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건축주 2024.4

2024. 4. 30. 09:4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My first client

 

 

 

 

 

나의 첫 번째 건축주는 대학에서 함께 건축을 공부한 동기였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설계스튜디오를 함께 들었던 친구는, 졸업 후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공간을 콘텐츠로 거래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친구 둘과 함께 독립해 관련 회사를 차렸다. 그 무렵은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가 한국에 진출하고, 공유 오피스 등 새로운 공간 비즈니스가 곳곳에서 태동하던 시기였다. 친구는 서울 곳곳에서 파티룸 대관을 메인 비즈니스로 운영하던 중, 흩어진 공간을 한 데 모아 운영 효율을 올리고자 했다. 그렇게 찾은 통임대 건물의 위치는 이태원. 친구는 “예전부터 공간을 너한테 맡겨보고 싶었어”라며, 졸업한 지 5년 만에 문득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나는 4년간의 실무수련을 마치고 한량처럼 동네를 거닐던 이태원 주민이었다. 따라서 예전부터 나를 점찍어뒀다는 건축주 친구의 말을 듣고 오히려 “공사를 직접 해 보고 싶은데, 내가 해도 돼?” 이야기하고, “ok” 사인을 받았다. 2018년 1월 1일. 4개월의 한량 시절을 마치고, ‘ccrcc 디자인워크숍’이라는 뭔지 모를 이름 하나를 지어 명함을 파고 이메일 창구를 개설했다. 명함은 견적을 보러 오는 온갖 공정의 사장님들에게 내밀어야 했고, 이메일 주소는 샵드로잉이 오가는 일부 공정과 규모 있는 자재상의 발주내역서 제출처로 필요했다. 

2018년 1월 14일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흘 뒤 현장 답사, 그리고 열흘 뒤 철거를 시작으로 10주간의 공사가 시작됐다. 5주 안에 공사를 끝내고, 기운찬 3월에 매장을 오픈해 벚꽃 피는 4~5월 공간이 손님으로 들끓는 그림을 그렸던 나의 첫 번째 건축주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 생각보다 열악한 건물 컨디션에 생각보다 부족한 나의 능력이 이유였다. 매일 새벽어둠을 뚫고 현장으로 걸었고, 매일 밤 침대에서 쪽도면을 그리다 잠들었지만, 현장의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친구라는 굴레에 갇힌 건축주 3인방은 현장 반장이자 잡부가 되어 청소부터 곰방, 스테인칠, 현장소장인 내 비위 맞추기까지 많은 고생을 사서 해 주었다. 벌써 5년도 더 됐건만,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한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짧게 기록해둔다. 
용산구청을 바라보는, 폭 5미터에 깊이 15미터의 남북으로 긴 4개 층 총 약 330제곱미터(100평)의 근생 주택. 건물은 좁고 긴 입면에, 전면 보행로에서 지하 1층과 지상 1층으로 갈라지는 계단이 있어 마치 뉴욕 맨해튼의 주거지역 건물 입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기존 임차인은 지층과 1층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폐업한 상태였고, 2~3층의 3가구는 성형 투어를 오는 외국인용 단기 임대 숙소로 운영 중이었다. 건축주는 지층과 2~3층 실들을 개별 대관 공간으로 바꾸고, 1층엔 카페를 직접 운영하여 로비 기능을 겸하도록 건물 전체의 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건물주와 협의를 통해 한 달의 렌트프리 기간과 5년간의 장기임대계약을 얻어냈는데, 돌이켜보면 건물주 또한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건물 상태를 건축 전공자인 임차인(건축주)에게 맡겨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물과 불과 흙의 시간이었다. 곳곳에서 물이 터졌고, 뿌연 시멘트 먼지가 가득했다. 공사 막바지인 3월 19일엔 의문의 화재도 발생했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건축주들은 점점 현장 잡부의 몰골이 되어갔다. 작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에 60개소 이상의 거래처가 생겼고, 40명 이상의 작업자가 오갔다. 인터넷에서 팀을 수배하고 현장 미팅을 진행해 결국 제일 저렴한 팀과 공사를 진행했다. 이전 사무소에서 알게 모르게 쌓인 작업자 인맥은 모두 비싼 인맥이었다.

현장소장과 건축사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많은 고민들도 ‘경제적인 이유’로 빠르게 정리되었다. 당시엔 아쉬움도 컸지만, 지나고 보니 결과물보다 과정에서 배움이 많았던 순간이었다. 건축사, 즉 디자이너로서 큰 생각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했고, 현장소장으로선 다양한 재료의 접합과 건물의 뼈대를 훔치는 것에 만족했다. 고백하자면 종종 즐거웠다. 결이 고운 합판을 고르고, 원하는 스테인 색상을 현장에서 맞춰가며 덧입힐 때, 와이어를 사이에 품은 유리블록이 한 줄씩 쌓여갈 때, 수십 번 그린 가구도면 속 가구가 눈앞에서 조립되는 것을 볼 때, 묵은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건축주 또한 건축을 공부한지라, 즐거움을 나누기에 충분한 상대가 되어주었다. 

즐거운 순간도 아쉬운 순간도 건축주 3인방이 매일같이 현장에서 함께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각종 공정에 건축주들이 직접 투입되었는데, 그중 벽돌 곰방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파렛트에 쌓인 벽돌을 손으로 집어 등지게로 차곡차곡 옮기고, 서로의 등에 안전히 올려준다. 그리고 평소 가볍게 오르내리던 계단을 한 칸 한 칸 무겁게 내딛는다. 동화 속 아기돼지 삼형제가 집을 짓듯, 손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는 일이 모여 공간이 되고 건축이 되는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게 됐다. 

이후로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10건 남짓 수행해왔다. 사연도 나이도 제각각인 건물들이지만, 모두 마찬가지로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리며 현장이 시작된다. 2018년 이후로는 벽돌을 직접 나르는 건축주의 애착 혹은 간절함을 볼 순 없었는데, 당연하고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울 때에는 벽돌을 들었다 놨다 무게를 가늠해 본다. 또박또박 정직하게 흐르는 건축의 시간과, 차곡차곡 정직하게 쌓이는 건축의 무게가 그때에 가장 진하게 새겨졌다. 의뢰인이 아닌 동료로 함께한 건축주 덕분이다. 


2018년 4월 오픈한 이태원의 카페 무진장은 여전히 성업 중이며, 공간 운영 외적인 부분으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 친구와의 교류는 나에게도 영감이 되어, 어느새 나도 친구들과 작은 카페와 책방을 운영하며 이 일, 저 일을 궁리하고 있다. 여전히 각자의 궁리를 주기적으로 나누며 5년 전 일을 어제처럼 회고한다. 천천히 쌓여가는 친구와의 시간을 재료 삼아, 함께 공간을 만드는 날이 조만간 다시 오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 박우린 Park, Woorin (주)양지 건축사사무소

 

 

박우린 건축사 · (주)양지 건축사사무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디아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20년 쿠쿠루쿠쿠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고, 2022년부터 (주)양지 도시연구소와 함께 (주)양지 건축사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다. 건축과 별개로 마을호텔(주) 활동을 통해 로컬의 공간과 프로그램에 대한 궁리를 이어가고 있다. 

wr.park@maeulhot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