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8. 09:15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Drinking Binge without Alcohol
술을 끊는 일이 가능할까? 중병에 걸리지 않았고, 성인병이 없고 간 기능에 이상도 없는데 굳이 술을 끊어야 할까? 음, 질문을 바꿔보자. 잘 어울리는 술을 골라 함께 먹으면 음식 맛을 돋우고, 좋은 사람들과 즐기면 분위기를 한층 더 부드럽게 하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서양술은 물론이고 막걸리에서 전통 약주까지 세상에 신기하고 오묘한 맛을 내는 셀 수 없이 많은 주(酒)님들의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 가능할까?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번지고 있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 캠페인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술 없는 1월로 번역할 수 있는 ‘드라이 재뉴어리’는 1월 한 달간 금주를 권장하는 공중보건 캠페인이다. 캠페인의 기원은 영국인 에밀리 로빈슨(Emily Robinson)이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1월 한 달 술을 끊기로 결정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해에 그녀는 영국 알코올 체인지(Alcohol Change UK)에 합류해 2013년 캠페인 공식화를 도왔고, 첫해에 4,000명의 참가자를 유치했다. 이후 참여자가 꾸준히 늘어 2023년에는 17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12월 마지막 주를 긴 연휴로 보내는 서양인들은 아마 1년 중 12월에 가장 많은 술을 마시는 모양이다. 흥청망청 몽롱한 연말을 보낸 보상심리로 새해 첫 달에 진행되는 금주 캠페인에 참여하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드라이 재뉴어리’가 시작되었다. BBC의 보도1)에 따르면 술집 주인들과 양조업체들은 이 기간 동안 무알코올 음료의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영국 살포드(Salford)에 있는 주점 뉴 옥스포드 인(New Oxford Inn)의 주인인 팀 플린(Tim Flynn)은 이 챌린지 덕분에 최근 몇 년 동안 사업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는 겨우 두 종류만 가지고 있었던 무알코올 맥주를 현재는 10여 종류나 보유하고 있고, 10년 전에는 일주일에 한 상자씩 팔았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40상자 가까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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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수제 맥주 양조업체 브류독(BrewDog)은 2020년 1월 세계 최초로 무알코올 음료만 파는 주점을 열었다. 무알코올 맥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매장 위치를 런던에서 스타트업 기업과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리로 정했다. 이곳의 메뉴는 무알코올 크래프트 맥주 15개, 무알코올 스피릿, 무알코올 사이다 등이다.
1월의 금주령은 많은 재미있는 광고물을 만들어냈다. 하이네켄은 ‘드라이 재뉴어리’에 참가하더라도 친구와 만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술집에 가서 알코올 0%인 하이네켄0.0을 마시라는 영상광고를 내보냈다. 미국의 탄산수 브랜드 버블리(Bubly)는 금주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1월 10일에 탄산수를 무료로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탄산수를 샴페인 잔에 넘치도록 따르는 영상을 제작하여, 버블리를 마시면 샴페인을 마시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녀님이 맥주병을 들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하고, 워커스(Walkers Crisps)라는 감자칩까지 나서서 자신도 무알코올이라고 능청스럽게 주장하는 광고도 있다.
보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광고는 티토스(Tito’s)라는 미국의 보드카 업체가 살림의 여왕으로 유명한 기업인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를 모델로 등장시켜 만든 영상 광고였다. 티토스는 마사 스튜어트가 DIY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점에 착안해, 보드카를 한 달 동안 쳐다만 보는 것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장난스럽게 제안한다. 예를 들어 보드카를 스프레이 용기에 담아 뿌려서 신발의 퀴퀴한 냄새를 제거하거나, 화분을 닦는데 사용하고, 파스타 소스에 첨가하고, 보드카 병으로 두꺼운 고기를 두드려 부드럽게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이 내세우는 1월 금주의 장점은 체중 감량, 수면 개선, 정신 건강 향상, 돈과 시간의 절약 등이다. 당연히 혈당이나 간 수치도 개선될 것이다. 1월에 이 캠페인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6개월 후에도 건강한 음주 습관을 유지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를 보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마실 것인가, 끊을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10년 넘게 확산되고 있는 1월 금주 캠페인을 살펴보면서 2025년에는 나의 음주 습관을 점검해 보겠다는 마음은 들었다. 적당히 가끔 기분 좋을 때만! 이것이 드라이 재뉴어리를 보며 정한 내 음주의 슬로건이다.
그러니 얼른 이 칼럼을 끝내고 마감의 홀가분함과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저녁 약속에 들고나갈 와인을 골라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ftB76c1Dk9M
Heineken 0.0_ 홍보 영상_2022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o5qZLn33C9w&t=20s
워커스 칩_홍보 영상_2024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1SRMj5hHuAg&t=56s
티토스_DIY 재뉴어리_홍보 영상_2023_ 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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