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풍경작용, 여백 그리고 인시튜(IN SITU) 미학 2024.2

2024. 3. 8. 10: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_Scenery’s effect, Empty space & In situ work

 

 

 

 

자경(自景)
‘풍경을 담은 집, 풍경 속에 담긴 집’, 이 주택의 이름을 듣고 주택을 마주하는 순간 풍경작용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발동한다. 과연 어떠한 풍경작용이 숨어있기에 이러한 시적이고 정겨운 이름을 지었을까? ‘자경(自景)’이라는 풍경작용이 단번에 머릿속에 떠오른다. 건축에서 풍경과의 관계는 도시가 아닌 전원 속의 집에서 더욱 중요하다.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풍경작용은 집을 거주하기에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한옥은 풍경과의 관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한옥의 공간 구조는 주변의 풍경을 끌어들여 함께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 이 남양주 마석우리 주택 역시 그렇다. 창을 액자처럼 활용해 풍경을 차용하는 차경(借景), 풍경을 무대처럼 꾸미는 장경(場景), 그리고 집 스스로가 풍경이 되는 자경(自景). 이 세 가지의 풍경작용은 한옥에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풍경작용이다. 이곳은 그중에서 무엇보다 ‘자경’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해 흥미롭게 구현하고 있기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진입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게 되는 전면 테라스는 ‘집안에 앉아 내 집을 바라본다’라는 자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주요한 건축적 장치이다. 마치 집 스스로 풍경이 되게 하고, 이를 바라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외부 테라스는 내부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외부의 풍경으로 내부 전체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 내부공간을 외부로 확장해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허물면서 외·내부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건축 요소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본다’라는 자아 성찰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한옥에서의 ‘자경’ 역시 이 주택에서 즐길 수 있는 가치 중 하나이다. 전면 테라스가 보여주고 있는 소박함은 주택 내부에서도 그대로 연출된다. 거실, 주방, 침실과 다락방 어디에도 과함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다. 최소한의 필요만이 존재한다. 집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공간이다. 건물주인 젊은 신혼부부와 건축사의 공간 철학을 짐작할 수 있는 ‘자경’이 깃든 집이다.

 

 


여백

“단순함과 간소함이란 그림으로 치면 수묵화의 경지이다. 먹으로 그린 수묵화, 그 먹은 한 가지 빛이 아니다. 그 속엔 모든 빛이 다 갖춰져 있다. 또 다른 명상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그것은 침묵의 세계이다. 또한 텅 빈 공의 세계이다. 텅 빈 충만의 경지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이 이 단순과 간소에 있다... 텅 비워야 그 안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어야 새것이 들어찬다.” - 법정 스님

 

이 주택은 조선시대 문인화나 수묵화처럼 여백의 미가 잘 드러난다. 전체가 비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풍경을 담은 집’이라는 이름처럼 공간의 주인이 풍경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 주택에서의 여백은 그저 비워져 있는 여백이 아니다. 풍경으로 가득 차는 여백이다. 하늘에서 보면 진입마당과 전면 테라스가 여백이 되고, 진입부에서 보면 흰색의 박스 볼륨과 주변 자연이 박공 공간의 여백이 되고, 거실 내부에서 보면 전면 창이 여백 역할을 하고, 옥상마당에서는 하늘이 여백이 된다. 때문에 집 전체 구조가 흥미로운 여백 옴니버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백미는 역시 전면 테라스이다. 콘크리트 무채색 질감의 테라스는 단순하고 간소하다. 그리고 투박하다. 수묵화의 질감을 투영하기도 하고 한옥의 대청마루의 공간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공간은 마치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스며들게 하는, 텅 비었으나 무언가로 가득 찬, 충만의 공간이다. 풍경이 주인이 되기도 하고, 내부공간이 확장되는 공간이기도 하며, 건물주의 생각과 마음을 가득 채우기도 하는 진화하는 여백의 공간이다. 

 

 


인시튜(IN SITU) 미학
‘in situ’란 ‘제자리에 혹은 본래의 장소에(in its place)’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로, 세계적인 프랑스 설치미술가 다니엘 뷔랭(Daniel Buren)이 본인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인시튜의 개념은 작품이 놓이는 장소는 작품의 형태 및 존재 양상을 결정짓는 필수불가결한 지지체(support) 겸 작품 자체가 된다는, 즉 ‘장소는 작품을 낳고, 그 작품은 다시 장소를 낳는다’, ‘장소가 곧 작품이다’라는 등식 관계를 보여주는 개념이다. 건축 역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과 함께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건축은 언제나 이미 거기에 있는 것(in situ)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미 거기에 있는 것들 사이에서의 관계와 상호작용, 간섭에 의해 하나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장소가 형성되며, 건축은 항상 이러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그 의미를 형태로 만들고, 그 건축에 의해 더욱 그 장소의 의미는 확대된다. 

미국의 철학자 수잔 K. 랭거(Susanne K. Langer)가 “건축은 장소의 특성을 시각화한다”라고 강조한 것처럼 건축은 장소와 땅의 내력, 의미, 특성,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풍경 속에 담긴 집’은 이러한 인시튜 개념이 잘 녹아있는 주택이다. 멀리서 내려다보면 마치 산속에 자리 잡은 암자나 오두막처럼 보이기를 원한 건축사의 의도를 단번에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주택은 주변 풍경 속에 녹아들 수 있는 풍경 인자로서 작용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장소에 존재해왔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땅과 지형과의 관계는 담장의 높이와 형태, 그리고 전면 테라스의 수평적 질감에서 더욱 빛이 난다. 노출콘크리트의 담장은 장소의 특성을 시각화하며, 무채색의 테라스는 장소의 터전을 이룬다. 간소하고 소박한 경사지붕과 필로티 공간은 암자나 오두막처럼, 또 풍경화 속의 자연 요소처럼 주변 장소와 일체가 되어 ‘숲속의 고요함’이라는 새로운 장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데칼코마니
주택의 외부와 내부의 관계는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 기법 중 하나인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킨다. 데칼코마니가 지니는 대칭적 속성이 아닌 반쪽으로 접힌 도화지를 펼쳤을 때 생성되는 다양성과 의외성의 매력이 이 주택에서 나타난다.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외부의 재료적 질감과 조형성이 마치 도화지에 접혀 펼쳐진 듯한 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흰색 외벽이 지니는 소박한 분위기, 처마에서 연출되는 자연적 재질감, 전면 테라스의 무채색 질감, 경사지붕이 만드는 원초적 형태 등 외부의 건축적 요소가 내부공간에도 투영되어 내·외부 관계를 전도시키고 있다.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을 넘나들다 보면 내부이지만 외부인 듯, 외부이지만 내부인 듯 유희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풍경을 담은 집, 풍경 속에 담긴 집’ 마석우리 주택의 가치는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풍경과 장소와의 내밀한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오랜 시간 작용이 필요하듯, 마석우리 주택은 아직 미완성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오래 기억될 것이다.

 

 

 

 

 

글. 성기문 Seong, Gimun 한국교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성기문 교수 · 한국교통대학교 건축학과 · 건축사

 

한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 우노건축, 이공건축, 삼정건축, DST건축에서 근무했다. 프랑스정부공인건축사와 대한민국 건축사를 취득했으며, MEPU도시풍경건축을 운영했다. 2004년부터 한국교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함허루’, ‘펼쳐지는 집’, ‘거제 art hall’, ‘용산소방서청사’, ‘화양동복합청사’, ‘자양1동청사’ 등이 있다.

gmseong@u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