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의 건축유산 ④ 사마르칸트의 ‘이슬람 불멸의 사후공간 - 마우솔레움(영묘)’ 2025.3

2025. 3. 31. 09:4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chitectural Heritage in Samarkand ④ Mausoleums in Samarkand

 

 

 

서(序)
이전 연재(<건축사> 2024년 11월 호, Vol.667)에서도 시작 부분에 서술했지만 이슬람 건축에서 예배 공간(모스크), 교육 및 수행공간(마드라사), 사후 공간(마우솔레움/영묘)을 각각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예배 공간과 교육 공간이 함께 있거나, 교육 공간과 사후 공간이 결합되어 있거나, 혹은 이 모든 공간들이 하나의 앙상블로 조화롭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샤히진다 영묘 군, 비비하눔 영묘, 구르 아미르 영묘 단지를 중심으로 이슬람 불멸의 사후공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사마르칸트 - 문화의 교차로(부분) © 구글맵


사마르칸트에서 지내는 동안 아프로시압 박물관 현장뿐만 아니라 이 연재물에 언급하는 유적지들이 대부분 최대 30분 이내 정도의 도보 거리에 있도록 숙소를 잡았다. 공사 막바지에는 거의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새벽에 나갔다가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위해 호텔에 왔다가 다시 가서는 저녁에 퇴근하는 일상이었다. 한참 지난 후에는 한 직원이 가끔 호텔까지 걸어가는 거리의 반 정도인 1킬로미터 정도를 차로 데려다주었다.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 못 미쳐 대규모 묘지 입구 바리케이드 있는 곳까지인데, 그 이상은 차량 운행이 안되는 보행 전용로라서 거기서부터 숙소까지는 1킬로미터 정도만 걸으면 된다. 그런 날은 왕복 20~30분 여유가 생겨서 그동안 지나다니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던 곳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했다. 때로는 정전이 오래 지속되어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샤히진다 영묘군을 잠시 들르기도 했다. 하루에 삼십 분씩만 방문해도 여러 곳을 상당히 자세히 볼 수 있다. 그 덕에 여기 언급하는 영묘군은 매일 조금씩 보고 또 보고 했다. 모든 건축공간 방문이 그렇듯이 첫 방문 당시 찍은 사진과 나중 방문 시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면 공간이나 건축물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차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의 마우솔레움 (영묘) 건축 
마우솔레움(mausoleum, mazārs)이란 죽은 위인이나 신격화된 주요 인물의 영혼을 모시는 묘지로 한자어권에서는 능묘(陵墓) 또는 영묘(靈廟) 등으로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다. 원래 서양이나 중동 문화권의 어휘로 마우솔로스가 지은 본인의 무덤인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Halikarnas Mozolesi)에서 유래한다.

건축적으로 특정한 유형이 있지는 않지만, 한국 전통건축도 얼핏 보기에는 다 같은 것 같으면서 같은 것이 하나도 없듯이 마우솔레움 건축도 규모나 세세한 디자인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슬람 장례 건물인 투르바(Turbah, Türbe-터키어-)나 무덤의 원형을 답습하며 대개 (직)사각형 하부 위에 돔을 얹고 있다. 종종 육각형 또는 팔각형 모양이며 단일 챔버를 포함한다. 내부에는 시신들이 비문이 있는 단순한 석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원래는 풍부한 천 커튼으로 덮여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석관은 상징적이며, 실제 시신은 바닥 아래에 있다. 외부는 일반적으로 석조이며 출입구 위에 타일 장식을 하기도 한다.

 

구약성서 4대 예언자 중 한 사람인 다니엘 영묘. 다섯 개의 돔으로 구성(관의 길이 18m). 매년 1㎝씩 자란다는 전설이 있다.
다니엘 영묘 – 여름용 기도처
다니엘 영묘 조감 © Advantour


1. 샤히진다 영묘 군 
   (Shakh-i-Zinda Ensemble, 
    Necropolis 11th-15th Century + 19 Century)
사마르칸트를 여행하면서 샤히진다 영묘 군을 방문하지 않는 방문객은 아주 드물겠지만,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보는 방문객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행히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여러 번 가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방문하면 매번 새로운 것이 보인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서 끝까지 가보기도 하고, 때로는 건물 하나하나 자세히 보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아프로시압 무덤군의 언덕을 통째로 넘어서 이쪽 저쪽 반대 방향에서 보기도 한다. 

 

샤히진다 영묘군은 11~15세기까지, 그리고 19세기까지 약 8세기 동안에 걸쳐 조성된 단지로 현재 약 20여 개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 이슬람 영묘군인데, 카라한 왕조 및 티무르 왕조 시대에 조성된 곳이다. 티무리드 양식(Timurid Style)의 대규모 묘지(Necropolis)로 모스크, 마드라사 및 영묘가 혼재하는 곳이다. 이 영묘 군은 2001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사마르칸트-문화의 교차로”에 속한다. 
샤히진다는 ‘살아있는 왕’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사촌 쿠삼 이븐 압바스(Qutham ibn Abbas approx. 624~677)가 이곳에 묻혔다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영묘 군은 진입부 및 하부, 중부 그리고 상부의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4개의 열린 아치와 중앙돔으로 구성된 돔형 통로(Four-arched domed passage)인 차르타크(Chartak, Chortoq) 세 곳을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진입이 된다. 이중 가장 오래된 건물은 11~12세기(기초와 묘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로, 대부분은 14~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복원 작업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으며, 전체적인 구성과 외관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진입부를 거쳐 하부-중부-상부로 점차 올라가면서 세 곳의 차르타크 및 세 그룹의 건축군 중 특기할 만한 건축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첫 번째 차르타크 15c - 주 진입부 (밖에서 안으로) / (안에서 밖으로)
진입부 (서) 마드라사
진입부 (동) 여름 모스크
하부(下部) : 두개의 돔 영묘(익명 영묘)
두개의 돔 영묘 - 카지자데 루미 영묘

진입부엔 중앙에 첫 번째 차르타크, 서쪽에는 모스크(겨울용 + 여름용), 그리고 동쪽에는 마드라사가 있다. 
정문인 첫 번째 차르타크(다르바자카나, Darvazakhana라고도 한다)는 남향이며 1434년에서 1435년 사이 울루그 베그(1392-1449, r. 1447~1449) 때 지어진 것이라 한다. 

하부(下部)에 속하는 첫 번째 건축군은 두 번째 차르타크를 향한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36계단 시작부분 서쪽에 위치한다. 1434년에서 1435년 사이에 울루그 베그가 그의 무덤 위에 지은 이중의 돔형 영묘인 왕족 영묘의 돔과 비슷한 높이다. 이 이중 돔형 영묘(1420)는 튀르키예 불사(Bursa) 출신의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카지자데 루미(Qazizadeh Rumi, 1364~1436)에게 헌정한 건물이다. 

 

두 번째 차르타크(남쪽에서 북쪽으로) / (내부에서 남쪽을 향해)

천국의 계단을 올라서 두 번째 차르타크를 지나면 중부(中部)인 두 번째 건축군이 전개된다. 이는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전반의 영묘로 구성되어 있으며 티무르의 친척, 군인 및 성직자 귀족의 이름들을 볼 수 있다. 

 

샤디 물크 아가 영묘 (Turkan Ago Mausoleum)

서쪽에는 티무리드 기념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샤디 물크 아가 영묘가 있다. 티무르의 여형제인 투르칸 아가(Turkan Ago Mausoleum)가 그의 딸 샤디 물크 아가(Shadi Mulk Agashirin biqa)를 위해 영묘를 지었고 본인도 딸 옆에 묻혔다. 이 포털 돔형 단실구조 건물(8.65ⅹ9,85m, a single-chambered structure with a domed roof)은 1372년에 지어졌다. 1954년에 연구가 시작되어 수리되었다. 앞면과 내부는 정교한 모자이크 타일, 실크 커튼, 청록색의 고급 원단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에는 비문과 장식품이 있으며, 돔은 고급 원단으로 덮여 있다. 영묘는 8개의 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은 별과 복잡한 패턴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완의 표면과 입구 위의 구역에는 사마르칸트의 거장 건축가 샴시딘(Shamsiddin), 바드리딘(Badriddin), 자이니딘(Zayniddin)의 이름이 청록색으로 쓰여 있다.

 

시린-비카-아가 영묘 (Shirin Bika Aga, 1385-6)

동쪽에는 티무르의 여형제인 시린 비카 아가 영묘(Shirin Bika Aga, 1385-6 and shortly thereafter)가 있다. 이는 거의 정육면체 모양의 몸체를 가진 정사각형 평면으로, 16면 드럼 위에 큰 돔이 얹혀 있다. 외관은 약 8.5ⅹ12미터 크기이며, 입구 문 위로 융기된 무카르나스(종유석)가 있는 깊은 중앙에 위치한 피슈타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슈타크 주변에는 여러 개의 중첩된 장식 띠가 서예와 번갈아 가며 배치되어 있으며, 후자는 짙은 코발트블루 배경에 흰색 툴루스 문자로 아랍어로 표현되었다. 수스티엘과 포터(Soustel, Jean & Porter, Yves.)는 이 건물이 샤히진다 영묘군에서 처음으로 전체를 모자이크 타일로 덮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생산하기 훨씬 간단한 더 큰 페인트 타일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노동 집약적인 혁신으로, 최고급 기념물에만 적용되었다고 한다. 

시린-비카-아가 영묘 위쪽으로 15세기 전반 축조로 알려져 있고 지하에 둥근 납골당이 있는 팔면체 건물(Octahedron)이 있다.

 

팔각 영묘
중부(中部) 건축 군
우스토 알리 네세피(Usto Ali Nasafi, built 1360s-1380s)가 지은 영묘

이 팔각 영묘를 지나 세 번째 차르타크까지 약 90미터 정도 걷는 동안 서쪽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군인의 영묘들, 장식이 없는 영묘 등이 있고, 무덤의 주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스토 알리 네세피(Usto Ali Nasafi, built 1360s-1380s)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영묘와 14세기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영묘가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은 지속적인 발굴 및 정비 중이다.

 

14세기 영묘
세 번째 차르타크 (남쪽에서 북쪽으로) / (내부에서 남쪽을 향해)
세 번째 차르타크 내부에서 쿠삼-이븐-압바스 단지로 / 쿠삼-이븐-압바스 단지


세 번째 차르타크를 들어서서 동쪽 아치로 연결된 곳엔 여러 건물로 구성된 쿠삼-이븐-압바스 단지가 있다. 최초의 주요 건물이자 가장 오래된 건물인 쿠삼-이븐-압바스 영묘(Kusam-ibn-Abbas mausoleum)와 모스크(16세기)가 있다. 
또한 세 번째인 마지막 차르타크를 지나면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상부(上部)인 세 번째 건축군이 전개된다. 이는 서로 마주보는 세 개의 영묘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에는 투만 아타 영묘, 동쪽 끝에는 쿠트루프 아타 영묘(Kutlug oko/Qutlugh Ata Mausoleum, 1360-1361 조성)가 있다. 가장 오래된 영묘는 북쪽 끝에 위치한 호자-아흐마드 영묘(Khodja-Akhmad Mausoleum, 1340년대)다. 

 

쿠삼-이븐-압바스 영묘 및 모스크

정문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호자-아흐마드 영묘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200미터 정도다. 정문인 첫 번째 차르타크에서 두 번째 차르타크까지 약 60미터(계단 때문에 상당히 길게 느껴진다), 두 번째 차르타크부터는 북동쪽으로 축이 꺾이며 세 번째 차르타크까지 약 120미터, 거기서 마지막 건물까지 약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쿠트루프 아타 영묘(Kutlug oko/Qutlugh Ata Mausoleum, 1360-1361 조성)
투만 아타 영묘
호자-아흐마드 영묘 (Khodja-Akhmad Mausoleum, 1340년대)

 

2. 비비하눔 영묘
   (The Bibi Khanym mausoleum 14th Century/
    Saray Mulk Khanum Mausoleum (built 1399-1404)
2024년 8월 호(Vol.664) 122쪽에 소개했던 비비하눔 회중 모스크(the Bibi Khanum Friday Mosque)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같은 이름의 영묘라 출퇴근 길에 아마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 건물들 중 하나다. 

비비하눔 영묘 (The Bibi Khanym mausoleum 14th c)

사라이 물크 하눔(Saray Mulk Khanum)은 비비 하눔(Bibi Khanum)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티무르의 수석 배우자였다. 그녀는 원래 발흐(Balkh, 현재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도시)의 아미르 후세인(Amir Husayn)과 결혼했지만, 발흐 포위전(1370)에서 남편이 패배하자 티무르에게 포로로 잡혀 결혼했다. 칭기즈칸(징기스칸)의 아들 차가타이 칸(Chagatai Khan, 1183-1242)을 통해 직계 후손인 그녀의 혈통은 당시 통치자들에게 전략적 관심사였다. 티무르는 그녀와 결혼하여 구르간(왕의 사위)이라는 칭호를 주장할 수 있었고, 중앙아시아에서 전통적인 칭기즈칸 패권의 연장선으로 자신의 정권을 규정하여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티무르는 35년 동안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지만, 사라이 물크는 평생 황후의 배우자 지위를 유지했고, 티무르보다 1년 이상 더 오래 살았으며, 1406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딴 모스크 바로 맞은편에 있고, 1398년에서 1404년 사이에 세워진 유명한 비비하눔 회중 모스크다. 그녀의 영묘가 있던 자리는 원래 티무르의 무덤인 구르-에-아미르, 즉 ‘지배자의 무덤’과 같은 방식으로 마드라사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의 모습은 대부분이 추측성 복원이기 때문에 건물의 설계와 건축적 중요성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복원된 상태가 원래 설계와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이 건물은 14세기 후반과 15세기 초반 티무르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건물의 측면은 매우 높은 드럼 위에 놓인 파란색 타일 돔이다. 이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중 셸 돔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을 때만 가능해진 혁신적인 설계라고 한다. 외관은 이 유적지를 중요한 건물로 알리는 기념비적인 이완 또는 피스타크가 특징이다. 넓은 간치(ganch) 천장인 무카르나스(muqarnas) 천장이 있는 실내도 그 시대의 전형이었고, 칠해진 타일이나 더 비싼 대안인 모자이크 파이앙스(mosaic faience)를 사용했는데, 이는 개별적으로 색깔이 있는 요소들을 퍼즐처럼 맞춰 돔이나 피스타크에 화려한 장식 효과를 냈다고 한다.



3. 구르-이-아미르 영묘 단지
   (Gur-e-Amir, a mausoleum of the Turco-Mongol conqueror Timur[also known as Tamerlane] 15C)
구르-이-아미르 영묘 단지는 레기스탄에서 남서쪽으로 약 1킬로미터 정도 걸어가면 있는데, 이 영묘 단지도 앞의 샤히진다 영묘 군과 마찬가지로 2001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사마르칸트-문화의 교차로”에 속한다. 영묘단지는 원래 무함마드 술탄이 기부한 카나카 및 마드라사였다. 두 건물은 안뜰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배치였다. 현재는 마드라사와 카나카의 기초, 입구 포털과 4개의 첨탑 중 하나의 일부만 남아 있다.

구르-이-아미르 영묘 단지(Gur-e-Amir mausoleum)

구르-이-아미르 또는 구리 아미르(우즈베크어: Amir Temur Maqbarasi, Go'ri Amir, 페르시아어: گورِ امیر)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투르코-몽골 정복자 티무르의 영묘단지다. 이 영묘단지는 지속해서 대대적으로 복원되었다. 이는 영묘건축의 효시라고 할 수 있으며 특징적인 표현은 거대한 입구 포털, 푸른색의 돔, 그리고 타일의 사용이다. 아프카니스탄 카불의 바부르 정원, 인디아 델리의 후마윤 무덤, 인디아 아그라의 타지마할(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의 아내인 뭄타즈 마할의 영묘)을 포함하여 후기 무굴 영묘건축들의 선구적 표현으로 중앙아시아 건축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아 인도 문화를 따랐던 투르코-몽고인의 후손인 무갈은 인도 아대륙(亞大陸)의 지배 무굴 왕조를 세웠다. 

구르-이-아미르 (Gur-e-Amir)의 ‘구르’는 타지크어로 ‘무덤’이며, ‘아미르’는 ‘지배자’라는 의미이므로 “지배자의 무덤”을 뜻한다. 푸른색 돔이 있는 이 영묘 단지에는 위대한 군주 티무르(Timur, Tamerlane), 그의 두 아들 샤 루크 미르자(Shah Rukh, 1405-1447)와 미란 샤(Miran Shah, 1366-1408)와 그의 손자, 동양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사상가 미르조 울르그 베그(Ulugh Beg, 1425-1450 r. 1447-1449)와 또 다른 손자 무함마드 술탄(Muhammad Sultan, 1375-1403)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또한 티무르의 스승인 사이드 바라카(Sayyid Baraka, 1343-1403)도 안장되어 있다. 영묘 자체의 건설은 티무르의 후계자이자 그의 사랑하는 손자인 무함마드 술탄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인 1403년에 시작되었다. 1403년 무함마드 술탄은 27세의 나이로 전성기에 갑자기 사망하자 현재 이란 북서부 근처에 그를 일시적으로 매장했다가 1403년 무함마드 술탄의 시신을 발굴해서 사마르칸트로 옮겨 매장했고, 이 무덤은 나중에 구르-이-아미르(지도자의 무덤)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가와 여러 친척의 무덤이 더 추가되면서 무덤은 티무르 왕조의 왕실 영묘로 바뀌었다.

티무르는 악 사라이 궁전(Ak-Saray Palace) 근처 샤흐리삽스(Shahrisabz)에 작은 무덤을 준비했으나 티무르가 1405년 중국 원정 중 사망했을 때 샤흐리삽스로 가는 길에 눈이 쌓여 대신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티무르의 또 다른 손자인 울르그 베그가 작업을 완료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영묘는 티무르 왕조의 가족묘가 되었다.

구르-이-아미르 영묘 단지의 건축
영묘의 위치를 표시하는 우뚝 솟은 돔과 영묘와 축을 이루는 앙상블의 진입부에 있는 화려하게 장식된 피스타크가 양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영묘의 돔(이중 껍질 돔)은 직경 15미터, 높이 12.5미터(외관은 약 30m)에 달하고 미나레트(미나렛) 2개소 높이 역시 약 30미터로 이스파한의 아키텍트 무함마드 이븐 마흐무드(Muhammad ibn Mahmud)가 1403-1404 CE에 지었으며, 이후 울르그 베그 시대의 모든 증축도 그가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70년대에 복원을 했다. 종파는 수니 이슬람으로 분류한다.
영묘 내부는 상부는 황금빛 돔으로 마감했고 유채색, 금박 모자이크 및 투각창, 그리고 깊은 벽감과 다양한 무카르나 장식(실제는 훨씬 아름다움)으로 되어 있다. 무함마드 술탄 앙상블의 입구는 조각된 벽돌과 다양한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구르-이-아미르 영묘는 외부적으로는 단일 쿠폴라 건물이다. 그것은 건축의 단순성과 엄숙한 외관의 기념비로 유명하다. 두꺼운 골이 있는 푸른 홈이 있는 돔으로 장식된 팔면체 건물이다. 벽의 외부 장식은 테라코타 벽돌을 배경으로 파란색, 밝은 파란색 및 흰색 타일로 구성되어 기하학적 장식과 문자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돔은 깊은 장미꽃과 흰색 반점이 있는 밝은 파란색이다. 
울루그 베그(Ulugh Beg) 통치 기간 동안 영묘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만들어졌다.

 

루하바드 (Ruhabad) 영묘/마드라사/모스크

구르-이-아미르(Gur-e-Amir) 부근의 건축유산인 루하바드(Ruhabad) 영묘, 악-사라이(Ak-Saray) 영묘가 서로 가깝기 때문에 이 셋은 하나의 앙상블로 간주된다. 루하바드(14세기)는 작은 영묘로 선지자 무함마드의 머리카락이 안치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단지 내 단층짜리 마드라사에는 현재 민속품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마드라사 옆에는 현재도 사용하는 모스크가 있다. 특히 여름용 모스크의 목조 부분이 괄목할 만하다.


4. 악-사라이 영묘 (Ak-Saray Mausoleum, 1470s)
여러 번 갔다가 문이 닫혀 못 들어갔었는데, 한 날은 관리인이 친절하게 지하까지 보여주어서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또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 작업도 했던 곳이다.


최근 복원된 악-사라이 영묘(15세기)는 구르-이-아미르(Gur-e-Amir)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술탄 아메드 미르자 (Sultan Ahmed Mirza, 1469-1494년 재위) 통치 초기에 지어진 티무르 시대의 가족 영묘다. 술탄의 전임자 아부 사이드 미르자(Abu Sa'id Mirza, 1451-1469년 재위)가 사마르칸트 남동부에 지은 또 다른 가족 영묘인 이쉬랏 하나(Ishrat Khana: house of pleasure라는 의미, 1460s)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 티무르 왕조 남성의 왕조 무덤인 구르-이-아미르에 더 이상 매장할 공간이 없게 되었을 때 대체 매장지인 이쉬랏 하나 영묘에 공간은 있었지만, 이곳은 왕조의 여성 자손을 위한 곳이라 구르-이-아미르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새로운 무덤을 짓는 데에 자금을 지원해서 훨씬 작은 규모로 세웠다.

악-사라이 영묘 (Ak-Saray Mausoleum, 1470s)

지하 납골당을 만들고 그 위에 이쉬랏 하나 영묘의 것과 거의 비슷한 돔형 홀을 세웠다. 두 건물이 시간적으로 단 10년 차이다. 볼트의 내부는 금박과 함께 안료를 겹겹이 바르는 일종의 부조화인 금박 쿤달(gilded kundal)로 장식되어 반짝이는 3차원 효과를 내고, 방의 아래쪽 레지스터는 매우 정교한 모자이크 작업으로 장식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장식을 하지 않았다. 금박 메인 홀 위로 솟아오를 예정이었던 청록색 돔이 완성되지 않아 건물이 마치 목이 잘린 듯한 당혹스러운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남쪽에 있는 방의 엔필라드(enfilade)는 매장을 위해 시체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완료되었고, 건물의 작은 챔버 모서리에는 별 모양의 천장이 있는 작은 방이 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메드 미르자는 영묘를 짓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티무르 제국의 후기 수도였던 헤라트(Herat, the latter capital of the Timurid empire, 현 아프가니스탄)에 묻혔다. 여러 티무르 가문 구성원이 결국 악-사라이에 묻혔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티무르 통치자이자 천문학자 왕인 울루그 베그를 살해한 악명 높은 압달-라티프 미르자(Abdal-Latif Mirzar. 1449-1450)다. 

 

이쉬랏 하나 영묘 (Ishrat Khana: house of pleasure라는 의미, 1460s)

훗날 사마르칸트가 새로 부상한 샤이바니 왕조(Shaybanid dynasty, 1500-1599[AH 906-AH 1007])에 점령당하면서 티무르 왕조의 가족무덤은 방치되었다. 20세기 초에 지진, 풍화, 파괴 행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측면 방이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20세기 초부터 건축물은 부분적으로 복원되었고, 2007년에 더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결(結)
앞에 언급한 장소들은 모두 복원 정비가 현재 진행형이다.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수리 복원을 하고 있어서 오래전 배치도와 근래의 배치도는 많이 다르다. 없었던 건물이 복원되어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축사 667호(2024년 11월 호)에 설명했던 예배 공간(모스크)이나 교육 및 수행공간(마드라사)을 포함해서, 불멸의 사후 공간인 영묘건축에도 이슬람 건축은 대칭이나 비례, 돔, 아치, 기하학적 패턴 및 캘리그래피가 특징이며, 대규모 영묘단지인 샤히진다는 좀 다르지만 대개 정원이나 안뜰이 포함된다. 
본문에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토양이나 지질, 기후 및 숭배하는 기본이 다르고 솜씨가 다를 뿐 건축공간의 수요에 따른 건축행위는 대개 비슷하다. 서울에 남아 있는 궁궐도 자세히 보면 조선왕조가 시작된 후 점점 필요한 주거공간 등을 위해 창경궁 등에 건물들을 조성해 나가듯이, 사마르칸트에서도 통치자들 가족의 매장지가 모자라 근처에 대체 매장지인 영묘들을 조성한다. 가족영묘인 아쉬랏 하나 영묘는 현재는 폐허로 있지만 아마도 다음 번 방문 시에는 복원수리가 되어 있을 것으로 예견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치도를 소개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구르-이-아미르 영묘단지엔 마드라사와 무함마드 술탄의 카나카도 복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마르칸트에서는 부하라나 히바와는 조금 다른 타일 기법의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건축사 667호(2024년 11월 호) 119쪽에 첨부한 그림처럼, 밑그림을 그린 후 조각타일을 하나하나 예리한 돌로 다듬어서 조립하듯이 붙이는 기법이다. 사마르칸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한 가문이 수리·복원을 담당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처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전승·계승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조 사원의 기둥 조각을 전승하는 기능도 같은 맥락이다. 문명의 발달단계는 개발도상국이나 개발국가나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요즈음 지어지는 이슬람 사원들을 보면 모양을 답습하고 재료를 현대식으로 바꿔서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건축사 664호(2024년 8월 호) 123쪽에 서술했듯이 2016년 시작해서 2018년 완공한 우즈베키스탄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영묘는 세계유산 영향구역 내에 신구가 공존하도록 지은 점을 다시 한번 언급한다. 

아쉬웠던 점은 읽을 수 있는 자료가 너무 없어서 고생했다는 점이다. 구 소련 시절에 대부분의 유적 연구결과가 러시아어로 기록되어 있어서 까막눈이라 자료를 보고도 해독이 안되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자동번역기를 들이대더라도 최소한 제목이라도 읽을 수 있어야 자료를 선별할 수 있다. 귀국 후 결심을 하고 자료의 제목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2024년 2월부터 뿌쉬낀 하우스에서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몇 달 후 잦은 출장으로 인해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다시 용기를 내볼까 한다. 

구르-이-아미르 영묘단지 입구



<다음 호(마지막 호)에 계속>
마지막 호는 사마르칸트 건축유산의 특징 및 기법과 재료, 그리고 기타건축 
1. 기타 건축 -천문대, 시나고그, 주거공간
2. 여름 사원의 목조기둥 등/조각 타일/기하학과 문양
3. 이슬람 건축의 주요 요소와 특징 등을 중심으로 다룬다.

 

 

 

 

 

글․사진.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PhD,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1986~현재)

 

APEC등록건축사(KR-263). ICOMOS 국제목조학술위원회 공동회장(2023~2026). ICOMOS 건축유산 구조분석 복원에 관한 국제학술위원회(ISCARSAH) 부회장(2014~2023). UIA 워크프로그램 건축유산•문화정체성 국제공동디렉터(2014~2021). 국가유산청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위원 (2021.7~2024.7). 건축역사, 건축설계, 설계스튜디오, 한옥 및 전통문화 강사역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박물관 리모델링 총감독 위촉 전문가(2023)

choinsou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