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고혼진리퍼블릭 사옥대지의 맥락 속 다양한 콘텐츠 품어낸 고혼진리퍼블릭 사옥 2025.3

2025. 3. 31. 10: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KOHONJIN Office KOHONJIN Office that embraces a variety of content in the context of the site

 

 

 

<고혼진리퍼블릭 사옥> © 천영택

 

고혼진리퍼블릭 사옥은 대전 서남부 신도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대전의 도심을 종단하는 갑천을 향해 흐르는 진잠천이 북쪽에 인접해 있는 부정형 대지를 터로 삼고 있다. 사옥을 포함한 주변 풍경은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아파트가 숲속 나무처럼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1단계 개발이 종결된 2012년 즈음에 들어선 낮게는 20층에서 높게는 30층 규모의 아파트와 건축선을 충실하게 채운 근린생활시설 사이의 바람길을 따라 시선이 아슬아슬하게 흘러나가는 곳이다. 

고혼진리퍼블릭 사옥이 들어서기 전에 건물 터는 인접한 행정복합센터나 주변 상가를 방문하는 주민들이 주차하는 장소로 사용되던 공터였다. 건물이 들어서기 전 오랫동안 비어 있어 사람과 자동차가 자유롭게 드나들던 대지에 관한 기억을 지금은 시선의 자유로운 관통으로 이어가고 있다. 대지 동쪽으로는 4차선 도로 넘어 아파트 단지가 있고, 서쪽에 있는 3층 높이의 원신흥동 행정복지센터로 향하는 2차선의 일방향 도로가 대지의 긴 변을 건드리며 지나간다. 바로 건너편에는 건축사가 10여 년 전에 진잠천을 조망할 수 있도록 북향으로 설계한 4층 규모의 상업건물이 있고, 대지의 남쪽으로는 4층 규모의 다른 회사 사옥이 새롭게 들어서 있어 건축사에게는 이 장소도 이 장소의 변화도 낯설지 않다. 

배치는 채광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채광이 업무의 효율성과 실내공간의 쾌적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업무시설 설계에서 빛 환경에 관한 고려가 중요하다. 대개 남향 배치가 제1의 선택이 되는 이유다. 동쪽의 4차선 도로에 면하는 전면부에는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한 2층 높이의 매스를 배치하고, 동쪽 도로에서 일방향 도로로 연결되는 북쪽 면에 배치한 코어를 품는 5층 높이의 사무동을 북쪽으로 바짝 붙여 세워 주변의 아파트 단지와 직면해 발생할 수 있는 시각적 간섭을 줄여주며, 남쪽에 있는 4층 높이의 건물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의 영향을 최소화해 사무동에 자연채광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적 배치를 하고 있다. 한편 건물 내부에서 외부를 향한 조망의 질은 건물 사용자의 심리적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입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빛과 실내의 관계를 다루는 창만큼이나 창밖 풍경의 질 역시 설계의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실의 기능과 창밖 풍경의 차이에 따라 창문은 좁고 긴 고창이 되기도 하고 전면을 다 채우는 창으로 바뀌기도 한다. 

빛을 물리적 대상으로 간주하여 채광의 효율성을 먼저 고려할 것인지, 혹은 자연 요소를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여 자연을 향해 열린 조망을 확보하거나 건물의 영역에 자연을 포섭하는 계획을 세울 것인지 고민하여 선택한 흔적이 보인다. 이 대지는 이러한 두 개의 중요한 건축적 고려가 상충하여 건축사에게 어려운 건축적 선택을 강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대지에 부과된 현실적 제약요건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지구단위계획 지침에 따라 건폐율 60% 이하, 용적률 200% 이하 그리고 규모는 5층 이하로 계획해야 하는 조건을 수용해야 했고, 또한 허가과정에서 시 조례의 적용을 받게 되어 처음 계획과 달리 지하 주차장을 삭제하며 건축공간을 덜어내야 했다.

건축사는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대지의 북동쪽 각지에 주 출입구를 내 정면으로 삼았다. 도로의 축 선상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주 출입구를 계획하여, 북쪽이나 동쪽 도로변에 계획했다면 협소한 도로 폭에 의해 인지하기 어려웠을 정면성을 효과적으로 연출해 내고 있다. 보행자 눈높이에서 보이는 건물 외관의 인상은 푸른 유리 때문에 하늘을 반사한 물빛 같다. 얕게 보는 것은 허락하지만 속은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건축선을 따라 대지를 둘러싼 건물은 내부에 이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예쁜 모델만큼이나 예쁜 중정을 감추고 있다. 하루의 일상을 마감하고 휴식하는 밤이 오면, 조명을 밝히고 푸른빛의 커튼을 열어 관대하게 속살을 보여준다. 깊은 내부의 중요한 영역까지 눈길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중정 벽천의 곡면을 휘감아 올라가는 계단 위로 전달하여 수변 공원의 가로등을 지나 진잠천으로 보낸다. 가로공간과 공간을 품은 매스 그리고 외부공간과의 점진적인 관계 설정 양상은 이 건물의 큰 매력이다. 

 

 

<고혼진리퍼블릭 사옥> © 천영택
<고혼진리퍼블릭 사옥> © 천영택
<고혼진리퍼블릭 사옥> © 천영택


또한 이 건물은 건물 사용자 이해, 기능의 합목적적 처리,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같이 좋은 건축이 공유하는 특질을 갖고 있다. 건물의 기능은 통신판매를 통해 혁신적인 프리미엄 피부관리 제품을 판매하는 업무시설이다. 업무공간은 팀장 1인과 직원 10인으로 구성된 한 팀을 모듈로 하여 구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텔레마케팅 활동이 이루어진다. 고객 응대는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반복적 설명과 권유와 연계된 상황에 의해 정신적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럴 때 창밖에 마련된 벽천을 따라 흘러내리는 귀여운 폭포와 100일은 거뜬히 꽃피울 수 있는 배롱나무가 연출하는 풍경이 주는 치유의 힘은 건축사가 사용자에게 나눠 주려 했던 배려의 발현이다. 중정의 지표면에는 큰 배롱나무를 심고 벽천을 지지하는 중정 주변의 저층 건물 2, 3층 옥상정원에는 키 작은 배롱나무를 심어 원근법적 스케일의 변화를 강조하며, 친숙한 조경 요소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부정형 대지에 순응하여 조금씩 꺾어간 건물의 외벽선은 전면도로를 따라가 생긴 긴 입면의 무표정을 덜어주고, 과장하지 않은 작은 파격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유쾌하다. 건축사가 건물 형태를 다듬어 가는 방식은 매개 요소나 영역의 삽입이 특징적이다. 서쪽으로 길게 뻗은 한 쌍의 외벽선은 맞벽을 넘어 공간으로 확장하다가 그 사이에 공간을 품고 멈췄다. 사무동 남쪽 면에 달아맨 알루미늄 캐노피도 아래에 공간을 품고 있다. 이러한 처리 수법은 평면 처리에서도 볼 수 있다. 중정을 품고 있는 저층부의 옥상에 있는 안전유리 난간은 외벽의 수직선에 맞춰 설치하지 않고 안으로 이격하여 설치했다. 판석을 깐 옥상정원에 설치하는 난간과 외벽의 수직선 사이 영역에는 자갈을 깔아 바닥 마감 재료를 달리하는 수법으로 공간의 영역을 분리시키며 텅 빈 공간에 입체감을 주고 있다. 또한 평면에서는 원형 기둥을 내부로 숨겨 외벽 면과 기둥의 열 사이에 전이 공간이 스며들게 했다. 실내와 외부의 급격한 조우를 완화시키는 전이 공간은 부드러운 무형의 인지적 경계를 형성하며 실내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있다. 

대지의 맥락을 강조하는 건축사에게 건축의 형태 조성 과정은 외부로부터 부과된 논리에 의지하는 자기 위임이 아니라 태초부터 땅속에 묻혀있던 형태를 발굴해 내는 고고학자의 작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그 모양은 다양한 콘텐츠가 섞인 유기질의 속성을 갖는다. 지구단위계획 지침과 시 조례, 대지의 특성, 건물의 기능, 건축주의 꿈과 사용자와 업무의 특성이 부과한 건축설계 문제를 기술과 예술 역량으로 사용자의 복지를 쓰다듬는 전문적 태도를 견지하며 풀어낸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글. 김덕수  Kim, Duksu 국립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김덕수 교수 · 국립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국민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 미시간대학(University of Michigan)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고, 건축설계 전문화를 주제로 하는 건축 사회학적 연구로 텍사스 에이 앤 엠 대학(Texas A&M University)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의 방향성이 산만하고 학문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단점에 대해 반성은 하고 있지만,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전문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 있다.
dsk@hanba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