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31. 09:20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Was I a heaven or a prison to them?
엄마의 사진을 본다. 오드리 헵번 같은 플레어스커트에 고데 머리를 한 처녀가 양산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구애하는 총각을 놀리기라도 하는듯 눈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아무런 근심 없는 해맑은 얼굴이고, 아직 중력이 마수를 뻗치지 않아 단단한 몸매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다. 저절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꽃배달 서비스 회사 텔레플로라(Teleflora)의 어머니날 광고가 연상된다. 어머니에게 꽃을 보내라는 이야기를, 수많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자막) mother
텔레플로라 러브 스토리(a teleflora love story)
Na) 당신의 어머니가 되기 전에, 그녀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세상을 바라보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녀는 야망이 있었고, 모험을 즐겼습니다.
그녀는 유쾌했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계단을 오르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뜨렸습니다.
한계를 밀어붙였고, 때로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음악을 만들었고, 웃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작은 마법을 부린 적도 있었죠.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그 모든 것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그녀의 모든 순간을 축하해주세요.
자막) 행복한 어머니날 보내세요.(happy mother’s day)
텔레플로라
사랑을 크게 표현하세요.(LOVE OUT LOUD)
텔레플로라는 엄마라는 영어 단어 Mother 안에 ‘her’가 들어있는 것에 주목했다. 이것은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되기 전에는 한 사람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내 엄마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텔레플로라의 카피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모험을 즐겼을 것이다. 가사노동이나 육아라는 단어가 아예 없는 세상에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새 생명을 만들어 내는 마법을 부린 후,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엄마의 첫 아기였던 나는 엄마에게…, 천사였을까 아니면 감옥이었을까?
엄마의 첫 딸이 자라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이처럼 ‘그냥 엄마에서 친정 엄마가 되고, 외할머니가 됐다. 그건 언덕이 동산이 되고 태산이 되는 일’*만큼 어마어마한 변화였다. 드라마 속에서 할머니가 된 애순이는 손녀를 안고, 출근하는 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 모습 위로 딸 금명이의 내레이션이 들리는데, 꼭 내 얘기처럼 마음 어딘가를 콕콕 찔렀다.
#폭싹 속았수다_15화 내레이션_넷플릭스_2024
나는 애만 보고 엄마는 나만 봤다.
내 딸 표정은 천 개를 알면서 엄마의 표정들은
많이 떠오르질 않았다.
엄마의 딸이 또 엄마가 되어 갔다.
아이를 품은 딸의 시간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엄마는 사는 내내 자기 시간을 잘라다 붙였다.
애순이처럼 우리 엄마도 그랬다. 엄마의 시간을 잘라 딸인 나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엄마가 된 딸이 너무 고될까 봐, 딸 대신 딸의 아이를 돌보고 반찬을 만들었다. 엄마의 사간을 잘라 쓴 덕에 나는 일을 하고 대리가 되고 차장이 됐다. 엄마가 벌어준 시간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녔다. 금명이처럼 나도 그랬다. 아이의 얼굴만 봤다. 아이가 찡그리는지 웃는지 필요한 게 있는지 전전긍긍 살피면서, 엄마의 얼굴에 주름이 느는 건 몰랐다. 아이가 기침만 해도 가슴을 졸이면서 엄마의 손목이며 허리에 실금이 가고 있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외면했다. 그리고 지금, 태산이던 엄마는 언덕보다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요양병원에 누워있다……. 말줄임표의 가운뎃점 여섯 개를 다 써도 모자랄 만큼 엄마에게 다 못 한 이야기가 많은데…….
아빠를 소환하는 광고도 있다. 미국 최대의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메트라이프 홍콩 지사의 광고다. 제작은 태국 방콕에 있는 광고 영상 제작 전문 회사에서 맡았다. 광고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딸은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똑똑하고, 친절한 자신의 슈퍼맨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아빠는 거짓말쟁이라고 폭로한다. 아빠는 직업이 있고 돈이 있다고, 피곤하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다고 딸에게 말하지만, 이것은 모두 구직활동에 번번이 실패해서 청소나 막노동, 전단지 배포 등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힘든 현실을 숨긴 거짓말이었다. 아빠의 거짓말을 알고 있는 딸은 거짓말쟁이 아빠를 사랑한다는 말로 편지를 마친다.
딸O.V)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빠예요.
아빠는 제일 잘생겼어요.
가장 똑똑하고, 지혜롭고, 친절해요.
아빠는 나의 슈퍼맨이에요.
아빠는 내가 학교에서 잘 하길 바라요.
아빠는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하지만…, 아빠는 거짓말을 해요.
아빠는 직장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돈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요.
피곤하지 않다고 거짓말을 해요.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해요.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해요.
아빠는 행복하다고 거짓말해요.
아빠는 나 때문에 거짓말을 해요.
난 아빠를 사랑해요.
자막)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습니다.
삶에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세요.
아버지의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자주 침묵과 희생으로 나타난다. 다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애순의 남편이자 금명의 아빠인 관식은 불평이나 힘든 내색 한번 없이 묵묵히 일한다. 가족의 든든한 뒷배가 되기 위해, 몸에 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일만 한다. 아빠가 늘 뒤에 있으니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아빠의 눈 내린 것처럼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금명이는 중얼거린다.
#폭싹 속았수다_15화 내레이션_넷플릭스_2024
내가 외줄을 탈 때마다 아빠는 그물을 펼치고 서있었다.
‘떨어져도 아빠가 있다.’ 그 한마디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한번은 말해줄걸, 말해줄걸.
아빠가 그렇게 서 있는 동안 아빠에게만 눈이 내렸나 보다.
아빠의 겨울에 나는 녹음이 되었다.
그들의 푸름을 다 먹고 내가 나무가 되었다.
아빠가 내 곁을 떠나기 전날에야 ‘아빠, 미안해, 미안해’ 다급한 사과들을 쏟아냈다.
그때 아빠가 그랬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빠는 천국에 살았노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RwW_hza8gcE
텔레플로라_TVCM_MotHER: A Teleflora Love Story_2024_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vgain-EQdt0
메트라이프 홍콩_영상광고:나의 아빠 이야기, 내 아이를 위한 꿈_2015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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