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16:0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 living and Brenthing Tourism for Architecture ⑨ Baekdusan Mountain, Goguryeo Historic Site, and a Visit to Shenyang Architectural University
2018년 10월 6일, 김성우 연세건축역사 연구소 팀과 김준봉 심양건축대학교 건축토목과 교수 공동주관, 심양대 건축대 대학원 팀 초청으로 12시 30분 남방항공편에 출항했다. 모든 일정은 백두산, 고구려 유적 및 환도성 답사 일정과 심양 건축대학교 견학으로 짜였다.
12시 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 13시 30분 심양공항에 도착해 심양공항(선양) 버스를 탑승 후 공항주차장을 출발했다. 통화를 거쳐 송강하로 이동(6시간) 중, 서파 만주족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여경호텔에 투숙했다. 이튿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식사를 마친 후 차량(고속도로 이용)으로 송강하로 출발한지 6시간을 넘겨 장백산 화산 국가 지질공원에 도착했다.
백두산남파 코스인 셔틀버스로 장백산 입구에서 백두산 정상(1시간 소요)으로 가는 도중 북한과 중국과의 경계선이 압록강 발원지까지 중국 쪽으로 경계가 이루어졌으며, 백두산으로 가는 도중 천지 5호 경계비, 압록강대협곡관광 계곡에 작은 협곡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백두산 정상에 도착해 천지까지 도보로 10분에서 15분정도 평지를 걷는 완만한 남파코스를 지나 큰 부담 없이 백두산 천지를 마주하게 된다. 날씨는 쾌청하고. 백두산천지 주변에는 눈이 쌓여 푸른 천지와 대조를 이루어 장관이었다.
■ 백두산 고구려유적지 답사 및 심양건축대학교 답사여정
1. 백두산
백두산은 북한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2,750미터이다. 북위 1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이 얹힌 모습이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불리며, 중국에서는 장백산(창바이산)이라고 불린다.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맥의 주봉으로 최고봉은 2,750미터의 장군봉이다. 2,500미터 이상 봉우리는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등 16개이며, 남동쪽으로 마천령산맥이 뻗어 있다. 산 정상에는 칼데라호인 천지가 있으며. 면적 9,165제곱킬로미터, 평균수심 213미터, 최대수심 384미터이다.
백두산 천지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통화(서간도)에 도착,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강씨) 송이버섯으로 저녁식사 후 통화 홀리레인 호텔로 이동했다. 3일째는 통화에서 집안(국내성)에 도착해 장군총, 광개토태왕비능, 환도산성, 국내성을 돌아봤다. 집안 압록강 중류 북한의 자강도, 만포시 집안 조선 교포 불고기집 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단동에 도착해 조선족 교포 평안상장에서 석식 후 단동 진주도 리조트 호텔로 이동했다.
10월 7일(일) 점심식사 후 통화향발(4시간) 버스 탑승, 크라운 호텔로 이동해 저녁식사 후 체크인했다. 다음날 오전 8시 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집안으로 이동 후 환도산성 유적지답사, 광개토왕비, 장군총 등을 보고 점심식사를 마쳤다. 오후 2시부터 7시까지는 버스에 탑승해 단동으로 이동해 진주도 호텔에서 식사했다.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철교, 위화도회군 장소를 확인하고 단동으로 이동해 신의주 시가지 야경을 보았으나, 불빛이 희미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2. 광개토대왕비
고구려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의 비석으로 아들인 장수왕에 의해 414년(장수왕 2년) 집안 지역에 세워졌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 쓰여 있어 ‘호태왕비’라고도 부른다. 응회암(凝灰巖) 재질로 높이 약 6.39미터, 면의 너비는 1.38~2.00미터에 무게는 37톤에 달한다. 비문은 고구려의 왕계와 비석을 세운 이유, 광개토대왕 생전의 업적,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에 관한 규정 등을 기록하고 있다.
3. 장군총
고구려가 도읍한 집안에서는 광개토대왕릉비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 사신총 등 석릉과 토분 1만 개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전한 석릉은 장군총뿐이다. 무덤의 주인공이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의 것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 측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으나, 고분의 유품이 모두 도굴당했기에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4. 장수왕 1호 동반무덤
번호 JYM002이고 고구려왕궁의 묘지이며 장군총의 계단을 방불케 한다. 계단식 묘실이고 규모가 작으며 주위에 무덤을 보호하는 돌이 없다. 위쪽은 돌무덤이고 높이는 4.72미터이다. 바깥쪽에 계단이 있고 1계단의 길이는 9.22미터이며 묘실은 3개의 거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꼭대기에 거석이 있고 묘실 문은 큰 돌로 봉쇄되었으며, 묘실 밖은 조각돌로 깔려있다. 이러한 복고식은 고구려 묘지제도의 다원성을 체현하고 있다.
5. 광개토왕릉비(호태왕비)
기원 414년 세워진 묘비는 호태왕의 아들인 고구려 20대왕 장수왕의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묘비는 각력응화암으로 만들어졌고 방추형으로 되어있다. 높이는 6.39미터이고 너비는 1.34~2미터이다. 비석의 벽에는 한자 예서체로 된 비문이 있는데 총 1775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확인된 한자가 1,590여 자이다.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 신화, 초기 왕계, 호태왕의 영토 개척 공적, 능묘의 관리 제도 등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왕릉비의 발굴은 중세기 이래 세인에게 잊혀졌던 고구려의 문명 및 중심지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확인하였고 동북아 지역 고고학 유적지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인증하였다.
6. 집안(集眼)
집안은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한 곳으로 고구려 문화의 발상지이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유리왕이 졸본에서 천도하여 수도로 정하였던 곳으로, 아직도 고구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고 이 유적들은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7. 환도산성(완두샨쳥)
고구려 시대의 도성으로 면적은 8,000제곱미터이다. 국내성의 북쪽 2.5킬로미터지점의 해발 676미터 산성자산에 위치해 ‘산성자산성’이라고도 한다.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은 산능선을 따라 축조됐다. 동·서·북 3면은 험준한 지형과 암반 등을 자연성벽으로 삼고, 산마루의 평탄한 곳에 군데군데 석축성벽을 쌓았다. 산능선의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성벽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산성의 평면은 매우 불규칙한 형태이며, 성벽의 총길이는 6,947미터이다.
8. 국내성
고구려의 제2수도이다. 한평제 원시(元始) 3년(기원 3년) 북위 시광 4년(기원 427년)에 이곳을 수도로 정하였고 425년 동안 고구려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 별도(別都)로 정하였다.
성상의 둘레는 2,741미터, 동쪽 성벽 558미터, 서쪽 성벽 699미터, 남쪽 성벽 749미터, 북쪽 성벽 735미터이다. 성상은 반형과 기다란 모양으로 된 고르게 가공한 돌로 벽면을 장식하고 안쪽은, 흑과 사토 등을 혼합하여 채워 넣었다. 벽면의 아치돌은 가지런히 쌓여 있고, 지면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매 층에서 10~15센티미터를 줄였고, 보존이 잘되어있는 곳은 11층까지 볼 수 있다.
확인한 유적지 가운데는 성문유적지 4곳, 적을 감시하는 망대 20곳, 각루 2곳, 서성 바깥쪽의 대형 돌로 쌓은 배수로 유적지 1곳 등이 있다. 성내 중부에서는 대 면적으로 된 건축유적을 볼 수 있는데 궁전구역이라 추측한다.
2004년 7월 국내성 등 43개 고구려 문화유산이 <세계유산명록>에 기재되었으며, 2010년 1월 1차적으로 국가발국유적공원으로 공포되었다.
9. 단동
단동(丹東)은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우리의 역사 속에 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다. 주변의 대련, 심양, 집안, 백두산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옛날로부터 현대까지 많은 사건의 주 무대가 된 도시이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는 압록강 단교에 올라서고, 전쟁기념관에서 민족의 아픔을 직접 체험하고 지척의 신의주를 바라보며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해 본다.
10. 심양(셴양시)
둥베이지방 최대의 도시이자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로 옛 이름은 봉천, 만주어명은 무크덴(Mukden)이다.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로, 둥베이 남동부의 노년기산지 말단부가 평야와 접하는 랴오허강 유역에 있다. 한대에는 요동군에, 뒤에는 고구려의 영토에 속해 있다가 다시 당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심주가 되었다. 이후 발해에 속했다가 요·금시대에는 동경로, 원대에는 심양로가 설치되었고, 명은 변경의 요지로 삼아 심양위를 두었다.
창춘·다롄·산하이 관·단둥·지린으로 통하는 주요철도가 분기하여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부근의 푸순, 번치, 안산 등에 석탄과 철광석 산지가 있어 공업이 발달했다. 시가지는 동부의 고궁을 중심으로 성벽에 둘러싸인 구성내,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서부의 상가·주택가·문교지구, 중간의 관청가, 창춘-다롄 철도 서쪽의 공장지대 및 노동자 주택지구, 제2차 세계대전 후 북·동·남부로 확산된 신시가지 등으로 구분된다.
11. 심양고궁
중국 랴오닝 성의 성도인 심양에 있는 약 6만 제곱미터 규모의 고궁으로 청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와 2대 황제 태종이 건립(1625~1636)했다. 황궁으로 건립됐으나 3대 황제 성종 때 베이징으로 천도 후 둥베이 지역 순회 시 이곳에 머물렀다. 1955년 선양고궁박물관이 됐고, 1961년 전국중점문불보호단위로 지정됐으며, 204년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포함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90채의 건물과 20개의 정원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내부는 크게 동·중·서로로 나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만주족의 특성이 건축기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12. 심양건축대학
심양건축대학은 1948년 4월 설립된 중국의 공립대학으로 건축, 토목, 기계 등의 학과를 특색으로 공업·관리·물리·인문·농업·법률·예술 등 학과의 협조를 받아 발전한 요녕성과 공동으로 설립한 학교이다. 전신은 1948년 창립한 중국인 문 해방군등 동북군 군공분 공업전문학교로, 동북 건축 공정학교로 변천했다가 심양건축재료공업학원 요녕성 건설학원 등의 과정으로 바뀌었다. 1960년 6월 중국인민공화국 건축공정부 소속 중점학교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5월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토목공정, 건축기계공정, 도시계획학, 조경학, 소프트웨어 공정 등 6개 학과가 전국선두그룹에 들어있다. 요녕성 국가 대학평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건축·토목 등의 전문분야는 전국서열 상위권이다. 약 3,352,066제곱미터(101만 4,000여 평)에 총 부지면적 약 1,752,066제곱미터(53만 평) 규모로, 학생 수는 17,000여 명에 달한다.
13. 심양건축대학 전시관
3층 건물인 전시관에 건축자료 설계 투시도, 모형, 조감도, 사진 등 내부의 오픈된 공간에 빈틈이 없었다. 건축관 전시품 중에 5층 탑의 모형 및 설계단면에 구조 및 각층의 사용처 내용들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었다.
10월 9일 아침 일찍 버스에 탑승해 심양으로 이동(4시간)하여 심양건축대학교 부총장 초대로 면담 후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심양건축대학교 팔왕서원과 건축박물관 등 견학에 참관했다.
다음날인 10월 10일 오후에는 심양고궁답사 황궁배치 및 고궁전체를 커버하는 한 개의 굴뚝과 온돌에 관련 단면 등과 설명으로 이해에 도움이 됐다. 고궁 답사 후 공항으로 이동해 18시에 출발하여 20시 40분에 인천에 도착 후 해산했다.
글. 김득수 Kim, Deuksoo 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김득수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S.S.P.삼대 대표
영등포구지역건축사회 회장(3회 연속),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직무대행, 대한건축사협회 이사·감사 등을 역임하고, 대한건축사협회 50년사 발간위원장을 지냈다. 서울 영등포구, 동작구 건축·민원조정 위원, 에너지관리공단 건축·도시·관광단지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예산읍 초대 명예읍장으로 위촉(1997.02.15.~2006.12.03.)된 바 있다. 서울특별시 시장 표창 5회와 대통령 표창(제200398호)을 받았으며, ‘일제시대 소읍도시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일제강점기 근대도시의 도시공간 변화 특성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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