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거실문화와 안마의자 2019.7

2022. 12. 23. 13:07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Living Room Culture & Massage Chair in Korea

 

길거리를 지나다가 종종 마주치는 바디프랜드(bodyfriend) 매장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 이처럼 독특한 의자가 있을까? 바디프랜드의 안마의자는 의 자라고 부르기에는 외관이 좀 과잉된 물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의료용 안마의 자라고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전에 찜질방 같은 곳에서 보았던 안마의자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이 의자의 성공을 이끌었 는지 모른다.

 

바디프랜드의 디자인은 해외의 안마의자들과 견주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스마트폰 같은 IT 기기뿐만 아니라 안마의자라는 분야에서도 한국은 글로벌 스 탠다드의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에 한국의 의자 디자인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큰 격차가 있다. 가구 디자인은 한국의 가장 취약한 분야 중 하나다. 안마의자의 인 기와 뛰어난 디자인은 한국의 독특한 의자문화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 바디프랜드의 안마의자 ‘아벤타(Aventar)는 미국의 최고 안마의자 브랜드와 견주 어도 디자인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사진 1) 바디프랜드의 안마의자 ‘아벤타(Aventar)는 미국의 최고 안마의자 브랜드와 견주 어도 디자인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나 의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애정을 보인다면, 이 분야 또한 크게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한 국의 실내 디자인 분야는 근대 화 과정에서 독특한 방 향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주택문화가 바로 한국 가구 디 자인, 특히 의자의 발전을 저해한 요 소라고 할 수 있다. 

 

사진 2) 미국의 안마의자 브랜드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루라코(Luraco).

 

한국의 부동산 가치는 지나치게 높다. 평생 임대주택에서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유럽의 서민들과 달리 한국의 서민들은 주택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따라서 집을 사고 빌리는 데 과도한 돈을 쓰니 상대적으로 가구와 조명 같은 것에 쓸 여유가 없어진 다. 혼수품 목록에는 가전제품 이 늘 상위권이고, 가구 중 에서는 장과 침대가 으 뜸이다. 최근에 안 마의자가 10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근 데 안마의자는 가 구로서의 의자라고 보기 힘들다.

 

사진 3) 역시 미국의 안마의자 브랜드인 오사키(Osaki)는 루 라코와 달리 매끈한 표면을 자랑한다.

한국의 주거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이고,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을 포함하면 무려 75%에 이른다. 대량생산된 아파트는 한국의 거실문화를 획일화 했다.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역시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한국의 거실은 손님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응접실의 기능보다는 가족들이 모여 TV를 보고 주말에 아버지가 낮잠을 자는 기능에 더 적합하게 꾸며진다. 한쪽 벽에는 긴 소파가 놓이고 맞은 편에는 TV가 놓이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 벗어난 거실은, TV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저택에서나 볼 수 있다.

 

사진 4) 소파와 TV가 있는 거실 디자인.

 

 

그러다 보니 다양한 용도의 의 자가 발전할 수 없다. 의자 문화의 꽃은 라운지 체어 (lounge chair)라고 할 수 있다. 게리트 리트벨트의 적 청 의자,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 르 코르뷔지에 의 LC1, 알바 알토의 파이 미오 의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의자, 찰스와 레이 임스의 LCW에 이르기까지 20세 기 모더니즘 디자인을 대표하는 의자들이 모 두 라운지 체어다. 라운지 체어는 거실의 꽃이기 때문이다.

 

사진 5)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LC1.

 

사진 6) 찰스와 레이 임스가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LCW.

반면에 한국에서는 이 라운 지 체어가 인기가 없다. 소파 가 있는 공간에는 라운지 체 어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 다. 소파는 기능적으로 푹 신한 패딩(padding)을 요구한다. 패딩 위에 가죽이나 천을 씌운다. 반면에 라운지 체어는 대개 패딩 없 이 금속이나 합판의 프레임 구조가 노출되는 형식이다. 원래 그런 의도로 디자인 한 건 아니지만, 한국 가정에서 소파는 사람이 옆으로 누워 맞은 편에 있는 TV를 볼 수 있도록 디자인한 셈이다. 주말에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아버지는 졸다 깨 다를 반복한다. 반면에 라운지 체어는 똑바로 누워서 TV를 보거나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도록 디자인되었다. 

 

아무튼 한국 가정의 이런 획일적인 거실문화는 의자 디자인의 발전을 저해한다. 원래 의자란 다양한 디자인 품목들 중에서도 가장 다채로운 조형이 가능하다. 그 래서 수많은 건축사와 디자이너들이 의자를 통해 자신의 창의성을 자랑해온 것 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가구로서의 의자가 아니라 바로 의료 기구에 가깝다 는 안마의자를 통해 그 창의성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안마의자의 인기는 그것이 단지 가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의자란 원래 인테리 어 스타일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바우하우스 스타일, 미니멀리 즘, 북유럽 스타일, 인더스트리얼 스타일, 바로크, 로코코, 예술공예운동, 아르데 코 그 무수한 스타일은 의자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소파를 중심으로 한 한국 가정의 획일적인 실내에서는 의자를 결정할 때 스타일보다는 기능을 우 선적으로 본다. 등받이와 발받침이 기계 장치를 통해 자동으로 조정할 수 있는 리클라이너(recliner) 의자가 인기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마의자는 리클라 이너 의자가 좀 더 첨단화된 것처럼 보인다.

 

안마의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물론 자동 기능에 있다. 이런 점에서 안마의자 는 가구라기보다 전자제품이기도 하다. 안마의자의 자동 안마 기능은 왠지 진보 적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디자인은 그것을 강조하게 되는데, 그것이 과잉 물성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그것은 매끈한 스포츠카를 닮기도 했고, 첨단 과학의 산 물인 아이언맨도 닮았다. 이런 외관은 스타일보다 첨단 기능과 과시적 형태를 좋 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 틀림없다. 안마의자가 혼수품의 높은 순위 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