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와 건축 _ 영화로 읽는 소설 속 도시와 건축 ③<기러기> 1953년 도요타 시로 감독(원작: 1915년[1911~1913] 모리 오가이 소설 ‘기러기’/ 각색: 나루사와 마사시게/ 음악: 단 이쿠마) 2022.6

2023. 2. 20. 09:11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chitecture and the Urban in Film and Literature ③
The Wild Geese-雁, がん, GAN
film 1953 directed by Toyoda Shirō 豊田四郎(1906~1977) /a 1915(1911~1913) Novel by Mori Ōgai 森鷗外 (1862~1922) /screenplay: Narusawa Masashige 成沢昌茂(1925~2021)/music: Dan Ikuma 團 伊玖磨(1924~2001)

 

영화 <기러기(雁, Wild Geese. 1953)>는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도요다 시로(豊田四郎 1906~1977)감독의 비탈진 골목길을 다루는 안목과 당대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高峰 秀子, Takamine Hideko, 1924~2010, 오타마 역)의 연기는 괄목할 만하다. 

영화 <기러기>의 동명 원작 소설(모리 오 가이作) &copy; 문예출판사

시간적 배경은 1880년이고, 공간적 배경은 도쿄의대에서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로 가는 비탈진 골목언덕인 무엔자카(無緣坂)를 중심으로 한다. 오타마라는 한 소녀의 삶의 현실과 다양한 모습의 사랑들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오타마(お玉)는 엿장수를 하는 아버지와 근근히 살아가는데 처자(妻子)가 있는 줄 모른 채 순사와 거의 강제 결혼을 한다. 어느 날 고향에서 온 그의 아내가 난리를 치자 우물에 빠져 죽겠다고 뛰쳐나갔다가 겨우 이웃이 말려서 살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다 아는 스에조(末造)라는 고리대금업자가 매파를 넣어서 오타마를 첩으로 들여앉힌다. 오타마는 스에조가 포목상을 하는 줄 알고 그의 도움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지만, 사실은 스에조가 고리대금업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상처한 줄 알고 첩 자리를 허락했는데 부인이 나타나서 갈등한다. 그러던 중 매일 집 앞을 산책하는 도쿄 의대생 오카다(岡田)에게 마음이 간다. 오타마는 기회를 기다리지만 끝내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이러한 줄거리에 공간적 배경인 옛 에도 도쿄의 한 골목길과 일본 가옥 등이 잘 녹아들어 있는 영화다. 

“오래 전 이야기다”라고 시작하는 소설 원작은 24개의 소절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적 배경인 1880년 이후 35년이 지나 당시를 회상한다. 주인공 오카다와 가미조(上條)라는 하숙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방에 살았던 선배격의 ‘내’가 서술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일부는 오카다와 친하게 지내면서 목격한 것이고, 나머지는 오카다가 독일로 떠난 후에 우연히 오다마를 알게 되어 전해들은 것이다. 즉, 전에 본 것과 나중에 들은 것을 조합하여 만든 이야기라고 소설의 말미에 서술하고 있다. 

수 년 전 우연한 계기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영화의 한 장면인 귀뚜라미가 들어 있는 유리 사각형 등에 관심이 가서 다시 보고, 또 다시 보았다. 2년 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왕실 등 만들기 키트’인 사각형 등을 조립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함과 동시에 경복궁의 몇몇 전각에 매달아 놓았다. 그것을 보고 1880년을 배경으로 하는 1953년작 일본 영화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등이니 시대규명 등에 참고하라고 권했다. 국립고궁박물관 관계자는 이 등은 일본이 아닌 청나라와의 교류에 의한 산물이라고 한다. <사진 참조>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긴다. 

영화 <기러기> 속 사각등 &copy; 조인숙
경복궁 만춘전의 사각등 &copy; 조인숙



시노바즈노이케(시노바즈연못, 上野不忍池)는 일본 도쿄도 다이토구에 있는 우에노 공원 안의 천연 연못으로, 주위 둘레는 약 2킬로미터, 너비는 약 11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7~8월에는 연꽃이 피고, 겨울에는 11만 마리가 넘는 철새가 찾는다. 연못 한 가운데에는 칠복신 중 하나인 벤자이텐(弁才天べんざいてん、梵、巴: Sarasvatī)을 모시는 사당인 벤텐도(弁天堂 弁天島べんてんじま)가 있다. 

무엔자카 언덕길은 동서로 200미터 정도, 북쪽에는 화재가 많았던 에도의 마을에서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 방화 건축인 소석회(石灰Stucco, lime)로 외벽 마감을 한 고안지(講安寺, Kogan-ji)나, 도쿄대의학부가 있다. 남쪽에는 구 이와사키 저택의 돌담이 이어진다.
그 비탈 위에 무엔지라는 절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여 ‘무엔자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에도시대의 지도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언덕이다. 혼고의 도쿄 대학에는 정문, 아카몽, 용오카몽 등 역사적인 많은 문이 있는데, 의학부 뒤편에 있는 철문도 그중 하나다. 1876년(메이지 9년)에 도쿄대 정문으로서 만들어지면서, 다이쇼 시대에는 철거되어 2006년 의학부 150주년 기념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 철문에서 우에노 시노바즈노이케(연못)로 향해 내려가는 한 언덕길 일대가 바로 이 <기러기>의 무대 무엔자카다.
* 고안지는 정토종 사원(浄土宗寺院)으로 센슈잔 칭앙원(専修山称仰院)이라고 한다. 고안지는 경장 연간 유시마 텐진시타에 창건, 1616년(겐와 2년) 이곳으로 이전, 1928년(쇼와 3년) 8월 29일, 마츠가야 소안지(松が谷宗安寺)와 합병했다고 한다. 고안지 본당과 고(庫) 등은 토장조(土蔵造り)라는 방화 건축 양식이 남아 있어 분쿄구 문화재(文京区文化財)로 지정되어 있다.
* 토장조(土蔵造り)란 건물의 외관이 토장(土蔵)처럼 대벽(大壁 おおかべ)구조로 흙벽 위에 석고 등을 바르고 마무리한 것으로, 그 이름대로 창고에 많은 건축양식이다. 토장(土蔵)의 주구조는 목조이지만, 외벽을 두꺼운 토벽으로 하고 표면은 백벽으로서, 외측에 목조부분을 노출하지 않는 방화 건축이다. 참고로 대벽(大壁 おおかべ)은 기둥 등의 나무구조를 노출하지 않는 구조이고 진벽(真壁 しんかべ)은 기둥과 보가 노출된 구조다.

주인공인 오카다 청년은, 무엔자카를 산책로로 걷는다.
“오카다가 매일 하는 산책은 대체로 그 코스가 정해져 있었다. 한적한 무엔자카(無緣坂)를 내려가, 오하구로(お歯黒)처럼 검은 아이소메천(藍染川)이 흘러 들어가는 시노바즈노이케(연못) 북쪽을 돌아 우에노 산(上野山)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유명한 요릿집인 마쓰겐(松源)이나 간나베(雁鍋)가 있는 히로코지(廣小路)로 가서, 좁고 번잡한 나카초(仲町)를 지나 유시마텐진(湯島天神) 신사 경내를 통해 음산한 가라타치데라(カラタチ 寺)의 모퉁이를 돌아서 온다. 가끔 나카초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무엔자카로 돌아올 때도 있다.” (모리 오가이, 김영식 옮김, 『기러기』, 문예출판사, 2012, 11~12쪽) 
* 오하구로(お歯黒): 이를 검게 물들이는데 사용하는 액
* 아이소메천(藍染川): 도쿄(東京都)를 흐르는 타니타가와(谷田川)의 다이토구(台東区)부근의 별명. 

“그 당시에도 무엔자카 남쪽엔 이와사키 저택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이 높은 토담은 없었다. 거칠게 쌓은 돌담의 이끼 낀 돌들 사이로 고사리와 쇠뜨기가 보였다.” (모리 오가이, 김영식 옮김, 『기러기』, 문예출판사, 2012, 15쪽)
* 구 이와사키 저택 (旧岩崎邸庭園) : 구 이와사키 저택은 미츠비시 재벌을 창설한 이와사키 가문의 본저로 1896년에 건립되었다. 3대 사장 이와사키 히사야(1865~1955)때 세운 양옥이다. 영국 건축사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 1852~1920)가 설계한 서양식 건물로 17세기 영국의 자코뱅(Jacobean) 스타일을 바탕으로 르네상스나 이슬람 양식도 도입한 목조 건축이다. 서양식 건물과 함께 일본식 건물의 일부도 남아 메이지 시대에 근대화를 향해 힘차게 발돋움하던 당시 재벌의 장대한 저택의 모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주소: 다이토구 이케노하타 1-3-45)

<기러기> 캡처 _ 도코노마
<기러기> 캡처 _ 마쓰겐(松源)
<기러기> 캡처 _ 장마루가 있는 구조


“스에조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육필 유키요에(浮世繪) 족자와 치자꽃을 꽂아 놓은 작은 꽃병이 있는 도코노마(床の間)를 등지고 앉아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리 오가이, 김영식 옮김, 『기러기』, 문예출판사, 2012, 34쪽)
* 도코노마(床の間)란, 일본 주택 중 격식을 높인 손님간 등에 마련되는 일정한 공간으로 바닥보다 한 간 높게 만든 곳이다. 족자를 걸고 도자기나 꽃병 등으로 장식한다. 정확하게는 ‘토’로 부르고, ‘도코노마’는 속칭이다.

영화에는 특히 당대 도쿄의 무엔자카 및 일본 목조주택건축의 세세한 부분을 화면에 잘 담고 있다. 요리집 마쓰겐(松源)이나 오타마가 사는 집의 다다미 구조 및 장마루, 다다미와 후수마 및 도코노마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무엔자카를 반복해서 산책하거나 지나간다. 스에조는 물건을 사들고 오타마를 방문하고, 스에조의 아내와 오타마는 선물받은 양산을 들고 언덕길에서 마주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을 잇기도 하고 가르기도 하는 조그만 다리에서 아버지와 만나기도 하고 떠나는 오카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게다가 기러기가 안행(雁行)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기러기를 잡아서 가져가는 부분이 나오는데 한 쌍이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 같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무엔자카 비탈길 언덕에서 묘사된다. 

또 하나, 이 비탈을 유명하게 한 것은,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佐田 雅志 1952~ )의 명곡 <무엔자카>다. “‘어머니’가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이 무엔지(無緣寺)를 올라갈 때마다 언제나 한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어른이 되고 나서 불우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야기의 노래인데, 비탈의 이름의 슬픔과 함께, 듣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무엔(無緣)이란 행운과는 정말 인연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오카다는 졸업을 기다리지 않고 유학을 가기로 결정해 벌써 외무성에서 여권을 받고 대학에 자퇴서를 냈다. 동양의 풍토병을 연구하러 온 교수 W가 왕복 여비 천 마르크와 월급 2백 마르크를 주는 조건으로 오카다를 고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어를 할 수 있는 학생 중에서 한문을 잘 하는 사람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벨츠(Baelz)교수가 오카다를 소개했다.” (모리 오가이, 김영식 옮김, 『기러기』, 문예출판사, 2012, 128쪽)


* 벨츠(Baelz) 교수는 독일의 의학자로 1877년 초청을 받아 일본에 왔다. 도쿄대학에서 생리학 내과 정신학 등을 강의하며 일본 근대의학의 확립에 공헌했다.

지금 도쿄대의 전신인 일본의 현대식 고등교육은 1877년 시작되었다. 19세기 말의 일본과 독일의 교류에 대한 내용이 소설에 녹아 있다. 

모리 오가이(森 鷗外, 1862~1922)는 일본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소설가·번역가·극작가다. 육군 군의총감 정4위 훈2등 공3급 의학박사이자 문학박사로 제1차 세계대전 이래, 나츠메 소세키와 나란히 문호(文豪)라고 불렸다. 본명은 모리 린타로(일본어: 森林太郎)이고, 도쿄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육군 군의관이 되어 일본 육군성에서 파견한 유학생으로서 독일에서 4년을 보냈다. 귀국 후 번역시 ‘오모카게(於母影)’, 소설 ‘무희(舞姫)’, 번역시집 ‘즉흥시인’을 발표했고, 또 스스로 문예잡지 <시가라미 소시(しがらみ草紙)>를 창간해서 문필 활동에 들어갔다. 그 후, 군의총감(중장에 해당)이 되어 한때 창작 활동에서 멀어졌지만, <스바루(スバル)> 창간 후에 ‘이타 세쿠스아리스(ヰタセクスアリス)’, ‘기러기’ 등을 집필했다. 노기 마레스케의 순사에 영향을 받아서 ‘오키쓰 야고에몬의 유서(興津弥五右衛門の遺書)’를 발표한 뒤에, ‘아베 일족(阿部一族)’, ‘다카세부네(高瀬舟)’ 등의 역사소설, 사전(史伝) ‘시부에 주사이(渋江抽斎)’를 썼다. 또,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총장이나 제국 미술원(帝国美術院, 현재의 일본 예술원日本芸術院) 초대 원장 등도 역임했다.

도쿄대 의대생 오카다 역의 배우 아쿠다카와 히로시(芥川 比呂志 1920~ 1981)는 라쇼몬(羅生門 1915)의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1892~1927)의 아들이기도 하다. 

다음 호는 김동인(1900~1951)의 장편 연재소설 ‘젊은 그들(1930~1931)’을 신상옥 감독의 1955년 필름으로 다룬다. 
* The Youth-Jeolmeun geudeul-(film 1955 directed by Shin Sang Ok(1925~2006)/screen play by Lee Hyung Pyo(1922~2010)/a1930~31 Novel ‛the Young Ones’ by Kim Dong-in(1900~1951)/running time: 89 minutes.

 

 

 

 

 

 

글.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 현재)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공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박사

· 건축학 박사(역사·이론–논문: 한국 불교 삼보사찰의 지속가능한 보전에 관한 연구)

 

 

 

 

choinsou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