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0. 09:27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Shelter and tent
캠핑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거주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에서 아마도 건축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일 것이다. 경량화, 소형화, 간편화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그리고 가격 또한 이에 상응하는 캠핑 업계의 속성은 이러한 원초적 성격을 더욱 극한으로 치닫게 한다. 이 과정은 개별 제품 간의 경쟁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개념 간의 경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치열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각 사물의 핵심 개념과 개념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합종연횡이 쉽게 일어날 것 같지만 경험적으로나 선험적으로 어중간한 성격의 물건들이 설 자리는 의외로 좁다. 그중에서도 셸터와 텐트는 일견 유사하면서도 엄연히 다른 그 개념적 차이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 둘의 차이는 간단하다. ‘외기’의 차단 여부다. 셸터는 외기의 유입을 허용하는 구조물이고 텐트는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간단히 ’외기’라고 썼지만, 이것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외기란 바깥 공기만이 아니며 그 공기가 포함하는 여러 가지, 즉 습도와 온도, 심지어 벌레, 먼지 등을 모두 포함한다. 셸터는 이처럼 공기와 함께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이 모두 드나드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구조물이다. 어느 정도의 비와 눈, 그리고 바람 정도를 막아 줄 뿐이다. 텐트는 다르다. 텐트는 일단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외기를 차단한다. 공기의 흐름은 물론, 벌레를 막기 위한 방충망도 필수다. 환기를 위한 배려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우선 차단을 전제로 하고 난 사후 조치다. 얇디얇은 한 겹의 패브릭으로 구성된 텐트의 외피가 얼마나 외기를 차단할까 싶지만 실제로 야전에서 그 효과는 엄청나다. 패브릭 안팎의 기온 차이에 의한 결로가 텐트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일 정도다. 많은 캠퍼들이 어스름한 새벽, 마치 송곳처럼 위에서 떨어지는 결로수에 맞아 본 섬찟한 경험을 토로한다.
아산 일대를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구국현 건축사의 아산시 농업기술센터 농기구보관창고를 보러 간 날은 초여름의 햇살이 점차로 뜨거워지고 있는 5월 말이었다. 직접 운전을 해서 갔는데, 자동차란 이를테면 냉난방 설비가 갖춰진 이동식 텐트 같은 것이다. 사실 기온 자체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어서 어느 정도 문을 열고 바람이 들어오게 하면, 즉 셸터처럼 활용하면 나름 쾌적할 날씨였으나, 속도에 의한 바람의 세기와 먼지, 소음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텐트처럼 창을 닫고 달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에어컨을 틀게 되었다. 사실 자동차라는 밀폐된 환경은 어느 정도 햇살이 뜨거워지기만 해도 내부 거주성이 급속도로 나빠지며 결국 기계의 힘, 즉 에너지를 사용하게 한다. 그래서였을까, 건물에 처음 들어섰을 때 ‘시원하다’, 그리고 ‘쾌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 자동차보다는 훨씬 더 환경적 설득력이 있었다.
아산시 농업기술센터 농기구보관창고는 셀터로서의 건축이 갖는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업이다. 기본 철골 구조에 하부는 벽돌, 상부는 PVC 파이프를 설치하여 외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농기구를 보관해 놓고 있다가 주로 농번기에 집중적으로 인근 지역 농민들에게 임대하기 위한 시설로서는 매우 합당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판단이 예사롭지 않았음은 이 건물 바로 맞은편에 있는, 이 건물 이전에 지어진 같은 성격의 시설이 어떠한지를 보면 된다. 샌드위치 패널로 벽과 지붕을 온통 감싸고 거기에 창을 낸, 그러니까 전형적인 텐트 형의 건물이다. 처음 구국현 건축사에게 이 건물의 설계를 의뢰했을 때, 발주처는 이와 유사한 건물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구국현 건축사는 텐트가 아닌 셸터의 개념을 제안했다. 단순히 다른 디자인이 아니라 다른 형식을 제안한 것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텐트와 셸터의 차이점 때문이며, 나아가 건축이 지어지고 사용되는 사이클의 전 과정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로 건축의 모든 영역에서의 차이를 가져오는 판단이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PVC 파이프라는 재료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다. 주어진 프로그램의 성격상 외기의 유입을 허용하면서도 작업이 용이하고, 미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내구성이 좋아야 했다. 거기에 추가하자면(이런 성격의 프로젝트를 한 번이라도 해 본 건축사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비용적 타당성도 필수적이었다. PVC는 어떤 재료인가. 일단 가격이나 내구성 면에서는 데이터로나 경험적으로나 매우 출중한 재료다. 구국현 건축사 자신도 여러 업체들과 접촉했는데, ‘실내 백 년, 실외 오십 년’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나 자신도 그간 설계해 온 건물이나 내가 거주해 오는 건물에서도 실내 건 실외 건 PVC가 별다른 외력 없이 깨지거나 분해되는 것을 경험한 기억이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PVC는 수많은 합성수지 중에서도 폴리염화비닐(Polyvinyl chloride)의 약자인데, 내약품성, 전기 절연성, 내수성이 우수하여 주로 파이프, 접착제, 도료 등의 재료로 많이 활용된다. 일상적으로는 각종 배관용 재료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열가소성 재료라서 열을 가하면 변형이 쉽게 일어나 적절히 가공하기 쉬운 것도 장점이다. 자외선과 저온에 다소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건물의 구조상 재료 표면적의 대부분은 그늘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비내력 재료로 사용하여 하중을 그리 받지 않으므로 현실적인 내구성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원래 용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료를 사용한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합목적성을 발휘한다는 점, 그리고 자연광 및 인공광과 결합했을 때 창고 건축의 일반적인 기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미학적 경지를 보여준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이라는 환경에서 이웃집 사람처럼 친숙한 재료를 특별한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묘미, 나아가 어떤 통쾌함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논의의 다음 단계로서 이러한 선택이 얼마나 밀도 있게 실천되었는가라는 문제, 즉 완성도라는 피할 수 없는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현장에서 구국현 건축사와 주고받은 대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 이야기를 갈음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하단부의 벽돌 부분은 아마도 역시 PVC로 대체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비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충격, 혹은 보행자의 접촉 등을 염두에 둔 처리라고 판단되지만, 건물 전체가 PVC로 구성되었을 때 오는 개념적 상쾌함이란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또 다른 부분은 기하학적 엄정함에 대한 것이다. PVC처럼 일상적인 재료를 특별하고 귀하게 다루는 것은 건축의 묘미다. 그런 재료일수록 기하학적 엄정함과 결합했을 때 그 어떤 고가의 재료보다 더 고결한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건물에서는 철골 부재의 각도와 PVC의 적층된 각도 사이의 불일치가 그런 점을 다소 아쉽게 한다. PVC의 단면은 원형이므로 이것을 자연스럽게 적층했을 때 얻어지는 각도는 60도, 즉 정삼각형이 된다(물론 다른 방식으로 쌓는다면 다른 각도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이 건물에서 철골 부재의 각도가 이와 맞지 않다 보니 부분적으로 PVC를 쌓는 방식이나 각도가 달라지고 철골 부재와의 정합성도 어긋나게 된 점은 아쉽다. 전반적인 효과와 기능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훌륭하지만 부재와 부재를 서로 연결시켜 나가는 텍토닉이라는 궁극의 진검승부에서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건축 전문가들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사실상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인류의 건축사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안내해 준 건물 관리인, 즉 발주처 공무원은 이 건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용상 이렇다 할 문제가 거의 없고, 외관도 아름다우며, 게다가 전반적인 공간 구성은 농촌 헛간의 2층 구조와도 닮아 있으니 새롭지만 여전히 친숙하다는 것이었다. 그 짧은 말속에 전통과 근대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 또한 담겨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하단부에 설치되어 있는 창문은 인허가 과정에서 이 건물을 ‘무창층’으로 해석한 지역 관청의 입장이 다소 엉뚱하게 반영된 것인데, 이 역시 본질적으로 셸터를 여전히 텐트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려 했던 습관이 다소 코믹하게 드러난 결과일 것이다. 구국현 건축사의 이 작업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얼마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얼마나 더 사물과 건축의 핵심에 접근하는 좋은 통로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쾌하고 의미 있는 사례다. 이런 작업의 연장선상에 보다 다양하면서도 엄정한 건축의 꽃이 피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 황두진 Hwang, Doojin (주)황두진 건축사사무소
황두진 건축사·(주)황두진 건축사사무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 고, 김종성과 김태수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0년 황 두진건축사사무소를 창립하여 서울 구도심의 한옥에서 기계 미학의 복합 건축, 해외 박물관의 한국실에 이르는 다양한 프 로젝트를 소화해 오고 있다. 실무 건축사이면서도 이론과 저술 활동을 꾸준히 병행해 오고 있으며 ‘무지개떡 건축’은 그의 이 러한 다면성이 잘 드러나는 주제다. 대표작으로 캐슬오브스카 이워커스, 춘원당, 무카스 사옥, 원앤원 63.5, 노스테라스 등이 있고 서울시 건축상, 김종성 건축상,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등을 받았다.
hwangdj@djha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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