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오딧세이 ⑦ 을지로 골목은 인쇄산업의 미래다 2023.12

2023. 12. 30. 09:4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⑦ Euljiro Alley is the future of the printing industry

 

 

 

인쇄골목의 주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 이영천

 

을지로엔 ‘인쇄 골목’으로 통칭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개조한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다니며 통통거리는 삼발이 소리가 종횡무진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휩쓴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소형 트럭도 분주하다. 한눈에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지는 종이 더미를 힘센 지게차가 이리저리 들어 나른다. 왜(몸빼)바지 입은 식당 아주머니가 늦은 식사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기도 한다. 뭔가를 찍어내느라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규칙적인 기계 소리에선, 묘한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그러함에도 굳게 닫힌 문에, 텅 비어 적막이 감도는 낡고 오래된 작업장이 몇 걸음마다 하나씩이다. 폐업했을까? 을지로 인쇄 골목의 한낮 풍경이다.

골목의 겉은 시간이 쌓은 두께만큼 초라하다. 하지만 세운상가 주변과는 다르게, 인쇄 골목 형성은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내던 ‘주자소(鑄字所)’가 1403년 지금의 남산스퀘어빌딩 자리에 생겨난다. 주자소가 1435년 궁궐로 옮겨가고 건물은 ‘교서관(校書館)’ 관리로 바뀐다. 이때부터 책판(冊板) 및 활자 등을 보관하며 나라에 필요한 인쇄물을 발행하는 기능을 1700년대 말까지 수행한다. 따라서 인쇄산업이 퇴계로 2가 중심으로 시작되어 형성 발달하였다는 추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의 도움을 받은 박영효 등 급진개화파 주도로,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이자 신문사인 ‘박문국’이 관립 외국어 교육기관인 동문학(同文學) 부속시설로 1883년 8월 설립된다. 을지로 2가 부근이다. 이곳 인쇄기로 한성순보가 그해 10월에 창간되어 발행한다. 박문국은 이듬해 갑신정변으로 기기 등이 파괴되어 폐지되었다가 1885년 다시 설치된다.
한편, 문명과 근대화에 뜻을 모은 유지들의 자본 출자로 근대식 인쇄시설을 갖춘 최초 민간인쇄소이자 출판사인 ‘광인사(廣印社)’가 1884년 3월 을지로 부근에 설립되어, 1880년대 말까지 운영된다. 민간인쇄소의 태동이다.
오랜 역사의 주자소와 교서관, 박문국과 광인사의 근대 인쇄 인프라를 기반으로 충무로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길고 좁은 골목은 각종 인쇄산업이 집중된 공간으로 변모해 간다. 이로 미루어 이곳이 600여 년 우리 인쇄산업 중심지였음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인쇄술은 문자나 그림 등의 기호를 종이나 기타 물체 표면에 옮겨 찍는 ‘복제 기술’이다. 채륜이 발명한 종이는 인류에겐 혁명적 물품이다. 생각과 역사적 사실,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 왜곡이나 정보 독점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맹아다.
우리는 인쇄 선진국이다. 목판인쇄의 시작을 특정할 순 없지만, 세계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금속 활자본 역시 ‘직지심체요절’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우리는 세계 그 누구보다 문명의 길을 앞서 걷고 있었다.

 

 

인쇄물품이 점령한 좁은 골목 © 이영천


위기와 몸부림
인쇄 골목은 자발적으로 모인 수천여 업체의 자생적 공간조직이다. 그만그만한 업체들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끈끈한 공정별 협업 체계를 지켜나가고 있다. 하나의 인쇄물을 만들기 위해 많으면 20여 회의 공정을 거치기도 한다.
골목은 1990년대 중반까지 호황을 뒤로하고,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30여 년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는 중이다. 일상화된 제반 매체의 디지털화가 직격탄이었고, 2000년대 초반 책 인쇄가 파주 출판단지로 빠져나간 게 두 번째 타격이었다. 청계천 복원에 뒤이어 밀려든 개발 압력에 투기꾼이 공간을 장악해 나간 후부터, 높아진 임대료가 결정적 타격이다. 이는 인쇄인들을 이곳에서 버티기 어려울 지경으로 내몰았다. 설상가상 코로나19는 3년간 이 골목을 거의 마비 상태에 빠뜨려 버렸다.

노력도 있었다. 인쇄인들의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 옛 스카라 극장 터에 2009년 인쇄 앵커 시설(아파트형 공장)인 ‘아시아미디어타워’가 세워진다. 이곳엔 현재 50여 업체가 입주해있다. 출판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 자조하지만, 이곳을 비롯한 인쇄 업계는 지속 가능한 상품 특화를 모색하고 있다. 상품을 포장하는 패키징 인쇄, 다품종 소량 생산의 디지털 인쇄, 보안 인쇄, 전자 및 자기인쇄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서울시도 화답했다. 2017년 인쇄산업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이 일대 303,000제곱미터를 ‘중구 인쇄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다. 이는 앵커 시설의 설치·운영 및 건폐율과 용적률 완화 등의 하드웨어, 프로그램 기획·운영 및 경영자금 지원 등 소프트웨어를 망라하고 있다.
이에 서울 중구청은 ‘인쇄산업진흥계획’을 마련해 앵커 시설 건립을 비롯한 공동구매·수주·협업 등 생산 체계 구축 등의 하드웨어와 정보공유·공동구매 및 공동작업 플랫폼, 경영 컨설팅, 인재 양성 등 소프트웨어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하나로 덕수중학교 남측에 ‘인쇄 스마트앵커’를 2024년 완공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곳엔 인쇄업체는 물론 인쇄 스타트업, 400호의 청년 주택이 입주할 예정이며 공동장비 사용, 기능교육 등 인쇄산업종합관리지원센터로 거듭날 계획이다. 그러함에도 현실적 한계는 엄존한다.

인쇄업은 도심형 산업이다. 파주로 나갔던 일부 업체가 을지로로 되돌아오고 있다. 아울러 자재와 생산품의 집화 기능도 중요하다. 하지만 투기 등으로 땅값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인쇄업체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당장 이들이 입주할 더 많은 앵커 시설이 필요한 이유다. 아울러 공간의 물리적 개선을 통해 인쇄 골목에 볼거리와 먹고 즐기며 체험할 수 있는 소재를 접목하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쇠퇴해 가는 인쇄 골목에 최근 그나마 젊은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들어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등 노력도 뒤따른다. 작은 전시, 공연은 물론 진양상가에 입주한 젊은 독립출판물 작가와 인쇄업체가 협업 체계를 구축해 문을 연 ‘지붕 없는 인쇄소’가 대표적이다. 이런 몸부림과 눈물겨운 노력이 인쇄 골목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되어줄까?

 

 

주자소터 © 서울중구청


공간 복제
이곳을 드나들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은 일본에서 들여온 청타기라 부르던 ‘공판타자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발주처에 납품할 소량의 보고서를 인쇄하였으므로 오프셋 인쇄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 청타기가 마스터로 진화하고 다시 디지털 마스터로 발전해, 짧은 시간에 고품질의 인쇄물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쇄기술의 발달에 부합하는 공간구조 변화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세운상가와 주변을 포함한 을지로 일대를 흔히 슬럼(slum)으로 바라본다. 이런 시선은 철거를 통해 지워내야만 하는 물적 대상으로 여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공간 조직 안에는 삶이 있고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따라서 고유 생태계를 온전히 지켜내면서, 물리적 환경과 기반 시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게 훨씬 더 지혜로운 방법이다. 기호화한 글자나 그림, 사진 등을 복제해 다중에게 좋은 정보와 이미지를 제공하는 ‘인쇄술’과 똑같은 원리다. 건강한 도심 생산생태계는 좋은 공간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수백 년 숱한 사연과 애환을 담은 골목과 그 형상만이라도 건드리지 말고 오롯이 보전하는 지혜를 발휘할 순 없을까?
도시환경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장려지구(incentive zoning)’가 있다. 도심 내 역사 건축의 보호나 공원 등 단위 공간의 환경개선을 위해 인접 대지 등에 그에 상응하는 용적률을 할증해 주는 기법이다. 이 기법을 응용해 골목을 넓혀 보행공간을 마련해 주고, 곳곳에 크고 작은 광장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할증된 용적률에 상응하는 금융알선과 세제지원으로, 인접 토지소유주 간 공동 개발을 통해 저층의 중소규모 아파트형 인쇄소를 늘려가는 방안은 어떤가?

수많은 발자국이 만들어낸 오래된 도시공간은 고서(古書)와 진배없는 가치를 지닌다. 대를 이어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골목과 공간에 글자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쇄 골목도 마찬가지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이곳은 기록된 역사이자 다가오는 인쇄업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주자소와 교서관의 오랜 역사, 근대 인쇄의 서막을 열었던 박문국과 광인사. 을지로 인쇄골목을 우리의 자랑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나 직지심체요절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바라보자. 이를 지켜낼 지혜를 머리를 맞대어 짜내보자.

 

 

 

 

글.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