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물 그리고 문 2022.9

2023. 2. 23. 09:10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Shadow, water and door

 

제월당 © 이종민

건축이란 그림자
건축사사무소에 첫발을 디딜 무렵이었다. 폴 루돌프가 설계한 예일대학 건축학부 건물의 매스와 루이스 칸 건축의 짙은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선명함이 무엇보다 먼저 다가오던 때다. 일종의 매너리즘이었다고나 할까? 도면에 실제의 깊이보다 과장되고 두터운 음영을 그려놓고서야 만족하곤 하였다. 내가 다루었던 밋밋한 상업용 건물에 깊이의 변화가 있다면 얼마나 있었을까? 그럼에도 도면에 그려 넣은 현실과 다른 몽환적 그림자는 내가 처한 건축에 대한 카타르시스였으며, 꿈이고 환상이었을 테다. 
이후로도 그림자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고나 할까? 내게 그림자는 늘 사물보다 우선 관찰 대상이었다. 사진에 빠져 있을 때도, 이미지란 어느 한 시점에 카메라의 조리개를 통과한 빛의 변주에 불과한 것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주장하였다. 빛과 동체인 그림자가 유형의 실체를 만들고 빛은 그 속에 존재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그림자가 지배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또 흘렀나 보다. 사진, 건축, 그림에서의 내 관심은 여전히 그림자다. 특히 내 건축에 충분히 변주되지 못했던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내가 추구한 욕망이 빛의 일종이었다면 그림자는 내가 이룬 건축의 조각이었을까? 좀체 버리지 못하는 미련 속에 건축이란 그림자는 여전히 짙다.  

인간의 본태(本態)이자 근원, 열망인 물
장 그르니에의 책 한 권을 끼고 제주로 떠난 길은 물을 보러 가는 여정이었다. 비행기 창밖은 경계가 없는 몽환적 풍경이었지만, 나는 분명 거대한 수면 위를 나르고 있을 터였다. 철학자는 ‘여행이란 일상적 생활 속에 졸고 있던 감정들을 일깨우는 활력소’라고 썼다. 
사방이 물인 내 고향 부산에서 또 다른 물을 보러 간다는 묘한 상황에 나는 꽤 흥분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평생을 물의 동네에서 살았다. 육지의 끝은 어디에나 물이 있었고, 육지의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수십 분 내에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 물을 건너기도 하였다. 건축을 배운 이후로는 타지마할이라는 보석을 띄운 무굴제국의 물과 펜실베이니아 어느 골짜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궁금했으며, 그때마다 여름의 소쇄원과 겨울의 안압지를 찾곤 하였다.
본태박물관의 물은 당돌하고 극적이었다. 지형의 변화를 자연스레 이어주는 데에 물만 한 것이 있었을까? 마치 경계를 버리고 번진 수채화의 한 폭처럼, 건축사는 딱딱한 물성의 콘크리트 사이에 물이라는 무형의 자유 물질을 끼워 넣음으로써 은폐된 기하학의 틈에 몽상을 끌어넣고 있다. 배경이 아닌 이 물은 스스로 형태가 되고 있다. 나는 본태(本態)란 말의 뜻에 물의 이미지를 겹쳐보았다. 아~ 물은 인간의 근원. 
반면 방주교회에서의 물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짐작한 대로 그저 물로 누워있을 뿐이다. 스스로 형태를 만들지 않고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물의 희생적 속성. 무척 종교적이었다 할까? 어쩌면 건축의 본질 또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그런 대승적 존재감 말이다. 다시 말하여 그 속에 사람이 살아야 하는 기능 앞에 기꺼이 배경이 됨으로써 건축이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사물이 된다는 것. 그리하여 결국 그 인간과 합일된 존재로만 고양될 그런 숭고함 말이다. 
물의 그러한 정적을 깨트린 것은 일순간의 바람이었다. 그 잔잔한 파문에 이 훌륭한 창조물은 생명으로 빛난다. 비로소 박제에서 깨어나는 건축, 무형의 것들이 만들어 내는 유형의 풍경. 아~ 물과 바람의 장단. 
다시 장 그르니에를 읽는다. “이런 몽상은 그렇다고 하여 결코 씁쓸한 것이 아니다.” 아무튼 물은 내게 특별하여, 물에 대한 열망은 내 건축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고, 때론 날개를 달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몽상한다. 끝내 물을 곁에 두리라. 오호라! 세상의 절반은 물. 그런 물은 인간의 본태였으며, 방주를 띄운 바다였고, 도시인들이 의지할 최후의 보루이며, 가난한 건축사에겐 하나의 열망이 되기도 한다. 

문(門)다운 문
500년 전 양산보 선생께서 거소를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이름 짓고, 뒤뜰에 매화나무를 심었다. 뒷문으로 흘러드는 매화향을 맡으며 맑은 달을 바라보려던 마음이었다. 그날 나는 그곳에 앉아 조상의 거소를 지키다 돌아가신 양산보 선생의 후손 故 양재영 선생을 기리며, 제월당 마루에 앉아 뒤뜰에 나무를 심은 두 선비의 뜻을 생각하고 있었다. 매화나무가 멍울조차 맺지 못했는데, 마루에 앉은 내 마음이 애절하고 급했다. 조선의 화가 김명국이 <답설심매도(踏雪尋梅圖)>를 그려 놓고 매화를 기다린 마음이 그러했겠지. 눈을 밟는 심정이 어찌 나와 달랐을까? 
무등산 자락의 소쇄원은 늘 그리운 곳이다. 15년도 더 된 어느 여름, 그곳을 방문하고 탐방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소쇄원을 지키던 양재영 선생께서 읽고 연락을 주셨다. 소쇄원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나 보다. 2009년에 선생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 어찌하여 다시 그곳에 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지난 일들을 회고하게 된 것이다.
탐방객이 밟는다고 노란 복수초를 옮겨 심고 있던 선생의 동생께서 내 넋두리를 듣고 반가워했다. 지금은 자신이 소쇄원을 관리한다고 했다. 내가 매화가 곧 피겠다고 말하자 갑자기 제월당 뒷문을 열고 “매화 향기가 이리로 들어 광풍각으로 흐르지요.”라고 말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멍울조차 맺지 못한 매화나무에서 모종의 향기가 내게로 확 달려든다. ‘아~ 이것은 꽃의 향기인가? 문의 향기인가? 아니면 사람의 향기인가?’ 나는 비로소 문다운 문을 만나는 기쁨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여전히 날이 차가웠던 어느 날, 나는 찍어온 사진 속의 문을 열고 매화 한 그루를 그려 넣었다. 어찌 선비의 마음에 빗댈까마는 흉내 내어 심매도(尋梅圖)라 이름 붙였다. 봄을 맞아 들뜬 심정이었고, 옛 선비의 고고한 삶이 부러웠던 탓이다.

건축이란 인간의 갈망을 구축하는 일. 나는 그 이미지를 쫓는 나비와 같은가? 그림자, 그리고 물. 너무나 모호하여 그저 백일몽 같았던 그것들은 늘 외면할 수 없는 향기가 되어 문을 빼꼼 열고 나를 유혹한다. 그럴 때마다 얼른 꿈속에서 깨어나 굵은 연필로 그것들의 이미지를 긁적거려 그려 보는 것이다. 

 

 

 

 

 

 

글. 이종민 Lee, jongmin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이종민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의 대표이며, 현재 부산광역시 공공건 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광역시건축사회에서 발간하는 건 축사신문 논설고문이자, 부산일보 집필진으로도 활동 중이다.

 

j7139@hanmail.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