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른한 봄, 한낮의 꿈 2025.4

2025. 4. 30. 09:15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A drowsy spring day, a midday dream

 

 

 

만약 내 마음대로 직업을 정할 수 있다면 등대지기가 되고 싶어. 출렁대던 파도 위에 어둠이 내리고 날개 접은 갈매기가 둥지에 들면, ‘딸깍’ 스위치를 올려 등대를 켜는 거야. 내가 밝힌 환하고 기다란 빛은 먼 바다까지 닿겠지? 미처 항구로 돌아오지 못 한 작은 배가 있다면 내 불빛을 보고 마음을 놓을지도 몰라. 큰 바람 불고 폭우가 파도처럼 퍼붓는 밤에는 쿵쿵대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등대빛에 간절한 소원을 실어 보내야지. 부디 아무도 상하지 않기를, 아무것도 다치지 않기를…. 깊고 어두운 폭풍의 밤이 지나고 말짱하게 맑은 아침이 시침 뚝 떼고 밝으면, 내 힘으로 큰 일을 해낸 듯한 충만함을 껴안고 잠자리에 들 거야. 꿈도 없는 단잠을 배고파 깰 때까지 실컷 잘 거야. 

자막) 작년에 숨겨 두었던 
         그 여름을 만날 수 있을까?
          Excellence in Flight
          KOREAN AIR
Na) 지금은 여행을 준비할 시간.

 

 

대한항공_TVCM 숏폼:등대편_2015

 

멀리서 온 여행객이 내 등대를 발견하고는 환호하며 달려와 사진을 찍어. 내가 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손을 흔들기도 해.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이에게 울컥 다정한 마음이 들어서 그이가 떠난 뒤에도 잠깐 그리워하지, 보고 싶다고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지. 그 종이비행기를 주은 이웃 마을의 소년은 쓸쓸한 나를 위해 스탠드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 모스부호 같은 불빛 신호를 해석한 나는 유난히 마음속에 스산한 바람 부는 날, 소년의 집 문을 두드려. 식탁엔 따뜻한 저녁이 차려져 있고 우리는 내가 켠 등대의 반짝임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 



#메이시 백화점 광고 영상 내용
바닷가에 사는 소년 맥스는 등대에 사는 제 또래의 어린 소녀 릴리가 마음에 걸린다. 최근에 엄마를 잃은 릴리는 등대지기인 아빠와 둘이서만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맥스와 릴리는 인사를 나눈 친구는 아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스며든 등대의 불빛을 보며 맥스는 릴리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낀다. 맥스는 스탠드 불빛에 모스 부호를 담아 껐다 켰다 반복하여,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등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다가 불빛을 발견한 릴리는 아버지에게 알린다. 그리고 성탄 저녁, 맥스의 가족이 막 식탁에 모여 앉아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릴리 부녀가 문 앞에 서있다. 두 가족은 환하게 웃으며 즐겁게 식사한다.

 

메이시 백화점_ Macy’s Holiday Commercial:Lighthouse _2017

  
등대지기가 아니면 신호등을 켜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어. 세계 최초의 교통 신호등은 1868년 런던 의회 앞 광장에 설치되었어. 그때는 교통경찰이 직접 수동으로 신호등의 적색과 녹색 두 가지 신호를 껐다가 켰다가 했다지 뭐야. 자동차가 없던 시대에 무슨 신호등이냐고? 자동차는 없었지만 대신 마차가 너무 많아 길이 밀리고 사고가 자주 나서, 신호등이 필요했대. 기차는 있었으니까 기찻길에 있던 신호등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네. 
가스 램프였던 최초의 신호등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가스가 폭발해서 신호등을 운영하던 경찰이 큰 부상을 입었어. 신호등지기를 하려면 가스등이 폭발하지 않게 아주 조심해야겠어.

 

 

1914년 8월 5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설치된 세계 최초의 전기 신호등


아니, 신호등지기보다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낫겠다. 신호등지기는 종일 복잡한 거리에 서서 신호등을 바쁘게 껐다 켰다 반복해야 하잖아.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팔도 아플 거야. 차라리 가로등이라면 해볼 만하겠어.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 한번 켜고, 동틀 무렵 끄면 되니 훨씬 수월하지. 한밤중의 휴식과 한낮의 한가함을 누리며 세상에 빛을 선물하는 마법사가 되는 거야!
가로등 켜는 직업의 역사는 제법 오래야. 1667년, 프랑스 정부가 어느 길 양 끝에 기름으로 밝히는 가로등을 설치하면서 파리에는 등불 켜는 사람이 등장했어. 영국 런던에서는 1807년 1월 28일 가스를 사용하는 공공 가로등이 팔몰(Pall Mall) 거리에서 시범 운영되었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전기 가로등이 대중화되자 가로등 점등인이라는 직업은 쇠퇴하여 지금은 거의 사라졌어. 하지만 전통의 보존과 관광을 위해, 영국이나 유럽의 몇몇 도시에는 점등인이 여전히 남아있대.   
만약 가로등지기가 된다면 지구가 점점 빨리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긴장하고 천문학자에게 물어봐야 해. 동화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상한 작은 별은 1분에 한 바퀴씩 회전하는 바람에, 가로등 켜는 성실한 일꾼은 잠도 못 자고 쉴 새 없이 가로등 옆에 붙어있잖아. 

 

 

19세기 파리의 점등인과 『어린왕자』의 점등인 삽화


유난히 춥고 막막했던 겨울이 물러난 자리에 어김없이 봄이 왔다. 동백은 벌써 지고, 개나리, 진달래 꽃소식 지천이다.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선뜻 꽃구경 나설 처지는 아니다. 한낮 아지랑이가 졸음을 부르는 봄날에 나는, 
등대지기를 꿈꾸다가 가로등 켜는 사람을 부러워하다가 아름다운 등대를 검색한다. 
어떤 이의 손길이 짓고 또 가꾼 불의 탑일까? 지은 사람의 자취는 흔적도 없는데 오래된 불빛이 천 년 전처럼 우뚝 서서 반짝인다. 그 빛의 황홀한 손짓을 향해 봄바람처럼 가볍게 걸어가는 상상은 봄꽃처럼 달콤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중세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터키 이스탄불의 메이든 타워 / 서기 1세기 후반 ~ 2세기 초 로마 제국에 의해 건설된 스페인 아코루냐 시의 헤라클레스의 탑 / 1904년 완공된 아일랜드 Fastnet Rock에 있는 등대 / 1832년에 영국 서머싯 주에 건설된 낮은 등대(Low Lighthouse)

 

 

https://play.tvcf.co.kr/527965 
대한항공_TVCM 숏폼:등대편_2015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lZdmuK6Po4 
메이시 백화점_ Macy’s Holiday Commercial:Lighthouse _2017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