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31. 09: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s Guide to Rotterdam
1. Library Quarter Spijkenisse
by MVRDV 2013
로테르담의 첫 행선지는 중심지에서 벗어나 변두리에 위치한 바로 이 작품이었는데, 사전 조사한 작품들 가운데 중요도가 높은 작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대지는 로테르담 남서쪽 메트로 C라인과 D라인의 종점에 위치한 스페이케니서(Spijkenisse)라는 작은 지역의 중심 광장 곁에 위치한다.
메트로역에서 이 도서관까지 제법 먼 거리를, 옛 마을의 중심 상가 거리를 관통해 걷게 되었다. 간척지이며 평야 지대인 네덜란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지면의 고저차로 인해 마치 우리나라의 삼청동길 같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정감 있는 길이었다. 이 작품 주변에 건축그룹 ‘MVRDV’가 같이 설계한 공동 주거 건물도 벽돌 경사지붕 형상이어서 접근하면서 쉽게 인지할 수 있었고, 아키텍트의 말대로 전통적인 네덜란드 마을의 농가를 회상하게 만드는 외관을 볼 수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좌측의 계단부터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올라가며 가장 위의 전망 또는 휴게공간까지 이르게 되어있다. 북 마운틴(Book Mountain) 뒤로는 열람실 일부와 부속실(교육실, 창고 등)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자연 환기와 햇볕 차단막으로 일사가 조절된다 했으나, 위로 올라가면서 실내 온도가 점점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모든 동선을 따라서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은 경험하기 쉽지 않은 공간이었고, 상상 그 이상이었다. MVRDV의 작품세계를 다시 한번 느끼며 먼 길을 찾아온 보람을 느꼈다.
2. Timmerhuis
by OMA 2015
티메르하위스(Timmerhuis)는 시청을 위한 사무실, 임대 사무소, 주거를 위한 복합 용도 건물로 도로로부터 점차 물러난 두 개의 비정형 타워를 모듈러 코디네이션으로 설계했다. 작은 모듈 셀들의 구성으로 이뤄진 건물은 로테르담의 중심인 쿨싱겔(Coolsingel)의 경관을 인상 깊고 다양하게 만든다. 두 면을 감싸고 있는 1953년 준공된 기존 시청사와 미묘하게 잘 어울리며 만나고 있다.
저층부는 기존시청사 높이에 맞춰 계획되었고, 레고를 쌓아 올린 듯 모듈화된 셀을 적충시켜 고층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자연광으로 가득한 아트리움으로 건물을 가로지르는 통과 동선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트리움 하부는 도시의 조그만 광장 같았고, 하부로는 기둥이 전혀 내려오지 않아 천창을 올려다보니 철골 트러스가 잘 짜여 장스팬의 개방된 구조를 이룰 수 있게 했다.
3. Calypso & Pauluskerk
by Will Alsop 2013
런던에서 다녀온 노스그린위치역(North Greenwich Station)과 페컴 도서관(Peckham Library)을 설계한 영국 아키텍트 윌 알솝은 2000년대 초 런던의 두 작품과 캐나다 토론토의 샤프 센터(Sharp Center)에서 볼 수 있듯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디자인한다. 그런 그의 디자인 특성과 네덜란드의 포용적이고 개방된 건축문화가 잘 어울려 탄생한 작품이 이 작품(Calypso[칼립소] & Pauluskerk[노숙자 쉼터])인 듯했다.
작품의 대지는 시청과 중앙역 사이의 RCD(Rotterdam Central District)에 위치해 있다. 이전의 영화관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지만, 기타의 주법 중 하나이기도 하고 존 덴버(John Denver)의 감미로운 노래(To sail on a dream… 으로 시작하는) 제목이기도 한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모습과 색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주 출입구로 들어와, 자연광이 넘치는 아트리움에서도 역시 동그란 안내 테이블과 같은 모양으로 리드미컬하게 매달린 동그란 조명기구들이 존 덴버(John Denver)의 노래가 들리는 듯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안내 테이블 뒤에 키가 다르게 서있는 우편함도 서로 다른 높이로 매달려 있는 조명 기구와 그 리듬을 같이하고 있었다.
4. Rotterdam Central Station
by BNTHMCRWL 2014
로테르담 중심 지역의 도시 구조를 보면 북쪽에 중앙역이 위치한다. 역 광장을 시작으로 크루이스플린(kruisplein)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이 트램 라인과 함께 남쪽의 나우어마스강까지 로테르담 중심(Rotterdam centrum)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한다. 로테르담 중앙역(Rotterdam Central Station)은 네덜란드에서 중요한 교통 허브 중 하나이다. 하루 11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다고 하며, 2025년에는 약 32만여 명의 승객이 이용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 작품으로 느낀 로테르담의 첫인상을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었다. 아키텍트가 말한, 고층의 도심으로 향하는 거대한 입구를 나오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사선 지붕의 꼭짓점으로 시선이 향했다. 고층의 도시, 미래 같은 키워드로 해석하더라도 좀 과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실험적 건축의 도시 로테르담의 관문으로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전면 광장에서 역사 내부까지 이어지는 붉은색 석재 바닥 마감과 함께 스테인리스 스틸 역사 지붕과 천정의 쪽널 나무 마감, 커튼월 창호의 짙은 색 알루미늄 프레임이 형태와 달리 점잖은 분위기를 내며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로테르담이라는 도시에 조금 넘칠 정도로 중앙역은 그 역할을 200% 다하고 있었다.
5. Metro Station Wilhelminaplein
by ZJA 1997
1990년대 로테르담은 콥 판 자이드(Kop van Zuid)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에라스무스교(Erasmus Bridge)가 그 발전의 중심에 있었고, 나우어마스강 남측 강변의 빌헬미나 부두(Wilhelmina Quay)에 대형 건물들이 세워졌다. 지역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메트로 역사가 운행되는 기존 노선에 필요한 이 작품(Metro Station Wilhelminaplein, 빌헬미나 메트로역)이 탄생했다.
메트로를 타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세로로 심하게 기울어진 승강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기존 노선을 운행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생긴 정거장이기에 본선의 기울기가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었다. 승강장의 끝단엔 그런 정거장 상황을 잘 보여주는 본선 터널의 단면이 잘 드러나 있었다. 상 하행선로의 중앙에 공사 중 본선터널을 미동 없이 지탱해 준 큰 원형홀이 있는 내력벽, 그리고 그 위로 새로운 정거장 상부 슬라브를 지지하는 V형 기둥까지. 맥락을 알고 나니 보이는 요소들이 제법 조화롭게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대합실 층까지 열린 높은 층고의 개방감 있는 승강장 층에서 메자닌으로 보이는, 대합실로 오르는 계단을 항하다 보니 자연광의 밝은 빛이 느껴져 지하 공간의 느낌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또 승강장을 가로지르는 브릿지와 함께 수직 동선들이 승객의 흐름을 자연스레 유도해 세련된 발코니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세계 각국의 수많은 도시철도 정거장을 경험하고 또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철도 정거장을 설계했지만, 본선 운행 중 시공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며 설계를 진행해 지하공간의 폐쇄성을 극복하며 자연광과 개방감이 넘치는 아이디어를 낸 아키텍트의 고생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6. Fenix I Warehouse Renovation
by Mei Architects 2020
이 작품은 기존의 창고 공간을 저층부로 잘 이용한 재생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 불사조(Fenix)에서 보듯 기존의 창고가 재생되어 절대 죽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면적 약 45,000제곱미터의 복합용도 철골조 건물이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라는 이름의 기존 창고 위에 세워졌다. 기존의 창고는 1922년 뉴욕호텔(Hotel New York) 건물에 본사를 두었던 홀란드 아메리칸 라인(Holland- American Line)이 세웠다. 1940~50년 사이 심하게 손상되었으나 곧 복구되었고, 1980년대 항구 관련 시설을 서쪽으로 옮기며 창고가 필요 없게 되었다. 2007년 카펜드레흐트(Kafendrecht) 지역의 재개발과 함께 이 지역은 현재 트렌디하고 유명한 지역으로 변모했으며, 이 작품이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 작품의 독특한 시공기술 방식은, 별도의 기초로 기존 창고 위 1,000톤의 철골 테이블을 둠으로써 유서 깊은 창고의 대부분을 보존할 수 있었고, 새 건물은 창고와 완전히 분리된 구조라고 한다.
페닉스 팩토리(Fenix Factory) 내부로 들어가 보니 2층엔 기존의 구조 보를 해체할 수 없어 통과 높이를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슬라브 다운 공간도 있었다. 구조상 해체하지 못한 보는 화장실로 이어져 소변기 위 칸막이처럼 보였다.
7. Cube House (Kubuswoningen)
by Piet Blom 1984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나오기 이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건축 잡지의 어느 페이지에서 이 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있던 터라, 실제로 와서 보니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한 친근한 반가움이 있었다. 로테르담 항구의 역사적인 장소인 옛 항구인 오우덴 헤이븐(Ouden Haven[항구])에 위치한 이 작품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특이한 건축적 실험인 듯했다.
1970~80년대의 건축계는 세계적으로 실용성과 기능주의가 널리 퍼져가는 추세였다. 그런 가운데 네덜란드 아키텍트 피트 블롬(Piet Blom)이 1982년 로테르담의 시장이 된 한스 멘팅크(Hans Mentink)를 만나 그의 반골적인 기질을 잘 발휘했기에 탄생된 작품다웠다. 숲을 은유한 모습, 커다란 연필 같은 모습 등의 표현주의적 색채는 그의 디자인 정체성으로 차치하더라도, 관광객들에게 제공된 큐브하우스(Cube House) 공간을 체험하며 동화의 나라에나 있을 법한 공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 공간은 거주민들에게 안락함과 편안함, 편리함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살면서 익숙해져도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읽혀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며 기념품점에 들렀다. 추억을 남기기 위해 어디든 가면 늘 수집하는 재떨이를 하나 샀는데, 반 고흐의 그림이 담긴 것이었다. 피트 블롬도 반 고흐처럼, 아방가르드적인 도전과 실험 정신을 네덜란드의 후배 아키텍트들에게 남겨 이후 네덜란드가 세계적인 아키텍트들을 많이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8. Markthal
by MVRDV 2014
건축사사무소를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은 1990년, 서대문의 백련시장 재개발로 저층부 1층은 시장이고 2층부터 10층까지 공동주거로 구성된 백련시장 아파트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기억이 있다. 지명도로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마르크트할(Markthal)도 백련시장 프로젝트와 같은 시장 재개발 프로젝트로서 MVRDV가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해 발표 당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연 그곳에 사는 공동주거 거주민들의 거주환경은 어떨지 의문을 품었었는데, 이번 방문으로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유럽 규정에 의해 노상에서 신선 재료를 파는 것이 금지되어 설계공모를 낸 로테르담 시는 이 프로젝트가 기존 장마당에 지붕을 씌우는 정도로 진행되리라 생각했고, 또 이 지역에 더 많은 편의시설이 생겨나 도시 중심의 주거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했다.
필요한 프로그램은 주거, 주차 그리고 시장이었다. MVRDV는 두 동의 주거 사이에 시장을 계획하고 두 개의 동을 접고 하부의 커다란 홀에 시장을 두어 양쪽에 도시를 향하게 하는 커다란 개구부를 두는 디자인을 했다. MVRDV의 말대로 건축과 도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도시 로테르담을 온전히 보여주는 그런 작품이라는 느낌이었다. 큐브하우스는 같은 의미에서 부분적으로 반감이 있었지만, 마르크트할(Markthal)은 긍정적인 느낌이었고, 이 작품이 로테르담이 아닌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서있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사무소 실장이 로테르담을 다녀온 내게 처음 한 질문이 “마르크트할 어때요?”였던 것처럼, 10년이 흐른 지금도 로테르담의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장마당이 열리던 곳이 전 세계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장마당으로 변해서, 창이 있다고는 하나 열리지 않는 고정 창으로 인해 시장의 분주한 모습이 전망으로 여겨지기보다 오히려 시장 방문객의 시선이 거주민의 프라이빗함을 헤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에워싸는 공동주거라는 발상의 전환으로 디자인을 시작해 설계의 오랜 과정에서도 그 개념과 아이디어를 관철시킨 아키텍트의 노고가 대단하다.
9. Luchtsingel Pedestrian Bridge
by ZUS 2015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도시 재생에 대한 설계 수업을 지도한 지도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기에, 이 작품은 숨겨진 보석을 찾은 느낌이었다. 세계 최초로 클라우드 펀딩(crowdfunding)으로 세워진 도시기반시설인 보행 육교 프로젝트이다. 루크싱(Luchtsingel)이라는 이름은 공중운하(air canal)라는 뜻으로, 도로와 철로로 단절되었던 도시의 세 곳을 관통해 흐른다. 밝은 노란색의 나무 구조물이 지면에서 올라와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클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해 25유로를 기부하면 기부자의 이름을 보행교 난간 노란 나무판벽에 새겨주었는데, 8,000명이 넘는 기부자가 최종 캠페인을 통해 재정 지원을 했으며 아키텍트들은 나중에 시의회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완료했다고 한다. 철로로 단절되었던 북측 주거지역과 진입했던 공원이 있는 지역은 출퇴근 시간이 되면 다른 밀도의 동선을 보이겠지만, 필자가 방문한 금요일 오후 시간은 비교적 한산한 느낌이었다. 전날 다녀온 1980년대 큐브하우스(Cube House)의 노랑과 2015년의 루크싱 보행교(Luchtsingel Pedestrian Bridge)의 노랑이 묘하게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Kunsthal Rotterdam
by OMA 1992
네덜란드 건축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OMA(메트로폴리탄 아키텍처 오피스)의 이 작품은 실은 기억에 잘 없었다. 1990년대에 강렬하게 다가온 네덜란드 건축은 MVRDV의 빌라 프이피알오(VILLA VPRO, 이하 VPRO)였다. 이후 리본(ribbon)이라는 키워드로, 나아가 흐름(flux)이라는 진화된 모습으로 건축계에 많은 건물들이 나타났고, 지금도 그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OMA의 이 작품은 MVRDV의 VPRO가 끼친 영향에 가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OMA의 초기 작품(시애틀 도서관으로, OMA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이다.)에 담긴 순수한 건축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서 전시 공간 설계 강의를 15년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을 사례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학습적으로도 공간과 동선의 흐름이 잘 짜인 공간 시나리오대로 계획되었다. 4개로 나뉜 전시공간이 각 레벨별로 다른 모습을 갖고 변화감을 보여주며, 동선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전시공간의 전개가 이루어지는 중간에 남북으로 길게 선형 정원을 지나가게 하여 공간의 전환을 느끼게 했고, 순환 동선으로 반추를 느낄 수도 있었으며, 절정 공간도 잘 계획되었다. 대부분 아키텍트들의 초기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순수함과 정성, 디테일, 그리고 열정까지 충분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11. Depot Boijmans Van Beuningen
by MVRDV 2021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수장고(Depot Boijmans Van Beuningen)는 완공될 때 개방형 수장고 미술관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특이한 외관으로 건축사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었던 작품이었다. 기대를 갖고 들어간 미술관 내부는 전체적으로 좀 답답한 느낌이었다. 중앙에 5개 층을 관통하는 아트리움 겸 동선 공간은 폭이 넓지 않은 데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중간에도 전시물들이 있어 전시와 이동을 감당하기에는 붐비고 좁은 공간이었다. 6층 지붕의 옥상 정원은 로테르담의 전망을 잘 보여주고 있었으며, 식재의 초록이 거울 면에 반사된 하늘의 푸른색과 함께 싱그러운 느낌을 주었다. 커다란 보울(Bowl)같은 형태와 거울 판넬 마감으로 공원 밖 멀리 로테르담의 스카이라인을 담게 하는 파사드에 대한 참신한 시도가 좋았다. 수장고에서 나와 있는 작품 외에도 수장고 안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따로 신청하여, 방호복을 입고 도슨트(dosent)를 따라 움직이면서 수장고 안으로 들어가 관람하는 무리들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다녀본 대형 일반 미술관들은 전시실을 순환하는 동선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이 미술관은 작은 규모가 아님에도 전시실을 순환하는 동선이 깊고 높은 아트리움 공간에서 수직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공동주거 작품인 밸리(Valley)와 로테르담의 이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심 속 건축물에 초록을 담으려는 MVRDV의 건축적 시도가 돋보였다는 것이었다.
12. The Hague City Hall & Central Library
by Richard Meier 1994
이후 몇 권이 더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5권까지 리차드 마이어의 책을 자주 들춰보던 시기에 이 작품(헤이그 시청 & 중앙도서관)을 접하게 되었고, 백색 아키텍트(White Architect)의 전성기 느낌이 강하게 났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바르셀로나 건축기행에서 들렀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은 중세도시의 맥락 속에 조그만 광장과 함께 나타난 적당한 규모의 하얀색 현대 건축물이 전해주는 감동이 있었는데, 같은 외관의 하얀색인 이 작품은 그러지 못했다. 앞서 다녀온 암스테르담의 고래(The Whale) 작품에 대해, 공동주택이 고래 같아 보이는 매스를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라며 이 나라의 발랄하고 개방된 정서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좀 결이 다른 맥락으로 리차드 마이어의 이 작품이 ‘하얀 고래’ 같았다. 10층이 넘는 높이로 하얀 그리드 벽면이 200여 미터 이어지는데, 헤이그역(Den Haag Station) 방향에서는 하얀 고래의 꼬리부터 그 200여 미터를 시작하게 된다. 박제된 하얀 고래의 외피를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드디어 하얀 고래의 입이 나온다. 리차드 마이어가 진입부에서 늘 하는 전형적인 제스처를 따라 그 입으로 들어가 하얀 고래의 뱃속을 들어가 보니 고래의 하얀 속살이 자연광이 넘치는 내부 공간에서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커다란 천창의 온실 효과로 공간의 용적은 크지만 환기가 잘 안되는 내부 공간은 덥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13. Delft City Hall & Train Station
by Mecanoo 2018
델프트를 방문하려는 목적은 다음에 소개할 작품인 델프트 공대도서관(Library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는데, 사전 조사를 하면서 이 작품도 델프트 공대도서관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회사 ‘Mecanoo’의 작품임을 알게 되어 둘러보게 되었다. 델프트 역(Delft Station)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청명한 날씨 탓인지 델프트라는 조그만 도시의 첫인상은 무척 깨끗하고 밝은 느낌이었다. 오후에 가기로 예정된 헤이그(Den Haag)에서 보게 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도시다운 느낌을 주었다. 그런 도시의 맥락에 잘 스며들며 세워진 델프트 역은 방문객들을 도시와 잘 연결해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철도 역사와 시청이라는 공공성 높은 두 프로그램을 단일 건물 안에 배치시키고자 의도한 정책적 아이디어도 훌륭했다. 델프트의 옛 지도가 파란색으로 프린팅된 천장, 델프트 블루(Delft blue) 모자이크 타일로 마감된 기둥 사이로 흐르는 동선이 마치 가우디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델프트에서 맞는 상쾌한 아침, 청명한 날씨, 그리고 델프트 블루(Delft Blue)보다 파란 하늘에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14. Library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
by Mecanoo 1998
델프트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델프트 공대 정거장에 도착하니 작품의 상부 고깔 부분이 길을 인도하여 이 작품, 델프트 공대 도서관으로 향하게 했다. 가까이 접근하면 그 아래로 나지막한 동산의 경사진 잔디마당이 있는데, 건물로 인지하고 보기 전에는 지면과 하나가 되는 마운딩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아이콘처럼 새겨져있는 작품이기에 네덜란드에 오기 바로 전 제출했던 설계공모에서 잔디로 덮인 경사마당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친근한 작품이다.
마치 지하 고분인 경주 천마총의 입구를 들어가는 느낌으로 입구를 통과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천마총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너무도 잘 알려진 작품으로 이미지로 접했던 예상된 공간의 느낌은 있었지만, 실제로 와서 보니 자연광으로 충만한 밝고 개방된 공간이 훌륭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자칫 차가운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려는 노력들을 나무바닥, 천정, 계단에서 볼 수 있었고, 4층 높이의 책장에 원색 표지색들이 배경의 파란색과 어울려 상쾌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고깔(Cone) 내부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최상층 공간인 콘 스카이(Cone Sky)까지 올라가 보았다. 올라갈수록 동선이 줄어들어 면학 분위기가 저절로 조성되는 효과까지 보였다. 위에서 보니 콘 하부 중앙 바닥에 카우치가 보였다. 내려와서 그곳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며 잠시 여유를 갖고 지나온 공간을 다시 느껴보았다. 음료수를 하나 사서 나와 경사진 잔디마당에서 중간중간 햇볕을 즐기며 쉬고 있는 학생들을 지나 잔디마당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등에 느껴지는 따뜻한 햇살에 바로 누워 오수를 즐기고픈 마음이 들었다. 잠깐이었지만 친근한 마음마저 들 정도로 매력 넘치는 공간이었다.
글·사진. 민윤기 Min, Yoonki (주)건축사사무소 신도시이십일
민윤기 건축사 · (주)건축사사무소 신도시이십일
1989년부터 현재까지 (주)건축사사무소 신도시이십일 대표로 설계 작업을 하고 있으며,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25년 넘게 학생들에게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sds21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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