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실 글꼴의 통일성 2022.3

2023. 2. 17. 09:0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unity of stencil font

 

사람의 손글씨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못 쓴 글씨나 잘 쓴 글씨나 모두 글씨의 꼴이 균질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통일성을 갖는다. 만약 한 사람의 글씨가 균질하지 않다면, 사건 현장에 남은 필적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수사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글씨체로 성격을 추론하는 그런 학문도 존재할 수 없다.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균질한 글씨를 쓴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사람이 글씨를 똑같은 모양으로 쓰는 것처럼 활자도 똑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된다. 영어로 A부터 Z까지, 한글로는 ㄱ부터 ㅎ까지 그 모양은 균질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므로 나는 조금 다른 형식의 글자에서 그 통일성의 지향성이 얼마나 강렬한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 글자는 스텐실 글자다. 스텐실은 영문의 가라몬드나 헬베티카, 또는 한글의 명조체나 궁서체처럼 활자화된 서체의 종류가 아니다. 스텐실은 글자를 만드는 데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는 데 활용한 기법이다. 스텐실은 그림이 표현될 종이나 벽 위에 구멍이 뚫린 마분지나 금속, 나무와 같은 중간 매개체를 올려놓고, 구멍 안에 붓이나 스프레이로 색을 채워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다. 그 구멍의 모양이 바로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런 기술로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도 쓸 수 있음은 물론이다. 글씨는 그림보다 더 단순하고 명확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활용되는 것 같다. 스텐실 기법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군대다. 스텐실 글씨는 손으로 쓴 글씨와는 달리 삐뚤빼뚤 하지 않게 곧고 바르게 쓸 수 있다. 즉 군대의 성격에 맞게 절도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종의 대량생산 방식이어서 똑같은 모양으로 복제하기 좋다. 스텐실의 그런 특성으로 인해 군대에서 많이 사용되었다.<사진 1>

<사진 1> 2차 세계대전 중 군용 지프차에 스텐실 기법으로 글자를 새기는 군인들.
<사진 2> 스텐실 기법에 따라 알파벳 O자를 만들고자 구멍을 내면 안쪽의 원은 표현할 수가 없다.


스텐실 기법의 묘미는 폐쇄된 글자에서 나온다. 폐쇄된 글자란 영문의 A, B, D, O, P, Q, R처럼 폐쇄된 공간(타이포그래피에서 이 공간을 카운터[counter]라고 부른다)을 갖는 글자들이다. 한글에서는 ㅁ, ㅂ, ㅇ, ㅍ, ㅎ이다. 다른 글자를 만들 때는 그냥 모양대로 구멍을 파내면 된다. 하지만 O의 경우 구멍을 파내면, <사진 2>의 왼쪽의 결과를 얻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오른쪽의 결과가 나온다. 글자의 윤곽을 살려내려면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브릿지(bridges)와 아일랜드(islands)의 개념으로 구멍을 파내야 하는 것이다. 이 개념도를 보면 마치 글자의 윤곽은 강이고, 그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그 안의 카운터 공간은 섬처럼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브릿지와 아일랜드의 존재가 바로 스텐실 글자의 묘미이자 매력이다. 스텐실 글씨는 특정한 서체가 아니므로 반드시 이 브릿지가 보여야 스텐실 글씨로 인식된다. 그에 반해 브릿지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운터가 있는 문자들이다. 영문의 C나 E, 한글의 ㄱ이나 ㄴ은 카운터 공간이 없으므로 굳이 브릿지가 필요 없다. 영문이나 한글이나 카운터가 없는 문자가 훨씬 더 많다. 게다가 한글의 경우 모음은 폐쇄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브릿지가 필요한 경우는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3> 스텐실 기법에서 알파벳 O자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획의 중간에 브릿지를 만들면 된다.
<사진 4> 스텐실로 표현한 &lsquo;사다리차&rsquo;. 폐쇄형 글자가 없어 브릿지가 없다.
<사진 5> 스텐실로 표현한 &lsquo;기계운반설치&rsquo; 속 폐쇄형 글자에 브릿지를 넣었다.
<사진6> 폐쇄형 글자이든 아니든 브릿지를 넣어 전체적인 통일성을 살렸다.


몇 해 전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툴툴툴>이라는 전시에서 일반인들이 만든 스텐실 글씨들이 출품되었다. <사진 4>는 ‘사다리차’를 홍보하는 스텐실 글씨다. 이 글자에는 폐쇄된 문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브릿지도 없다. 이런 글씨는 스텐실 글씨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 5>는 ‘기계운반설치’라는 글자인데, 여기에서는 계, 운, 반 자에만 브릿지가 있다. 이것은 반쪽짜리 스텐실로 느껴진다. 마지막 <사진 6>의 ‘기업철강’이라는 글자에서는 모든 글자에 브릿지를 넣어줬다. 사실상 브릿지가 없어도 되는 ㄱ과 ㄹ에도 브릿지를 넣어준 것이다. 그랬더니 확실히 스텐실 글씨로 인식된다. 아쉬운 것은 ㅊ에도 브릿지를 넣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아마추어가 이것을 디자인했다면, 그에게 미적 감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릿지가 필요 없는 열린 문자에도 왜 브릿지를 넣었을까? 바로 균질성 때문이다. 모양의 균질성을 통해 통일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다. 미국에서 디자인된 초창기 스텐실 활자로는 미국활자주조소인 ATF가 1937년에 생산한 ‘스텐실’ 글꼴이 있다.<사진 7> 이 글꼴을 보면 A부터 Z까지 모든 글자에 일관되게 브릿지를 적용했다. 

<사진7> 스텐실 글꼴, 디자인: 로버트 헌터 미들턴, 1937년.


건축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례는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디자인한 루첼라이 궁이다.<사진 8> 이 궁의 파사드를 보면, 8개의 벽기둥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 벽에는 창문이 하나씩 뚫려 있어서 창문 또한 아주 규칙적인 간격으로 7개가 있다. 전체적으로 이 건물의 파사드는 대단히 규칙적이고 통일되어 있다. 이 건물이 주는 미적 가치는 바로 이런 수학적인 규칙성과 통일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매끈한 유리 커튼월 빌딩의 멀리언 간격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루첼라이 궁에는 거짓이 있다. 1층에 있는 두 개 문 위의 창문은 사실 가짜다. 그 안쪽은 구멍이 뚫리지 않은 벽이지만, 디자인의 통일과 창문의 규칙적인 리듬을 살리고자 가짜로 창문 모양을 넣어준 것이다. 창문뿐만 아니라 규칙적 벽기둥 역시 진짜 기둥이 아니므로 그 안의 구조는 밖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 기둥 위에 새겨진 엔타블러처, 즉 1층과 2층, 2층과 3층을 구분하는 가로의 장식 부분 역시 건물의 실제 구조와는 무관하게 디자인된 것이다. 알레르티에게는 건물의 실체와 기능보다 눈에 보이는 미적 효과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사진8> 팔라초 루첼라이, 디자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1446-1451년


하지만 실체와는 무관해 보이는 미적 효과라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해 왔다. 뇌과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들은 모두 대칭의 아름다움에 대해 각자의 분야에서 과학적인 근거를 밝히려고 노력한다. 물리학자에 따르면 원은 각도를 아무리 조정해도 대칭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원은 가장 대칭적인 형태이므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원과 비슷하게 대칭적인 기하학의 형태는 정사각형이다. 하지만 정사각형은 90도, 180도, 270도, 그리고 360도로 회전했을 때만 대칭성이 유지된다. 그 외의 각도에서는 대칭이 깨지며 불안정해 보인다. 다른 도형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토록 완벽하게 대칭적인 원은 어떤 이익을 가질까? 원은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에너지를 가장 덜 쓰면서 움직일 수 있는 형태다. 말하자면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파악하는 데도 에너지를 덜 쓴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를 덜 쓰도록 프로그래밍되었으므로 원은 아름답게 판단되는 것이다. 생물학자에 따르면 모든 동물들, 특히 새와 인간은 대칭적인 배우자를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대칭이 그 배우자의 건강과 자질을 증명하는 지표로 쓰인다는 것이다. 

<사진9> 스텐실 글자처럼 디자인한 빵집 간판


이 대칭성이라는 것은 규칙성과 통일성, 균형의 다른 이름이다. 대칭이라는 것은 오른쪽과 왼쪽, 위쪽과 아래쪽이 똑같다는 뜻인데, 그것은 모든 것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텐실 글씨가 카운터가 있건 없건 모든 글자에 브릿지를 넣어주는 것, 그리고 알레르티가 벽에 구멍이 있건 없건, 건물 내부의 구조가 어떻든 간에 건물의 파사드에 시각적인 규칙성과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똑같이 대칭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의 발현인 셈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 빵집의 간판을 보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사진 9> 빵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옆으로 넓게 퍼진 받침 ㅇ에 브릿지를 넣어 스텐실 글자처럼 보이게 했다. 그렇다면 쌍자음 ㅃ의 닫힌 공간에도 브릿지를 넣어주어야 통일성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간판은 스텐실을 채택한 것이 아니다. 이 글자를 보면 상당히 볼드해서 ㅂ의 속 공간의 면적이 아주 작은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폭이 좁은 공간에 또다시 브릿지를 넣는 건 복잡성을 높일 뿐이다. 스텐실 글자를 만들 의도가 없었는데, 왜 ㅇ에는 브릿지를 넣어주었을까? 그것은 가운데 ㅂ자 속 공간의 얇은 흰색 배경의 수직적 연속으로 ㅇ에도 길을 터준 것이다. 또한 이 글자는 쌍ㅃ의 ㅂ과 ㅂ사이, 그리고 가운데 ㅂ과 ㅏ사이에 동일한 간격의 흰색 배경 공간이 있다. 이것과 동일한 성질을 받침에도 균질하게 넣어준 것이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빵이라는 글자의 위아래를 대칭적으로 만들어주고자, 다시 말해 규칙성과 통일성을 적용하고자 디자인한 것이다. 스텐실 글자를 만들고자 한 결과가 아니다. 사실 ㅇ에 넣은 흰색 길(브릿지)이 없어도 가독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란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대칭과 균형의 강박에 시달리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통일성을 지향하는 디자인은 그러한 프로그래밍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