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염전에서, 태평하다 2023.7

2023. 7. 20. 11:56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Peaceful at Taepyuong Salt Farm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햇볕 아래서도 자주 암전을 느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사는 동안 겪었던 잃어버린 사랑, 배신당한 우정, 보답받지 못 한 정성, 무시당한 마음…. 그 모든 기억이 한데 모여 너는 실패자라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승객이 꽉 찬 지하철 안에서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했고, 한밤에 잠이 깨면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죽어버린 듯한 슬픔이 북받치기도 했다.
벗어나려면 도망쳐야 했다, 잊어야 했다, 위로받고 스스로 위로해야 했다. 
우울한 도시를 떠나 내가 찾은 곳은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섬 증도였다. 
거기서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는 소금밭을 만났다! 2011년 대한항공이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만들었던 광고 중 하나에서 본 풍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증도의 태평염전은 바닷물을 갯벌 위 염전으로 끌어와 태양과 바람으로 말려 소금을 만드는 우리에게만 있는 특별한 천일염전이다. 

 


자막) 바다에 담아, 

         햇볕에 덮어두고,
         바람으로부터 얻다.
         하늘 빛깔 소금.
         염전[신안]
         우리나라
         우리에게만 있는 나라
         NA) Excellence in Flight
         KOREAN AIR


자막) 2010-2012 한국방문의 해

 

대한항공_TVCM_기업PR:염전 편_2011


태평염전은 모내기하기 전의 논을 닮아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반듯한 네모 안에 바닷물이 찰랑찰랑했다. 소금밭에 바람이 우르르 불면 짱뚱어가 두리번두리번 튀어나온 눈을 굴리고, 구름이 물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면 수컷 농게가 커다란 오른쪽 집게발을 짤깍짤깍 움직였다. 소금 결정이 모습을 드러낸 염판에서는 소금 알갱이 떠드는 소리가 싸르락싸르락 소란했다. 소금이 익는 소리였다.  
염전이 연출하는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염생식물원을 걸었다. 3월에는 무채색으로 황량했던 개펄에 함초, 칠면초, 나문재, 해홍나물들이 자주색 이국의 풍경을 그려 놓았다. 나무판을 깔아 길을 낸 탐방로를 따라가면 자박자박 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오염된 곳에서는 자랄 수 없다는 삐비가 갈대처럼 부드럽게 물결쳤다. 
소금밭과 갯벌, 염생식물들과 눈 맞추다가 문득 세상에 겪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겪어온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다 귀하다는 감동과 덧없다는 자각이 동시에 일어났다.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졌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천일염을 생산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멕시코, 호주 등 6~7개국에 불과하다. 2014년 기준으로 천일염은 전 세계 소금 생산량의 0.6%에 불과하고 그 중 7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우리 천일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천일염보다도 칼륨이나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풍부하고, 암염이나 정제염보다 염도가 훨씬 낮다고 한다. 
식탁에 빠질 수 없는 소금이 일제강점기부터 오랜 세월 광물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석탄처럼 광산에서 캐내는 ‘암염’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나라가 소금을 광물로 취급하고 있단다. 우리 소금은 2008년부터 식품으로 분류되었다. 식품으로 신분이 바뀐 덕에 정부의 식품 수출 지원을 받아 외국으로 수출도 되고 있다. 

 


신구) 내가 여기저기 세상 좋은 구경 많이 했지.
         우리 땅 우리 바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 하나가 다 작품이야.
         그 중에서도 이 소금, 천일염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만듭니다.
         인생 좀 살아보면 맛을 아니까!


Na) 전라남도 명품 천일염

 

전라남도청_명품 천일염 홍보:신구 편_TVCM_2018


“인생 좀 살아 보면 맛을 아니까!” 광고 속에서 탤런트 신구가 말한다. 소금 맛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인생의 맛을 알게 된다는 소리로 들렸다. 인생의 맛은 소금처럼 짜디짜다는 의미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소금 맛이 짜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황토판에서 잘 익어 미네랄을 듬뿍 머금은 태평염전의 3년 묵은 토판염은 짭조름한 맛 뒤끝에 달착지근한 단맛이 따라온다. 다른 양념이 필요 없는 맛있는 짠맛이다. 인생은 쓰고 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달고 개운한 것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소금 광고 한 편에서 읽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라.’라는 것이  기원전 3세기 그리스에서 시작된 스토아 철학의 핵심 교리라고 한다.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 중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떠나간 사랑도 퇴색한 우정도 버려진 약속도 나는 바꿀 수가 없다. 보기 싫은 상사나 버릇없는 부하직원은 물론 심지어 내 속에서 나온 아이조차도 절대 바꿀 수 없다. 이미 살아버린 과거의 날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고 아직 살지 않은 날뿐이다. 
그러니 애쓰지 말자. 태양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물기를 날린 뒤 맑고 하얀 결정으로 태어나는 소금처럼, 나를 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내 존재를 맡기자. 내 곁에 오고 가는 관계들을 시절인연으로 여겨 기쁘게 환대하고 미련 없이 놓아주자.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내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한 세월 부대끼면서 소금처럼 익었다가, 소금처럼 녹아보자.    

 

 

 

https://play.tvcf.co.kr/108318
대한항공_기업PR:염전편_TVCM_2011_tvcf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8l5LHXGNTg 
전라남도청_명품 천일염 홍보:신구 편_TVCM_2018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