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한 사람의 모든 것 2022.1

2023. 2. 15. 09:06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Full name, a person's everything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속담은 나에게 소리친다. 
눈 덮인 산길 걸어갈 때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삶에 ‘역사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한자·한문 공부를 많이 강조하셨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응당 한자로 이름을 쓰도록 내 이름 석 자를 한자로 가르치셨다. 그 덕택에 어려서부터 나는 한자로 이름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친구들 간에도 한자 이름을 알게 되었다. 죽마고우인 경원 친구의 가운데 이름이 서울 경(京) 자로 쓴다는 것과 길수 친구의 길할 길(吉), 시용 친구의 얼굴 용(容) 자도 알게 되었다. 이윽고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학년 초 어느 날 선생님이 호적초본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친구랑 같이 읍사무소에 가서 초본을 떼어 보니 내 이름 가운데 자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적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이름은 서울 경(京) 자로 분명히 잘 적혀 있었는데, 내 이름은 낯설게도 곧을 정(貞) 자로 적혀 있었다. 곧을 정(貞)과 바를 정(正), 개념상 별반 차이는 없어 보였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호적초본을 보여 드리니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다. 
 
“아니? 뭐여! 내가 분명히 ‘바를 정(正)’ 자라고 담당 직원에게 잘 말해 주었건만…” 
아버지는 그 이후 말을 아끼셨다. 수십 년이 지나서 다시 떠올려 보니 아버지가 호적신고를 할 때에 종이에 쓴 것이 아니고 담당 직원에게 말로 설명하신 것 같았다. 직원은 바를 정을 곧을 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름을 호적에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누굴 탓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사회 분위기상 개명허가가 쉽게 나지 않는 시대였다. 개명을 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체념 비슷한 말로 “네가 나중에 크면 고치거라”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이름을 한자로 잘 적지 않았다. 아니, 굳이 한자를 쓸 일도 많지 않고 해서 그냥 ‘한글사랑’이라며 한글로 이름을 적어 왔다. 그러던 중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나라 이름을 중국으로 바꿔 부르면서 우리나라의 건설시장이 확대되었고, 내 전문인 건축설계 업무가 중국까지 확대되었다. 중국을 자주 다니면서 비행기 입출국 수속 서류에 한자로 이름을 적기 시작하다가 예전 이름에 관한 일들이 생각났고,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바야흐로 내 이름을 바로잡아야 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본디 가운데 이름이 바를 정 자이므로 당연히 바르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귀국 후 법원에 개명허가를 신청했다. 사유를 적은 란에는 사실이 그랬으니까 아버지가 하신 말씀 내용을 솜씨 좋은 글씨로 예쁘게 잘 적어서 개명허가를 신청했다. 

며칠 후 처리기간이 다 되어 집에 법원으로부터 문서가 와 있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뜯어보니, 글쎄 떡하니 반말로 “개명허가를 기각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화가 나서 전화기를 들고 따져 물었다. 담당자는 “개명사유가 부적합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참을 고민해 보고 여기저기 자문해 본 후 ‘내가 너무 곧이곧대로 적었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고, 자괴감과 씁쓸함이 몇 미터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밤안개처럼 마음속으로 밀려왔다. 
몇 년이 흐른 후 수도권 지역 동창회 모임을 이십여 년 만에 한다기에 그 모임에 나가서 친구들과 서로 명함을 주고받던 중, 초·중·고교 동창생인 친구가 이름을 개명하였다고 하면서 명함을 내밀었다. 개명허가가 쉽지 않던데 어찌 이름을 그렇게 쉽게 바꾸었냐고 물으니, 집안에 손위 먼 사촌 중에 동일 이름이 있어서 그 사유로 개명허가를 적었고, 또 요즈음에는 쉽게 바꾸어 준다고 했다. 예를 들어 ‘힘찬’이라는 이름이 정말 힘차 보이는데, 성이 안 씨여서 애들이 놀리고, 매사 신중하라는 뜻의 이름 ‘신중’이 좋긴 하지만 성이 임 씨여서 애들이 하도 놀려서 바꾸겠다고 하면 바꿔 준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사회 분위기가 개명허가를 신청하면 심사해서 어렵지 않게 바꿔 준다고 했다. 
 
나는 용기를 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름을 바로잡자. 이번에는 개명신청 내용을 다음과 같이 다듬고 다듬어서 썼다. “본디, 저의 이름 중 가운데 자는 ‘바를 정’ 자였는데, 어찌 된 사유인지 ‘곧을 정’으로 호적에 올라갔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세상을 늘 ‘바르게 살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를 정으로 저에게 지어 주셔서 그렇게 불리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호적에는 곧을 정으로 올라갔습니다. 인생 반을 살아오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아버님의 유훈인 ‘이름을 바르게 해라’는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앞으로 인생 후반전에도 더욱 건설한국의 유능한 인물이 되도록 힘써 매진할 것이오니 이에 개명허가를 신청합니다”라고 정성을 다하여 작성했다. 

결과는 바르게 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나도 이름값을 하면서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또 한 번의 다짐과 성취다. 만일 두 번의 개명신청에도 또 기각되었다 하였을지라도 나는 개명을 하려는 생각을 접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념이란 것은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상관없이 바른 생각을 모은 결정체이고, 그 생각을 수정처럼 빛나도록 수없이 갈고닦고 포기하지 않아야 비로소 ‘이룸’에 이르는 것이니까.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문학작가·뮤지션

조정만(趙正滿)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성원고, 건국대 건축공 학과를 졸업하고 천일건축, 금호그룹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 서 실무를 익혔다. 2007년 선함재 건축을 설립, 강원 청암재, 고 양농경문화박물관, 동교 주상헌, 대방동 H빌딩 등을 설계했다. 2015년 이후 무영씨엠건축에서 미단시티 G오피스텔, 옥천Y주 택, 대청호 수연재 등을 설계했다. 2016년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로 등단하였고, 2021년 유튜브에 ‘꽃 과 빛망울의 하모니’와 ‘쏘가리’를 창작곡으로 데뷔하였다. 현재 무영씨엠건축 건축사, 문학작가, 뮤지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imatect@mooyoungc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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