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야구장의 조건 2019.5

2022. 12. 20. 10:10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Requirements of the 21st century baseball field

 

올해 프로야구에서 새로운 점은 NC 다이노스가 신축 야구장에서 경기를 시작했 다는 점이다. 창원NC파크는 21세기에 한국에서 새로 지어진 야구장 중에서 가 장 메이저리그 구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야구장은 미국의 경기장 전문 건축회사인 포풀루스(Populous)가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1990년대 이후 무려 19개 구단이 새로운 야구장을 건설했 다. 이 새롭게 건설된 모든 야구장을 포풀러스가 디자인했다. 그러니 이 회사야말 로 최고의 야구장 전문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형 야구장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형’ 지향이다. 개방형의 개념을 이 해하려면 한때 유행했던 겸용 구장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메이저리그 구장 은 1960~70년대에 한번 건설 붐이 일어났다. 이때 야구장들은 한결같이 미식축 구도 할 수 있는 겸용 구장으로 디자인되었다. 미식축구는 보통 7만~10만 명을 수 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야구장은 3만~6만 명 정도가 적당하다. 이는 경기 수 와 관련된 것이다. 매일 하는 야구는 한 시즌에 팀당 161경기를 하기 때문에 매번 7만~10만 명의 관중을 모집할 수 없다. 반면에 미식축구는 주말에만 하고 팀당 한 시즌에 16경기밖에 하지 않는다. 따라서 팬들에게 그 경기 한 번이 대단히 소중하 기 때문에 매번 엄청나게 많은 관중이 몰린다. 그렇게 성격이 판이한 두 경기를 한 경기장에서 소화하려면 일단 관중 규모를 축구장에 맞춰 설계할 수밖에 없다.

 

사진 1. 경기장 전문 건축회사 포풀루스의 창원NC파크 계획도

 

야구는 그라운드가 축구장보다 크지만 대개의 플레이가 내야에서만 이루어진다. 내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야에 관중석을 많이 만들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내야쪽 의 관중들은 외야를 바라볼 때 하늘과 도시의 풍경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탁 트인 시야를 갖게 된다. 하지만 겸용 구장에서는 그런 외야조차 거대한 관중석으로 차 있으므로 하늘도 도시의 풍경도 전혀 보이지 않는 폐쇄형이 되는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야구 전용 구장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점차적으로 이런 폐쇄형의 겸용 구장들이 철거되고 개방형의 전용 야구장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이름의 변화 로 증명된다. 풀터 카운티 스타디움(애틀랜타), 스리 리버스 스타디움(피츠버그), 리버프론트 스타디움(신시내티)이 각각 선트러스트 파크, PNC 파크,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로 대체되었다. 파크(park), 필드(field), 야즈(yards) 등은 미 국에서 전용 야구장을 뜻한다.

 

사진 2. 1960-70년대에 개장한 대표적인 겸용 구장인 피츠버그의 스리 리버스 스타디움. 외야가 폐쇄적이다

또 하나 큰 변화는 콘코스(concourse) 공간에서도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콘코스는 스탠드 뒤쪽의 복도 공간이다. 이곳에는 식음료 매장과 화장실, 어린이 놀이공간 등이 나열돼 있다. 과거의 야구장은 음식을 사러, 또는 용변을 보러 스탠드에서 빠져나오면 경기장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21세기형 야구장 들은 이 콘코스 공간 역시 개방형으로 디자인한다. 이에 따라 음식을 사러 가거 나 화장실에 가면서도 경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사진 3. 21세기에 신축된 피츠버그의 PNC 파크는 개방형 외야를 갖고 있어서 하늘과 도시의 풍경이 들어온다
사진 4. 개방형 콘코스의 개념도. Credit: City of St. Paul

 

21세기에 새로 지은 광주챔피언스필드와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이러한 메이저리 그의 경향을 따랐다. 하지만 아쉬운 것이 있다. 포수 뒤쪽의 관중석 높이가 여전 히 높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장은 포수 뒤쪽 관중석의 높이가 지상과 같은 레벨에서 시작된다. 그래야 관중이 그라운드를 더욱 가까이서 느끼고 선수들의 생생한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1층 관중석 레벨이 지상에서 시작되면 스 탠드의 기울기가 완만해진다. 그렇게 되면 2층 스탠드의 기울기도 완만해진다. 잠실야구장처럼 오래된 국내 야구장의 2층 스탠드 각도는 굉장히 가파르다.

 

21세기에 지어진 광주와 대구의 두 신축 야구장은 그 점에서 아쉬움을 준다. 야 구 경기를 TV에서 중계할 때 가장 많이 잡히는 장면은 타자와 포수, 그리고 투수 가 대치하고 있는 순간이다. 이때 포수 뒷쪽 관중석이 보이는데, 관중 수가 많이 보일수록 경기가 흥미진진해 보인다. 하지만 잠실야구장이나 부산의 사직야구장 을 보면 포수 뒤쪽 관중석 레벨이 너무 높은 곳에서 시작돼 마치 거대한 장벽처 럼 느껴진다. 관중 없이 야구를 하고 있는 듯해서 침울하다. 경기의 즐거움은 경 기 자체와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한 관중의 열광적인 반응이 함께 할 때 배가된 다. 경기장과 관객의 경계에 있는 벽의 높이는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높은 벽 은 권위주의를 연상시킨다. 포수 뒤쪽 좌석은 주로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는데, 그들을 지상보다 더 높이 띄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교 운동 장에 있는 단상과 같다. 운동회가 열리면 일반인들은 계단식 스탠드나 운동장 바 닥에 앉아 있다. 반면에 그 높은 단상에는 햇빛을 막아주는 천막이 있고, 이른바 내외 귀빈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사진 5. 잠실야구장의 높은 담장은 관중 없이 경기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TV 화면 캡처
사진 6. 창원NC파크는 한국 야구장 중 가장 낮은 펜스를 갖고 있다. TV 화면 캡처

창원NC파크는 바로 이점에서 광주와 대구의 신축 구장에서 진화했다. 포수 뒷 쪽 담장을 대폭 낮추어 지상 레벨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TV 화면에 더 많은 관객이 들어오고 그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테이블석이다. 우리나라 야구장은 창원NC파크뿐만 아니 라 전국의 모든 야구장이 가장 관람하기 좋은 구역을 테이블석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그것이 구단의 수입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낭비이기도 하다.

 

테이블석은 훨씬 비싼 좌석이다.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테이블석을 만든 구역은 좌석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낭비적인 테이블석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구역은 포 수 뒷쪽과 내야처럼 관람하기 가장 좋은 곳이 아니라 외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야는 관람이 불편한 대신 테이블이라는 편안함을 주어 그 시야의 결함을 상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야가 가장 좋은 구역을 테이블석으로 채우는 것은 돈 많 은 사람들에게 두 개의 이점을 주는 것이다. 야구장 디자인은 권위주의로부터 벗 어났는데, 좌석으로 인해 다시 권위주의가 돌아오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지양 되어야 한다. 잠실야구장을 신축할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만은 테이블석의 위 치를 효과적으로 배치하길 기대해본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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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