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로 산다는 것은? 2022.6

2023. 2. 20. 09:10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What does it mean 
to live as an architect?

 

오늘도 치이다
오늘은 어떤 법이 바뀌었을까? 설계에 전념할 시간도 부족한데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요즘 부쩍 “아오 진짜 설계 그만하고 싶다!”라는 기분이 든다. 천직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인 설계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건축사로서 짊어져야 할 혹은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설계 작업 전에 각종 건축 관련법을 검토하고 혹여 심의대상이면 심의자료 리스트를 점검하여 도서를 작성하고 게다가 지역마다 법의 해석이나 적용은 왜 이리 다른지 자칫 맘을 놓고 있다가는 큰일 나기 십상이다. 또한 충분하고 면밀한 검토시간 없이 사고 등 정치적 이슈의 영향으로, 살짝 과장하면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법도 많으니 어떻게 작성하고 적용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검토하는 것 자체가 일거리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인 건축사들과 이야기해도 서로가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내용을 잘 모르거나 이런 것까지 건축사가 해야 하나 싶은 사항들도 많다. 아무튼 요즘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점은 전문가라도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설계의 질을 높이고 디테일을 고민하고 어떤 자재를 적용할지 등 연구할 것이 많건만, 각종 법에 치여 시작부터 지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각종 인증 제도도 지금보다 복합 및 단순화할 필요를 느낀다. 한번 신청기간을 놓치면 한두 달 기다리는 건 다반사이다. 유사한 제도는 통합해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인증제도 간 서로 상충되는 부분도 있을 터이고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건축사는 고군부투하며 최선의 안을 찾아내야 한다. 법에 한번 치이고 인증제도에도 치여, 각종 절차만으로 건축사는 점점 지쳐간다. 좀 규모가 큰 건물인 경우엔 각종 법규, 인증 등 그야말로 검토에 검토는 물론이고 분야별 협의까지 상당부분 설계기간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건축사는 각종 법규를 검토하고 공간을 디자인하고 구조, 기계, 전기, 토목, 조경, 각종 인증업체들과 협의해 이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여 적절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설계 전반을 이끌어 가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주와의 소통이다. 건축주는 원하는 바를 건축사에게 오롯이 전달해야 하고 건축사는 건축주의 생각이 잘 표현되도록 대화를 잘 유도해 매끄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잘 지나고 나면 이제는 시공이다. 시공과정에서도 설계 사후관리나 감리 등 디자인 의도에 맞게 공사가 잘 진행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건축주는 건축사에게 SOS를 청한다. 꼭 설계의 문제가 아닐지라도 건축사는 시공자와의 불협화음을 잘 조정해야 하며, 간혹 주변의 민원 문제까지 해결해야 할 상황도 만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건축주의 인생 상담과 하소연까지 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마음까지 어루만져야 최상의 건축물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일의 성격에 따라 별도의 계약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도대체 건축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건축사는 설계의 모든 과정을 조율하고 이끄는 지휘자와 같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자꾸 더해지는 책임의 무게는 버겁기만 하다. 충분한 공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좀 나아질 텐데. 여전히 먼 길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후배 건축사들에게 좀 더 나은 건축 환경의 토대를 위해서는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숙제이다. 

숙제를 푸는 현실적인 방안 한 가지를 제안해 본다. 실무에서 위와 같은 법이나 각종 인증제도 등에 치이지 않도록, 정보를 용이하게 찾아볼 수 있는 통합적인 시스템을 협회가 구축해 주길 바란다. 이런 비효율적인 상황을 개선해 보려 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가 직접 자치법 등을 찾기 쉽게 모아 공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인증이나 심의제도보다는 비교적 개선이 용이해 보인다. 더해서 자치단체별로 각기 다른 해석이나 적용도 통합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은 개선할 필요가 있으니 각 자치단체별로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도록 국토교통부 관계자들과의 협의도 필요하다. 내부에서 제기하는 여러 문제가 마지못한 읍소가 되지 않도록 의견을 모으고 힘주어 말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인증제도는 통합하여 검토하거나 단순화해야 한다. 
치이는 건축사가 아니라 건축의 지휘자로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환경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건축사도 돈을 벌수 있을까?
몇 해 전에 건축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건축사는 참 가성비가 낮은 것 같아요. 몇 개월을 설계하고 또 몇 개월에 걸쳐 감리도 하는데 그에 반한 설계비는 막상 직접 경험해 보니 너무 낮은 것 같아요. 공인중개사 가성비가 훨씬 좋네요.” 참으로 속상한 말이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밤낮으로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하며 일하지만 이를 인정받는 가치는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라리 건축사보다는 법에 자유로운 인테리어나 가구디자이너가 홀가분해 보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지휘자로서의 역할이 건축사라지만 이런 반복적인 환경에서 열정을 무기로 견디기보다는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과다한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그에 합당한 가치를 스스로 만들고, 또 이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도 필요할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조금 폭넓게 시야를 확보할 필요성도 느낀다. 지인 건축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상담 중 건축주가 설계비를 줄여달라는 말에 그럼 완공 후 건축으로 인해 수익이 늘어난다면 비례해서 설계비를 더 주시겠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결론은 설계비는 그대로였다고. 

설계 경력 25년이 지난 지금, 행복하고 보람 있는 건축을 오래 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고민 중이다. 과연 건축사는 건축으로 돈을 벌수 있을까? “그렇다”라는 것이 나의 답이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시작되었다. 

건축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일처럼 행운인 것이 있을까? 좋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모든 과정이 설레고 행복하고 보람차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많은 상황에 지치기도 하지만 눈이 반짝이며 필(feel) 받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설계이니 난 참 행운아다. 가슴 떨리는 건축이 곧 나의 삶이니 난 건축을 재미있게 즐기련다.

 

 

 

 

글. 서경화 Seo, Kyounghwa 플라잉 건축사사무소

 

 

서경화 건축사·플라잉 건축사사무소

대한민국 건축사(KIRA)이자 미국친환경기술사(LEED AP) 이다. 2012년 ‘신나는 공간여행’을 모토로 플라잉 건축사사무 소를 설립했다. 설계하는 모든 과정이 ‘설렘’이듯 건축주와 이 런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 다. 유쾌한 반전을 좋아하고 우연이 만드는 인연에 즐거워하며,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이 주는 명쾌함에 끌리고 여유를 은유삼 아 유머(HUMOR)를 공간에 담고자 한다. 2014년부터 동료건 축사들과 ‘말 많은 건축사들의 건강한 집짓기 토크쇼’인 ‘집톡 (ZIPTALK)’에 참여해 일반인과 건축의 접점을 찾고 있다. 경기 도 건축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99하우스』가 있다. flyingarc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