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우리, 행복을 미루지 말아요 2025.1

2025. 1. 31. 09:25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Let’s not postpone happiness in the New Year

 

 

 

‘새해가 밝았다’ 라고 습관처럼 쓰다가 왜 우리는 새해를 밝았다고 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새해는 밝고, 지난해는 어두워져 저문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이어온 통념인가? ‘밝다’라는 단어가 가진 뜻처럼 새해는 환하고 산뜻한 것이라는 뜻일까? 생각은, ‘밝음’이 내포한 의미처럼 새해가 분명하고 긍정적인 미래가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은 문장일 것이라는 데까지 이어졌다.
을사년, 설렘도 없이 새해가 밝았다. 
나의 새해 준비는 새 다이어리를 사는 것이 전부다. 노트 회사 ‘몰스킨’에서 만드는 365일 데일리 플래너가 10여 년 전부터 쓰고 있는 나의 일기장이다. 이 공책 안에 어떤 일들이 적힐지는 아직 아무 계획이 없다. 
계획 대신 복권 당첨이나 주식 상한가 같은 새해 소원이라도 빌면 어떨까 싶은데, 주식 한 주 가진 것 없고 복권도 사지 않으니 부질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네덜란드국영복권(Dutch State Lottery) 회사의 광고를 보니 새해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복권을 사볼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네덜란드국영복권이 발행하는 새해전야복권(Oudejaarstrekking)은 매년 12월 31일에 추첨하는 특별한 복권이다. 1등 상금이 3천만 유로, 우리 돈으로 4백억 원이 넘는 이 복권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상금이 큰 복권이라고 한다. 아래 소개하는 영상은 2023년 새해전야복권의 판매촉진을 위해 2022년 12월에 전파를 탄 광고물이다. 

나이 든 아버지는 요양원에 살고 있다.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방문한 아들이, 아버지가 젊었을 때 눈썰매 끄는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제안한다. 
“아빠, 우리 여행 한 번 더 가요.”
“안 돼, 너무 비싸…”
“걱정 마세요, 나 복권에 당첨됐어요!”
그 말에 오로라가 보이는 추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 아버지와 아들. 아들은 아버지에게 깜짝 놀랄 만큼 비싼 가격표가 붙은 패딩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사서 입혀 준다. 든든하게 껴입은 두 사람은 눈썰매를 타고 설원을 달리고, 얼음낚시를 즐긴다. 흥이 난 부자는 뜨거운 사우나를 하다가 벌거숭이 상태로 찬 공기를 쐬며 눈싸움을 하고, 환상처럼 눈앞에 나타난 오로라를 보고 감동하기도 한다. 
여행을 마치고 요양원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의 추억을 자랑스럽게 풀어놓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요양원 직원이 아들에게 복권에 대해 축하를 건넨다. 그런데 아들은 안주머니에서 복권을 꺼내 보이며 (축하를 받기 전에) 우선 복권 당첨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복권에 당첨되어서 여행을 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 경비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복권이 맞았다는 하얀 거짓말을 하고,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피 한 줄.

 

네덜란드 국영 복권_새해 전야 복권_영상광고_2022


행운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Don’t wait for luck to happen.)



이 광고를 만든 대행사인 TBWANEBOKO의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 Patritia Pahladsingh는 “3천만 유로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으며, 사람들에게 복권에 당첨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바로 위대한 계획을 실행하라는 영감을 주고 싶었다”고 광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오래전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생각했다. 행운은 바라지 않는다, 아니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운은 내 몫이 아닐 게 분명하다. 그러니 행운 대신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하지만 비범한 일과 믿기 힘든 사건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다 보니,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합격한 것이나 크게 아픈 곳 없이 차곡차곡 나이 들고 있는 사실이나 눈 뜨면 출근할 곳이 있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 내 억지와 변덕을 받아준 가족과 친구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운이다. 살면서 나쁜 일 또한 평균치 이상 겪었지만 많이 상하지 않고 일상을 이어왔던 것도 모두 행운이었다. 나는 행운아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는다, 행운을 남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포기하지 않기로. 언젠가 한 번쯤 당첨될 행운을 기대하지 말고, 지금 가진 행운을 만끽하며 살기로. 할 수 있다면 행운을 앞당겨 쓰고 행복도 일부러 만들어 누리자.
행운을 믿자, 행복을 미루지 말자.

 

 

https://www.youtube.com/watch?v=745I70YjYyA 
네덜란드 국영 복권_새해 전야 복권_영상광고_2022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