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아파트 단지, 하나의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 2025.2

2025. 2. 28. 10: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Seoul e-pyunhansesang Urban Bridge Designing an apartment complex, a city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 © 홍성준

 

건축은 여러 가지 관점이 존재하며 다양하게 실현된다. 유사 이래 건축은 사용자 목적에 의해 진행되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근대 산업사회가 이전과 다른 출발점에서 건축이 만들어졌다. 사용자 목적의 건축이 건축 목적과 이유가 선명하고 구체적이었다면, 산업화 시대 이후의 상당수 건축은 경제적 출발점에서 시작되고 현실화된 경우가 많다. 시장 자본주의가 확장된 20세기부터는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건축되었고, 이른바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에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건축은 과거부터 존재했지만, 수요가 급팽창하면서 전통적 사용자 요구에 의한 건축보다 생산의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그 대표적 건축 유형이 주택이다. 조선에서 식민지, 그리고 해방 이후 근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대별로 급증하는 주거 수요를 공급이 해소하지 못했다. 전통이 남아 있던 시대에는 한옥 형태로 생산되었고, 점차 수공예로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한옥 공급은 줄어들었다. 인건비 부담이 공급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옥에 대한 대체제는 흔히 말하는 서양식 주택, 즉 벽돌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지는 양옥으로 진행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 정책에 따라 이런 흐름이 급변한 것이다.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재정이 약한 정부는 민간 공급을 유도하는 정책을 개발하게 된다. 그 선택지는 고밀도 중고층 형식의 공동주택(이하 아파트)이었고, 민간 공급을 유도하기 위한 재원 마련으로 선분양 후시공 정책을 진행하게 된다. 주택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돈으로 구입하는 대상인데, 보지도 않고 구입하는 정책을 집행한 것이다. 모험에 가까운 이 정책은 초반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정착되지 않았지만, 의도적인지 우연인지 모를 주거 부동산 가격 폭등은 선분양 후시공 정책을 쉽게 안착시킬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아파트는 말 그대로 건설사나 시행사들에겐 사업승인만 받으면 일확천금을 얻는 영업수단이 되었고, 공장에서 벽돌 생산하듯 똑같은 평면과 형태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워낙 주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시절이라 날개 돋치듯 팔렸고,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폭등해서 주거 품질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먼저 구입한 사람들은 분양받은 즉시 일 년 연봉 이상을 벌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의 건축적 고민과 대안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국가정책의 우선순위가 품질보다는 공급과 생산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1980~90년대에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가능한 목표였을지 의문이 들지만) 대상으로 아파트 공급정책이 마련되었다. 때문에 아파트는 건축적 관점에서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부동산 대책이나 기술 생산성 대상의 연구로만 논의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한민국 주거의 60% 이상을 아파트가 차지하게 되었고, 도시 경관의 과반 이상은 이런 아파트 건축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파트 건축의 방향과 문화적 가치로 언급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여러 가지 시도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생산되는 아파트 중 한자리도 안되는 비율이었고, 오히려 5대 신도시 이후로는 건축적 고민과 모험은 정부 주도 아파트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통상 건축의 비평 또는 문화적 대상으로 언급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 건축의 미학적 측면, 창작으로 건축사의 관점, 도시 맥락적 관점이나 역사적 가치 등등 다양한 인문 철학적 요소들이 존재해야 비평이나 문화적 대상이 될 수 있다. 설령 구체적 건축사의 철학이나 관점이 빈곤하더라도 그 시대, 시절을 관통하는 미학적 공통점이라도 있어야 한다. 미학적 공통점이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이 자체가 없었다. 만들기 편한 기능적 부재와 필요에 의한 창문 구성이고, 법규와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배치만 존재할 뿐이었다. 생산성 극대화는 표준화된 소수의 평면을 가지고 유형화된 건축 형태를 만들게 된다. 유형화된 건축은 동일성으로 나타나고, 주거블록의 단순화로 나타나 지역과 장소에 대한 정체성을 와해시킨다. 더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할 수 있다. 사실 건축을 수익성 또는 생산의 결과로만 보면 이런 접근은 다른 나라에도 나타나는 결과다. 홍콩과 싱가포르, 중국의 상당수 도시 일부를 보면 동일 형식의 유형화된 고층 주거로 지역과 장소에 대한 특징을 찾아내기 어렵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도 같다.
생산에 기반한 공급, 즉 주거 건축 정책은 지역과 장소에 대해서 무차별적이고 상당히 비인격적 일방적 경관을 강요하는 도시가 되어버린다. 이런 문제점에 반응하듯 LH의 공공주택 설계공모전이나 SH의 공공주택지구 설계 공모전 등이 시도되었다.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런 시도들이 닭장 같은 아파트라는 오명을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이고, 이제는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중 최근 완성된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강일지구의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사례가 된다.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는 2019년 서울시 고덕강일 10블록 공동주택 현상설계 공모 당선작으로 약 5년의 기간에 걸쳐 2024년 2월에 준공한 593세대 아파트다. 대지면적 35,251제곱미터에 다양한 층수의 주거동을 배치하면서 ‘저층+중층+고층’의 입체적 구성이 특징이다. 593세대라는 규모는 결코 작지 않은 가구 수이나, 1만 5,000세대까지 있는 아파트 단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규모에 속한다.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 역시 게이트 커뮤니티(Gated Community)로 폐쇄적 단지 구성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구성하고 있는 배치 방식이다. 게이트 커뮤니티는 도시 전체로 보았을 때 폐쇄적 공간 구성으로 도시 전체와 분리된 개념이라 세대수가 많을수록 여러 문제가 많은 구성이다. 보행의 연속성이 단절되거나, 교통흐름의 체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생활가로의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아 보행가능성이 떨어진다. 거대한 블록 전체가 주거시설로만 구성되어 공간의 기능적 분리로 인한 공간 이용시간대의 비활성화 등의 문제가 발생된다. 이런 문제점에서 본다면 593세대 아파트 단지는 상대적으로 보행 활동성이나 기존 도시와 연계성이 비교적 유리하다.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 © 홍성준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는 우선 보행의 시각에서 단지 내이긴 하나 다양한 길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2000년대 이후 국내 다수의 아파트 단지들이 지층에 있어서 다양한 조경과 산책로를 구성하고 있으나, 도시가로를 걷는 가로산책의 접근은 약하다. 가로산책은 다양한 거주자들의 소통 과정이기도 한데, 제인 제이콥스는 가로의 행위에 주목해서 도시 삶에 대한 유쾌함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런 시선에서 본다면,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는 전원의 삶에 대한 로망에서 출발한 정원 산책의 개념보다는 도시에서의 가로 산책과 정원 산책의 두 가지 경우수를 모두 배치 구성했다. 설계자는 지속가능한 소통을 공동주거단지에 만들고 싶다고 했고, ‘관계의 소통과 지속가능한 장소성’의 가치를 제안했다. 이런 제안을 실제 계획된 설계에 반영해 본다면 공간의 소통 표현이 될 수 있는 길은 다양한 볼륨을 가진 주거동들의 ‘어우러짐’속에서 길을 디자인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다양한 층수의 볼륨을 가진 주거동들로 인해, 보행자는 이동하는 길에서 지루하지 않은 ‘장면화(Sequence)’를 경험한다. 특히나 4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자연의 변화까지 덧붙여져서 역동적인 보행동선의 리듬감을 경험하게 된다. 설계 개념처럼 인접단지와 연계되거나 느슨한 경계를 통한 생활가로와 소통공간의 형성을 만들어냈다. 이런 동선은 설계자들이 주장했던 공동체의 공간적 연결로 해석될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이 더 확장되기 위해서는 단지의 외부와 내부가 좀더 연결되고, 가로의 행위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교적 소비공간’이 존재했다면 확연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아파트 건축 설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각 세대의 평면들, 즉 단위공간의 다양성과 이들의 조합이다. 세대 규모가 다양할수록 각 가구들이 처한 경제적, 공간적, 기능적 요구들이 복잡하고 이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차이는 차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개별 건축을 설계할 때보다 더 섬세하고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데, 설계자는 이를 다양한 주거 건축 볼륨과 형식으로 접근했다. 고층과 중층, 저층의 구성은 각각의 다양한 조망과 기능, 시설과 공간 접근을 디자인했고, 이는 거주자로 하여금 ‘날마다 새로운’ 장소에 있는 경험을 갖게 한다. 획일적이고 반복적이어서 무감각해지는 공간이 아닌 각각의 특징이 선명한 좌표를 읽게 하는 감각의 주거 단지가 되는 것이다. 
지층의 다양한 레벨은 조경과 맞물리면서 ‘작은 도시’에 있음을 느끼게 하고, 크고 작은 건물의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건축외장 소재는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에 있지 않고 살아있는 세포로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음을 거주자가 깨닫게 한다. 동질화된 단지는 자기 정체성까지 모호하게 해서 ‘드러나는 과시욕구’를 자극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형식의 단지는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거주자들이 ‘굳이’ 과시 욕구를 자극하지 않는다.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의 조감도 사진을 보면 확연하게 주변의 민간 분양 아파트단지들과 다름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경제적 수익과 생산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통상의 아파트 단지들이 만들어내는 위압감과 지루함이 이 단지에는 없다. 억지춘향으로 만들어낸 수직 수평의 페인트 그래픽 없이 건축 형태와 규모, 다양한 재료로도 풍부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이는 건축의 외관 디자인으로 이어져서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다양한 입면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도전과 시도들의 아파트 단지들의 구성된다면, 수십 년간 비난을 받았던 ‘닭장’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쓸 수도 없고, 성냥갑 역시 과거의 서랍으로 들어갈 표현이 될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하나의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아름다워야 하며, 거주자들의 인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야기는 다양한 소통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소통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건축의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다양한 디자인과 장식, 재료와 색상이 고려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노력 하나 하나가 가장 매력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서울 e편한세상 어반브릿지>는 그런 방향의 가능성을 설계로 증명한 사례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 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