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3. 09:10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Living as an architect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일상에서 건축의 공간을 느끼고 더 좋고 편리한 건축으로 만들 수 있을까?’
질문의 연속이다. 나는 대학 시절 서양의 유명 건축사의 이론과 작품을 탐구하면서 건축을 시작했다. 유명 건축물들의 섬세함과 공간의 창의성은 감동으로 다가왔고, 나도 저런 건축을 하는 건축사(Architect)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살아왔다.
건축 스타일과 구축 방식은 수 세기 동안 역사적인 기록과 작품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우리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여 오늘날의 건축 형태를 만들어 냈지만, 좋은 건축을 만들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만족하며 감동을 전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건축사는 어떤 메신저(messenger·전달자)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건축을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어떠한 정보나 서적도 쉽게 구할 수 없고, 일본어로 된 자료집이나 복사된 책, 가끔 접하는 잡지에서 보는 평면도가 고작이었다. 이 자료들을 짜 맞추어 상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1980년대 들어 외국 서적을 사 모아 연구하면서 건축을 알아갔다. 1990년대는 해외여행 자유화로 건축탐방이 가능해져 현지로 날아가 심층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점차 건축사로 살아가면서, 무엇이 좋은 건축물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내가 설계한 도면대로 시공되면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형태적 창의성과 공간의 구성 등의 요소에 골몰, 건축의 구법과 재료, 디테일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시기, 나는 여전히 모더니즘 건축에 천착했다.
업력이 쌓이면서 건축은 예술이며, 그 자체로 중요한 메시지(message)를 전달하며 기호(signage)를 나타낸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시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많은 건축사들은 건축물이 들어설 현장을 방문하여 장인들과 소통하면서 디자인을 결정하고 만들기에 관여한다.
“전체와 디테일은 하나다(르 코르뷔지에)”, “돈 없이는 디테일도 없고 개념뿐이다(렘 콜하스)” 이는 건축의 유명한 명제이다.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디자인은 디테일이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말들을 주문 외우듯 중얼거렸다. 건설(시공)이란 단지 건축물의 실용적인 필요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건축을 바라보는 감각과 경험을 실제화하는 과정이다. 이는 건축물을 이해하는 방식이 과학의 표본이 되고, 감성적 반응의 대상이 되며,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건축사가 갖는 미적 감각 수준의 메시지만으로는 건축 장소를 해석할 수 없고, 공간을 이용하고 건축하는 사람들의 통합된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본다. 건축이 예술품으로 인지되는 것은 현실 이상의 어떤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구축을 넘어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예술의 경지에 이른 건축은 일생에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 속으로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집에 머물며 긴 시간을 보냈다. 중정 마루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 마음에 조바심을 냈다. “가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떼를 쓰면서 할머니가 홍두깨로 밀어 만든 칼국수 삶는 걸 보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여름 장마 기간에는 긴 시간 집에 머물게 된다. 심심하면 집에 대해 이것저것 살펴본다. 마루 하부는 왜 비어 있나. 비가 떨어지면서 댓돌 하부로 떨어지게… 처마와 채양, 비를 모으는 학의 입모양인 물받이, 마루의 패턴 등과 한지 문을 열면 눈에 들어오는 뒷마당과 나무 담장. 나의 어린 시절 건축적 기억은 실내 공간에 머물며 외부를 바라보는 즐거움이었다. 특히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게 했다.
소규모 주택을 계획하면서 사용자의 입장에서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의 의견과 상호 조율로 개념 설계를 시작한다. 개념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사고의 틀 속에 기억되는 것이다. 대형 사무소에서 시작한 주택 프로젝트는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건축적 열망의 재점화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나의 주거지는 전통 한옥을 거쳐 서울 제기동의 개량 한옥이었다. 결혼 후에는 집장사가 지은 양옥집 그리고 아파트. 조선, 일본, 서양의 혼종 건축물을 경험한 게 전부였다. 한국 건축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일상의 건축으로
집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생활에 젖다보면 공간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산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끔 만든 주택 설계에 집중한 2000년대 이후, 인문학적 사고가 깊어지면서 건축사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느꼈다. 아파트 시대 이전 본래의 거주공간인 주택을 설계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삶과 정체성, 공동체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눈을 떴다.
건축사로 살아오기를 40년. ‘나는 건축으로 이 세상의 무엇을 개선하였고 무슨 개념과 표준을 만들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돌아보면, 양적으로 엄청난 건축 설계 실적을 쌓았지만, 일본, 서양 것을 적당하게 어루만져서 변형시키는 작업으로 호구지책을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보화 시대, 매일 쏟아지는 건축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여 정리를 하곤 한다. 여전히 대부분이 서구적 르 코르뷔지에의 개념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왜 우리 세대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주택의 표준을 만들어 세계에 나누어주는 선진화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가? 왜 우리 세대는 식민시대에 예속된 사고의 틀 속에 머물러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각 분야에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표준을 만들어 선도국가로서 역할을 하는데, 유독 건축 분야는 왜 아직도 ‘건축은 예술이다’라는 주장에 머물러 있으며 몇몇 아틀리에 건축사들의 조형 언어가 후배들에게 선망이 되곤 하는가?
2000년대 생들의 대표격인 BTS는 세계적인 수준의 K-POP을 만들어 선도 국가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건축 분야에서는 누가 프리츠커상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 건축은 아직도 중국, 일본 건축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의 개념과 표준에서 도약하고 건너가려는 혁명적인 갈등과 투쟁적 논쟁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 소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연속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한국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겹쳐진다. 국제주의 건축이 등장한 이래 그동안 우리의 많은 천재 건축사들이 도시에 축조물을 실행하면서 건축을 “창조자이며 새로운 예술”이라 말하였다. 건축사들은 전문가의 식견과 창의적 발상을 시공자와 자신을 구분짓는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 행위가 전체 맥락에서 차별성을 갖는 작품 행위라는 자부심을 갖고 노력한다. 지난 40년, 특히 주택 설계를 하면서 시공과 디테일을 우선으로 하는 장인의 위치로 돌아가는 게 나의 건축적 소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 건축’, ‘한국 주택’ 개념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장인 기술은 결국 산업화된 목재 건축 강국 일본의 현대적 중목 구조에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한국건축
‘한국건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한국인의 정의는 어떻게 내리는가?’
‘한국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우리가 하는 건축을 한국 건축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영어로 KOREAN ARCHITECTURE라는 호칭을 생각해 보았다. 한반도에 살면서 중국, 일본, 미국, 서구의 건축 등 다양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 근대건축, 현대건축이라는 서구 기준의 시대 구분으로만 이야기했다. 우리 풍토, 기후, 환경에 적용하면서 프랑스식, 일본식, 바로크, 로코코, 바우하우스 양식이라는 다양한 수식어를 사용하였다.
수식어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에 ‘버나큘러’라는 개념을 접했다. 처음
에는 그 나라의 기후나 환경에 잘 적응하는 지역 건축이라고 생각했다. 버나큘러를 처음 알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끈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이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의 교훈(Learing from Las Vegas. 1972)』에서 일사불란한 통일성보다는 복잡다단한 모순을,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보다는 역사성(history)과 버나큘러(vernacular·지역성)를 강조하는 건축의 문맥(contextualism)을 주장했다.
한국 건축은 시간이 지나면서 ‘버나큘러’라는 개념 어휘로 설명되었다. 나는 집장사가 지은 프랑스식 집에서 자라 바우하우스 스타일 초등학교를 다녔고, 미스 반 데어 로에 스타일 사무실에서 일하고, 디즈니랜드 스타일의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르 코르뷔지에 스타일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세대에 속한다. 우리 세대와 동년배 건축학도는 국립민속박물관, 부여박물관, 전주시청사, 독립기념관 등의 정체성 논란을 거치면서, 한국 건축이 무엇인지 생각하였다. 나에게 한국 건축은 무엇인가? ‘한국식 버나큘러’ 건축은 실제 존재하는가?
풍토건축, 지역 건축의 뜻으로 쓰이는 ‘버나큘러’라는 수식어는 생소함과 모호함과 위화감을 준다. 우리는 이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버나큘러 건축(일상의 건축)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나는 이를 깊이 생각하고, 체험하고, 이론화하기 전까지 ‘일상의 건축’에 대해, 그 가능성에 대해서 무지하였다. 개념을 구체화하면서 ‘버나큘러’, 즉 한국의 ‘일상의 건축’에 빠져들었다.
‘버나큘러 건축’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국에서 건축사로 살아가면서, 한반도를 떠나서 이민자나 유학생의 소수자, 이방인이 되었던 이들의 경험은 비슷하다. 외국에서의 문화 충격에 자신의 존재를 묻는 것은 비슷할 것이다. 한국 건축이란 개념을 찾아가야 하고 논쟁을 해야 한다. 한국인들의 한국 건축은 무엇인가. ‘버나큘러’의 개념과 지식으로 개념과 표준을 논해야 한다.
2000년대에 들어 고품질 주택의 설계, 시공을 위해서 소비자가 만족할 수준의 산업 및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건축 산업을 규정하는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의 주요 내용은 기획·설계·CM·FM의 4가지 업역을 정하고 자재공급과 생산 및 제조, 유통에 이르는 건축 관련 산업 전반이다. 건설이 제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프리패브리케이션까지 공급·유통하여야 하기에 단체장으로서 법제화에 노력했다.
건축물이 플랫폼으로 만들어져 제조, 자재, 유통까지 합쳐진 조립 공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이 구축되어야 한다. 선진화는 ‘개념을 확실히 하고 표준을 전해 널리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국경을 초월한 세계화(globalization)를 뜻하기도 한다.
일본주택 산업은 100년 전 주택의 모듈 개념에 대해 토론하여 자, 척 모듈을 표준으로 건축 산업 전반에 사용하도록 정해 모든 자재, 가구 집기에 적용한다. BTS는 서양 음악을 차용하여 K-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설계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토론했던 건축 개념은 무엇인가? 이를 어떻게 표준화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술의 선진화이다. 일본 주택의 900모듈의 개념은 제품 기술 선진화로 인한 대량생산과 품질보증이다. 친환경주택이란 개념으로 100년 주택을 만드는 그들이다. 우리 아파트 건설 산업은 이미 기술 선진화를 이루었지만, 개념과 표준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한국의 아파트가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없는 이유이다. 모듈을 설정 표준화하는 것이 해외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부동산의 평당 가격에서 나온 안목 치수와 발코니 확장이라는 정치적 레토릭에서 벗어나는 게 선진화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 건축이 산업이라는 개념에 합의도 못하고 있고 ‘표준’ 성격을 규정하고 분석하는데 게을리하면, 현상에 대한 각자의 답은 현상 자체이다. 정보화 시대의 보편성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면 답이 보인다.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는 모순되어 보이는 산업의 이해와 기술 선진화는 주택 산업을 변화시키는 단서가 된다. 이는 다양한 규모의 (설계)사무소와 건설, 시공 단체, 업체들이 자신만의 디자인 모듈, 단위 공간, 유닛에 대한 독창적인 사고와 나름의 규모의 경제(scale merit)를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덴마크 건축사 BIG는 “우리 집은 점점 비싸지고 틀림없이 품질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모든 주택의 99%는 동일한 공간과 평면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 안에 생활하는 사람은 다 다르다. 이런 건축은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집을 만드는 제조 및 제품의 힘과 대량 생산, 조립하여 다양한 주택을 만들 수 있는 일련의 모듈식 요소를 만든 건물을 개발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제 ‘우리가 집을 짓는 과정에서 제조 및 제품화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어떨
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도 다양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듈 방식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한국 건축에 맞는 모듈 혹은 유닛(단위)의 개념을 논의하여 우리의 표준을 정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대량생산, 조립하여 다양한 주택을 만들 수 있는 일련의 모듈식 요소로 만든 건물을 개발하는 것이 한국 건축을 선진화하는 길이고, 건축사로 사는 나의 마지막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건축적 사고로 일상에서 건축의 공간을 느끼고 사유하며 경험과 지식을 나눔으로써 기여하고자 한다.
글. 이광만 Lee, Kwangman (주)간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이광만 (주)간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홍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쌓았다. 1983년 간삼건축을 설립하여 2020년까지 대표 건축사로 근무 후 현재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아울러 현 서울사이버 대학교 건축공간디자인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 다. 30년 동안 다수의 건축작품을 남겼으며, 2018년에 대한 민국 화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최근 중요작품으로는 골프 존 대전 사옥, 이원의료재단, 골프존 청통 클럽하우스, 청담 동 주택, 성동 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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