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7. 09:06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 thought on commercial housing
상가주택은 지금의 투닷을 있게 해준 고마운 주제다.
우리에게 버티기의 생존이 아닌 주도적 생존 전략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 상가주택에 대해 정리해보고, 더 발전된 생각을 쌓아가고자 한다.
상가주택의 한계
신도시나 도시개발구역의 점포(상가)주택지는 도시의 비좁은 골목의 빌라촌과는 여건이 다르다. 도시 빌라촌의 태생은 단독주택지이다. 단독주택의 크기에 적합한 토지와 도로의 크기를 갖고 있던 것이 점차 빌라촌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1가구를 위한 단독주택지에 다가구를 넣고 적층하다 보니 주거환경이 좋을 수 없다. 물론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에 적합한 다가구 형식을 고민해 적용했더라면 지금의 빌라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수도 있었겠으나, 불행히도 그 고민은 시작도 되지 못하고 채워지기 급급했다.
반면, 지구단위로 계획된 점포주택지는 입지의 전제가 다르다. 태생부터 다가구와 점포를 가정해 지구단위에서 정한 가구의 수, 층수, 용적률을 감당할만한 필지의 크기와 도로의 너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어지고 채워진 점포주택 블록은 도시의 빌라촌과 너무나 닮아있다. 그 이유를 도시이든 택지이든 건축주의 욕망이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그 욕망(수익 실현, 재산 가치의 증식)을 부추기는 누군가의 역할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추기는 누군가는 대표적으로 지역의 공인중개사 또는 시공업자다. 둘의 존재 이유는 다르지만, 그 둘은 나름의 공생관계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지역의 공인중개사를 통해 토지 매매를 할 때, 공인중개사는 이런저런 건축에 관련한 조언을 한다. 집의 구성은 어떠해야 하고, 주차는 이렇고 상가는 저렇고. 그렇게 하면 임대는 걱정할 필요 없고, 저렴하게 설계와 시공을 해줄 수 있는 업체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건축 컨설팅을 한다. 지역의 부동산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얘기라 건축주는 혹하게 되고, 많은 건축주들은 중개사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게 된다. 건축주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라 믿고. 정말 그럴까?
공인중개사는 그들 일의 성격상 건축주가 좋은 집을 짓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래할 수 있는 매매, 또는 임대 상품의 구성이다. 택지에는 다양한 주거 상품군이 존재한다. 아파트부터 단독주택, 점포주택까지. 공인중개사의 입장에서는 상품군은 높은 가격대에서 낮은 가격대까지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좋다. 그런 측면에서 점포주택의 임대주거 질이 굳이 좋을 필요가 없다. 임대가격이 높은 아파트의 하위 상품으로서 기능하면 될 뿐이다. 도시에서 흔히 보는 빌라의 수준이어야 거래하기 더 좋은 것이다.
그렇게, 아파트를 닮은 아파트의 아류가 되면 지역의 시세에 따라 임대가격이 정해진다. 정해진 임대가격은 건축주가 건축비에 쓸 수 있는 예산의 제한 요소로 작용한다. 임차인에게도 질 좋고 내 집 같은 거주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건축주의 선한 의지도 결국 제한된 예산으로 마음만 남을 공산이 크다.
상가주택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가구와 임대가구가 공존하는 주택이라는 것
대개의 경우는 맨 위층에 주인세대가 자리한다. 옥상 정원이나 베란다를 가지고 방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널찍한 다락도 있다. 그에 비해 임대가구는 발코니 확장으로 임대 면적을 확보하느라 빨래를 널어두거나 바람을 쐴만한 변변한 외부공간도 없으며, 좁고 깊은 평면 형태로 환기나 채광에 불리한 거주환경을 가진다.
위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주택, 이것이 현재 상가주택의 모습이다. 아파트의 단점으로 꼽는 똑같은 평면 형태, 그것이 적층되어 보이는 단조로운 입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상가주택처럼 외부에서 봤을 때 사는 이의 계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이가 월세를 사는지, 전세인지, 자가인지 보는 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상가주택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주거 형태라기보다는 상가와 다가구주택을 섞어 내놓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주거 형태다. 택지개발의 주체들이 지구단위 계획을 하며 단독주택지와 근린생활용지의 중간적 역할을 하는 점포주택지를 끼워 넣었더니 인기가 폭발했고, 그러면서 택지개발지구에는 당연하듯 점포주택지가 생기게 됐다.
도시에서 빌라를 짓던 건설업자가 자리를 옮겨 택지에서 똑같은 모습의 빌라에 상가를 기계적으로 결합한 상가주택을 지어댔다. 상가와 주택이 공존할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기에 그 부작용은 곳곳에 나타났다. 상가가 주인인 양 길을 꽉 채우고 들어서 주택에 사는 이는 주차장을 통해 건물의 옆구리로 출입하거나 후미진 곳에서 드나들어야 했고, 상가가 활성화된 지역에서는 외지에서 온 차량으로 길 전체가 점령당해 유모차도 끌고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상가와 주택이 균형과 통일에 대한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접합되다 보니 상가로서의 매력적인 가로 조성에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삭막해 보이는 빌라촌에 멋진 카페거리가 조성될 리 만무하다.
건축주와 임차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집짓기를 위해, 투닷에서는 그간 몇몇 상가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도한 전략이 있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검토되고 실천되었으며, 그 결과는 유의미하게 검증됐다.
첫 번째. 아파트의 평면을 닮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주변의 기존 상가주택과 동일한 주거 구성은 피하는 것이다.
아파트의 평면을 따른다고 해도 입지의 여건과 거주 환경으로 인해 결국 아파트의 아류, 또는 하위 수준일 수밖에 없으며, 주변의 상가주택과 동일한 주거 구성으로는 이른바 시세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단독주택을 닮으려 노력하거나, 주변에 없는 새로운 주거 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아파트와 경쟁할 수 있고, 시세에서 벗어나 임대수익을 주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상가주택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도, 임대수익을 높여야 한다. 건축주의 이타심에 기대어 집주인, 임차인 모두가 만족스러운 집짓기를 기대하는 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임대수익이 높아져야 건축비에 투입할 예산을 늘릴 수 있다.
두 번째. 아파트와 같은 동일한 거주환경이 아닌, 동등한 거주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먼저 앞에 언급한 대로 아파트는 그 획일성의 단점은 있으나, 적어도 외관상 위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상가주택은 작은 규모에도 최상층 주인세대, 그리고 그 하부 층에 위치한 임대세대와 같이 그 위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천박하다.
계급이 드러나는 곳에서 함께 모여 사는 것은 불가피함이지 자발적인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우린 건축주에게 다양한 방식의 동등함을 구현할 방법을 제안한다. 여러 방법 중 공통된 것은 건축주가 필요 이상으로 누리는 것들을 임차인과 나누는 것이다. 물론 그냥 나누어 주라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에서 언급한 임대수익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로, 건축주의 욕망과 임차인의 욕망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세 번째. 상가주택은 상가와 주택이 공존한다. 그러므로 공존의 방식, 균형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건축주의 수익이 상가에 기대는 바가 크다고 해서 주택이 구석으로 밀려나서는 안 되며, 주택과 상가의 뚜렷한 시각적 분리, 어색한 만남으로 상가를 더 초라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서로 기능이 다르다 해서 주택과 점포가 별개의 모습으로 따로 또 같이 있기보다는 하나로 보이는 통일된 디자인이 유효할 수 있다.
글. 조병규 Cho, Byungkyu 투닷 건축사사무소(주)
조병규 투닷 건축사사무소(주) · 건축사
명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IMF의 도피처로 삼은 건 국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아내를 만났다. AI, 이안디자인 건 축사사무소에서 13년 동안 근무하다 2014년부터는 후배인 모승민 건축사와 투닷건축사사무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양수리에 두 대표 건축사의 집인 ‘모조’를 짓고, 직주 근접의 삶을 실천하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애쓰며 살고 있다. 한밭대학교에서 설계스튜디오 강사를 했고, 서울 주택도시공사(SH)의 공동체주택 및 매입임대주택 심의를 하 고 있다. 2021년에는 건축 에세이 <보통의 건축가>를 출간했 으며, 간간이 방송활동도 하고 있다.
todot@todot.kr
'아티클 | Article > 연재 | Se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예와 건축 _ 영화로 읽는 소설 속 도시와 건축 ①<장군의 수염> 1968년 이성구 감독 (원작: 1966년 이어령/ 각색: 김승옥) 2022.4 (0) | 2023.02.18 |
---|---|
건축사와 건축주 2022.4 (0) | 2023.02.18 |
문예와 건축 _ 영화로 읽는 소설 속 도시와 건축 ⑪ <소레카라(Sorekara-それから)> 1985년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 2023.2 (0) | 2023.02.16 |
도시의 정체성 ② I. 도시 서울, 역사 이전의 흔적부터 지금까지 2023.2 (0) | 2023.02.16 |
건축사 울리는 무대포 ‘블랙민원인’ 2022.1 (0) | 2023.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