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8. 09:09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chitecture and the Urban in Film and Literature ①
<General's Mustache> 1968 directed by Lee Seong-gu (1928~) /
Screen text by Kim Seung-ok (1941~)/ a 1966 novel by Lee O-young (1934~2022)
개괄
30여 년 전인 1990년부터 사무실에서 설계 외에 다양한 문화활동을 곁들여 왔다. 건축작품 전시회를 한다든가 세미나도 열고 서울 답사를 하는 등. 그 후 설계 일이 주춤할 때마다 드문드문 지속해 온 일은 ‘서울을 걷는다’와 ‘영화 보기’다. 그 중 영화 보기는 주로 ‘영화로 남은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했다. 종합촬영소가 활성화되기 전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리 또는 괄목할 만한 건축물이나 건물 내부에서 촬영을 했다. 무심코 보던 흑백영화에서 없어진 건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영화모임의 계기가 되었고, 상당히 많은 1950~1960년대 영화를 통해 이미 기록에서 사라진 건물들의 모습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오래전 강의자료로도 활용한 대표적인 영화들은 <젊은 그들(1955, 신상옥)>, <서울의 휴일(1956, 이만희)>, <서울의 지붕 밑(1961, 이형표)> 등이다. 창덕궁 연경당에서 시작해 경복궁 경회루에서 마치는 영화 <젊은 그들(1931, 김동인 원작)>에서는 지금은 바뀐 향원정 일대의 취향교와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내부의 실내공간까지 볼 수 있고, 서울의 휴일에서는 청계천 복개 전 제 자리에 있던 수표교, 화재로 소실된 프랑스에서 설계해 온 벽수산장(도면이 남아있다), 반도호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옥 강의에 자주 사용하는 <서울의 지붕 밑>에서는 하천 복개로 사라진 현 통의동 근방의 대상한옥(帶狀韓屋: 띠 모양 한옥군) 주거지의 신구 문명이 마주하는 한 골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다양한 60년 전의 한옥을 볼 수 있다.
2021년 말에는 서울시립대 박물관 요청으로 ‘영화로 남은 60년 전 서울’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통해 1950~1960년대에 만든 걸작 중 6개의 영화를 다루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강의를 촬영하고 유튜브 편집을 한 것이 시립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 :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시민 강좌] 영화로 남은 60년 전 서울)
2022년엔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만든 것을 10여 개 선정해서 내 외국인이 함께 하는 월례모임을 통해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묘사되었는가를 매달 한 편씩 살펴본다. 무슨 거창한 목표나 목적은 없지만 유쾌한 시간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장군의 수염
당대 영향력 있는 분으로 살다가 얼마 전 가신 이어령(李御寧 1934. 1. 15~2022. 2. 26) 선생님도 기릴 겸 <장군의 수염(1968)>으로 시작한다.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장군(將軍)의 수염>은 1966년 잡지 『세대』에 발표된 이어령의 같은 제목 소설을 김승옥(1941~ )1)이 각색하고 이성구 감독(1928~ )이 만들어 1968년 개봉한 영화다. 어둡고 난해해서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파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삽입한 점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서울대학교 건축과 출신이자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 영화 <홍길동(1967)> 감독 신동헌 화백(1927~2017, 만화가 신동우의 형)이다.
전직 사진기자 김철훈의 예사롭지 않은 죽음에 민완 형사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그가 살아있을 때 접촉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는 중, 그와 한때 동서생활을 했던 댄서 출신 나신혜를 만난다. 대화 중 철훈이 ‘고해(告解)놀이’나 ‘추장놀이’ 등을 비롯한 비현실적인 망령된 고집에 사로잡힌 사나이였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고 아마도 그가 자살을 택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일단 수사를 마무리 짓는다는 것이 줄거리다.
소설 속 ‘기우는 뗏목과 바다’로 묘사된 벽에 걸린 그림은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 캔버스의 유화 716 x 491 cm, 낭만주의 역사화)>이 원본이다.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3~1824)가 당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1819년에 제작한 그림으로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저자는 이미 파리를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2층 셋방에서 전직 사진기자인 한 남자 ‘철훈’의 연탄가스 중독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김철훈이 세 든 집과 그 동네 및 나신혜가 근무하는 M빌딩 등은 1960년대의 서울을 잘 보여준다.
“철훈은 신혜와의 동서생활(同棲生活)을 ‘표류’라고 했고 2층 셋방을 ‘캐빈(선실)’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끝없이 표류해 가는 거라고 그는 신혜에게 말했다.”
“그들은 ‘선창(서쪽 창)’에 기대어 노을이 지는 것이라든가 오물이 떠 있는 그 지저분한 바다 (市街)를 굽어보는 것으로 얼마는 만족했다.”
“연탄재, 달걀 껍데기, 말라비틀어진 쥐의 시체, 쓰레기들-좁고, 질고, 어두운 골목길을 몇 개나 지나왔다. 사그라져 가는 판자 울타리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또 한 번 커브가 꺾였다.”
“김철훈이 세 든 집은 그 골목이 끝나는 막다른 지점에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살던 철도 관사였던가 보다. 낡은 2층 목조건물들의 나가야(長屋)인데, 여러 세대마다 제가끔 울타리와 대문을 해 닫을 수 있게 뜯어고친 것이라 그 구조가 복잡해 보였다.”
“육조 방(다다미를 뜯어낸 마루방) 이었지만 가구가 없는 탓인지 허전하도록 공간은 넓었다. 연탄난로는 불이 꺼진 채였다. 책상이 놓인 벽 위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제리코의 그림인가? 조난당한 사람이 기우는 뗏목 위에서 먼 바다를 향해 외치고 있다.”
“서쪽으로 넓은 창 하나가 뚫려 있는데, 해가 질 무렵에나 겨우 햇볕이 들어올 것 같았다. 흡사 동굴과도 같은 방이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목조건물의 일종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거의 사라져 보기 어려운 나가야(長屋)는 일본에서는 서민 거주지역인 시타마치(下町)의 좁은 골목에 죽 늘어선 목조주택이다. 한 건물 안에 여러 집이 벽을 공유하는 형태로 구성된 집합주택으로 각각의 주택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직접 밖으로 이어지는 현관이나 어프로치를 갖고 있는, 일본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도시주택의 대표적인 형태의 하나다. 한국에는 철도를 놓으면서 상당수의 관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다. (참고: “일제하 서울의 대단위 철도관사단지의 조성과 소멸” -서울과 역사 2017, vol., no.97, pp. 215-256 (42 pages)/이영남, 정재정)
일본 다다미(畳, たたみ) 기본 방 크기는 보통 6조(畳)인데 다다미 한 장의 표준은 1.8미터× 0.9미터다. 그러나 도쿄처럼 인구가 밀집된 곳은 1.76미터×0.88미터를 1조로 계산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다미 6조 방이란 3.6미터×2.7미터로, 조선시대 한옥으로 보면 9자(尺)×12자(尺)로 그리 작지 않다. 1970년대 주택연구소에서 연구하던 국민주택 규모로도 안방(3.6미터×3.6미터) 다음으로 큰 방이다.
한편 M빌딩의 5층 사무실은 머리를 부딪힐 것 같은 나직한 계단 통로를 올라가야 하는데 나신혜가 근무하는 대지기업사다.
“M빌딩은 종로의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구식 콘크리트의 어두운 건물이었다. 대낮인데도 불이 켜져 있다. 한쪽 눈이 먼 늙은 수위가 손을 내 흔들면서 청소부와 무엇인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있었지만, 30년대 형의 고물이었다. 그나마 ‘정전운휴(停電運休)’라는 푯말을 붙여 놓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승강기는 일제기에 일본인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 1854~1919)’가 조선은행 본점(1912, 현재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설치한 화폐운반용 유압식 승강기와 요리 운반용 리프트로 알려져 있다(기고문에는 1910년으로 되어 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는 1914년 지금의 ‘웨스틴 조선 서울’인 철도호텔에 처음 설치됐다. 1941년 서울 화신백화점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기도 했다. 1940년대 한국 내 승강기는 약 150대에 달했다고 한다. (출처: 한국건설신문. 승강기산업 100주년 특집기획/김덕수 기자 2010.07.09)
이 외에도 김철훈이 어린 시절 지주의 아들로 살았던 한옥이나 나신혜 아버지인 나목사의 교회, 사반나 호텔,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반도호텔 스카이라운지 등이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있다.
또한 1960년대에 이미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들이 종로에 즐비했다는 것과 구식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묘사에서 콘크리트가 상당히 오래 전부터 건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1938년 건립된 반도호텔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하 1층 지상 8층에 연면적 18,300제곱미터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출처: 김상식, 정성훈, “건축분야에서의 철근콘크리트 기술의 발전”, 콘크리트학회지 제21권 3호 2009. 5 pp. 54-60)
한편 영화에서 괄목할 만한 장면은 애니메이션의 삽입이다. 서울대학교 건축과 출신인 신동헌 화백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 바로 직전해인 1967년 아우인 만화가 신동우 (1936~1994)의 1200회 연재만화 ‘풍운아 홍길동’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으로 만들었다. 1968년 <장군의 수염>에는 영화 일부에 애니메이션을 삽입했다.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이다. 지금 보아도 상당히 다이나믹하고 유쾌한 장면이다.
후기-소설과 영화에 빠져버린 건축사
학생 시절, 주인공이 건축 설계하는 사람인 어떤 소설에 영향을 받아 건축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적성검사에서 ‘공간지각력(Spatial Perception)’이 월등히 높은 학생의 1순위 권장 전공이 건축이어서 멋모르고 전공분야로 택한 것이 1971년이니, 건축을 가슴에 들여놓은 지 50년이 넘었다. 풍전등화 같은 사무실을 끌어안고 틈날 때마다 딴짓을 하나 사실 모든 일은 다 건축설계와 연관된다. 공부도 많이 오래 했다. 대학을 마치고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한지 20년이 되던 해 시작한 늦깎이 석사과정은 일과 병행하다 보니 젊은 학생들의 두 배의 시간이 걸려 간신히 학위를 마쳤다. 연이어 박사과정에 입학은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학업을 중단했을 것이라는 주위의 확신을 뒤엎고 재입학 포함 18년 만에 학위를 받고 공자 위패 앞에서 ‘흥, 평신, 흥, 평신’을 했다. 학사도 5년 반(당시는 4년제였다), 석사도 4년 걸렸으니 유치원과 초·중·고를 포함하면 재학기간이 무려 40년이 넘는다. 지금까지 삶의 60%는 학생이었다.
대학생 시절 어떤 해는 1년에 100회 이상의 프랑스 영화를 봤다. 심지어 영화를 더 잘 알아듣기 위해 불어까지 배웠다. 미국 뉴욕 체류 시 MOMA 또는 57번가나 첼시의 영화관에 더 오래 앉아 있었고, 교환장학생 자격으로 독일 뮌헨 체류 시엔 시립 필름뮤지엄 영화관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서울시 정책세미나 발표 요청에 대응하여 아예 로마2대학 단기 ‘보존’과정을 수료했다. 이에 오래된 도시를 이해하려고 이태리 흑백 영화 보기를 시작하면서 로마에서 촬영했거나 로마가 주인공인 영화를 50여 편 이상 본 후 ‘미래를 여는 과거: 로마 - 창의문화도시와 역사보존 (2008)’의 발표 자료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내 것으로 돌아오니 1950~1960년대 한국영화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당시 한국영화의 가치를 더욱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원전인 소설과 접목을 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십수 년이다.
다음 호는 강신재(1924~2001)의 <젊은 느티나무(1960)>를 이성구 감독의 1968년 필름으로 다룬다.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박사
· 건축학 박사(역사·이론–논문: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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