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현대적 기념성과 은둔의 상징 2022.7

2023. 2. 21. 09:2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 symbol of modern commemoration and hermitage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이하 HdM) 설계의 송은(SONGEUN)에서는 흔히 건축의 전근대적 관심사라 불릴 만한 건축의 ‘기념성’과 표면에서의 ‘상징’이라는 두 테마가 뚜렷이 나타난다. 여기서의 기념성은 도시 속에서 외향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송은문화재단의 이미지 전략으로써 고전적 건축 수법을 현대화한 것이며, 독특한 표면으로 드러나는 상징의 기법은 현대 한국 사회와 관계하고 소통하려는 건축 프로그램의 내면적 의지를 표현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지정학적으로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라는 대국들의 틈새에 놓인 스위스의 산업도시 취리히와 바젤에서 성장한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 b.1950)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b.1950)은 유럽과 미국에서 풍미하던 포스트모던 건축의 시대인 1960~1970년대에 그들의 건축 철학을 형성하는 청년기를 보냈다. 알도 로시(Aldo Rossi, b. 1931)의 『도시의 건축(l’Architettura della Citta)』과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 b. 1925)의 『건축의 복합과 대립(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에서 주장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한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그들의 건축 개념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알도 로시는 서양 전통도시 속에서 계승된 유형학과 기념성의 가치를 건축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내고 있었고, 로버트 벤츄리와 같은 미국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근대 건축이 지닌 차가움과 추상적 High-Arts의 무료함에 반기를 들며, 오히려 건축에서의 상징과 유희(Symbol and Fun) 그리고 신체의 기억 등을 통해 지각되는 ‘장소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적 건축적 트렌드 속에서, 진보적인 아키텍트 그룹 HdM은 모더니즘 건축에 대안을 제시하고 개선하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한계로부터도 벗어나 ‘순수한 재료의 인지’를 모색하는 현상학(現象學)과 ‘자연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관계의 복합성’ 그리고 숭고한 의고성(擬古性)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기념성(記念性)으로 오늘날의 건축 지경을 넓히고 있다. 

<ST송은빌딩> 남동측 전경 &copy; 심기섭


기념성의 현대적 복원 
19세기 비엔나에서 장식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아돌프 로스(Adolf Loos, b.1870)의 철학과 20세기 초,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b. 1872)을 비롯한 몇몇 네덜란드인들이 주도한 최소주의, 데 스틸(De Stijl)의 추상성은 대다수의 건축사들이 플라토닉한 기본 형상에만 천착하도록 유도하였다. 초기 HdM의 작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현대건축이론가인 쟈크 뤼캉(Jacques Lucan, b. 1947)은 이들의 최근 작품에서 나타나는 강한 수직적 볼륨을 두고서 “새로운 의고주의(un nouvel archaïsme)”1, 즉 고풍스런 볼륨을 채택하려는 경향성이라고 평가한다. 초기 작업에서 한동안 유지했던 미니멀한 직육면체 상자의 한계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형태로 전환하는 태도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은 예민하게 자신들이 도그마로 삼았던 초기의 작업 태도를 털어내고, 이제는 타문화권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업적 프로그램 홍보에 더없이 효과적인 도시 속의 기념적 작업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도쿄의 프라다 플래그십 빌딩(2000-2003)을 준공하면서 HdM이 “절대적으로 흥미 없는 도시적 맥락 속에서, 즉 제로에서 우리는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2라고 말한 것을 보면 존재감을 지니고 드러나는 기념적 작업으로 HdM이 상업성에 적응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새둥지’로 불리는 북경의 올림픽 주경기장(2002-2007)에서도 그러한 존재감이 강하게 확인되듯이, 동아시아의 국가들에서 제안한 그들의 건축이 대부분이 의고적이고 기념적이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울 강남지역에 위치하는 송은에서 HdM의 작업이 고딕 형상의 의고적인 기념성을 지향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HdM은 초기에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 칭하며 상징주의를 회피하는 건축, 즉 “비재현적 건축(non representative)”을 추구하려 했고, 미니멀한 상자 구축을 지향하였는데도 그들 작업 속에 로버트 벤츄리의 상업적 전략인 “장식된 창고(decoration shed)”가 쉽게 환기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하지만 주변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건축물의 존재감은 국제주의 양식의 한계인 익명성의 대안으로서 기념성이 제안되었고, 건축이 거대한 대지와 무미건조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강력한 지표처럼 인식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미니멀 아티스트 도날드 저드(Donald Judd, b. 1928)의 단순 명료한 오브제들이나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b. 1939) 또는 리차드 롱(Richard Long, b. 1945) 의 대지예술이 지향하는 위상학적(topologique)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HdM이 설계하고 그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한 ‘시그널 박스’는 도시 속의 황량한 대지인, 텅 빈 바젤 기차역 선로 위에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서 있는 현대적 오브제이다. 
이처럼, 현대도시 서울의 강남도 국제주의 양식의 직육면체 유리 상자들이 도열하고 있는 획일화된 도시이며, 이 무표정한 강남의 대로변에서 송은은 단순한 볼륨의 독특하고 강력한 존재감을 지니고 서 있다. 중세 고딕 성당에서 추구하던 기념성이 하늘에 닻을 거는 수직적 건축 행위를 통해서 낮은 곳의 인간과 높은 하늘을 관계 지으려던 경건한 종교성의 표현이었다면, 여기서 드러나는 기념성은 경제적이고도 실용적인 세속적 전략의 산물이다. 삼각형의 첨두 볼륨은 이 지역 사선제한의 법규적 한계를 풀어내어 최대의 용적을 끌어내려는 경제성에서 비롯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세 도시 속에서 드러난 고딕 성당과 유사한 의고성을 지니며 뚜렷한 실용적 기념성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정면 벽의 대칭성은 코어가 단면적으로 가장 높은 쪽에 위치해야 하는 기능적인 요청에 그대로 순응한 것이지만, 대부분 강남지역의 빌딩들이 각자 편한 대로의 입면을 표현하는 것에 반하여, 송은은 불투명(solid)하고 육중하게 도시에 박히고, 강한 대칭(symmetry)의 미학으로 정면을 구성하여 서울 강남이라는 현대도시 속에서 뚜렷한 존재감으로 드러난다.
내재된 자연의 상징과 소통하는 감각
헤르조그는 자신의 글 ‘자연의 숨겨진 기하학(The Hidden Geometry of Nature)’에서 자신들의 건축적 태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양한 역사적 형태와 혼종 문화가 조합하는 가벼운 절충의 복합성이 그들의 새 관심사라기보다는, 진지하게 “자연 속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체계가 지닌 복합성(Complexity)”3을 체감하고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송은의 외부 마감 작업에서, 액체화된 석재의 성질을 지닌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소나무란 재료의 특징을 촉촉한 표면에 눌러 전사하여 경화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그들이 의도하는 현상을 흔적으로 남겼다. 이처럼 “오브제는 스스로 언어를 제공한다. 그리고 오브제의 내재적 형성 재료들과 그것들의 구현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재료가 건축의 그대로의 지표(signifiant brut)로 부를 수 있게 정립되거나 재정립된다.”4 송은을 방문하는 누구나 이제는 다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으나, 송은(松隱), 마치 은둔하는 소나무와 같이, 무명 예술가 발굴 사업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려고 한 ‘송은문화재단’의 경영 철학을 HdM은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라는 한국의 지역 파트너 건축사를 통해서 잘 전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들의 작업에서 “우리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던 예술가들의 방식을 거부해 왔었다. 상징적 측면은 전혀 우리 작업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5라며, 비록 취리히 건축과 학생 시절 상징의 건축사 알도 로시가 그들에게 가르친 교육적 영향이 중요했었고, 그로부터 건축 보는 방법을 전수했음을 인정하더라도, 건축이 도시와 관계 맺는 부분에 대해서는 로시의 방식들을 거부했다. 이는 그들이 알도 로시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처럼, 건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며 도시를 바라보는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은에서는 내재된 소나무의 이미지를 외향적인 건축물의 표피 위에 중의적인 상징의 언어로써 재정립하려 했다. 이것은 결국 동양에서 고상하게 여기며 계승해 오는 겸양과 은둔의 철학, 즉 송은문화재단의 사회환원 프로그램을 상징하는 건축사들의 의도가 이 건축 작업의 소나무 결 이미지를 통해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HdM은 모든 것을 추상화하고 비물질화하는 모더니즘의 이상적 추상화 표현 방식으로부터도 거리를 둘뿐 아니라, 풍토적인 컬러와 역사적 장소의 얄팍한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구상화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가벼운 재료 인식에서도 벗어나, 더 다채롭고도 깊이 있게 재료의 특성을 관찰하고 발굴하여 새롭게 그들의 건축에 부단히 적용하려 한다. 그들과 가까이 교류하는 건축사 아네트 기공(Annette Gigon, b. 1959)의 주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어휘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물들(choses)에 대해서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사물, 재료, 실체들의 직시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관찰하고 만지고 비교하고 적응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 속으로 진입하는 하나의 수법이다.”6 라며 자연과 더불어 따스한 자연 현상을 드러내는 참신한 재료를 찾아 지각하는 현상학적 건축의 태도를 견지해 왔다. “건축물은 물리적인 오브제이지만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또한 보이거나 아니 보이는 것이라도 주변과 부단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7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감각만이 어떤 감각보다도 우선하여 건축 예술의 영역 속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HdM은 송은의 독특한 소나무 거푸집 문양 외피를 제안하면서 시각적 감각을 넘어, 호기심을 동반한 촉각의 경험으로 심리적인 온기를 강화할 뿐 아니라, 오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건축이 사회적으로 주변 도시와 더욱 다양한 감각으로 접촉하게 한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송은 건축과 프로그램에 내재된 문화 예술 활동의 기능에도 부합하는 효과이다. 


1. Jacques Lucan, 「Précision sur un état présent de l’architecure」 188쪽 
2. Willam J.R.Curtis, 「The nature of artifice, a conversation with Jacques Herzog」, “El Croquis” no 109-110. (Herzog & de Meuron, 1998-2002), 27쪽
3. Jacques Herzog, 「The Hidden Geometry of Nature」 (1988), in Wilfried Wang, “Herzog & de Meuron”, Zurich, 1992, 145쪽
4. Jacques Lucan, 「Précision sur un état présent de l’architecure」  120쪽
5. Ibidem. 124쪽
6. Annette Gigon & Mike Guyer, 「The Grammar of Materials」, Mattias Bram과의 대화, “Daidalos”, 1995년 8월호, 「Magic of Materials II」, 53쪽
7. Eunseok Lee & Hyunchul Ki, “건축사” 2022년 7월호, 「A conversation with Pierre de Meuron」  

 

 

 

 

 

 

 

 

글. 이은석 Lee, Eunseok 경희대학교 교수

 

 

 

 

이은석  경희대학교 교수

 

1987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1996년 파리 국립 제1대학 판테옹 소르본느를 졸업하고 예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국립 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프랑스 정부공인건축사(D.P.L.G.)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대표작 중 ‘손양원 기념관’은 2019년 Architecture MasterPrize(AMP)를 수상하였으며, ‘새문안교회’는 2020년 AMP, Architizer A+Award를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2021년 국립한국문학관 국제설계공모와 2022년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국제설계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한 바 있다.

komalee@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