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현대건축기행 2024.4

2024. 4. 30. 09:2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s Guide to Amsterdam

 

 

 

 

1. Valley
by MVRDV 2022

 

암스테르담 건축기행을 준비하던 2022년 상반기에 이 작품은 아직 공사 중이었으나, 기행을 가기 전 준공이 되어 다녀올 수 있었다. 아키텍트인 위니 마스(Winy Mass)에 의하면 연면적 75,000제곱미터에 103미터 높이의 주상복합 건물이 나무가 심어진 발코니, 베이윈도우, 엇갈린 돌 테라스의 조경으로 남부(Zuidas) 지역에 녹색 환경을 제공하려 했고 벨리(Valley)라는 이름도 3개의 녹색 타워 사이 조각된 보이드로부터 따온 것으로, 지상 1층에서 5층까지 공공 계단을 통해 벨리를 느끼게 하려 했으며 녹지가 부족한 이 지역에 밀도 높게 식수된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로 친근하고 인간적이며 오아시스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아키텍트의 의도대로 조경이 잘 조성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쉬운 대로 일반인 접근이 가능한 벨리의 5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으로 올라가 보았다. 제법 높은 층고의 5개 층을 계단이라는 동선으로 올라 다니는 일이 그리 반갑지는 못했다. 조경이 잘 조성된 녹색 계곡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제한된 건장한 사람들만 이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 젊은 청년들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상부로 올라가며 곳곳에 조경을 했으나 부족했고, 5층 상부 옥상정원에는 수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올라오는 중이나 옥상에 벤치나 그늘이 없는 게 아쉬웠다. 거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해치는 듯도 했으나, 이런 공공성을 제공하려는 아키텍트의 아이디어도 너무 신선했고, 이를 실현되게 한 주거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택배 차량도 못 들어오게 하는 우리나라의 주거문화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Silodam
by MVRDV 2003 

 

이 작품은 ‘Silo(곡물 저장고, 건물)’+‘Dam(제방, 둑)’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방파제(dam) 끝에 위치해 있었다. 하천 조망을 가진 이 공동주거를 강에서 바라보고 싶어 암스테르담을 동서로 흐르는 IJ강을 건너는 배를 타고 보았다. 암스테르담의 서측 지역은 예전에는 개발 취약지여서 21세기를 맞아 광범위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도시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계획 중 하나로서 상부에 사일로(silo)가 있던 예전의 댐(dam) 위로 오래된 사일로 건물을 재생하여 중산층 주거 프로그램을 계획했으며, 이를 위해 댐으로 둘러싸인 썬큰 주차장, 유류 탱크를 보호하기 위한 물속 차단벽, 깊은 파일 기초와 고가의 도크 구조물 등 많은 비용을 들여 완성했다. 마침 1990년대 말 네덜란드 부동산 붐으로 인해 제법 많은 수익을 냈다고 한다. 
20여 년 전 실로담(Silodam)을 지면에서 처음 접했을 당시 입면이 장난스럽기도 하고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임시 건물인 것 같기도 하여 부정적인 인상이 강하게 들었던 작품이었는데, 다시 보니 네덜란드의 사무소 MVRDV는 앞서 소개한 작품인 벨리(Valley)와 이 작품 모두에서 실험적인 사고와 남다른 상상력 속에서 동시대의 다른 아키텍트들을 앞서가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Nemo Science Museum
by Renzo Piano 1997

 

런던 건축기행 당시 더 샤드(The Shard)와 보스톤 건축기행 당시의 하버드 아트 뮤지엄(Havard Art Museum),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Isabella Stewart Gardener Museum Regeneration)을 둘러보고 아직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탈리아 아키텍트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세계적 명성을 충분히 느꼈는데, 그의 한창때(60세 즈음) 작품인 니모 과학박물관(Nemo Science Museum)을 보는 감회는 새로웠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선박을 은유한 형상과 청동산화동판 외장마감이 돋보이는 외관이다. 동쪽 암스테르담 중앙역 광장 쪽에서 진입하려면 조그만 아치 보행교를 건너야 하고, 남쪽 IJ 터널 쪽에서 진입하려면 IJ 터널과 평행하게 나 있는 편안한 계단식 보도를 통해 공공 공간으로 제공된 루프 테라스로 접근할 수 있다. 암스테르담 도심 남과 북의 유일한 차량 소통길인 IJ 터널 위에 그대로 올려진 배치를 하고 있다. 선박의 뒷부분인 가장 낮은 선미 쪽으로 진입하면 5개 층의 수직 오픈 공간이 매 층 선수 쪽으로 조금씩 밀려가며 형성돼 있어서 진입 시 모든 내부 공간의 인지성을 상당히 높게 만들어 놓았다. 그 수직 오픈 공간에는 당연히 수직 동선인 계단이 놓여 있어 층간 이동 시 모든 층에 있는 재미있는 과학 기구 놀이들을 둘러볼 수 있다. 휴일 오후여서인지 뮤지엄 내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로 붐비고 있어 이곳 부모들의 아이들 과학 교육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내부 공간을 모두 둘러보고 레스토랑과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파노라마 루프 테라스 공간이 있는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암스테르담의 역사 중심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훌륭했고 옥외 전시공간, 분수, 조경 등이 잘 어우러져 가족들과 함께 휴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4. ARCAM 
by Rene van Zuuk Architekten 2003

 

니모 과학 박물관(Nemo Science Museum) 옥상 테라스 정원에서 이 작품(ARCAM, 아르캄)이 내려다 보였으며, 니모 과학 박물관을 설계한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작은 정자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예전 정자의 기초를 재사용하는 문제, 해안가로 열리고 거리로는 닫힌 파사드를 유지해야 하고 일체형 파빌리온이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요구사항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온 형태라고 하기에는 훌륭한 형태적 완결성과 그에 맞춘 내부 공간의 구성까지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3개 층을 관통하는 동선의 흐름까지 좀 더 명료하게 움직이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귀엽고 앙증맞기까지 한 작품이다.

 

 

 


5. Muziekgebouw 
by 3XN 2005

 

네덜란드어로 된 작품명 ‘Muziekgebouw(무지크헤바우)’가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니 muziek는 ‘music’이고, gebouw는 ‘building’이었다. 조사한 내용을 보면 현대음악(주로 힙합)의 ‘Ijsbreker’와 재즈의 ‘BIMhuis’라는 두 음악 기관을 위한 공간으로 1997년 설계공모로 ‘3XN’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커다란 하나의 지붕을 둔 이유는 광범위한 고객과 방문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복합적이고 많은 기능을 담아 하나의 지붕 아래 다양한 개체들의 앙상블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또 대지의 훌륭한 위치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투명성을 살리려 했다고 한다. 
니모 과학 박물관(Nemo Science Museum)을 나와 북쪽으로 머지않은 거리에 무지크헤바우가 보여 걸어가 보니, 남측 전면에 트램 정거장이 마련되어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은 좋을 것 같았다. 주 접근은 상부 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보행교로 이루어지며, 투명한 정면으로 암스테르담 항구가 멋지게 펼쳐지는 대형 계단을 통해 부두와 데크를 포함한 로비가 있는 주 출입구로 내려가게 된다. 하부 로비에는 훌륭한 전망을 갖고 있는 카페테리아와 테라스에 자연광이 들어오고, 상부로 지붕까지 개방된 수직 오픈 공간에는 3개 층의 발코니가 서로 대응하며 매달려 있다. 아키텍트의 모더니스트적 특성으로 미니멀하면서도 직교 좌표 내에서 이루어진 단순한 공간과 볼륨의 구성이 보였다. 형태와 볼륨, 공간의 구성은 간단명료하지만 내부 공간에선 풍성함과 공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솔리드매스보다 좀 더 큰 투명 매스가 동선 공간을 이루며 메인 하부 로비와 상부 로비를 이어주고 있다. 상부 로비는 일부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내 외부 마감은 거친 나무 바닥, 노출 콘크리트 벽, 유리 파사드 등이 단순한 디테일로 정리되어 있었다.

 

 

 


6. Eye Film Museum 
by Delugan Meissi 2012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거대한 캐노피를 제외하고 IJ강변에서 두 개의 랜드마크를 꼽자면 20세기 최고의 두 추상 화가인 피에트 몬드리안과 바실리 칸딘스키처럼 대조적인 모습으로 서있는 무지크헤바우(Muziekgebouw)와 이 작품(Eye Film Museum)일 것이다. 
무지크헤바우는 몬드리안의 수직과 수평을 은유한 듯, 이 작품은 칸딘스키의 역동적인 사선을 표현한 듯 그 외관을 자랑하며 IJ강변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관광객이나 일반인에게는 무지크헤바우보다는 이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 풍경을 제공할 것 같다. 
영화관이 안에 들어있는, 거대하고 다이내믹한 캔틸레버 솔리드매스로 압축된 진입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면, 연속해서 압축된 로비 공간에 안내, 티켓, 뮤지엄 숍(museum shop) 등이 마련되어 있다. IJ강이 보이는 빛을 따라가면 팽창된 공간 중앙의 아트리움과 강변에 마련된 테라스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앙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어 미술관을 이용하는 관람객보다 전망을 즐기며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여 IJ강변의 핫 스폿으로 느껴졌다.

 

 

 


7. Sluishuis 
by BIG and Barcode Achitects 2023

 

벨리(Valley)보다 더 최근에 완공되어서 자료조사를 시작한 2022년에는 준공이 안 된 상태였던지라 과연 계획대로 잘 완공될 것인가 궁금했었다. ‘Sluishuis(슬루이슈이[sluce house;수문 집])’란 이름에서처럼 수문의 형상을 형태적으로 갖추면서 공동주택이 갖기 위한 구조적 문제와 세대 구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실제 보니 중력을 거스르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계획안 그대로 완공되었다. 6개의 인공섬으로 이루어진 에이뷔르흐(IJburg) 지역은 선형으로 길게 동쪽으로 뻗어있다. 이 대지는 그 초입에 있는 인공섬 위에 있으며 IJ호수를 마주하는 컨텍스트를 갖고 있어 계획을 하며 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호수 전망을 갖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면적 약 46,000제곱미터로서 설계공모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물과 육지로 두 코너를 모따기 한 ‘BIG and Barcode’안이 당선되었다. BIG and Barcode는 ‘코펜하겐8 House’와 지난 뉴욕 기행 시 허드슨 강 건너에서 보았던 ‘뉴욕 VIA57 West Courtscraper’에서도 형태에 사선을 적용한 공동주택을 설계해 건축계에 이목을 끈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사선은 전에 설계한 두 프로젝트의 사선과 결이 다른 육면체의 모 따기 사선으로 게이트를 만든 형태이다. 설계한 아키텍트들의 글을 읽어보았는데, 그들도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실현된 데 대해 상기된 느낌이 보였다. 건물 안 중정의 항구인 안뜰은 청소년들의 놀이터로 많은 세대 구성원들이 나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8. Rijksmuseum Renovation
by Cruz y Ortiz 2000

 

남쪽의 커다란 광장인 미술관 광장(뮤지엄 플레인, museumplein)으로 향하는 보행축을 형성하고 북측의 게이트 역할을 하며 광장을 건물의 남쪽 마당으로 여기게 하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인 이 작품은 19세기에 지어졌다. 이 작품을 사전 조사하며 2019년에 다녀온 런던 건축기행에서의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작품인 런던 대영박물관(Great Court at the British Museum Renovation)이 생각났다. 대영박물관의 옛 건물도 19세기에 지어졌고, 중정의 상부에 유리 캐노피를 설치하여 박물관의 로비, 라운지 및 기타 편의시설을 배치한 공간 구조 디자인이 마당을 증축해 만든 한옥 설렁탕집 공간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이 작품은 대영박물관 증축 프로젝트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아까 이 건물이 광장의 북측 게이트 역할을 한다고 했듯이, 건물 전후면으로 보행축을 통과시킨 3개의 아치와 볼트 공간이 이룬 통로가 ‘미음(ㅁ)’자 중정을 둘로 나눠 ‘디귿(ㄷ)’자 중정 두 개로 된 공간 구조이다. 이런 경우 보행통로와 같은 레벨로 하여 유리 캐노피를 씌우고 내부 공간인 뮤지엄 로비를 만들면 광장과 연계된 도시의 보행축을 뮤지엄 로비로 자르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아키텍트가 낸 아이디어가 ‘디귿(ㄷ)’자 두 개로 된 중정을 도시의 보행축 레벨보다 한 레벨 낮춘 지하 1층에 뮤지엄 로비, 라운지와 기타 편의 공간을 두면서 보행축 하부 레벨로 두 공간이 서로 소통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로 설계도 잘 진행되었고, 기존 건물을 잘 보존하며 중정 지하를 굴토하는 시공도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세비야(Seville)의 스페인 아키텍트 회사 ‘Cruz y Ortiz’가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레노베이션(Rijksmuseum Renovation) 설계 공모에 당선됐다. 최소한의 변경으로 기존 박물관의 설계자인 피에르 카이퍼스(Pierre Cuypers)의 안을 살려 기존과 변경 부분의 통합된 설계를 이뤄냈다. 아트리움에서 천창의 과다한 빛을 줄이고, 높은 천장고에 대한 관람객들의 공간적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거대한 샹들리에같이 천장에 매단 흰색의 직사각형 형태의 구조물이 논쟁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비교 대상인 노먼 포스터의 대영박물관(Great Court at the British Museum) 앞에 great라는 단어를 붙여 공간의 특성을 정의하며 공간을 체험하는 이를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하는 효과보다는 훨씬 친근하고 밝으며 인간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공간이었다. 
마침 여기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는 렘브란트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홀 끝 중앙에서 렘브란트의 <야경(night watch)> 복원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715년 시청에 전시할 때 크기가 안 맞는다고 일부 잘라낸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마치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자르던 프로크루스테스 이야기인 듯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9. Stedelijk Museum Amsterdam
by Benthem Crouwel Architects 2012

 

이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은 이번 기행에서 그 명성을 알게 된 ‘BNTMCRWL’의 재생 증축 작품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욕조(The bathtub)라는 별명처럼 시선을 끄는 강한 형태가 느껴진다. 형태뿐 아니라 하얀 색상과 플라스틱 같은 재질(섬유 강화 합성물)의 질감도 정말 커다란 욕조가 눈앞에 떠있는 듯하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은 대단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관으로서 기존 건물은 1895년 공공건축가인 A.W.Weismann이 설계했다고 한다. 새로운 미술관의 주출입구는 미술관 광장(museumplein)을 향한다. 새로운 입구 매스인 욕조 밑 살짝 들린 곳에 마련된 출입구를 통해 내부로 향했다. 하얀 욕조는 네 개의 다리로 떠 있어 공간의 개방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욕조 바닥의 곡선형, 하얀 색상의 천정과 기존 건물 사이에 마련된 선형 천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밝고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맞이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키텍트는 내부로 들어오면 새 건물에서 기존 건물로 진입하는 걸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고 언급했는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그 경계를 느끼며 전시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전시공간에 고흐, 몬드리안, 칸딘스키, 세잔, 말레비치, 샤갈, 피카소 등 19세기 이후 화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10. The Whale 
by De Architekten Cie. 2000

 

건축사는 자기 작품에 이름을 붙이길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건축사들은 그 이름에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이름을 붙이느라 애를 쓴다. 하지만 ‘Whale(고래)’, ‘Valley(계곡)’, ‘Sluishuis(수문집)’ 등… 이들의 천진한 감수성이 깃들여진 이름에 작품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정말 그랬다. 고래 같았다. 트램 정거장에 내려 다가가며 멀리서 본 느낌이 바로 그랬다. 산업 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변하고 있는 이스턴 도클란트(Eastern Dockland) 지역은 벨리(Valley)나 슬루이슈이(Sluishuis, 수문집)가 위치한 지역보다는 주거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임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러한 밀도 높은 공동주택이 계획된 것 같다. 주도로의 교차부에 들어 올린 코너 하부 필로티로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된다. 주 출입구와 수직 동선인 엘리베이터가 지면에 박힌 유리 매스로 계획되어 있다. 층 평면은 격층으로 같은 평면으로 하여 변화감 있는 파사드를 구성했으며, 외벽을 금속 패널로 마감하여 주거 건물로서 따뜻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11. Summertime 
by SeARCH 2016

 

도착 첫날 저녁에 본 벨리(Valley)의 원형이랄까? 절제되고 정연하게 정리된 픽셀 단위 세대 적층 볼륨 구성으로 준공도 벨리보다 6년 먼저였다. 이 작품이 위치한 암스테르담 남부 지역은 새로운 도심이 형성되고 있는 지역으로 도시 조직이 직교된 가로와 구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조지 거슈윈길(George Gershwin-laan[avenue])로 나뉜 두 개의 직사각형 블록에 배치되어 있다. 두 블록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데, 북쪽의 조금 큰 블록의 북측 도로는 구스타프 말러길(Gustav Mahler-laan)이다.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조지 거슈윈은 재즈 음악가이고 구스타프 말러는 클래식 작곡가라는 정도는 알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을 거리 이름으로 하는 발상에서 문화를 대하는 네덜란드인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거리 이름에 맞춰 건물 이름을 조지 거슈윈의 유명한 재즈곡인 ‘서머타임(Summertime)’이라고 붙인 아키텍트의 낭만 가득한 감수성에 ‘Whale(고래)’, ‘Valley(계곡)’, ‘Sluishuis(수문집)’에 이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면 음악적인 리듬감과 색의 다양함을 느낄 수 있는데, 조지 거슈윈 대로(George Gershwin avenue)에서 서머타임(Summertime)을 바라보는 느낌이 마치 그러했다. 초록으로 더욱 돋보이는 분홍과 노랑 난간에서 전하는 색의 다양함과 그리고 불규칙하게 적층, 픽셀화된 타워(pixelated tower)’에서 리듬감을 느낄 수 있었다.

 

 

 


12. WoZoCo 
by MVRDV 1997

 

이 작품(WoZoCo, 보조코)은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한창때 작품인 니모 과학박물관(NEMO Science Museum, 1997)과 함께, 현대건축이라고 하기에는 준공한 지 오래되어 건축 웹진인 <아키데일리(Archdaily.com)>에서도 ‘AD Classics’편에 소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각종 건축지에 소개될 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중력을 거스르며 구조적으로 매우 위험해 보이는 장스판의 캔틸레버였다. 자료를 준비하면서 26년의 세월이 경과한 건물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싶었던 건물 중 하나이다. 암스테르담의 중심부에서 A10 링로드(A10 ring road) 바깥 서쪽으로 제법 먼 암스테르담 뉴 웨스트(Amsterdam Nieuw-West) 지역에 위치해 있다. 조용한 변두리 주택가 트램 정거장에서 내려 새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아침 산책을 하며 1킬로미터 남짓한곳에 있는 작품의 남쪽으로 다가갔다. 형형색색의 발코니 난간과 함께 정겨운 입면은 세월을 조금 머금었지만, 지면에 소개된 모습 그대로였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네덜란드는 인구의 증가로 주거공간이 많이 요구되었으며, 노년층을 위한 주거도 필요했다고 한다. 100세대 규모의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공동 주거가 필요했으나 그중 87세대만 일조 규정에 맞는 상태였는데, 북측 면에 캔틸레버를 내어 나머지 세대를 채우는 아이디어로 추가 비용을 제법 들여 세대를 늘렸다고 한다. 남측엔 북측 입면의 규모를 줄인 버전처럼 발코니와 창문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요즘 네덜란드에 사례가 많은, 젊은 아키텍트들이 낸 신선하고 발전적인 아이디어,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인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편복도 평면으로 북측에는 복도가 층별로 이어져 있었으며, 전면을 유리로 마감했다. 심하게 돌출된 캔틸레버가 더욱 극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유리 파사드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노년층을 위한 공동 주거여서인지 복도에는 보조 보행기, 휠체어 등이 놓여있는 세대가 제법 있었다. 불현듯 눈에 들어온, 덩그러니 북측 마당에 주차된 구형 벤츠. 그리고 30년이 다 되어가는 이 건물과 주거하고 있는 노인분들이 오버랩 되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다.

 

 

 

 


13. Stadgenoot Pavillion 
by Steven Holl 2000

 

건축기행 때마다 휴무일 등의 사전 정보를 잘 숙지하지 못해 두 번씩 찾아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엔 스티븐 홀(Steven Holl)의 이 작품이 그랬다. 런던 건축기행 당시 같은 아키텍트의 작품인 메기스 센터 바츠(Maggie’s Center Barts)에서도 느꼈듯이, 큰 고민 없이 늘 유사한 디자인을 자신의 시그니처로 봐달라고 애쓰는 유명 아키텍트들과 달리 스티븐 홀은 작품마다 그 작품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설계하는 아키텍트이다. 디자인에 대한 은유의 깊이가 남달라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암스테르담에 오면 이 작품을 꼭 보고 싶었다.
친절한 관리인에게 내 소개를 하고 스티븐 홀에 대한 칭찬도 좀 하며 양해를 구했더니,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사무공간을 제외한 공용 공간인 파빌리온은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단일공간인 이곳은 주로 직원 식당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기존 건물 접속부로 진입하면 상부는 연결통로로 되어있어 압축된 공간을 느끼며 들어서게 된다. 압축된 그 공간을 지나면 운하변 산책로로 연결되는 외부 출입구가 우측으로 나 있다. 팽창된 2개 층 층고의 단일공간 전면은 절제된 창호들이 빛과 전망을 제공한다. 운하에 면한 파빌리온의 대지가 가진 주변 맥락을 고려하면 운하 쪽으로 전망을 더 열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융합을 이뤄냈다는 내·외부는 모두 타공 재료로 마감되었는데, 내부 공간의 인식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키텍트가 이야기하는 미국의 작곡가 모튼 펠드먼(Morton Feldman)의 몽환적인 음악과 같은 분위기는 밤이 되어야 좀 더 잘 느낄 것 같았고, 크로매틱(Chromatic)한 공간적 분위기는 외피의 투명 창호를 내부에서는 타공판으로 마감한 개구부에서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운하변 산책로로 이어지는 외부 출입구와 그 공간은 잘 마련되었다. 20여 년 전 산화 동판을 제조하는 기술이 부족했는지 산화된 녹이 너무 벗겨진 외관은 세월을 품은 모습이 아니라 오래되고 낡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14. HAUT Amsterdam 
by Arup 2022

 

좀 일찍 현지인들 출근보다 이른 시간에 나섰는데 어제 내린 비로 파란 하늘에 화창한 날씨까지. 상쾌한 아침을 맞으며 이 작품(HAUT 아파트)으로 향했다. 대지는 암스텔(Amstel)강과 s111 도로가 만나는 삼각형 형태의 대지였고, 주변은 중산층 이상의 주거지로 가까운 곳에 보트 선착장까지 있었다. 도로변의 도심 주거를 이루는 주상복합의 21층 건물로서 아키텍트가 세계적인 구조 전문가인 에이럽(Arup)인 데서 눈치챘겠지만, 네덜란드에서 가장 높은 목구조 건물이다.
21층 높이의 목구조 건물에 대한 경외심 이전에, 암스테르담에서 며칠 동안 다녀본 공동주택에서 느낀 공통적인 경이로움이 있다. 최대한의 세대수를 수용하기 위한 획일적인 배치계획, 평면 혹은 단위 세대 계획으로 쌓아 올린 공장 생산(자이 공장, 래미안 공장, 힐스테이트 공장 등), 입단면 계획이 아닌 대지가 놓인 지역, 주변 상황과 전체 맥락을 고려한 배치 및 평면 계획과 각각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입단면 계획들에 많이 감동했다. 건축사사무소를 수십 년 운영하면서 특히 프로젝트의 수익성에 많이 좌우하여 개성 있는 설계가 불가능한 공동주택 설계를 멀리해 조금이라도 그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조차 못 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글·사진. 민윤기 Min, Yoonki (주)건축사사무소 신도시이십일

 

 

민윤기 건축사 · (주)건축사사무소 신도시이십일

 

1989년부터 현재까지 (주)건축사사무소 신도시이십일 대표로 설계 작업을 하고 있으며, 전주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25년 넘게 학생들에게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sds21a@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