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5. 09:07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ompletion of Hanok Education Hanok Design Training program for architects in 2021
2021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운영한 한옥설계전문인력양성과정은 2021년 6월 23일 시작하여 12월 8일까지 진행되었다. 국토부에서 수임 받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 외에도 COVID-19 팬데믹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매시간 모두가 자가 진단을 하고 시작했으며, 강당에서 설계작업을 하는 등 거리두기를 넉넉히 하였고,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여 사고 없이 원만하게 마칠 수 있었다. 전체 과정은 ①한옥설계 관련 이론 강의, ②한옥설계 기초조사 연구, ③한옥설계의 세 과정으로 나뉜다. 강사 섭외 등의 강의 구성은 한양대학교 동아시아건축역사 연구실에서 주관하였고, 설계강사 4인과 긴밀하게 의논하면서 사무국의 행정 협력으로 진행했다.
1. 이론 강의는 다음처럼 구성해서 진행했다.
(1) ‘주거와 재생’의 개강 특강 : 설계 강사들의 설계강의 및 ‘한옥의 보전과 전승’이라는 주제의 수료식 특강
(2) 풍수, 한옥 법규와 서울시 지구단위계획 등의 교육을 통해 땅을 바로 읽고, 판단할 수 있는 강의
(3) 한옥의 주 재료인 ‘목재의 수종과 품질’ : ‘흙건축’ 그리고 마감재에 대한 재료 강의
(4) 드잡이 및 사이버 공동 강의로 마련된 ‘목구조 결구 - 이음 맞춤’의 기법 강의
(5) 구조 및 R&D에 대해서는 사이버 공동강의로 진행된 다음 내용의 강의가 있었다. / 소규모 건축기준의 활용 : 국가한옥기술개발 R&D; 소규모건축 구조기준 (전단벽 설계)
(6) 한옥설계를 하기 위한 개괄적인 내용으로 ‘목조건축의 흐름(한·중·일)’, ‘전라도의 건축; 경상도의 건축; 강원도의 건축’으로 나누어서 한옥의 지역 특성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그리고 산업대전과 연계하여 ‘기후 위기와 건축’ 및 ‘목조건축의 선구자들(한·중·일)’은 공개강좌로 준비했으나 역병(Pandemic) 예방 차원에서 수강 건축사대상으로 진행했다. ‘전통건축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주제의 공개강의도 준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진행하지 못하였다.
2. 한옥설계 기초조사 연구는 한옥의 실측 및 주요한옥의 심층연구, 그리고 현장 답사 및 워크숍으로 구성하여 진행하였다.
(1) 한옥실측 설계는 2012년 처음 시행 당시 대상이었던 남산골 한옥 마을의 민씨 가옥 사랑채, 별당 및 이승업 가옥 안채와 사랑채의 실측설계 실습을 진행하였다. 실측조사를 통해 한옥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여 표현하는 훈련을 하였고, 놀라운 일은 모두가 바쁜 가운데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도면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실습한 경험을 토대로 수강생들이 직접 대학생 실측설계 지도를 함으로써 건축사 봉사활동까지 진행하였다. 실측 대상은 경복궁의 협문으로 대학 및 대학원에서 추천된 대학(원)생 2인과 2~4인으로 구성된 건축사가 한 조를 이루어 대학생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2) 조별로 국가민속문화재 등 17개 주요 한옥을 조별로 자발적으로 선정하여 ‘한옥설계 기초조사 연구’및 발표를 하였고, 그 결과물은 수강 건축사 모두가 공유했다.
(3) 한옥 답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활발히 진행하였다 : ①도시개발로 소멸될 위기에서 제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한옥들로 구성된 남산골 한옥마을, ②일부 계속 거주는 하고 있지만 주거지라는 정체성을 잃고 관광 대상지로 전락하여 20여 년째 보존 및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지탱하고 있는 북촌 한옥마을, ③최근 10년 간 새로이 개발이 진행 중인 은평 한옥마을을 둘러보았고, ④19세기 궁궐한옥 답사가 주제인 창덕궁 및 창덕궁 후원 답사, 그리고 ⑤전라남도 보성 강골마을의 다수 국가민속문화재들과 강원도 강릉의 국가민속문화재 선교장 및 14세기 목조건축을 비롯하여 복원한 생가 및 향교건축 답사를 했다. 아울러 ⑥R&D 작업의 성공적인 결과인 정릉 정수학교 답사까지 마쳤다. 마침 설계강사 중 한 분의 설계작품으로, 올해의 한옥상 공공부분 수상작이었다.
(4) 괄목할만한 것은 전라남도 장흥의 조선와요에서 전통기와제작의 실습을 한 워크숍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와장 및 전수자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함께 흙을 치고 기와를 만들었다. 소성된 기와는 협회로 전달될 예정이다.
3. 한옥설계는 본 과정의 핵심으로 종로구 북촌의 팔판동과 계동을 대상 대지로 진행했다.
기초반 참여자들은 종로구 팔판동, 최근 지구단위계획에 변동이 생긴 지역의 작은 대지들을 대상으로 설계했고, 같은 북촌이지만 세부구역이 다른 종로구 계동의 북촌문화센터 및 한옥지원센터는 심화반 참여자들의 설계 대지로 택했다. 설계 수업은 참여건축사들 각자의 역량에 맞게 설계강사들이 한 명 한 명씩 개별 튜터링(tutoring)으로 진행했다. 공통으로 알아야 할 사항은 설계시간 특강으로 진행했다. 전체 구성은 설계현장 답사, 설계작업 진행, 중간발표 및 최종발표, 그리고 A3 도면 작성 및 A0 전시판넬 작성이다. 수료식 때 협회 1층 로비에서 전시회를 진행하였다. 기초반 전체 배치도는 설계강사 중 한 분이 기꺼이 제작했다.
과정을 마무리하며
1:3의 경쟁을 뚫고 전국에서 참여하게 된 건축사들은 경력이 많은 분들이었다. 한옥의 작은 부분만 이해하여도 도면의 표현이나 삼차원 설계 등의 응용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다. 초창기 지붕 가구 구성과 상관없이 목조 기둥을 배치하는 범실이 눈에 띄었으나 한옥을 점차 이해하면서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은 고무적이었다.
기둥, 보, 도리 및 서까래로 구성된 한옥은 일반건축 설계의 시발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참여 건축사들은 경계선에 대한 해석도 지붕을 처음부터 앉혀 놓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한 듯하다. 한 예로 처마 길이를 내기 위하여 과감하게 본채 평면 면적을 줄여서 한옥답게 설계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 분도 있었고, 2층 한옥의 문제점을 잘 부각시켜 차제에 서울시에 심의 기준 등 관련 건의할 내용들도 설계에 드러났다.
한 편, 참여 건축사의 상당수가 1인 건축사사무소라 업무와 실습을 병행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이해한다. 놀라운 것은 경주, 울산,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매주 올라온 건축사들이 십여 분이나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 제약이 있어서 충분히 실력발휘를 못한 분들도 있지만,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발전적이고, 이 시대에 맞는 한옥설계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한편 국토부에서 실무자가 참석한 최종 평가에서는 국토교통부 장관상 1인 및 대한건축사협회장상 2인을 선발했다. 그러나 설계강사진은 참여건축사 모두의 노력이 격려할 만하다 여겨서 강사진이 쾌척한 귀중한 자료들로 멋진 당호상, 인기상 등 모두가 상을 나누며 과정을 마쳤다.
한동수 _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동아시아 건축역사 연구실)
김미진 _ 이소건축사사무소 주식회사, 문화재실측설계기술자
김철민 _ 종합건축사사무소 대연건축, 문화재실측설계기술자
박진홍 _ 희우에이앤씨건축사사무소(주), 문화재실측설계기술자
조인숙 _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위원(복원정비분과)
‘기후 위기와 건축’ 강연을 듣고
며칠 춥더니, 오늘은 날씨가 푹해서 외부활동하기 좋은가 했다. 잠시 후 핸드폰 앱으로 미세먼지가 심하니 외부활동을 자제하란 알람이 울린다. 언제부터인가 날씨와 함께 대기 상태를 자연스럽게 확인하게 된다. 삶의 곳곳에 이미 기후로 인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의식주 어느 하나 빼놓을 게 없다. 코로나가 있기 바로 직전에는 때마다 오는 중국의 미세먼지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적인 인간 활동의 ‘잠시 멈춤’은 지구의 아파하는 목소리를 우리에게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고, 지구를 위해(인류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이다) 우리가 지금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탄소 중립의 실천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한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의 참여는 어쩌면 환경과 맥락을 같이하는 시대적(혹은 지식에 대한) 욕구에 의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나무와 흙, 돌이라는 자연을 재료로 하는 건축적 기법은 단지 한국문화라는 미학에 심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대진대학 이혜원 교수의 기후행동 캠페인 ‘기후시민3.5’에서 보여주는 사회운동은 어쩌면 작은 실천에서 시작할 수 있는 기후위기 극복책을 쉽고, 명확하게 보여주었던 것 같다. “덜 소비하고 더 오래 존재하라”는 선언은 사회운동을 넘어 기후위기 속 건축에서도 적용되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을 계획하기 위한 사전 조사 단계에서부터 기후위기를 대비한 계획의 지향점을 건축주와 공유한 적이 있었던가. 면적과 방의 개수, 최적의 공사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재료와 예뻐 보이기 위한 형태와 색채디자인. 마지막으로 구조체는 목조와 철골과 콘크리트가 있는데, 그중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콘크리트를 자연스럽게 추천하고 있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지금 나의 현실이 그러하다. 아주 장황하게 ‘새로운 건축공법을 통한 탄소의 배출을 최소화하고, 생산에서 구축에 이르기까지 탄소의 이용을 최소화하는 한옥건축을 현대의 건축으로 재발견하고, 냉난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로에너지건축을 지향하고, 단열성능의 강화와 입면 외피 개구부 면적을 최소화하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있는 실천적 건축행위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기후 위기가 극복되지 않기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실천이 필요하다. 건축을 공급하는 자와 건축을 소비하는 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나는 건축주에게 설계안을 제안하면서 환경을 고려한 ‘바른 건축을 공급’ 하고 ‘바른 건축 소비’를 건축주에게 제안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게 이 시대에 건축하는 이들의 사명이라 본다.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좀 더 값싸고 질 좋게 만들고 싶은 게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기후 위기의 끝자락에 밀려 밀려오지 않았던가.
사는 건축 말고, 살리는 건축을 해야겠다. 적어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씩 기후를 생각하는 실천적 삶을 살아야 할 때다. 건축의 기술적 발전을 통한 기후위기의 극복과 더불어, 건축을 환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올바른 건축적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지구는 인간이자 동물인 ‘인간동물’을 비롯한 동물과 식물, 자연 모두가 공유하는 소중한 삶의 터다. ‘위기’라는 단어가 곧잘 ‘위험이자 기회’라는 말로 쓰이고 있지 않나.
지금이 기회다. ‘인간동물’이 지구와 함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기초반 홍기용 _ 이마건축사사무소
한옥실측 설계_남산골 한옥마을 민씨가옥 사랑채
7월 초의 무더운 여름이었다. 한옥교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옥에 대한 기본적인 용어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한옥마을에 모였다. 기본적인 도면 그리는 법과 치수 재는 법, 각 조가 실측해야 할 곳을 듣고 실측을 시작했다.
우리 조가 실측할 대상은 민씨 가옥(閔氏 家屋)으로 대한제국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대부호이자 고위관료를 지낸 민영휘(閔泳徽, 1852~1935)가 소유했던 저택 중 하나로 원래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을 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복원하였다고 하며, 이중 사랑채는 이전과 함께 새로 지었다고 한다. 조선 말기 최상류층 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실측하기 위해서 먼저 야장(野帳)을 작성해야 하는데, 적당한 비율로 기둥 간격을 그려주고, 그 밑그림에 실측한 치수와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캐드(CAD)를 통해 정확한 치수로 작업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 손으로 비율도 정확하지 않은 도면을 먼저 그리고 치수를 써넣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나눠 받은 방안지에 적기 시작한 치수들은 적으면 적을수록 상세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고, 머지않아 방안지는 넘쳐나는 숫자들로 빼곡해졌다. 각 부재의 구성은 물론 작은 디테일도 모르는 나에게 그것은 도면이라기보단 암호 같은 그림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옥실측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사람이 줄자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은 차곡차곡 숫자를 더해 치수를 재고, 한 사람은 그 숫자를 받아 적고, 다른 한 사람은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평면도, 단면도, 앙시도, 지붕평면도, 입면도를 각각 분담해 그렸다.
그때는 왜 디지털 도구로 빠르게 측정하지 않을까? 왜 한옥 이론에 대한 학습도 없이 실측을 먼저 시작해서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라고 하실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한옥 한 채를 그때만큼 오랫동안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그때만큼 선입견 없이 대상 그대로를 본 적이 있었을까?
한옥에서 정해진 규칙과 정답이 무엇일까를 먼저 찾고 시작하려 했던 나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거기에는 정해진 규칙도 정답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더운 날씨만큼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힘겹게 그려낸 도면은 한옥에 대한 배움의 시작에서 나에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기초반 백수정 _ 비와이(BY)건축사사무소
한옥실측 설계_남산골 한옥마을 이승업가옥 안채
평소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한옥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건축사로서 한옥의 깊은 속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부족하다 느끼고 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배우던 시절에는 건축과의 커리큘럼이 현대건축에 집중돼 있었다. 때문에 한옥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잘 모르는 건축에 대한 동경일까? 한옥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에 어떤 갈증, 혹은 동경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하게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에 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렇게 기다리던 첫 수업 날. 새 학기에 처음 등교하는 신입생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참여했지만, 첫날은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그다음 주에 이어질 현장 실측을 위한 야장작성과 실측방법, 그리고 한옥에 대한 기초지식을 강사진들이 인정사정없이 생소한 전문용어로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정신없이 받아 적고 핸드폰으로 모르는 용어를 검색해가며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첫 수업이 지나갔다.
이렇게 첫 수업의 혼란을 뒤로하고 실측 수업 날이 되었다. 미리 배정된 조원들과 만나야 하는데 4명 중 2명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다른 조원과 함께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배정된 이승업가옥 안채에 도착했다. 당혹스러움은 실측 수업에서도 계속되었다. 아무리 듣고 외워도 익숙지 않은 용어와 개념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강사진들은 정말 인정사정없이 우리에게 전문용어를 쏟아내며 설명을 해준다. 짧은 시간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지만, 생소한 개념들이 머리에 받아들여지기에는 벅차다는 느낌도 받았다. 일단 알든 모르든 무조건 듣고, 모르는 건 건너뛰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실측이 시작되었다.
하필 우리 조가 배정받은 이승업 가옥은 말 그대로 이승업이란 도편수가 본인이 거주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기량과 경제적 능력을 쏟아부어 만든 한옥이다. 이승업이란 도편수에 대해 잠시 찾아보니 당대 경복궁 중건공사에 참여했을 정도로 당시 인정받는 대가였다. 이런 목수가 정말 마음먹고 본인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한옥이라고 하니, 한편으로 초보자가 실측하고 이해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이야 이런 훌륭한 한옥을 실측해서 뒤에 이어지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평하지만, 정말이지 당시에는 막막했다.
실측 수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로 쉽지 않았다. 현업으로 인해 다른 건축사님 두 분은 결국 과정을 포기했고, 다른 조원 한 명은 코로나로 인해 그날 실측 수업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실측자료를 가지고 실측도면을 작성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남은 우리 두 명은 고민 끝에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서 재실측을 하기로 했다. 나야 지내는 곳이 서울이지만, 다른 분은 울산에서 오셨다. 그렇지 않아도 매주 수요일에 울산과 서울을 당일치기로 왕복하는 상황에서 주말에 또 서울에 올라오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열정에 감탄했다. 이렇게 진지하게 한옥 설계과정에 참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나에게 많은 본보기가 됐다.
실측 당시 한옥설계교육 운영진의 배려로 실측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평소 안쪽을 들여다보기 힘든 귀한 한옥을 마음껏 보고 만지며 느끼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여름의 무더움과 함께 첫 현장실습을 마치게 되었고, 본격적인 한옥설계교육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걸 느꼈다. 시작이 있으면 그 끝도 있는 법. 이렇게 여름에 시작된 교육을, 벌써 12월이 되어 수료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수요일에 다 같이 모여 강의를 듣고 점심 메뉴를 이야기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뭔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과정이 아쉽기만 하다.
한여름의 무더운 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실측현장에 나와주신 조인숙 건축사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더불어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에 참여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신 강사진과 이 긴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묵묵히 서포트 해주신 협회 직원들과 운영진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기초반 이형규 _ 인생건축 건축사사무소
영조가 사랑한 막내딸 화길옹주의 가옥 ‘남양주 궁집’ 답사기
2019년 기초반 교육 당시에도 조사 대상지로 선정하여 답사를 가려 했으나, 무의자재단에서 남양주시청으로 소유권 이전이 진행 중인 관계로 울타리 너머로 바라만 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섰던 궁집. 현재는 궁집과 부속 채들을 정비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남양주시청의 협조를 얻어 소중한 답사의 기회를 얻었다.
‘남양주 궁집’은 딸 사랑이 지극했던 영조가 막내딸 화길옹주가 혼인할 때 솜씨 좋은 궁궐 목수와 목재를 보내 지어준 집으로, 남양주 평내동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길옹주가 출가하여 죽을 때(1765~1772)까지 살았던 곳으로 가옥이 건립된 절대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오래전부터 남양주 궁집을 답사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미음(ㅁ)’자 형태의 구조 때문이다. 조금은 폐쇄적인 형태이나 대청에서 보이는 마당의 모습,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의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기대하던 궁집 답사 날……. 대문간을 통과하여 안마당에 들어갔을 때의 첫 느낌은 아담하다는 것이었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집의 규모를 제한하는 ‘가사규제’ 때문인데 대군은 60칸, 군과 공주는 50칸, 옹주는 40칸을 짓도록 규정했다. 현재 궁집은 ‘미음(ㅁ)’자형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는데, 그 규모가 31칸으로 현존하는 건물 외에 행랑과 바깥문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길옹주의 거주공간인 안방의 일조관계를 고려하여 대청이 마당의 정면에 위치하지 않고 측면으로 치우쳐 배치되었다는 것이 평면상의 큰 특징이었으며, 왕이 직접 재목과 목수를 보내어 지어주었기 때문에 재료에서도 차별화된 디테일이 보인다. 초엽, 대들보 및 툇보의 치목, 화강석의 장초석, 툇마루의 동바리기둥(턱빗모 모접기), 기둥(쌍사+턱빗모)…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너무도 인상 깊고 좋았던 궁집… 좋아하는 형님들과 함께한 행복한 답사였다. 2019년 동기이자 스승이었던 변기석 건축사님과 진정한 실력자 이준열 건축사님, 앞으로도 쭉 함께 하시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답사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신 대한건축사협회 직원분들께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심화반 임현호 _ 투에이치 건축사사무소
남산골 한옥마을 답사기
개강식 후 첫 답사로 실측 예정인 남산골한옥마을을 방문했다. 오전 이론강의 후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집결지인 천우각에 모여 6개월을 함께 할 조원들과 만난다. 한옥에 관심만 있고 관련 지식은 부족한 상태여서 천우각에서부터 시작된 한옥관련 정보(부재명칭 등)들이 낯설지만 흥미롭다. 코로나기승으로 출입부터 조심스러웠는데 오랜만에 느끼는 한옥의 멋과 새로운 배움이 주는 끌림에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었다.
이승업 가옥 솟을대문에 붙은 ‘올봄에는 행복해봄’이라는 따뜻한 문구를 보며 ‘내년 봄엔 더 행복해봄’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일주일 후 실측 예정인 이승업가옥과 민씨가옥을 둘러보며 새로운 이야기와 구조방식 등을 듣는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가옥은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20호로 경복궁 중건 때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였던 이승업이 지은 집이다. 안채(기역-ㄱ-자형)와 사랑채가 남아있으며 당시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창호와 장식 등이 화려하고 독특하다. 관훈동 민씨가옥은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8호로 민영휘(서울팔대가) 가의 저택 일부이고 별당채와 사랑채가 남아있다. 별당채와 사랑채의 규모가 매우 커서 당시 최상류층의 주택 모습을 보여준다.
열정적으로 알려주시는 교수님, 그리고 더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건축사님들로 더운 여름날이 더 뜨겁다. 사실 우리 조가 실측해야 할 민씨가옥 사랑채에 관심을 두고 보느라 이승업가옥과 민씨가옥 별당채에 관련된 정보들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남산골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그동안 쌓인 한옥에 관한 지식을 적용해 보려 한다.
한 조에 여성이 한 명, 많으면 두 명이라 했는데 우리는 여성이 세 명이다. 뭔가 오류가 있나? 하는 생각을 표정으로 나누면서도, 서로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끝까지 함께 가자는 다짐 아닌 다짐으로 시작된 6조. 그렇게 어색한 첫 조원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두 번째 만남에 점심을 함께하며 유쾌한 웃음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매주 함께하는 점심이 제일 에너지 넘치는 시간이 되었다. 끝까지 즐겁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모두 수고했다고(토닥토닥) 고마움을 전해본다.
기초반 한장예 _ 제이와이리액트 건축사사무소
북촌 한옥마을 답사기
기억을 더듬어본다.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하던 그 시점을. 우리가 북촌을 방문하게 된 것은 북촌 인근에 있는 팔판동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팔판동은 이번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의 설계 부지이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다른 건축사분들과 의견을 나누며 답사할 흔치 않은 기회다.
왜 북촌이라 불리는지 찾아보았다.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과 종로의 북쪽 방면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예로부터 형성된 마을과 도시를 보면 대체로 물이 그 조건이 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북촌 또한 청계천이라는 자연의 젖줄이 잉태한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닮고 있을 것이다. 가회동, 재동, 계동, 원서동, 삼청동, 안국동, 인사동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하나같이 낯익은 이름들이다.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에 참가하게 된 이유가 떠오른다. 평소 자연에서 주어지는 물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있었다. 한옥은 그야말로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아닌가. 그러던 찰나 TV에서 북촌 일대의 가옥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중정형 한옥에서 마당을 누비며 마루에 걸터앉아 온전히 삶을 누리던 모습이 굉장히 강렬히 다가왔다.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오랜 논쟁 대상이었던 듯하다. 나로서는 가치가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교육과정에 참가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북촌의 정경은 훌륭하다거나 아름답다는 말로는 담기가 부족하다. 한 시대의 정신적 가치들이 물리적 형태를 만들고, 그 물리적 형태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지니고 가치로서 인정받고 있음에 큰 여운이 감돈다. 또한 이 북촌 한옥의 가치를 유지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들이 외부인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우리만큼 공이 넘친다.
집과 집들이 자연스레 지형에 순응하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길과 길들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만나서 매일 새롭고 정겹다. 시간의 자태가 그대로 목리에 주름살을 드리우고, 기와와 돌 틈으로 이끼들이 웃으며 반긴다. 북촌 골목길을 누비다 그 어딘가 북촌의 모든 것을 전망할 수 있는 곳에 다다랐다. 사뭇 애잔해진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렇게 우아하게 거주하는 방법으로 이제 돌아가지 못하겠지’ 하며.
기초반 정영석 _ 건축사사무소 소색
은평마을 회고록_은평 한옥마을에서……
역사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던 역사가, 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보고(寶庫) 같았던, 한옥이 이처럼 밀도 있게 내 생활 속에 파고들어 나를 번민하게 만들 줄은 몰랐었다. 올해 국토부와 대한건축사협회가 주관한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에 지원하여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 나는 그야말로 행운이라 여기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 같은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한옥을 설계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전통 주거문화를 상징하는 한옥의 특징은 그대로 살리면서, 과거의 방식에서 완전히 변화된 현대인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 상상하지 못했었다. 어떤 방향으로도 도무지 잡힐 것 같지 않은 전통과 현대의 조우 속 불협화음을 조율하겠다고 잡은 펜을 긁적이던 순간, 벼락처럼 정수리를 내리치는 조용한 깨달음…… ‘그동안 우리 전통 주거문화를 제법 잘 알고 사랑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어쩌면 나는 단순히 그것을 관망하며 좋아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신한옥 설계작업에서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을 가득 안고 우리들은 은평으로 향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해주신 편안한 리무진을 타고 이동했기에 동료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눈에서 기대와 설렘을 엿보곤 했다. 모두 나와 같은 의문과 고민을 안고서 한편으로는 풀지 못한 과제의 실마리라도 잡으려는 나와 같은 기대를 하고 있으리라…….
은평에 도착하여 우리가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신축 중인 신한옥 앞이었다. 조촐하게 차려진 현장 사무실 앞에 우리 일행이 모였고, 거기서 현장 감독관님을 뵐 수 있었다. 건물의 안전을 위해 팀을 나누어 여러 차례 해당 건물에 대한 답사가 진행되었고, 감독관님은 열의에 가득 찬 우리의 오만가지 질문을 하나하나 챙기며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셨다. 각 팀에서 반복되어 나올 법한 얘기마저 다 설명해주셔서 우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열띤 질문과 설명의 시간이 잠잠해져갈 때쯤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욕실이었다. 어떻게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던 자(尺=30.3cm) 개념의 전통 주칸(柱間)기법 속에 배치되어야 할 현대 위생도기들의 부조화, 이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똑같은 불협화음은 주방과 같은 전통 생활방식으로부터 큰 변화가 발생된 현대 생활이 담기는 공간에서 일어났다. 나는 특히 주방이나 욕실의 쓰임은 어떻게 고려되었는지, 각종 집기들이 어떻게 배치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며,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현장 감독관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음으로 옮긴 발걸음이 닿은 곳은 방송을 통해 더 잘 알려졌다는 한 주택(이 마을 주택 중 규모가 매우 커서 저택에 가까웠다)이었다. 낮은 담장 처리 수법이며, 누마루를 현대식으로 재현한 부분이며, 현관이라는 현대주택의 필수 공간을 과감히 소거해버리고 전면 툇마루를 두어 댓돌을 거쳐 퇴에 오르는 접경공간을 이루게 한 부분을 통해, 나는 이 댁 주인께서 얼마나 한옥의 미(美)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아름다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 분명, 매번 이동할 때마다 퇴를 오르내리고 신을 가지런히 두는 옛 방식으로의 회귀마저 감당하고 있을 터였다. 단출하고 깨끗한 이 집의 툇마루와 댓돌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전면 파사드는 그야말로 ‘한옥’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마음속 한 장면이었다. 이 한 컷에서 느껴지는 이 집의 품격은 주인의 성실한 성품과 한옥에 대한 자긍심까지 가히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발걸음을 옮겨가며 우리는 길 따라 들어선 한옥 카페와 집을 겸한 주상복합(?)의 신한옥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이미 이렇게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한옥이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끔 와서 즐기는 이채로운 공간의 경험, 한옥 공간을 경험한 이들은 분명 이후 그들의 집을 현대식으로 짓게 되든 한옥으로 짓게 되든 상관없이, 자기만의 공간 속에 한옥의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전통 공간에 대한 갈망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을 파고드는, 마치 데자뷔같은… 전통의 DNA에서 기인된 것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우리는 은평의 제일 높은 언덕에 올랐다. 읍성처럼 든든하게 마을 꼭대기를 지키고 있는 은평 역사 한옥박물관을 등지고, 은평마을 전체를 조망하였다. 상쾌한 초겨울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트리며 머리의 열기를 식히고 지나갔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과거와 현재의 조화라는 과제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지금 바라보는 각양각색의 지붕선과 1, 2층, 혹은 더 높게 이루어진 다양한 구성의 신한옥들…… 한옥의 오리지널리티에 최대한 가깝게 신경을 써서 설계하면서도, 한옥에 살고 싶은 많은 이들의 열망과 현대화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그 사이에서 찾은 여러 대안들이 이미 이 마을에 곳곳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많은 한옥 건축을 설계한 선생님들께서, 이미 나와 같은 고민의 과정을 거쳐가며 찾아낸 최선의 방안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마음을 굳혔다. ‘전통 건축의 계승’이라는 그 고유의 질량 값은 잊지 말자. 하지만 그 계승의 방법을 무겁게 여기지는 말자! 신한옥은 현대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공간의 집합체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화된 가정 기기를 들여야 하고, 그것을 운영하기 위한 적당한 동선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미술관과 문학관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은평마을의 중앙으로 내려올 때 즈음, 다양한 신한옥의 형태를 두루 살피게 되었다. 한옥 건축비가 다소 부담될 상황들을 고려하여 철골과 같은 재료로 주요 구조부를 만들고, 도리 등의 부재를 붙여 한옥의 양식을 만든 집을 보며 우리들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 그동안 솔직한 구조적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는 원칙을 배워왔던 우리들은 철골구조에 한옥의 옷을 입힌 마을회관 앞에서 감탄을 하였다. 한옥의 현대화라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여러 대안들과 노력에 나는 이미 작고 크게 애정을 표하고 있었다.
삼각산 금암 미술관에는 마침 종이공예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한지라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가 세련되고 실용적인 공예품으로 만들어져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2층 계단 끝에 올라서자마자 춤추듯 늘어진 대들보를 마주 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박진감 넘치는 내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훌륭한 미술품을 감상하는 것 못지않은 즐거운 심상이 느껴졌다.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진 마음으로 마을의 가장자리까지 다다랐을 때, 고고하고 간결한 자태를 지닌 한 주택을 만나게 되었다. ‘숙고(熟考)’라는 당호(堂號)를 가진 집이었다. 다소 엄숙한 느낌의 이름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이 집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터였는데, 다행히 일행 중 누군가의 용기 덕분에 방문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조심스레 위층과 아래층을 둘러보던 중 발견한 지하의 한 공간…… 이 댁의 보물은 지하에 꾸려진 서가에 있었다.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각종 서류와 도면, 그리고 모형에 이르기까지. 이 댁 주인께서 다양한 자료를 남기고, 일일이 엮어 철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화를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듯 설명하는 집주인의 얼굴에서 행복함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 모두 그런 집을 가꾸고 있는 이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순의 ‘면앙정가’ 초장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당호 ‘숙고’의 뜻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듯하였다. 집주인은 오랫동안 이 집을 지으려고 궁리한 것이 틀림없다. 집을 짓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오는 이 진중한 자세는 나로 하여금 다시 신한옥 설계에 신중을 기하라는 다소 엄격한 격언을 들려주는 듯 여겨졌다.
은평 마을 답사를 마치며 나의 마음은 다시 한국 전통 건축을 아무 격의 없이 사랑하던 초심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국건축의 새로운 전통을 해석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과제들이 남겨져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 만난 이 모든 사람들의 삶과 모든 공간들의 색채가 ‘공간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을 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라는 대원칙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은평마을을 떠나며, 나는 마을 전경을 돌아다보았다. 멀리서 수묵화처럼 흐려지는 처마들의 곡선을 바라보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아름답다 여겨지는 미(美)의 진리들을 다시 한번 조용히 눈 속에 담아둔 채 석양을 바라보았다.
기초반 정수안 _ 위버건축사사무소
창덕궁 답사기
수도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수학여행으로, 혹은 견학 수업으로 다녀왔을 법한 궁궐. 지방 사람이라도 경복궁이나 창덕궁 한두 번쯤은 다녀왔겠기에 창덕궁은 답사장소로는 새로울 것이 없을 장소였다. 그러나 역사가 깃든 어느 곳이든 한두 번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것’이 있다. 심지어 늘 다니던 길에서, 혹은 장소에서조차 가끔 계절에 의해, 시간에 의해, 혹은 내 감정 상태에 의해 새로운 ‘그것’이 보일 때가 있다. 이번 창덕궁 답사는 내게, 아니 우리에게 그러한 답사였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돈화문을 거쳐 입장을 하였으나, 금천교를 건너면서부터 창덕궁은 이전의 창덕궁과는 달리 보였다. 어쩌면 눈이 부신 하늘 탓일지도, 혹은 꼭 알맞게 물든 가을빛 탓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날의 창덕궁은 아름다웠다. 조인숙 선생님의 전문적이지만 감성적이고, 진지하지만 웃음기 넘친 설명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조별 과제로 낙선재를 공부하고 발표한 탓인지 진지한 마음으로 조원들과 함께 귀를 기울인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다른 건축사들과의 사담도 즐겁다. 궁을 가득 채운 가을 나무와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의 소리 위로 우리의 웃음소리가 겹친다. 답사라기보다 기분 좋은 산책 같았다. 길은 후원에서 절정을 보여준다. 연못의 일렁이는 물빛과 그 위에 걸터앉은 정자를 보고 있을 땐 해가 질 때까지만이라도 앉아 그저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일전에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건축사님들은 참 운이 좋아요. 이런 광경은 늘 볼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하시는 조인숙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 일전에 본 적이 없는 장면이다. 일부러 사람이 연출할 수도 없을 일이다. 어떤 인위적인 조명으로 저런 물빛을 연출하겠는가…. 그만한 상상력을 가진 연출자는 단연 자연밖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카메라 셔터를 눌러봐도 그 감동만큼은 사진에 담기질 않는다. 해가 넘어가고 찰나의 물빛도 사라져간다.
후원의 길은 연경당 뒤편으로 평소 가보지 못했던 길로 이어진다. 후원에 이런 길이 있었나 싶다. 숲 사이로 난 넓지 않은 흙길.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설 때마다 나오는 정자. 정자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전경 속에만 자리 잡고 서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자연이 있었나 싶다가도 현대의 산물인 회색 빌딩으로 인해 우리의 어떤 것이 삭제되어버렸는지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나마도 남아있어 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며, 우리가 앞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인다.
답사 시작 전 많이 걷는 법을 일러주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답사는 딱 일만 삼천 보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녀야 할 이유가 이번 답사로 생겼다. 고궁의 아름다움은 늘 같지 않다. 그래서 언제나 가까이 두고 봐야 할 의무가 있다. 적어도 내일을 설계할 우리 건축사에겐…….
기초반 김인숙 _ 자인이엔씨 건축사사무소
보성 강골마을 답사기
강골마을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243번지에 위치한 강골마을은 광주 이씨 집성촌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식량을 많이 얻어 ‘득량’이라 하였고, 마을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해서 강골마을이라고 한다. 현재 이금재(李錦載) 가옥, 이용욱(李容郁) 가옥, 이진래(李湜來) 가옥, 열화정(悅話亭) 3채의 가옥과 1개의 정자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금재 가옥은 전형적인 ‘미음(ㅁ)’자 배치로 북측으로 ‘디귿(ㄷ)’자 배치되고 작은 마당이 있는, 안채가 독특한 구조다. 이진래 가옥은 정면에 큰 연못이 있고,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사랑채와 선 넓은 마당이 광대하다, 중문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가면 안채와 안마당이 가로로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주위로 행랑채와 광채의 규모가 당시 사대부가의 가세를 짐작할 만하다.
열화정 (悅話亭, 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
열화정은 1845년에 이진만선생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하였고,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라는 글귀를 따서 ‘열화정’이라 명명하였다.
강골마을에서 높게 뻗은 대숲의 길을 따라 돌계단을 올라가면 오봉산의 낮은 중턱에 열화정이 위치한다. 대문인 일섭문(日涉門)을 지나면 시간과 공간을 순간이동하는 듯한 정자와 정원이 나오는데, 높은 수고의 원시림과 기역(ㄱ)자형 연못, 정자의 뒷면은 화계(花階)로 배치되어 있고, 오래된 동백꽃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어 늦겨울의 붉은 동백꽃을 상상하게 한다.
정자는 누마루 집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있고 전면에 높이 솟은 활주와 팔작지붕, 키높이의 석축과 떠 있는 듯 올라간 누마루, 두리기둥 밖으로 돌린 계자난간 등이 정자의 기품과 품격을 더욱 높인다.
열화정은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진다. 처음 왔는데 마치 오랫동안 와본 것 같은 안온함이 느껴진다. 담장은 닫혀있는 듯 열려있고, 우거진 수목은 덮여있는 듯 트여 있는 공간의 자연스러운 구성이 방문자로 하여금 아늑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만끽하게 한다. 이와 유사한 공간인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은 활기찬 동적(動的) 정원이라고 한다면, 열화정은 사색과 명상의 정적(靜的) 정원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울창한 고목을 정면으로 마주한 정자 한 채는 강인하면서도 평온하게 이 작은 우주를 점령하고 있다.
기초반 이인수 _ 수연건축사사무소
강릉 답사 기행 (경포대-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해운정-선교장-대도호부 관아-향교 대성전, 명륜당)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오늘은 날씨가 싸늘하려나…. 어떤 겉옷을 입을지 살짝 망설여지는, 가을도 겨울도 아닌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은 강릉 가는 날! 버스에 오르며 마스크 속 얼굴은 몰라도 많이 친해진 건축사분들과 조용한 눈인사를 나누고 오늘도 선생님 뒤를 종종 따르며 열심히 귀 기울여 경청하겠다 마음먹는다. 늘 생각보다 참가 인원이 제법 많다. 올여름부터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시작한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이 막바지로 접어드는데, 설마 많이들 오시려나… 했던 우려가 좀 부끄러울 만큼 다들 열심이시니 나도 절로 나오는 끙끙 소리를 꾹 삼켜야 한다.
몇 시간이 지나 강릉 시내로 들어서나보다 하는데 경포대가 바로 앞이란다. 지금껏 경포대는 해수욕장 이름인 줄 알았는데 경포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누각이다. 마루에 앉아 난간에 한 팔 올리고 바람을 느끼면 이이 선생님의 시 만큼은 표현 못해도 마음은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경포대 주위에 소나무, 상수리나무들도 못지않게 장관이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과 생가가 다음이다. 오빠 허균과 함께 능력이 출중한 허난설헌은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요절한 조선의 아까운 인재로 알려져 있어서인지 두 남매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조용히 얌전하게 배치된 여러 채들을 감상해 본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담기지 않는 겸손한 처마와 하늘배경을 갸우뚱 뒤로 남기고, 멀지 않은 해운정으로 향한다. 아쉽게도 배수로 공사 중이라 마당이 엉망이다. 감사하게도 관리하고 계신 분이 밖으로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신다. 현재는 매립되었지만 해운정 앞까지 경포대였다고 한다. 드넓은 경포호를 바라보며 배를 타고 오가며 호수의 운무를 즐겼으리라… 상상만으로도 멋지고 감동스럽다. 그래서인지 해운정은 높게 서서 당당히 어깨와 허리를 곧추세운 풍채 좋은 미남 같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마운 점심시간! 김미진 선생님의 친정발 추천메뉴 ‘해물전복 뚝배기’가 우리 앞으로 등장! 바로 직진. 맛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서 이번엔 대망의 선교장이다. 미리 답사 경험이 있는 동료 건축사분의 가이드로 엄청난 규모의 선교장 구석구석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따라가다 문득 돌아보니 다들 산보하듯 즐기고 있는 듯하다. 점심에 잠깐 따가웠던 햇빛도 살짝 기가 죽고, 바람이 낙엽들을 날리는 기분 좋은 오후 시간. 집과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안타까워하며 신기해하는 우리를 보며 문득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선교장의 부지를 찾던 지관도 근방의 동물들이 삼삼오오 편안히 모여 지내는 곳이라 길한 터로 삼았다고 하시니 말이다.
대도호부 관아 주변에 도착했을 즈음엔 운 좋게 강릉축제의 한 토막인 국악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덕분에 배경음악을 깔고 임영관 삼문과 칠사당을 소개받는다. 정부 부처인 관아답게 위용이 있지만 간결하고 소박하다. 과거의 강릉이 태백산맥을 따라 남과 북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과 규모가 실감 난다.
마지막 일정인 강릉향교에 도착했을 때는 허리도 다리도 뻐근하다. 바람 기운이 차다. 강릉지역건축사회 회장님이 직접 설명해 주신다고 오셨는데, 토요일 저녁에 와 주신 강릉지역건축사회장님과 협회에 훈훈하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향교를 진지하게 바라본 건 개인적으로 한걸음 진보다. 지금까지 본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흘깃 지나치고 들여다보지 않던 지방 향교의 역할과 위패를 모신 사당을 회장님 설명으로 소개받으니 내심 밀린 숙제처럼 안도와 함께 감사하다. 선물을 반기는 환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릴 수 있는 코시국이 얼마나 감사한지, 회장님이 협회 이름으로 강릉 잔기지 떡을 푸짐히 나눠 주시고 우리들 모두 감사히 받으며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끝으로,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답하시고 한 개라도 더 알려주신다고 고생하신 선생님들과, 기념사진, 일정관리, 인원체크, 방역체크 등 애쓰신 교육원 식구들, 바쁘고 벅찬 일정을 같이 끝낸 얼굴 모르는 우리 건축사분들께 애정과 존경을 보냅니다.
기초반 유은주 _ 기류건축사사무소
대학생 워크숍 : 경복궁의 협문 실측
2021년 11월 6일, 대학생 워크숍으로 협문 실측수업이 있어 경복궁을 방문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대하여 실측 및 도면작성 수업을 듣긴 들었는데 어느새 다 잊어버린 것을 대학생들에게 가르치기까지 해야 하다니 걱정부터 앞섰지만,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의 “역시 우리 건축사님들 훌륭하십니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정신 바짝 차리고 수업에 임하였다. 누굴 가르친다기보다는 배운 것에 대한 복습이라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을 마주하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벼운 일상 얘기와 농담을 건네며 친해지려 해봤지만 우리보다 더 긴장한 것이 학생들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우리가 교수님 뻘의 연배가 되어 있었기에 약간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어 실측하려는 목적지로 향했다.
3년 만에 복원했다는 향원정이 더 궁금했지만 멀리서 사진만 찍었고,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측정하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같이 자질을 하며 야장을 작성해 나갔다. 그리는 와중에 학생들과 미래의 건축사 또는 건축계열 종사자로서 현재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대화를 나눴다. 왜 내가 했던 고민을 이 학생들은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건축의 근본적인 탐구 방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고상한 고민도 잠시, 벌써 오전 수업이 끝나가고 있었고 서둘러 협회로 이동했다.
실측 수업이 가벼운 나들이 느낌이었다면, 오후에 진행된 도면 작성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무조건 성과물을 내려는 우리들과 아무것도, 심지어 캐드(CAD)조차 모른 채 전투에 임하는 학생들의 애환이 서린 도면이 차츰 완성되어 갔다. 중요한 것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마감하는 것임을 계속 강조하느라 대충 빨리하는 법만 가르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지만, 후엔 당연히 나보다 더 잘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회에 걸쳐 진행했던 실측 수업을 하루 만에 속성으로 진행하려니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어떠한 결과물을 냈다는 것에 만족했다. 무엇보다 수료증을 받으며 환하게 웃던 학생들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기초반 이재현 _ 모루건축사사무소
한옥설계 조별 작업 _
2021년도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마치며…
내가 속한 3조는 팔판동의 계획부지 위쪽에 T자 도로의 좌우 필지 2개씩 4개의 필지가 지정(조별작업 일련번호-28)되었다. 약 100제곱미터 정도의 작은 필지여서 세밀한 계획이 필요한 대지였다.
같은 조 건축사분들과 기본 법규 및 계획의 방향을 토론하였고, 드디어 6개월의 대장정의 마무리 단계인 신축 한옥설계가 시작되었다. 수업시간과, 수업 외 시간에는 메일 등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고 차례차례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여러 변수(업무, 코로나 밀접접촉 등)로 인해 마지막 발표에 혼자 최종 발표를 하게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함께 최종 발표는 하지 못했지만 우리 조는 신축 한옥설계 과제를 모두 제출하였다. 그리고 우리 조원 4명은 마지막 수료증 받는 12월 8일에, 처음 시작할 때 함께 앉아있던 자리에 모두 함께 모여 수료를 하게 되었다. 함께 시작하여 함께 마무리 했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고, 가장 행복하다.
수료식을 마치고 처음에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교차하였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크다. 당분간 수요일에는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의 모든 분들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달합니다. 조인숙 교수님, 강사님들, 건축사협회 관계자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2021년 한옥설계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함께 하셨던 분들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초반 김동식 _ 동연건축사사무소
서울시 한옥지원센터 대지_계동(桂洞) 11-7번지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서 1분 거리의 현대사옥 화단 안에는 제생원 터라는 표석이 있다. 빈민이나 행인의 치료와 미아보호를 하던 조선 초기 서민 의료기관이 있던 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동네를 한 때 제생동이라 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계생동으로 불리다가 1900년대 초에 그 발음이 기생(妓生)동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생’자를 생략하여 이후로 계동(桂洞)으로 불린다고 한다.
지금의 계동 행정구역은 그 표석에서 북쪽으로 1킬로미터 가량까지 뻗어 있는 계동길의 좌우로 20여 미터의 길고 좁은 동네 형상이다. 그 길이 곧 계동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길의 북쪽 끝에는 근대문화재이기도 한 고풍스러운 중앙고등학교가 있고, 남쪽으로 살짝 내려가는 길 좌우로 가게들이 줄줄이 있다. 이 길은 아직도 백 년 이상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드문드문 도시재생으로 세련되게 변모한 가게들에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정겹고 오래된 상점들도 그들만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으로 하루에 7,000명이나 되는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힙한 명소가 되어 활기를 되찾았지만, 임대료가 오르고 미용실, 세탁소, 목욕탕, 반찬가게 같은 생활편의시설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는 집은 남아 있으나 주택은 다른 시설들로 바뀌어 갔다. 오는 사람은 많되 사는 사람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나마 거주지를 옮기는 불편이 더 큰 노인들만이 그곳에 머물고 있다.
이런 현상은 상인들과 거주자와의 상충된 이해관계를 만들었고, 이로 인한 갈등은 이곳의 공동체마저 위태롭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이 대지에 ‘북촌마을서재’를 세우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이곳은 한옥으로 책도 읽고 문화강좌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서울시가 ‘북촌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민간에 임대해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던 것을 주민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마을서재에는 북촌주민들이 기증한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특히, 어린이 도서도 비치되어 있어 자녀와 함께 책을 읽으며 우리 고유의 주거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은 젊은 외부인들을 위한 것들이 많고, 위치 또한 동네 주민이 아니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막다른 길 끝에 있어 찾아오는 이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가끔 관광객들은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나라 테마파크나 근대민속촌처럼 여기기에 주민과의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그나마 외지인에게 숨겨진 이곳에 진정 주민들, 노인들을 위한 장소나 프로그램이 생겼다면 오래된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도움을 주진 않을까? 진정한 도시재생은 건물외형이나 지역경제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려야만 나머지가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심화반 이준열 _ 설화재건축사사무소
한옥설계 - 서울시 한옥지원센터 대지
한옥에 대해서는 대학생일 때나 실무를 하는 동안에도 그저 막연하게 동경과 비슷한 마음으로 외관을 감상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는데, 작년에 용기를 내어 기초반 수업을 듣고, 감사하게도 심화반 수업에도 기회를 얻어 2년 동안 한옥설계에 대해 마음껏 공부하면서 즐겁고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다양한 강의와 답사 등 열심히 일정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새 수료 일정이 다가왔다. 마지막 과제인 한옥 설계를 마음먹은 만큼 잘 해내지 못한 것 같아 기초반에서도 심화반에서도 매번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남은 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수업을 듣기 전에 비해 한옥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고, 아직 한옥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는 한편 앞으로는 어디에 중점을 두고 더 공부해야 할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기초반에서의 설계 과제는 비교적 작은 대지에 주택을 설계하며 한정된 면적 안에서 2층으로 최대한 실 크기를 확보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던 데 비해, 이번 심화반에서는 여러 채가 들어갈 수 있는 큰 규모의 필지에 대지의 고저차도 같이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라, 또 다른 의미에서 어려웠지만 기초반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짚어볼 수 있었다. 설계 과제 대상지에 이미 무척 공들여 꾸민 조경 공간과 단아한 한옥이 여러 채 배치되어 잘 사용되고 있어서 이곳에 만약 새로운 한옥을 만든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공간이 될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비슷한 조건의 빈 땅이 있다고 한다면 과연 몇 채를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어느 부분에서 구조를 잘 해결해야 하는지를 실습해 보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부득이한 변수로 인해 외부 답사 일정이 과정의 후반부에 이뤄지면서 설계 과제를 진행하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다소 촉박하게 느껴진 점이 있지만, 많은 강의와 답사 프로그램이 모두 부족함 없이 무사히 진행된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네 분의 강사진들께서도 수강기간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유익한 설명을 아낌없이 들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수료를 하며 한옥 설계 실무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심화반 윤정아 _ 윤재건축사사무소
글. 한동수·김미진·김철민·박진홍·조인숙
Han, Dongsoo · Kim, mi jin · Kim, chul min · Park, Jin Hong · Cho, In-Souk 설계강사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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