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한양도성 밖 성곽마을, 북정마을 2022.5

2023. 2. 19. 09:09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Disappearing village
Bukjeong Village, a citywall village outside the Fortress Wall of Seoul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32-3 일대, 숙정문과 혜화문 사이의 한양도성 백악 구간 초입에 있는 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성곽 마을이다.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듯한 성벽과 하나가 되어 형성된 성곽 마을은 지형적으로 형성된 경관적 가치와 오랜 시간의 역사적 가치, 더불어 주민들이 가꿔온 삶터 속의 시대적 가치를 모두 지니고 있어 매우 의미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궁궐용 메주를 만드는 곳으로 메주 철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마을이 북적거렸다 해서 ‘북적거린다’에서 유래한 북정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이곳은 만해 한용운의 유택인 심우장과 1969년 김광석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 마을로도 유명하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6·25전쟁 피난민, 1960~1970년대의 산업화 시대의 도시 노동자 그리고 도시개발에 따른 도시의 유랑민들, 시인이 비둘기로 비유한 이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정착한 서울 하늘 아래 마지막 달동네이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오래전 우리가 살아왔던 기억 속의 흔적들을 간직하며 세상을 향한 여유의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도심 속의 또 다른 마을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고령화와 더불어 2004년 주택 재개발 정비 예정 구역으로 지정된 이래 외지인들의 매입 등으로 공가는 계속 늘어나서 폐허가 됐다. 2018년부터 추진되어온 성북2구역 재개발 사업이 2022년 예정된 테라스하우스와 단독주택 단지로의 공공재개발사업이 시작되면 이곳도 도심 속에 묻히고 사라질 것이다.

성곽(城郭)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다.
이주민들에게 성벽은 자신들을 집과 마을을 지켜주고 기댈 수 있는 절망과 희망의 든든한 언덕과도 같은 존재였다. 

심우장(尋牛莊)
서울 성북구 성북로29길 24.
사적 제550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인 이곳은 1933년에 벽산 스님,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 등에 의해 세워졌다. 집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출한 한옥으로 독특하게 남향이 아닌 북향(北向)으로 배치되어 있다. 북향인 이유는, 남향으로 하면 조선총독부가 보인다는 이유로 한용운 선생이 이곳 산비탈에 있는 북향 터를 사저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북향이라 햇볕이 들지도 않아 늘 어두웠고 여름에는 습하고 더웠으며 겨울에는 매우 추워서 정말로 살기에 힘들었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집에서 거주하다 1944년 6월 해방을 1년 앞두고 이곳에서 입적하였고 선생이 사망한 뒤에는 딸인 한영숙 씨가 살다가 만해 사상연구회에 기증했다.
심우장은 ‘찾을 심(尋)’, ‘소 우(牛)’, ‘전장 장(莊)’으로 ‘소 찾는 집’이란 뜻이다. 불교에서 소가 마음을 상징해서, 대승불교 승려인 선생이 선종(禪宗)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신의 본성을 찾는다’라는 심우(尋牛)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 한다.

성북동 비둘기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둥지를 잃은 비둘기와 같이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둘기에 빗대어 표현한 김광섭 시인의 대표적인 시이다. 2012년 이곳에 시인의 시와 조형물 등을 갖춘 비둘기 공원을 조성하여 마을의 쉼터로 제공되고 있다. 이제 이곳에서는 더 이상 비둘기를 볼 수 없다. 이들의 모습은 벽화와 조형물로만 남겨져 있다.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라는 시인의 시처럼 이곳 마을도 이젠 볼 수 없게 된 비둘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골목 
시간을 밟으며 거닐다.
유난히 좁고 가파르고 복잡한 꼬부랑길과 계단을 따라 다 쓰러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과 다양한 쪽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지막에 거대한 성벽과 마주친다. 마을의 끝 지점,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절망의 마지막이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언젠가는 내려가서 살아야 할 내 집이 보인다. 그렇게 희망을 품고 살았을 지난 시간의 다양한 흔적들과 추억의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순례길을 걸어온 듯한 마음의 평온함이 느껴진다. 골목의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틈새 텃밭과 집 앞의 화분들은 어머님들이 심어놓은 꽃과 채소들을 통하여 무미건조한 골목에 다양한 색을 입히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것 같다. 유채꽃과 벚꽃, 개나리 등의 봄꽃들이 곳곳에서 북정마을의 봄날을 포근하고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다.

북정, 흐르다 
 - 최성수 

천천히 흐르고 싶은 그대여 북정으로 오라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이  그대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
삶의 속도에 등 떠밀려
상처 나고 아픈 마음이 거기에서
느릿느릿 아물게 될지니,

넙죽이 식당 앞 길가에 앉아
인스턴트커피나 대낮 막걸리 한 잔에도
그대,  더없이 느긋하고 때 없이 평안하리니

그저 멍하니 성 아래 사람들의 집과
북한산 자락이 제 몸 누이는 풍경을 보면
살아가는 일이 그리 팍팍한 것만도 아님을
때론 천천히 흐르는 것이
더 행복한 일임을 깨닫게 되리니.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