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건축 워치 10 북한의 건축교육 ② 2021.12

2023. 2. 14. 09:10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10
North Korea's architecture education ②

 

해방 후 평양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 많은 공공건축물 사업이 추진되었으나, 건설기술자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의 건축고등교육기관은 경성고등공업학교가 유일하였으며, 몇 개의 기술견습학교가 있을 뿐이었다. 해방 당시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가 개교한 후 건축을 전공한 조선인 졸업생은 60여 명에 불과하였고,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한 사람도 100여 명에 불과하였으며, 북한지역에 건축전문가는 더욱 적었다. 해방 당시 북한에는 경성고공에서 건축을 졸업한 사람은 20여 명이 있었고, 일본 유학생 출신도 소수였다고 한다(안창모, 「서구건축문화의 이식통로 원조프로그램과 한국건축계 재편」, 2006.07). 
비록 인력은 많지 않았지만 건설사업을 위한 건축 전문가와 건설기술자의 조직화가 필요하였으므로 1946년 5월 10일 북조선건축가동맹을, 6월 1일에는 북조선건축위원회, 북조선건축공업 등 건축관련 단체 및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건축가동맹위원장은 니혼대학 건축과 출신의 김응상이 맡았다.(김응상, 『주체건설력사의 갈피를 더듬어』, 조선노동당출판사, 1998) 그리고 부족한 건축전문가 양성을 위하여 김일성대학교 공학부에 건축과를 설치하였다. 


1. 김일성종합대학 내 설치된 건축과 

해방 후 소련의 지원 아래 북한지역에서는 지방정권 성격의 각 도별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북한은 독자적 정부 구성을 위하여 1945년 10월 평양에서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를 개최하였고, 11월에는 산업국, 교육국, 보안국, 사법국, 교통국, 농림국, 재정국, 체신국, 보건국, 상업국 등 10개국으로 구성된 ‘북조선 행정 10국’이 발족하였다.

이 행정 10국을 모체로 하여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위원회를 결성하고 11개의 당면 과업을 제시한 결정서를 채택하였으며, 3월에는 새로이 수립되는 민주주의적 임시정부가 기초해야 될 20개 정강을 발표하였다. 11개 당면 과업에서는 ▲교육제도의 민주적 개혁 ▲민주주의적 인민의 교양 항목이 포함되었고, 20개 정강에는 ▲의무교육 ▲인재양성을 위한 특별학교의 설치 ▲민족문화, 과학, 기술의 발전 ▲과학 기술 및 예술분야 인사의 장려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당면과제와 20개 정강을 보면 북한이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한 교육, 특히 문화(예술), 과학 및 기술분야의 교육을 중요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산업시설운영을 위한 초급기술관료와 기술자 양성을 위하여 중앙산업간부양성소와 각 도별 고등기술원양성소를 설치하였다. 이 양성소에서는 건축설계원도 교육하였다.    

그리고 고급인력 양성을 위하여 1945년 말부터 종합대학설립을 추진하였으며, 부족한 기술인력 양성을 위하여 이공계 위주로 전공과가 설치되었다. 1946년 7월 16일 발표된 학생 모집요강에는 전체 7개 학부 24개 학과 중 문학부, 법학부 외에는 모두 이공계관련 학과였으며, 정원 1,500명 중 70% 인 1,050명이 이공계였다(통일뉴스. 2016.10.02). 그리고 정원 중 약 50%는 노동자, 농민의 자녀 중에서 선발하여 3년 과정의 예과를 거쳐 입학하도록 하였다. 건축과는 김일성대학교 공학부에 속하였으며, 정원은 약 40명이었다. 당시 북한에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건축 관련 교육을 할 수 있는 인원이 부족하였으므로 남한에서 염창현, 황의근, 강상천, 이홍구, 오영섭, 전창옥, 김면식 등의 건축가와 기술자를 초빙하였다.  
북한은 종합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1946년부터 중견간부훈련소를 설립하여 단기 교육 후 졸업생들을 소련 및 동유럽으로 유학을 보냈다. 이 기관을 통하여 유학을 간 학생은 42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정근식 외, 「북한에서 소련형 대학 모델의 이식과 희석화」, 아시아리뷰, 2017). 건축분야에도 소련 및 동유럽 유학생이 있었다. 모스크바에 유학한 김정희, 남상진, 우랄대학에 신순경, 리형, 슬로바키아의 림준섭, 프라하 공대의 김영성, 동독 드레스덴 공대의 신동삼 등이 대표적인 유학생들이었다(박동민, 「북한의 건축가 리형: 엘리트 건축가와 독재자의 협력」, 2020). 이들 유학생은 귀국 후 북한 건축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유학생 중 일부는 1958년 종파사건에 연루되어 숙청되었다. 체코에 유학하였던 김영성은 1992년 탈북하여 서울로 왔으며, 동독에 유학하였던 신동삼은 현재 서독에 거주하고 있다.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학부, 운수공학부, 의학부, 농학부 등을 분리하여 별도의 대학을 설립한다. 공학부는 평양공업대학(현 김책공업종합대학), 의학부는 평양의학대학, 농학부는 사리원농업대학(현 원산농업대학)이 되었다. 

평양공업대학에는 광산지질학부, 금속공학부, 기계공학부, 전기공학부, 운수공학부, 섬유공학부, 건설공학부가 있었으며, 1951년 북한군 총사령관으로 한국전쟁 중 사망한 김책의 이름을 따서 김책공업대학으로 변경하였다. 

 

평양건축대학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
평양건축대학 학생이 김정은 위원장을 모델로 스케치를 하고 있다.


2. 평양건설건재대학교의 설립

1953년에는 김책공업대학의 건축공업학부(건설공학부)를 따로 떼내어 평양건축대학을 새로 만들었다. 평양건축대학에는 건축학부, 건설공학부, 시설공학부의 3개 학부를 두고 있었으며, 건축학부에 2개 학과(건축학과, 도시경영학과), 건설공학부에 1개 학과(건설공학과), 시설공학부에 3개 학과(수리건설학과, 교량 및 턴넬학과, 도시건설 및 측량공학과) 등 모두 6개 학과가 있었다.

1959년 평양건축대학의 이름을 평양건설대학으로 바꾸고 건설공학부의 토목 관련 학과와 김책공업대학의 운수공학부를 합쳐 평양운수대학(1959년 설립)을 설립하였으며, 수리건설 관련 학과는 새로 설립된 평양수리대학(1959년 설립)으로 이전하였다. 평양수리대학은 1965년 함흥으로 옮겨져 현재 수리동력대학으로 운영되고 있다.

평양건축대학교 수업 모습(북한방송 캡처).


그리고 1967년에는 평양운수대학 운수건설학부에 있던 도로학과, 교량학과를 평양건설대학 도시경영학부로 옮겼으며, 이름을 평양건설건재대학으로 바꾸었다. 평양건설건재대학은 건축학부, 건축공학부, 도시경영학부, 건설기계학부, 건재학부로 나뉘어 있었다. 건축학부는 단지계획분야(도시계획)를 포함하고 있으며, 도시경영학부에는 도시경영, 교량, 도로, 지하구조물, 원림 등의 전공이, 건재학부에는 유기재료와 무기재료 등의 전공이 있었다.

2000년 이후, 평양건설건재 대학은 설계원을 양성하는 학부(건축학부 등)는 5년제로 운영되고 있다. 학부는 건설재료학부, 건축학부, 설계학부, 미술학부, 도시경영학부와 그리고 박사원을 두고 있고 학생 수는 약 3,000명 정도이다. 박사원은 남한의 대학원에 해당하며, 박사원 과정을 거치면 준박사(석사)와 박사가 될 수 있다.
평양건설건재 대학은 1980년 말까지 공산권에서 건축분야의 우수한 대학으로 유명해 중국 등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도 러시아, 중국, 몽골 등에서는 평양 건설건재대학 출신들이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고 한다(중국에서도 소문난 평양의 건설건재대학, KBS 통일방송연구, 2006.03.19.).

평양건설건재대학교가 한동안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이 해방 후부터 건축기술자 양성을 위하여 소련, 동독 등에 유학생을 보내어 인력을 양성하였기 때문이다. 1950년대 평양시 도시계획을 수립한 김정희는 1947년 첫 건축유학생 8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 건축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건축가들이 외국에서 유학을 하였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과학기술자들의 해외유학 기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물리학, 재료공학, 금속공학, 전자공학 등 핵, 미사일, 프로그래밍 등 관련 학문의 유학생이 많다(중앙일보, 2017.09.07). 건축분야도 해외 유학기회가 다른 분야에 비하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는 프랑스 국립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에서 유학 중인 북한 학생이 탈북하면서, 프랑스에 10명의 건축 전공 유학생이 있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V.O.A, 2014.11.26.).

프랑스는 2002년부터 비공식적으로 10여 명의 건축전공 북한학생을 초청하여 프랑스의 국립 라빌레트 건축학교, 벨빌 건축학교 등에서 교육시키고 있으며, 유학생을 건축분야를 정한 것은 북한이었다(연합뉴스, 2014. 11.19).  

평양건설건재대학교는 2012년 단과대학에서 평양건축종합대학으로 바뀌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후 평양과 지방에 대규모 건설공사를 추진하고, 건설사업을 큰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으므로 평양건축대학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명예총장을 맡았으며, 2013~2014년 평양건축종합대학을 연속적으로 방문하여 북한에서 가장 주목 받는 대학교 중 하나가 되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건축종합대학의 인기가 높아 예비시험 점수가 높아야 진학할 수 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건축종합대학 방문 사진.


그러나 2020년 8월 평양건축종합대학은 2012년 경 종합대학이 되었던 원산농업종합대학, 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 등과 함께 다시 단과대학 체제로 변경되었다. 이 학제의 변경은 전문계열화 된 대학에 다른 전공학과를 추가하지 않고, 단순히 명칭만 변경하여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설계원(건축가)과 건설기술자를 양성하는 대학은 평양건축종합대학 외에 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내에 건설대학에 있어 두 개의 대학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함흥건설대학은 2002년 4월 설립되었으며, 건축설계, 건축공학, 건설운반기계, 측량, 원림, 도시경영, 건설재료 관련 학과가 있다. 2012년 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에 통합되었으며, 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은 2020년 8월 다시 일반대학이 되었다.    
  
북한의 건축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 졸업생도 많지 않으므로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서 생활하며, 당 또는 내각의 요직을 맡는 경우도 많다. 북한의 건설건재공업성, 도시경영성, 국가건설감독성 등의 역대 장관(상) 상당수가 평양건축대학교 출신이며,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장을 역임한 경우도 많다.

 


대학 외에 설계원과 건설기술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각 도별로 설치되어 있는 건설전문학교가 있다(탈북건축가 장인숙 증언). 건설전문학교는 3년 과정이며, 전문학교를 졸업하면 준기사 혹은 준설계원 자격이 주어진다. 기사나 설계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편입하여 졸업하여야 한다.    

그 외에 건설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장대학이 있다. 공장대학은 큰 공장, 기업소, 그리고 중요 공업지구에 설치되어 기업소 근로자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농장대학, 어장대학, 통신대학과 함께 ‘일하면서 공부하는 교육체계’에 속한다. 이는 일반대학과 같이 정규 학제에 포함되는 학력인정기관으로, 졸업 시 해당 부문의 기사 자격증이 주어진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장대학). 평양에는 건설자재생산기업소를 관리하는 평양건재총국이 있으며, 건재총국산하의 기업 직원들이 진학할 수 있는 ‘평양건재대학’이 있다. 그 외에도 지역별로 건설관련 공장대학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는 건설기능공 양성교육체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건설기능공은 군대의 공병부대, 청년돌격대, 그리고 취업 후 건설사업소에 배치되면 작업을 하면서 습득한다고 한다. 북한 건설기능공은 단일 직종이 아니라 목수, 조적, 미장, 온돌, 철근, 콘크리트 시공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기능공 성격을 가지고 있다.  

 


3. 남북한건축교육협력 

남북경협은 2010년 이후 답보상태이지만, 여전히 북한은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건설업계에서는 남북관계 개선 시 대규모 북한개발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를 하고 있기도 하다. 남한의 인력과 자재로만 북한개발 공사를 할 수 없으므로 북한의 건설기술자와 건설자재의 활용이 필요하다.    

북한의 건설 기술력이 과거에는 상당하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적 여건, 건축재료 등의 한계로 인하여 인력자체는 우수하지만 기술수준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북한의 건축대학졸업생은 년간 500~700명 정도로 추정되고, 건설기능공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도 없으므로 전문인력과 기능공이 매우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북한의 건축대학교, 전문학교 및 직업훈련원 등을 통하여 건축기술자 및 기능공 양성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2000년대 초반 남한의 여러 대학교에서 북한대학교와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교육기자재를 지원하기도 하였으며, 2002년에는 한양대학교의 교수 2명이 김책공대에서 김일성대학교와 김책공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2개월간 정보통신(IT)강의를 한 일도 있다. 또한 평양과학기술대학은 현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향후 건축학부 개설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 개발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험을 살려서 남한의 대학교와 자매결연한 북한대학에 건축 및 건설학과 설치를 지원하고, 북한 개발을 추진하는 기관 및 기업체에 학생들을 취업시키는 방안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