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1. 09:23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논란이 많지만 일단 건축사가 수적으로 늘었다. 이미 발급한 자격증을 회수할 수도 없다. 반세기 넘게 확보한 건축사 수의 10%가 단숨에 늘어나 버렸다. 국가 자격시험의 기준과 원칙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튼 이런 현실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혹자는 건축사 수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열변을 토하지만, 자격을 취득한 이의 70% 정도가 개업을 하는 상황이다. 영업이니 비즈니스니 하는 단어에 대한 심사숙고도 없다. 사업자등록증이라는 국세청 발급 사업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세금에 대한 상식도 모자라다. 냉정히 말하면, 시장자본주의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책임은 본인 부담이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증을 받는 순간 협회나 조직, 국가나 기관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듣기에 따라서 합리적 불만인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어린애 투정 같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쩌랴, 수만의 사람들 모두 문제를 심사숙고하며 깊게 고민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은 것을…….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험한 노력이 필요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자격증을 꿈꾸는 이들의 목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전문직 타이틀을 내걸고 자기 책임 하에 사업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생존의 터에 나온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쟁’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문직의 전문분야를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공급 과잉의 경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문직의 과잉 경쟁은 전문분야의 본질보다 부수적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해 비롯된 경우가 태반이다. 그 첫 번째가 ‘가격’이다. 덤핑은 공급 과잉의 어떤 분야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생존 방식이다. 두 번째는 ‘품질’이다. 문제는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며, 이는 초보 시장 참여자에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건축사 산업 분야의 업무에는 경험이 풍부한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의 조건들인 ‘명성’ 혹은 ‘브랜딩’이나 ‘작품성’은 극소수 1% 시장의 조건이기 때문에 다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경쟁 궤도를 완화시키고, ‘생존’을 꾀하기 위해서는 시장 구조와 규모,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지는 건축사들이 머리를 맞대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그것은 ‘소규모 건축 시장의 건축사 위탁관리(ACM)’가 될 수도 있고, ‘기획설계 의무화’ 등이 될 수도 있다. 설계비 인정이나 건축사 인건비 기준에 제반 비용을 투입해서 1일 참여 업무의 단가를 백만 원대로 현실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의견 청취와 시장 규모의 현실화가 절실하다.
02 Overcoming the limitations of the architect's business area
세상이 진화할수록 건축사의 업무환경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이 변화를 감지하고 업무환경을 바꾸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건축사법에 따르면, 건축사는 건축사사무소를 개설·신고하여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의 건축사 업을 수행하는 건축전문자격자다. 이렇게 규정된 영역을 보호받고 있는데도 다른 영역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겠지만, 건축사업무도 시장에서 평가받고 가치를 인정받아 경영 전반에 선순환구조를 띠는 최적의 BM(Business Model)을 필요로 한다. 온실에서 보호받는 화초가 자연생태계로 나온다는 말이나, 건축사의 업역 한계를 극복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는 혁신의 본질이다. 건축사의 업역은 건축기획업무에서 중간설계, 실시설계 및 인허가와 시공에 따른 감리업무, 향후 건축물유지관리 및 증·개축, 리모델링·멸실 단계에까지 걸쳐 있는 유기적인 네트워크(Organic Network)에 따른 전형적인 BM이다.
지금은 빠르게 변화하는 혼돈의 시대인 4차 산업혁명 시기로, 우리는 과거 100년의 변화가 10년 안에 이루어지고, 각각 분리되어 발전해온 과학기술, 경제사회, 인문(人文)이 초융합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건축사라는 직업군은 서로에게는 둘도 없는 동료이지만, 선의의 경쟁자로서 상생(相生)을 위한 이기심에 기초를 둔 집단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장기적 관점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상생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빵집 주인의 이기심으로 빵이 공급된다는 말과 같이, 건축사도 유기적인 업무(Organic Business)에 익숙해져야 한다. 업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기반으로 한 부분이 전체를 반영한다는 홀론(Holon) 구조와 같이 자기 조직화하여야 한다고 본다. 여기서 가장 필요한 것은 조직 없는 조직화(Organizing Without Organization) 작업이며, 이에 의미와 재미가 합쳐지면 목표설정의 120%까지 달성된다고 한다.
급격한 진화에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공룡과 같은 괴멸적인 도태를 당할 것이며, 미래의 환경은 더욱 가속화되고 더 다양화될 것이다. 업역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사실 혁신한다는 뜻이고, 이는 불확실한 결과를 얻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혁신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갈등 속에서 꽃핀다. 건축사 업역 한계 극복을 위한 진정한 BM이 있을까? 정답은 ‘없다’. 건축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미래기술·지식융합·인문학·지식재산권·기업가 정신에 바탕을 둔 모순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생각의 도구인 TRIZ적 사고 &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서 문제를 발견·해결하고 가치를 확산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미래예측에도 차이가 많다. IBM의 설립자인 토머스 왓슨은 “세상에 컴퓨터는 5대면 충분할 것이다(1977)”라고 했다. 물론 빗나간 예측이었지만. 레이 커즈와일은 “1990년대 중반에 World Wide Web이 나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1980)”라 했으며, 2045년에는 AI와의 결합으로 인류의 육체적, 지적 능력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시점에 특이점이 온다고 한다.
따라서 설계와 감리시장에서도 PSS(Product Service System)를 구축해야 한다. 사업을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스토리텔링, 긍정적 피드백, 경쟁, 관계 유지가 중요하며 바이럴·소셜 마케팅, 고객융합 등을 공진화해야 하고 광고보다 홍보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나 중·소규모의 사무소에서 업무를 하는 건축사의 경우 다양한 롱테일(Long Tail)시장에 BM의 목표점을 두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설적으로 된다고 보고 찾으려 노력하면 세상에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많다.
건축사의 업역 한계 극복 사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부터는 조심스럽게 필자의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학창 시절부터 건물의 구조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터였고, 석사과정(1985~1987) 때 타과 친구들과 구조프로그램을 짜서 여러 건축사사무소에 납품해 돈을 좀 만져본 추억도 있다. 20대 초중반시절이었다. 사실 필자의 경우 친구인 동료건축사들에 비해 설계·감리를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항상 불안한 것이 건축사로서 나의 삶이었다.
행운인지 아닌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12~13년 전 즈음에 고객에게서 사용 중 건축물에 대한 지하·지상 증축 설계를 의뢰받고 고민 끝에 숙제를 해결하면서 얻은 것이 사용 중 증축·리모델링 브랜드로 탄생한 AR3 SYSTEM이다. 사용 중 건물의 지하·지상 증축 및 리모델링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필자에게는 새로운 업역을 확장한 사례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와 관련한 발표 사례가 별로 없다. 중·소 건물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례도 아니었고, 어찌 보면 불모지와 같은 시장이었다. 물론 현재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설계에서부터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과 시공상 발생하는 문제점, 실패 원인이 모여 지금의 업역 한계를 극복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짐작하겠지만, 대개가 회피하는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이 작은 틈새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남들이 아직 진입하지 않았기에 First Mover가 되었다는 말이다. 시스템에는 사용 중 건물의 지하·지상 증축, 건축물의 부동침하 시 복원, 소음·진동·분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임플란트 기초(Implant Foundation/강관 파일 압입 기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른 지식재산권인 특허도 2020년에만 5건을 획득하였다. 물론 2021년에도 5건의 특허출원을 준비하고 있다. 시스템은 도심의 중소건물이나 소음·진동·분진을 극히 꺼리는 파일 공사를 하거나 향후 지하 증축과 지상 증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초가 필요한 경우에 딱 알맞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건축사로서 지금까지 몇백 건의 설계·감리를 해왔던 경험에서 발견한 시장이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설계·감리·유지관리·시공에 있어 유기적인 업역(Organic Business)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유형의 건축물이 얼마가 있는지는 잘 모르나, 틈새시장을 찾았다는 점과 더불어 지금은 업역 전반에 선순환구조가 필요한 때라 생각하고 있다.
조셉 슘페터는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Entrepreneurship)은 불확실한 미래에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과 열정,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무에서 유의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 했다. 건축사 개인이나 조직도 활성화되어야 하지만, 개인 이전에 상대를 인정하는 행동과 나아가 우리를 인정하고 위하는 삶이 기본이 될 때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배 한 척을 만들려거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나무를 해오게 하거나 이런저런 일을 시키려 하지 말고 끝없는 망망한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 주어라”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있다. 지금은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의 틈새 영역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이 생존전략의 바로 1순위이다.
올해는 다들 건축사의 업역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의 원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글. 조정래 Cho, Jungrae 종합건축사사무소 삼원 · (주)에이스파트너스 <부산광역시건축사회>
조정래 종합건축사사무소
삼원 · (주)에이스파트너스 건축사·공학박사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자유건축사사 무소 및 ㈜태평양엔지니어링에서 실무를 쌓고, 1993년부터 종 합건축사사무소 삼원을 운영해오고 있다. 2012년에는 ㈜에이 스파트너스를 설립하여 일반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 지 300여 건의 설계·감리를 수행했으며, 사용 중 건물의 증축과 리모델링에 특화된 AR3 SYSTEM을 개발하여 브랜드화 시켰다. 또한 신축과 지하·지상증축 시 사용할 수 있는 소음·진동·분진에 특화된 Implant Foundation을 개발해 실무에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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