의 길을 걷기를 빌어본다.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