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차이커뮤니케이션 사옥, 비움이 그린 ‘차이’나는 풍경 2024.4

2024. 4. 30. 10:4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 ‘different’ landscape drawn by emptiness

 

 

 

<차이커뮤니케이션 사옥> © 김한석

 

무심코 지나가는 대로의 옥외 광고판에서, 하루 일과를 오롯이 보내고 앉은 거실의 TV에서, 때로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차 안 라디오에서 우리는 광고라는 매체를 늘 접하고 있다. 어떤 광고는 그 이미지나 영상 혹은 소리가 잔상처럼 계속 떠오를 때가 있다. 광고의 목적에 부합하는 순간일 것이다. 광고디자인은 보이는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회자되는 디자인이어야 하며, 변화하는 사회에 맞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득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광고 회사 사옥의 건축디자인은 상기 열거한 광고디자인의 목적과 크게 상이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 게다가 강남의 한가운데 논현동에 위치하는 광고 회사의 신축 사옥은 도시 구조 내 기존 건축물과 새로운 소위 ‘핫한’ 건축물과의 경계를 허물어 이곳을 지나치는 이, 누구나의 머릿속에 잔상을 남기는 설계여야 했을 것이다. 
학동역에서 서울세관 사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빼곡한 도심 건축물 사이에서 심플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차이커뮤니케이션 사옥’을 발견할 수 있다. 대상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된 다양한 높이의 건축물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도심의 과밀지역은 최대 용적률을 찾아 임대면적을 늘려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러한 가운데 차이커뮤니케이션 사옥은 광고 회사라는 성격에 맞게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하고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설계자는 획일화된 칸막이 오피스 평면이 아닌 오픈형 사무공간을 구성했고, 이러한 구성이 자연스럽게 건축물의 전체적인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용자가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다양하게 배치된 외부공간을 접할 수 있도록 내·외부공간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방법론이 되었다. 

차이커뮤니케이션 사옥은 낮은 건폐율(50%)과 용적률(250%)의 제한 속에서 최대 면적을 확보하되, 닫힌 구조를 선택하기보다는 열린 외부공간을 통해 공유하는 장소성을 반영했다. 거리에서 맞닿는 건물의 하단부는 골목의 이웃하는 건축물과의 연계를 고려해 2개 층으로 계획했고, 그로 인해 저층부는 근린생활시설이지만 적극적으로 주변과 연계가 가능하다. 대지의 협소성으로 야기되는 외부공간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건물 내 공간을 사이사이 의도적으로 비워 결국 5개의 마당을 만들어냈고, 대지의 조건을 받아들여 생겨난 연속된 외부공간들은 내부 공간과 연계하여 수직, 수평적으로 확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부 열린 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테라스들이 서로의 움직임을 관망하며 장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장치가 되었다는 점은 설계자의 의도가 충분히 실현되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8미터, 18미터의 크지 않은 장방형 기준 평면에, 건폐율은 최소화하면서 전용면적은 최대화했고, 기계식 주차장 및 각종 설비 공간을 마련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극복하고 필요한 모든 요건들을 충족시켰을 뿐 아니라 다양한 외부공간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설계자의 치열한 고심이 느껴진다. 기준층에서 시작된 편심코어형 평면은 기능성과 합리성을 동시에 만족하며 1층부터 최상층까지 반복된다. 최상층의 회의실을 포함해 외부 마당은 외부의 전망을 건물 내부로 유입해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물리적 공간을 양보하더라도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을 만들어 이용자의 잠재력과 내면의 고요를 보장해 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자 하는 건축사와 건축주의 뜻이 일치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완전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심플한 박스형 매스의 건물이지만 단조롭게 보이지 않는 입면의 변화는 시선을 잡아 끈다. 설계자 박일훈 건축사는 왜 흰색 매스를 선택했을까?
무채색의 박스형 매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군집 속에서 오히려 차별성을 갖는다. 또한 무표정의 백색 건물은 미스터리하면서도 강직한 힘을 가진다. 파사드의 여백과 수직적(vertical) 면의 비례는 여러 시도 속에 적절한 비율을 가졌으며, 조각난 디자인 요소의 나열이 아닌 건물 자체가 갖는 힘을 통해 하나의 오브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톤이 조절된 백색의 재료들과 재료의 텍스처 변경만으로 힘이 있지만 정갈한 입면을 구현했고, 유행에 민감해 자칫 몇 년만 지나도 구식으로 느껴지는 현재의 건축 트렌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자기만의 얼굴을 뽐내려는 건축물로 즐비한 강남구 논현동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신선한 충격일 것이다. 

주변을 향해 열린 구조인 저층부는 건축한계선을 따라 빈 곳 없이 올린 탓에 이웃 건축물보다 조금 커 보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위압적이지 않다. 단으로 공간을 구성한 이유도 있지만 한눈에도 속이 꽉 찬 매스 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 구조요소로서 내진성능이 확보돼 안전한 외벽 곳곳은 영롱쌓기가 되어 있는데, 뒷공간이 비어 있는 바람에 낮에도 밤에도 벽돌 틈 사이로 늘 어느 정도 빛이 새어 나와 부피감을 상쇄시켜 준다. 그로 인해 회색 매스덩어리가 아닌 상대적으로 비움의 미학이 있는 하나의 조형물로 인식되게끔 한다. 

저층부의 상대적 비움이 재료의 공법으로 인한 장치였다면, 고층부의 형태는 다소 과감하다. 2개 층마다 엮은 매스는 가로 방향의 모서리 부분을 과감히 셋백(Set back) 하여 지루한 입면을 벗어나고자 했다. 구조적, 기능적으로 불리하지 않되 입면의 변화를 이끌만한 요소를 모색하고 이에 심미적으로 만족할 만한 간격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모서리를 중심으로 방사되는 깊이의 변화로 인해 재료의 색상과 재질은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이러한 입면의 패턴은 내·외부에서 특별한 풍경을 만든다. 입면의 미묘한 어긋남과 그 깊이가 만들어낸 이 풍경은 단조로운 빌딩 형태를 거부하고 익숙한 거리 속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해주는 시각적 장치 역할을 한다. 
 
건축은 과거 시대를 거쳐 변화해온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로 현재와 미래를 돌아볼 수 있는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변화무쌍한 건축의 흐름 속에도 분명 트렌드는 존재한다. 이러한 트렌드의 파도 속에서도 지켜지는 원칙은 있다. 기본에 충실하되 평범함을 거부한 특별함은 그만의 존재감을 갖는다. 하루하루 건물이 허물어지고 또 새로이 지어지는 도심의 풍경 속에서, 오롯이 건축사의 의도대로 주변 컨텍스트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오래오래 자리하여 관찰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낯선 익숙함을 선사하는 도시의 요소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글. 이길임  Lee, Gill-im 동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길임 교수 · 동명대학교 건축학과·프랑스 건축사

 

한양대와 파리-벨빌건축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프랑스 건축사이다. 금성건축 근무 후 2010년부터 동명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 강진 아트홀, 김해 복합문화공간 에스키스 및 언엔드 등이 있다. 대한건축학회 작품상, 부산건축상 올해의 건축가, 김해건축대상제 우수상, 한국건축설계학회 베스트30, 부산시장 표창장 등을 수상했으며 현대건축 공간이론 및 소규모 도시문화공간 설계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lgm@t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