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5. 09:09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Black Consumer’, putting architects in trouble
기업에 ‘블랙컨슈머’가 있다면 행정기관엔 ‘블랙민원인’
2021년 12월 30일 오전 11시 즈음 사무실 앞에 사무실과 골목에 걸쳐놓은 차를 빼달라는 주차단속원의 전화를 받았다. 옆집 아저씨의 2021년 마지막 민원이었다. 단속원도 상당한 배려를 해주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며 “저 집 아저씨 때문에도 어쩔 수 없어요. 저희도 차가 없는 사진을 찍어가야 해서요” 라는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해주었다. 주차단속원이 단속 대상을 배려해 주는 아름다운 광경은 옆집 아저씨의 시도 때도 없는 민원으로 생겨났다.
나는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근린생활시설 사무실로 용도 변경하여 맨 위층에 얼마 전 입주하였다. 4미터 도로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은 30년이 넘은 다가구 주택들은 주변 집의 건축물 현황도가 모두 같았으며, 현황도와 건물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아 아마도 집장사가 어찌어찌 대강 지어서 팔았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모든 집들은 하나같이 불법으로 보일만한 쪼개기가 되어 있었고, 어떤 집은 옥탑 방이 어떤 집은 창고 등이 붙어있어 건폐율 60%인 동네에서 거의 모든 집의 건폐율이 80% 이상은 되어 보였다.
내가 구입한 집도 마찬가지였다. 비용과 행정 공사여건을 봤을 때 대수선을 할 상황이 아니라 판단되었으나 너무 낡은 설비와 창호, 안전을 위한 난간, 입주할 층의 약간의 인테리어 등과 더불어 건축사사무소가 입주할 건물에 불법은 안 된다는 생각에 전 주인이 해놓은 가구 쪼개기, 무단 증축을 철거하는 원상복구 과정을 거쳐 입주할 생각이었다.
처음 인사드린 동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친절해서 서울시에 아직 이런 인심이 살아있는 동네가 있을까 할 정도였다. 나머지 세입자들은 낮 시간에는 거의 만날 수도 없었다. 특별한 인허가가 필요한 공사가 아니었기에 별도의 신고 없이 진행이 가능했고, 일주일 정도는 원활히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부터 옆집 아저씨의 민원이 시작되었다.
발단은 본인 집 대문(대문 자체가 불법이다.) 재시공을 현장소장에게 요구했는데, 현 우리 공정에는 관련 공정이 없어 힘들다, 라는 대답이었다. 이날부터 나는 공사 내내 구청을 방문하는 옆집 아저씨 때문에 구청 내 모든 관련 부서의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으며, 때에 따라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문제없는 부분까지 불법대수선을 운운해 확신 없는 구청을 대신하여 건축구조기술사의 의견을 첨부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련부서들은 현장정리나 소음, 안전에 큰 문제가 없는 현장 상황에 형식적인 사항만 알려주며 민원으로 나오게 된 불편한 상황에 양해를 구하였으나, 정작 건축현장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구청 건축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건축사님 민원 때문에 저희 일을 못하겠어요. 원하는 거 해주시고 빨리 마무리하시죠.”
라는 무책임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구청 건축과 담당과의 통화 내용은 악성민원의 해결방안을 찾고자 상담했던 주변 건축사의 진심 어린 충고와도 같은 맥락이었다.
마구잡이 민원에 공무원은 인허가 빌미로 건축사에게 떠넘기기 일쑤
갑자기 그간 숱한 현장에서 만나온 민원에 대한 생각이 났다. 민원이 생기면 대부분의 구청은 감리자에게 공문을 보내 건축주와 시공자에게 전달하고 조치하게 한다. 비상주감리자로 현장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건물을 짓게 되면 주변에 폐를 끼치니 요구 좀 들어주시죠”, “민원 해결해서 구청에 알려주세요” 등의 말과 함께 공문을 전달하고는 했었다. 물론 현장의 잘못이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정말 어이없는 민원인 요구를 인허가를 빌미로 요청하는 관공서도 많았다. 북측 8미터 도로 건너편에 있는 집에서 요구한 차폐를 해결할 때까지는 사용승인을 내줄 수 없다던 ㄱㅂ구청, 지구단위계획에서 보행자도로를 지나 차량 출입을 하게 지정해 놓고서는 주변 민원 해결에 건설사가 협조를 안 하니 설계자가 나서달라고 말하던 ㅅㅈ구청, 옆 건물 지하 미장원 샴푸실에서 손님이 머리를 감을 때 우리 건물 내부가 보이니 창을 조정하라는 민원인과 원만한 합의를 하라는 ㄱㄴ구청, 상습민원인이 또 민원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수도 인입 승인을 한 달 넘게 안 해주는 ㅊㅇ구청 등등의 어처구니없는 사례에는 항상 관공서가 개입되어 있었다.
민선 구청장 시대에 적극적 민원인은 표와 연결되어 있어 각 구청은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악성 민원(본 건물의 신고를 받는 구청 민원실에서도 이미 유명한 분이었다.) 요구조차 일일이 듣고 행정절차를 거치고 있다. 과연 누가 피해자일까? 구청에서 떠드는 사람만 민원인일까? 어쩌면 상대방이 피해자일수 있다는 가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도 세금을 내는 민원인이니, 합법한 범위에서의 공사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구청에서 도와주는 것을 바라는 게 큰 사치일까, 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되돌아가서, 옆집 아저씨의 민원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쉽다. 본인 집의 대문이 불법인 것을 알려주고, 그가 신고하는 집뿐 아니라 주변 건물을 같이 단속한다고 이야기를 해준다면 아마 당장 그만둘 것이다. (옆집 포함 주변 모든 건물의 불법을 2~3개 이상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형편이다.) 청소행정과에서 물청소까지 끝낸 현장을 찾아와 바닥에 떨어진 칼날 하나와 조그마한 휴지조각 하나를 지적하는 건 행정 낭비라고, 당신 때문에 매번 현장조사를 나올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건물에 CCTV를 달러 온 사람이 한발자국 옆으로 넘어갔다고 불법침입으로 경찰을 부르는 옆집아저씨에게, 잠시 발로 밟았다 떼는 건 불법 침입으로 신고될 수 없다고 법에 근거해 명확히 말해주며 나무란다면 다시는 민원을 넣지 못할 것이다. 아니, 모두에게 열린 구청장실 앞에 ‘부당한 민원으로 야기되는 행정의 마비 및 세금 낭비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 한마디가 블랙컨슈머를 예방하듯이 블랙민원인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글. 남기봉 Nam, Keebong 남기봉 건축사사무소
남기봉 남기봉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아이들의 엄마로, 동네의 이웃으로, 살고 있는 도시의 건축사 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며 삶의 토대가 되는 건 축물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담은 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건 축물의 설계뿐 아니라 공간디자인, 환경디자인 등 공간을 구 현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주택시리 즈 LIFE_FACTORY, 양산ICD물류센터, 신안코아청년몰 인테 리어설계, SH 행복주택, 미아동 15929 등이 있다. 2016 상반 기 건축전시회 ‘建築共感:집을 위한 다른 생각’을 개최한 바 있으며, 2016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 2021대한 민국공공건축상 최우수상(국토부장관표창)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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