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버리고 변해야 산다 2021.2

2023. 1. 31. 09: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논란이 많지만 일단 건축사가 수적으로 늘었다. 이미 발급한 자격증을 회수할 수도 없다. 반세기 넘게 확보한 건축사 수의 10%가 단숨에 늘어나 버렸다. 국가 자격시험의 기준과 원칙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튼 이런 현실적 상황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혹자는 건축사 수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열변을 토하지만, 자격을 취득한 이의 70% 정도가 개업을 하는 상황이다. 영업이니 비즈니스니 하는 단어에 대한 심사숙고도 없다. 사업자등록증이라는 국세청 발급 사업 권한을 부여받으면서 세금에 대한 상식도 모자라다. 냉정히 말하면, 시장자본주의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책임은 본인 부담이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증을 받는 순간 협회나 조직, 국가나 기관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듣기에 따라서 합리적 불만인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어린애 투정 같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쩌랴, 수만의 사람들 모두 문제를 심사숙고하며 깊게 고민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은 것을…….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험한 노력이 필요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자격증을 꿈꾸는 이들의 목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전문직 타이틀을 내걸고 자기 책임 하에 사업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생존의 터에 나온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쟁’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문직의 전문분야를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공급 과잉의 경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문직의 과잉 경쟁은 전문분야의 본질보다 부수적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해 비롯된 경우가 태반이다. 그 첫 번째가 ‘가격’이다. 덤핑은 공급 과잉의 어떤 분야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생존 방식이다. 두 번째는 ‘품질’이다. 문제는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며, 이는 초보 시장 참여자에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건축사 산업 분야의 업무에는 경험이 풍부한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의 조건들인 ‘명성’ 혹은 ‘브랜딩’이나 ‘작품성’은 극소수 1% 시장의 조건이기 때문에 다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경쟁 궤도를 완화시키고, ‘생존’을 꾀하기 위해서는 시장 구조와 규모,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지는 건축사들이 머리를 맞대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그것은 ‘소규모 건축 시장의 건축사 위탁관리(ACM)’가 될 수도 있고, ‘기획설계 의무화’ 등이 될 수도 있다. 설계비 인정이나 건축사 인건비 기준에 제반 비용을 투입해서 1일 참여 업무의 단가를 백만 원대로 현실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의견 청취와 시장 규모의 현실화가 절실하다.

 


 

03 Have to abandon and change to survive 

 

“설계 때려치우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어 계속한다”, “공무원들한테 갑질 당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 “설계비 깎고 우릴 업자 취급하는 건축주의 말투에 짜증이 난다” 그리고 “내 자식은 절대 건축을 안 시키겠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일찌감치 다른 길을 알아보라고 충고했다”
건축사들과의 대화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전문직의 위기  
그럼 당신은 행복하냐고 질문받는다면, 나도 당연히 어렵고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2021년도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저출산율, 높은 실업률과 폐업률로 중산층은 붕괴되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성실한 경제활동보다는 부동산, 비트코인, 주식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전문직 중 최고라고 하는 변호사는 행복할까? 2020년에 1,768명의 변호사가 시험에 합격하며 변호사 수 3만 명을 돌파하였는데, 급격한 인원 수 증가로 인한 수임료 덤핑과 무리한 수임 활동은 물론 등기와 부동산중개업무 등으로 타 전문직과 마찰을 빚고 있다. 연 매출 2,400만 원 이하 변호사는 증가하는 반면에, 2019년 변호사 총 인원의 11.6%가 소속된 6대 대형로펌의 매출은 국내 법률시장의 37.3%(2조3,720억 원)를 차지하고 그중 김앤장의 매출이 17.2%(1조960억 원)이다. 이에 7급 공무원 공채와 국선변호사, 기업소속 변호사 채용에 많은 변호사가 몰리고, 법무사·행정사·공인회계사·세무사·변리사·공인노무사·공인중개사 등의 타 전문 업역에도 진출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행복해질까 생각해보지만, ‘아니다’라는 답이 나온다. <블레이드 러너>, <미래소년 코난> 등 공상과학 영화 속의 불행한 미래사회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불행한 미래사회가 도래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맥켄지 컨설팅은 2030년에 일자리의 80%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행복은 점점 축소되고 전쟁과 분쟁은 더욱 증가하며 질병과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리처드 서스킨드와 대니얼 서스킨드는 그들의 저서 『4차 산업혁명시대, 전문직의 미래』에서 4가지 이유를 들어 변호사·건축사·회계사·의사 등 전문직의 소멸을 예고했다. 첫째로 단순 업무의 비중이 높고, 두 번째로 폐쇄적인 업무영역이 개방적으로 열렸으며, 세 번째는 자기 스스로 학습하는 AI의 등장, 마지막으로 저렴한 전문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의 등장을 근거로 전문직의 소멸을 경고한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국내 건축설계시장이 2010년 19조 원에서 2020년 41조5,000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였지만, 이제 건축설계시장의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4차 산업혁명의 정보화와 서비스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는 건축설계시장의 양적 감소를 가져올 것이고, 타 분야에서의 진입과 AI 등 사회구조의 변화는 건축설계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건축주가 건축 플랫폼을 통해서 가상현실로 만들어진 수많은 공간을 체험하며 최적의 공법과 공사비를 제안받고, 최종안을 결정하면 단 몇 초 만에 설계와 구조계산, 각종 인허가가 완료되는, 건축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생존을 위한 혁신
2012년 필름산업의 대표주자인 코닥이 파산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한 코닥은 ‘디지털화’란 급격한 환경변화에 뒤쳐서 파산했지만, 후지필름은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사업재편과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의약품, 재생의료, 바이오회사로 변신, 2000년 1조4,403억 엔이었던 매출이 2018년 2조4,400억 엔으로 급성장했다. 맥켄지 컨설팅은, 기업의 평균수명이 1935년 90년, 1975년 30년, 1995년 22년에서 2015년에는 15년으로 떨어졌고, 글로벌 장수기업들은 ‘시기적절한 변화’로서 미래 경쟁력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체질 개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업의 본질까지 바꾼다고 하였다. 스스로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서, 초일류 글로벌 기업들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변신하고 있다.

타 전문직 분야도 고유 업역 안에서 안주하지 않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변호사 분야에서는 사업자전용 B2B 법률 플랫폼은 물론 B2C 부동산중개서비스 플랫폼까지 운영되고 있고, 대형 로펌은 송무 등 고유업역에서 비송무업역(금융·자본시장, 조세, 공정거래, 중재·국제분쟁, 인사·노무, 특허·상표·지식재산권)의 매출 비중을 확대하고, 스타트업조직을 구성해 판교와 해외 ICT 중심지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있다. 의사는 바이오메디컬산업분야에 진출하고 연구의사(의사과학자) 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구글·페이스북·네이버 등에서는 의사를 채용하고 있다. 공인회계사의 경우, 2025년부터 변경되는 시험제도에 사전학점 이수 총 24학점에 정보기술 3학점 신설을 도입하고, 실무연수에 IT 관련 교육 확대 등을 통해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도 혁신하여야 한다
건축사법에 의하면, ‘건축사’란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행하는 건축사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 소정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되어있다. 즉 건축사의 업역은 건축물의 설계, 감리 그리고 기타 관계 업무로 되어있다. 과거의 고유 업역에 안주하고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어려운 설계시장의 현실극복과 건설사와 감리전문회사 등 다른 분야에서의 업역 침입을 막아낼 수 없다. 눈앞에 닥친 AI 시대의 인간의 삶과 사회구조의 급속한 변화에 건축사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이다. 구한말 개항의 파도에 수동적으로 무기력하게 대처하여 나라를 잃은 아픔을 당한 것처럼, 혁신의 파도 앞에 수동적, 내부지향적으로 응급조치만으로 대응하여서는 우리의 생존권을 잃어버릴 것이다. 스스로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건축설계 시장과 건축사를 창조하여야 한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 기지를 건설하여 인류이주계획을 추진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2D 설계에 머물러 있지 않는가.

건축사 업역 한계 극복을 위한 혁신의 방법으로 건축사의 전문화를 제안한다. 사회구조의 변화, 경제규모의 확대, 각종 법률·제도의 변경, 건축주의 요구조건 상향과 변화로 건축설계 업무는 더욱 복잡해지고 책임과 의무가 증가하였다. 건축사 혼자 수주/경영, 디자인/설계, 감리와 기타 업무 등을 완벽히 할 수 없다. 건축학교육 인증프로그램에 구조와 시공 과목이 빠져있고, 3년 실무수련과정 후 배출되는 건축사는 증가하고 있으며, 건축사의 재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라떼’를 말씀하시는 건축사들과 철근배근을 검측 못하는 건축사들, 계약서류를 작성 못하는 건축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해체감리와 건축물관리점검 등 새로운 업역에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완벽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건축사가 몇 명이나 될까? 올해부터 비상주감리도 고차원의 업무능력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전문의처럼 전문건축사 제도는 없지만,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전문적인 건축사 업역에 집중하여야 한다. 건축사 업역을 디자인 건축사와 엔지니어 건축사, 슈퍼바이져 건축사로 구분하고 각 분야별로 최적의 조직과 업무영역을 구성하여야 한다. 디자인 건축사는 기획, 계획설계를 기본으로 부동산개발과 영상미디어 등의 영역으로 확대하고, 엔지니어 건축사는 실시설계와 신공법, 디테일, 신자재를 개발하고, 구조·전기·기계설비 등을 포괄한 엔지니어 분야는 물론 해양플랜트, 우주기지건설까지 업역을 확대하여야 한다. 슈퍼바이저 건축사는 시공감리, 해체감리, 석면감리 등 감리와 에너지 및 BF 인증, 건축물관리점검, 시설물(부동산) 관리 등의 업무는 물론 건축인허가 민간대행업무까지 수행하여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혁신으로 오늘의 삼성전자가 있다. 위기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혁신이다. 과거의 ‘건축설계’와 ‘건축사’의 패러다임을 모두 버려야만 생존할 수 있다. 타의에 의한 혁신이 아니라 스스로의 파괴적 혁신만이 건축사의 살길이다.

 

 

 

 

글. 정형봉 Jung, Hyungbong 건축사사무소 이인건축 <대구광역시건축사회>

 

 

정형봉 건축사사무소 이인건축·건축사

 

경북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공학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경북대학교 겸임교수이자 건축사사무소 이 인건축의 대표로, 대구광역시건축사회 및 대구경북건축가회에 서 이사를 맡고 있다. 설계공모 당선작으로는 경북기계공고 다 목적공연장, 안동다목적체육관, 문경보훈회관, 창녕공설납골 당, 거창대학교 국민체육관 등이 있으며, 주요작품은 성주선남 성당, 앞산행복플랫폼, 불로파출소, 대구남구장애인재활센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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