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5. 09:27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편집국장 주
2018년 5월호부터 건축 담론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세달 째 걸음마 단계로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을 기대 합니다. 월간 건축사지가 이런 담론을 시작한 것은, 건축이 성찰의 결과물이고 창조의 산물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시작했습니다. 삶의 시장 경쟁에서 치열하게 앞으로 나가시는 건축사들에게 잠시나마 출발을 재조정하고 한국 건축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앞으로도 월간 건축사는 책임감과 소명을 가지고 지속적인 담론의 주제를 찾아 갈 것입니다.
591호 주제는 ‘한국 건축의 지방성’입니다.
한국이 물리적으로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과 식생의 군집이 달라져서 섬세한 차 이가 나타납니다. 이동이 부자연스러웠던 근대 이전은 이런 물리적 단절이 건축적 차이로 나타났습니 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우리 스스로 주도하지 못한 역사로 인해 선진국이나 중앙에 대한 맹목적 동경 이 존재했습니다. 그 결과 산업화된 건축과 도시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도 경제적 수익을 극대화하는 건 축이 판박이처럼 있어 지역에 대한 구분을 의미 없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지역의 사투리와 풍습의 차이처럼 분명히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번 호는 그런 미 세한 각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또는 그런 것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01 한국 현대건축에서 지방성
The Locality In Korean Modern Architecture
골짜기가 가르고, 강이 자르며, 지방이 생겼다. 시간이 묵혀 만든 전통은 한 가지 꽃만 피는 꽃밭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다 통하는 길인데, 줄곧 이 길을 가다 보면 지방이 나오는가? 여기에서 뜨는 해가 지는 저쪽에서의 해와 다른가. 바람이 섞이는 언덕이 있고 물이 섞이는 때가 있다. 불확실 하고 변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 건축은 그렇게 별자리같은 지리地理에 있다.
물론 지방성이 한국성에 희석되고, 한국성이 세계성에 물 타는 것은 우리들의 사실이다. 아마 지속 적으로 인성은 교반되고, 지문은 문들어지고, 너무 잦은 문화교차가 근친상간에 이를 즈음, 지방성 은 우리 어휘에서 고문古文으로 취급될지 모른다.
한동안 지방성인지 지역성이던지 한국성을 찾던 적이 있다. 이는 너무 거칠고 매크로한 시각이었 다. 한반도는 그렇게 협착하지 않고, 한국은 그렇게 간단한 질량이 아니다. 더 정교한 이해를 위해서 는 우선 더 나누어 보아야 한다. 결국 지방성의 총화가 한국성이겠지만, 먼저 개별적인 가치를 찾고, 다시 이것을 직조하여 볼 일이다.
지역성과 지방성
이번 원고 청탁에 ‘지역성’ 보다는 ‘지방성’을 강조해 달라는 당부가 붙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 각하니, 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양면성으로 있는 것 같다.
아마 지방성은 사회를 강조하고, 지역성은 문화에 기울어진 편견인가 싶다. 지方성은 모난 것이고 지域성은 넓이에 얹힌다. 로칼과 글로벌의 양가성兩價性으로 ‘글로컬’도 발명했다. 지방성 locality 와 지역성 ragionalism으로 구분하는 것 같다. 지방성은 보다 정치적이다. 봉건사회였다면, 중심과 변방, 위와 아래의 관계로도 보았다. 변방으로 ‘귀양’을 갔고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고도 했다. 현대 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로 맞서는 이해에서 종속적이지야 않겠지만 지배력은 작동한다. 지방색이라는 고유성은 텃세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성의 이해에서 진짜 문제는 역장力場의 지독한 편재이다. 주변에서 주류로 운동하는 노력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변두리가 남는다.
문화의 위상지리적 이해에서, 지방성은 통합하려는 힘과 본래 분자를 유지하려는 의지 사이의 관계 이다. 곧 문화 교차로서 잡종강세인가 아니면 폐색으로 근친 교접인가 선택이다. 문화는 섞어야 진 화한다는 엄연한 원리 앞에서 지방성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간단하다. 지방성이 생존하여야 교차도 생긴다. 모두 희석되고 난 다음, 자꾸 교반攪拌하여 잡탕이 되고 만 다음, 다시 말해 종의 의미가 사 라진 다음에 진화는 멈춘다.
그래도 아직 우리는 음식의 차이를 즐기고, 여전히 사투리方語의 매력을 안다. 동해 바람과 지리산 공기의 내음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남해의 남방성이 서해에는 없다.
지방은 한국과 또 달라야 한다
옥수수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옥수수가 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관념과 감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방의 정신과 삶 속에 남겨 놓은, 현현顯現의 것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현재적 동시대성으 로서 전통을 포함한다.
어떤 작가가 같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해도, 지방에 따라 개념이 달라진다. 어떤 국제적인 작가라도 지키고 섭생하여야 할 윤리적 개념이다. 그러니까 상당한 만큼 지방성은 건축사(architect) 만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많은 건축사(architect)가 땅을 강조하고 장소를 역설하지만, 그것은 지역적 ‘사실’이어야 한다. 중국 에서 극단적인 예(류자아군劉家琨, 류예유안鹿野苑 石刻 博物館, 청두成都, 2002)를 보았다. 어떤 지방에서 건축을 하려면 그 지역의 재료와 인력을 써야 한다. 인력은 그 지방의 기술을 뜻한다. 결국 척박하고 미숙한대로 그 건축의 수단을 통해 건축은 지방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 서 그것을 고급-저급의 관계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단히 다른 작품을 만든 성과이다.
한국성의 모색이 너무 매크로하거나 거친 생각이라면, 지방으로 가서 볼 일이다. 그리고 지방체의 교집합으로 한국이라는 모체를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 A ∩ 지역 B ≑ 한국체 집합
지방성, 그 몸과 혼
요즈음 한국의 현대적 지방성을 채집하러 다니고 있다. 자본주의가 모두를 희석해 버리고, 국제 바람이 지역성을 휘발해 버렸을지 모르지만,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 현대 건축에서 지역성을 찾아 나선다니까, 대체로 주변의 반응은 “잘해 보셔”이다. 잘 되면 좋 겠다는 뜻 보다도, 뭘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소모하느냐는 뜻으로 안다. 그래도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심증이 짙은 제주도에 가서 『제주체』(도서출판 디, 2014)를 썼다. 제주도에서 그럴듯한 지지를 얻었다고 지레 생각하니, 이를 전국적 지방성으로 확대 해볼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요행수이기에 보편적 가치인양 말 할 수 없다.
우선 남한을 서울체, 경기체, 중원체, 관동체, 경상체, 남도체, 제주체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 싶다. 물 론 이러한 구분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기와 중원을 구분할 수 있는가. 관동과 경북은 반도의 척추를 따라 같이 흐르지 않을까. 오히려 남도라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남해안으로 볼 수도 있다. 다음 지방성을 물상으로 말하기 위해, 지방적 키워드를 떠올려 보았다. 물론 이 연역演繹이 완전하 지 않다면, 다시 귀납歸納으로 피드백할 것이다.
제주체 우리나라 기후 지리에서 가장 농숙한 지방성을 가지고 있다. 바람과 빛은 건축의 시스템을 만들 고 화산석 질료는 곧 물상이다.
- 제주의 통증, 귀양의 땅 / 척박한 토착 수단 / 자연을 만나는 법 / 전통의 공간, 옴팡 / 바람을 직 조織造함 / 검은 물질
경상체 신라의 선입감인지 모르지만, 부단한 문화 교차 속에 장려하기를 좋아한다. 건축의 몸짓이 동적 이고 운율이 크다.
- 바람과 물, 유동체 / 바다 빛 청조靑調 / 피난 수도의 기억 / 영남 매너리즘
남도체 한반도에서도 유난히 남향 바다는 건축의 화색을 다르게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변방의 지정학 적 이해를 감내해
왔다.
- 남쪽의 빛, 녹조綠調 / 남도의 기억, 수탈의 장소 / 붉은 땅, 문학적 메타포 / 마당 깊은, 감도는 공간 / 투박한 원형질
/ 남종화의 정서
관동체 산악 건축 Alpine Architecture처럼 드센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백두대간을 따라 동해의 바람 은 유난히 거세지만 청명하다.
- 산의 땅, 설악의 풍광 / 백두대간, 땅의 지시 / 암회색 / 동해의 바람, 투명체 / 군사지리, 긴장과 외완
중원체 한동안 백제가 그러했듯이 중성적 매개에 익숙하다. 온화하지만 단호하고, 편안하지만 단아한 미학이다.
- 백제의 잔흔, 원융圓融 / 중성체 / 중원 모노크롬, 연한 흰색 / 서해의 줄기, 석양의 건축 / 평원에 눕다
경기체 한반도가 서양화하는 전선前線으로서 문화교차의 첫 번째 겹을 이루어 왔다. 서울에 가깝지만 그 주변으로서
전이질이다.
- 경기의 한강 / 서울의 테두리 / 근대의 기억 / 문예의 알레고리 / 소소小素한 예술 / 신도시 건축
서울체 옛 서울과 새 서울이 북악과 남산과 한강에 엮여 있다. 수도의 문화는 새로움에 대해 적극적일 수 있다. 자본이
모이고 개발이 욕망을 그린다.
- 수선首善의 나이 / 궁궐의 잔상, 북촌, 서촌 / 도시문화 장소 / 한강 / 자본의 풍경, 도시 건축, 밀 도의 교책巧策 /
하이테 크, 몸의 아나토미 / 문화교차, 외래의 선단先端 / 낮선 것에 대한 자유 로움 / 기념적 장소 / 착한 건축
물론 이 주제들이 그 지방에서만 항상성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수의 주제들이 복합적 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자기의 지방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건축은 더 많다.
항상성, 보편성, 그 모순적 소질
어떤 고유한 속성이란 우선 차이에서 이루어진다.’ 지방성은 지키려 하여서 유지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타자로부터 배워간다는 모순에 있다. 차이가 고 유성인데, 그것을 현대의 교차 환경에서는 혼자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비록 사소하더라도 다양성을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방성은 다양성의 필연적인 소양이다. ‘부산다운 건축’ 과 같이 내부에서 차이를 찾으려는 노력도 있지만, 그것은 타자의 학습을 통해 체화한다는 모순에 있다.
문화의 소질에서 항상성은 줄곧 그러하기에 성립되지만. 경색될 때가 문제이다. 보편성으로 지방성 은 두루 그러한 성질이지만 이미 고정태가 되고나면 버려야 한다. 제도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지역 건축사 local architect의 병업倂業이다. 설계자의 명목이 애 매해지며, 실재의 협동적 프로세스가 작동할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한 그릇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 같다.
어느 경우에는 설계경기에서 지역의 건축사(architect)로 참여를 제한하기도 한다. 지방의 건축 사 회에 가면 ‘지방을 알지도 못하는 외래 건축사가 설치고 다닌다’고 불평이다. 대단한 쇄방鎖防이다. 어떤 지방만이 가지고 있는 난해한 윤리가 따로 있나? 지방 관리의 텃세는 본 적이 있다. 지방만의 어려운 테크놀로지가 따로 있나? 오히려 지방의 낙후한 건축술을 자주 본다. 보호하기 보다는 먼저 문화 강장剛腸을 생각해야 한다.
착한 지방성, 못된 지방성
문화 차이가 우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옳고 그름의 다름도 아니다. 차이는 다른 또 하나의 ‘것’이다. 제일 나쁜 일이 ‘중국의 베니스’니 ‘일본의 알프스’니 하는 비유이다. 아시아는 아직도 유럽의 지방적 콤플렉스를 서슴지 않는다.
지방성에 대한 못된 이해의 하나는 ‘지방=촌스러움’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간혹 그런 경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에 가면 가로등에 봉황이 앉고 연꽃이 핀다. 지방성에서 거칠고 대충하 는 것을 자연주의라고 착각하거나, 향토주의로 포장하거나, 낡은 것의 재현으로 보는 착시 등을 경 계한다. 지방성은 더 세련되어야 하며 품위 있는 건축술을 필요로 한다. 착한 지방성도 있다. 2007년부터 시행하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은 기획자의 문화적 노고를 보상 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 공무원의 기획력을 고무하는 제도이다. [서울시 건축상] 등 각 지방자치 단 체마다 건축상 제도가 있다. 지방 건축상이 부추기는 지방성은, 지독한 편재의 문화 지리를 보정하 기 때문에 눈여겨본다. 아마 최종적으로는 ‘서울의 지방성’을 말할 수 있을 때 이 모색은 선善이 될 것이다.
글. 박길룡 Park, Gilyong ┃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02 한국 건축의 지방성
The Locality of Korean Architecture
지역과 지방
동경시내로부터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무사시노(武蔵野) 시의 키치죠지(吉祥寺)는 일본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이다. 이곳은 대도시의 고층빌딩이나 대규모 상업시설이 없지만, 방문해보면 전혀 지방(시골의 한적한 동네) 같지 않는 지역이다. 일본의 수도가 아닌 교토의 이치죠지(一乗寺)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의 지방이며, 교토에서도 한적한 교외이다. 하지만 이 동네는 몇 가지 이유로 국제적으 로 유명해지고 있으며 낙후된 지방과는 달리 도시이면서도 번잡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일본의 수도 가 아닌 오사카와 교토 지방은 동경의 수도권에 비해 하위의 어감으로 지칭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서울과 경기 수도권은 점점 확장되어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부산이나 대구 등의 지방 도시는 수도권 에 비해 열악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지방의 단어 이면에는 비주류의 관점이 깔려있다. 그래서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도시들은 규모나 경제적 측면에서 부족한 후진과 비주류 의 어감을 가진 지방으로 고착화 되어간다. 그 결과 지방은 기회나 가치가 부족하여 먹고살기 힘든 곳 이 되고, 사람들은 더욱 더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난다. 이러한 현상으로 지방 도시들에는 점점 비어가는 건물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실정은 지방도시를 더욱 경쟁력 없 는 곳으로 만들고, 먹고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범죄학 자 제임스 윌슨(James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이 1982년에 발표한 [깨진 유리창]에서 유래 했다. 동네에서 어느 집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다른 유리창도 깨져나간다고 말한다. 사람들 의 관리가 되지 않은 건물이라 생각하고는 더 함부로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지방건축과 지방도시도 방치하면 방치할수록 더 경쟁력이 약화되고, 점차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역보다는 하위의 어감을 가지고 있는 지방이라는 용어는 이미 수준과 가치를 낮게 간주하는 느낌 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지방이라는 용어가 정치와 경제적 관점으로 고착화 되어있고, 건축 역시 정치 나 경제와 관계가 밀접하여, 지방 건축이라 불리우는 것에는 불쾌하지만 가치나 디자인에 있어 수 준이 떨어지는 후진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어떤 건축을 지방 건축이라 할 수 있는가? 그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오랜 관행으로 쉬쉬하던 설계공모전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부산에서 진 행된 공모전의 심사 후 채점표가 공개되면서, 심사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시작되었다. 계획분 야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의 채점표에서 당선업체는 모두 10점 만점을 기록한다. 특히 공모전 제출 후 사전 설명하기, 평소에 심사위원들과의 친분관리를 돈독히 해온 결과로 주장하는 비판들이 많다. 전국 공모전에 비해, 지방발주의 공모전에서 종종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단편적으 로 지방 건축계의 촌스럽고 유치한 관행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심사위원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 는 일부 교수들이 자신들에게 평소에 잘하고, 사전에 찾아와서 예의를 갖추는 건축사의 작품에 손 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공공건축가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분위 기에서 부산에서는 왜 총괄건축가를 부산의 건축사로 선정하지 못하는가? 실제 수도권의 유명한 건축사에게 의사를 타진하고, 그 건축사가 수락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총괄 건축가를 선정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렇듯이 유독 지방에서는 공무원이나, 대학의 교 수들이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을 실력 없는 것으로 무시하거나, 지역에 등록한 건축사를 사회적 위치와 소양이 부족한 단순 업자로 생각하는 난감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이는 중앙 바라기 에 젖어있는 지방 학계나, 공무원, 발주처의 나쁜 풍토 때문이다. 지방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을 제 대로 인정하지 않거나 공모전의 몰표 결과, 그리고 무조건적 서울의 유명건축사 또는 상위권 대학 의 교수를 추종하는 분위기 또한 이런 지방폄하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메가트렌드와 지방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세계 화두가 되고 있다. 이처럼 건축에서도 특정한 메가트렌드 현상은 오래전부터 한국건축계를 이끌고 있었다. 건축의 디자인 유형, 재료의 사용, 색상, 프로그램, 개발방향 등의 성공 트렌드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작하여 각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메가트렌드가 된다. 부산 인근 양산의 물금신도시에서 서울 건축사의 작품은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파주에서 부 산 건축사의 작품을 쉽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특정 메가트렌드를 가지고 싶어하는 요구가 지방에서도 있는데, 지방에서는 그 트렌드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 시의 홍대거리, 서촌,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은 이미 핫플레이스로 널리 알려져 있고, 여기에 연남 동, 망원동, 해방촌, 익선동, 중림동, 봉천동 등도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재생 바람이 한 국의 메가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이 트렌드대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리고 지 방의 공공건축물이나, 대형 건축물에서도 메가트렌드를 추종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수도권의 메이저 설계업체의 작업이거나 대기업 자본이 투입되는 사업과 건축물, 해외 유명 설계자의 모셔오 기 행정이 많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렇게 메가트렌드를 쫓은 결과가 무조건적인 성 공을 보장하지 못함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지방만의 정서, 행태, 예산, 프로그램을 제 대로 이해하고 진행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균형있는 발전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지방과 수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 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해야 하고, 건축과 도시 역시 그러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방이 한국 건축의 메가트렌드를 거스르긴 힘들다. 그렇다고 흘 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지방이 겪게 될 후폭풍은 너무 크므로, 충격을 어떻게 중화시키고 최소화 할지 고민해야 할 단계이다. 지방이 수도권의 건축계와 똑같은 설계적, 문화적 가치를 가지 기 힘들며, 건축시공비나 사업성이 같을 수도 없다. 그리고 공간적 기능과 프로그램도 똑같이 가지 고 있을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지방의 모든 도시들에서 수도권과 같은 성장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수도권과 지방의 대등한 발전주장이 지방의 모든 곳이 수도권과 균등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비약이 되어서도 안 된다. 건축에서는 경제 학자들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단순히 지방에 인구와 산업을 균등하게 배치해서 지방의 건축이 수도 권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과 인프라, 건축사의 숫자. 인 력, 그리고 수요와 공급원의 균형은 힘들다. 하지만 현대 한국건축의 작은 희망은 문화, 주거, 예술, 4차 산업 분야에서 경계가 없어지고, 지방만의 장점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경제적 패러다임에 가까워서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명명하는 용 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지방성은 용어적으로 특정 지방에만 있는 공통적인 속성이나 기질을 말하 지만, 그 이면에는 수도권에 비해 하위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한국건축에서 지방성의 담론 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사용되어져 온 지방의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지방성’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 재정립하여 그 가치가 발휘되도록 해야 한다. 현대건축의 담론에서 사용되는 ‘지역성’은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지금까지 쉽게 접할 수 없 었던 지방건축이라는 단어는 선험적으로 부족함과, 촌스러움, 그리고 수도권에 비해 뒤처지는 어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지역성’은 건축에 있어 중요한 장소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표현임에 반하여 ‘지방’ 은 장소보다는 수도권에서의 멀리 떨어진 위치나, 거리감으로 인식되고, 경제적이거나 규모적으로 가 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느낌을 지니고 있다. 이런 ‘지방’의 단어가 이제는 그 관습적 어감을 극복하 여 ‘지방성’이라는 건축에서 소중한 담론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래서 지방 건축이 가진 가치를 찾아내 고, 그것을 발전시키면서 수도권에서도 인정하게 되는, 긍정적 특성과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방성의 건축이 가능한가?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인데, 이에 비해 로테르담은 20세기 초부터 예술과 문화의 새로운 시도를 적극 수용하고 이를 도시의 공간구조나 경관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보수적인 기풍이 강하게 표상되고 있는 암스테르담과는 매우 색다른 도시의 표상을 보여 왔다. 새로운 시대사조와 예술정신을 도시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암스테르담과는 다른 색다른 구조의 도시를 구축하였다. ‘항만지구의 재개발’과 ‘중 앙역부근의 고층오피스개발’ 그리고 OMA가 참여한 ‘문화중심지 구상계획’ 등을 통해서 지방성을 극복하 여, 오히려 네덜란드의 수도보다 더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하였다. 기존 수도권의 형식과 트렌드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화되는 수도권이 가지고 있지 않는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사례이다. ‘지방성’의 올바른 의미는 지방의 논리가 중앙의 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지방의 효율이 중앙의 비효 율을 극복하며, 지방의 다양성이 중앙의 획일성을 수정하게 되는 역할을 내포하여야 한다. 건축에 있어서 지방성은 중앙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풍이나, 흐름 그리고 건축의 형태나 공간, 배치에서 차 별화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지역적인 특성이 힘을 발휘하고, 중앙과 차별화되는 건축 과 도시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단초가 되는 속성이 지방성이다. 그렇다면 한국 건축에는 지방성이 있는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이제는 담론의 중심에 두어야하는 문제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지방성의 건축이 규정될 수 있는가?
지역단위의 환경개선과 개발을 통한 경쟁력의 강화는 지방성을 구축하는 요체이며 건축과 도시의 문화적 관점에서 지방성을 만들어가는 동인이 된다. 또한 지방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방 중심적인 공간 단위의 사고와 지역고유의 개발방식과 수법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리고 지역단위의 고유한 건축에 의한 공간 문화를 키워가는 일, 기반시설의 확충과 정비를 통해 타 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일 등이 지방성의 건축을 위해 필요하다. 지방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패러다 임이 중앙도시나 수도권과는 다른 각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상의하달식 개발개념의 비판 없는 수 용의식이나 이에 기초한 관습의 무분별한 반복수행, 군림하는 듯한 분위기의 조직시스템 같은 행태 는 사라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권의 트렌드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지방에 적정 한 해법을 찾아내는 ‘비판적’ 관점이 필요하다.
건축에서 지방성은 대도시인 수도권이 가질 수 없는 비장의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수도 권과 차별화된 지방만의 특색을 무기로 개발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건축에서 지방성의 핵심이다. 경 제적 관점에서도 건축의 지방성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본력 을 극복하기 위해 복합자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지방만의 부족한 자금에 국제적, 수도권 중심적 펀 드나 지방들 간의 연합된 자본이 투입 가능하도록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 이루어 지는 건축의 프로그램 역시 지방성을 담아내야 하고, 그 지방성의 고유한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지역들의 지방성들이 네트워킹 되어 완결성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 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에서도 국제적 도시의 브랜드를 필요에 따라 편집구성 할 수 있는 프로그 램을 시도해야 한다. 즉, 새로운 건축, 새로운 기능, 새로운 건축영역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는 건 축유형, 개발방식, 문화수용방식 등에서도 새로움과 동시에 지방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한국건축의 지방성
한국의 건축에서 지방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냉철한 관점에서 지방건축만의 특성과 독특한 문화, 건축공간에 대한 성격, 지역만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적정한 프로그램의 연구가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에서도 수도권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건축과 관련된 서비스 기회들을 향유할 수 있 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축의 담론과 문화적 풍토가 만들어 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방건축의 체질이 개선되어 수도권과 차별화 되거나 그 이상의 기회와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방의 도시와 건축은 여전히 성장할 여지가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방 건축사들의 자발적 움직임과 지방성을 찾기 위한 담론적 실천이다. 이러한 움직 임과 실천은 한국 건축의 지방성을 만들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방건축계는 움직이고 있다. 나름 발버둥 친다. 스스로 지방임을 인정하고 체질개선을 위 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건전한 지방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소한 알을 깨고 태동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왜 나타나고 있을까? 최근 2016년(알레한드로 아라베나), 2017년(스페인 RCR), 2018년(발 크뤼시나 도쉬) 프리츠커상의 수상자와 그 작품들을 살펴보면, 지역만의 고민과 지방성의 가치를 잘 담아내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수상 경향을 통해 한국 지방의 건축사들은 용기를 내고 있다. 수도권의 먹거리 부족과 지나친 경쟁을 피해서 돌아온 지역출신 건 축사들, 그리고 지역에서 성장한 건축사들이 문화적이고 담론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기회가 생기고 있다. 막연히 메가트렌드를 쫒아가던 수요를 잡을 기회가 아직은 남아있어 건축사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뉴욕에서 건축사로 살아가려고 하면,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스타건축사들과 경쟁해야하지만 한국의 지방에서는 건축사들 간의 경쟁이 약하므로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지방은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또한 지방의 건축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가로 건축물의 총액 가치가 낮다. 그러다 보 니, 좀 더 많은 건축의 기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건축계의 해묵은 헤게모니적 움직임에 의한 파벌 이나 경쟁도 적어서 나름 순수하다. 다만 아직은 개인 건축사들의 각개전투 양상을 보이고 있어, 하 나의 트렌드나 흐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좀 더 많은 건축사들의 노력과 실천을 통해 수도권과 대 등한 협업과 교류를 이끌어내고, 그 결과물이 지방성을 드러내도록 건축문화가 성장해야 한다. 그 래서 지방 건축사들의 연합운동이 일어나고 담론적이며 문화적인 건축연대가 강화되어야 한다. 이 러한 풍토가 정착되면, 점차 가치 있는 지방성으로 인정받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한국 건축에서 올바른 지방성 구축을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규모나 가치를 적정하게 축소하여 지방 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건축사들도 그 지방성의 장점으로 무장하여, 중앙이나 수도권에 비 해 차별화된 건축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지방이 수도권의 영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한국건축의 지방성은 지역 건축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기는 국경 없는 사회 시스템에서 지방단위의 새로운 건축을 발전시킨다. 또한 사회적 자산으로서 지방 성을 띤 구체화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을 통해서 지방성을 국제성으로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메 가트렌드의 세계성을 비판과 수용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한 ‘지방성’으로 농축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오신욱 Oh, Sinwook ┃ 라움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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