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8. 09:3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Byeongsan Seowon (Byeongsan Private Confucian Academy) Small Thoughts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과거에 이루어진 일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단점을 반성하고 장점을 미래를 위한 초석으로 삼기 위함이다.
과거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끊임없이 스며드는 존재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문제는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건축사가 과거의 내적 의미와 본질을 깊이 탐구할 수 있을 때, 과거에 대한 접근 방식은 창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모방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병산서원은 1575년(선조 8년), 풍악서당을 현재의 지역으로 옮기면서 ‘병산서원’이라 명명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1592년(선조 22년) 임진왜란 중에 전소되었고, 1605년(선조 38년) 안동 사림의 주관 아래 현재의 위치에서 재건되었다.
이 서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교 건축물로, 1978년 3월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가적 유산이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는 전통 건축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과거의 지혜를 현대와 미래에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배치계획 알아보기<그림 1>
병산서원의 축
서원은 성리학적 질서와 위계를 잘 표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지배 계급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특히 서원 내에는 사당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외향적 경관도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먼저 축(axis)에 대해 살펴보자. 건축에서 축을 찾는 것은 형태와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축은 방향성과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설정된다. 병산서원에서는 입교당과 만대루를 기준으로 세로축을 설정하고, 마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형태와 공간이 축을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병산서원은 조화로운 짜임새와 시각적 힘이 돋보인다. 입교당은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강학 공간이고, 만대루는 편히 쉴 수 있는 유식 공간이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특이하게도, 사당(존덕사)과 장판고는 축의 선상에 놓이지 않고 축을 살짝 비껴 배치되어 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사당의 중건 시점이 입교당보다 늦어 후에 추가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둘째, 학문적 성향의 차이가 공간 배치에 반영되었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당이 위로 올려진 형태로 배치되었음에도, 병산서원에서 중심은 사당이 아니라 입교당이라는 것이다. 이는 건축사가 입교당을 서원의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간주했음을 시사한다. 참고로 사찰 건축에서도 중심축 상의 대웅전 뒤편에 건물을 배치하지 않으며, 이는 대웅전의 위계와 중요성을 나타낸다.
또한, 동재와 서재는 입교당 쪽으로 살짝 벌어지게 배치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입교당의 위계를 강조하고, 서원 건축에서 위계의 중요성을 잘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서원의 안정감을 강조하기 위해 대칭적이고 정적인 건물 배치와 함께 동적인 시각적 조화를 이루어 안정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구릉 지형을 활용해 매스(mass)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각 매스의 위계를 설정했다. 이는 각 건축물의 위계를 고려한 세심한 설계임을 보여준다.
병산서원의 채 나눔
과거 유럽 건축은 자연과 인간을 대립 관계로 간주했다. 즉,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유럽 건축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개체로 모든 기능을 집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유럽 건축사들이 거대한 건축물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1508년에서 1580년에 활동한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최초로 건물의 중심축을 자연으로 연장시켰다”고 평가받는다. (니콜라우스 페브스너, 유럽 건축사 개관) 그러나 이러한 경향과 달리, 한국 건축은 자연과의 동화를 추구해왔다.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 속 남겨진 영역을 자연과 공유하는 개념으로 전통 건축을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한국 전통 건축의 자연과 어울리는 아늑함과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은 인간 척도(human scale)를 근본으로 삼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병산서원은 인간 척도에 맞는 크기의 건축물들을 기능에 따라 나누고, 이러한 건축물들로 건축 군을 형성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인간 척도에 적합한 크기 덕분에 거부감이 없으며,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휘한다.
한국 전통 건축은 자연과 건축이 상호 공존한다고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건축에서 채 나눔은 하나의 개체에서 여러 개의 채로 분절되며, 각각의 채는 개체로서의 장소성을 지니면서도 상호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관계된 채들이 모이며 집합체적 관계성을 이루게 된다.
또한,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공간의 비움과 채움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자연과 건축물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어주었다.
병산서원은 채 나눔을 통해 공간이 엇갈리고 겹쳐지며 다양한 공간감과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시선의 개방, 공간적 장치, 위계의 차별을 두기 위한 매스의 단계적 상승 등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병산서원의 경사지 배치<그림 2>
하늘을 나는 새가 보는 풍경과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인간은 대개 1.5∼1.6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이를 통해 세상을 느낀다.
조감도<사진 1>와 투시도의 차이점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하늘에서 보듯 사물을 조망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시각적 경험이 인간 척도(human scale)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평지에 건축물을 계획하는 것과 경사지에 계획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경사지에 건축물을 배치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건축물의 위계를 조성하고, 인간 척도에 부합하는 입체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함일 것이다. 같은 크기의 건축물이라도 경사지에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경사지에 건축물을 배치하는 매력 중 하나는 내려다보는 시각적 경험이다. 내려다봄으로써 시선이 아래 영역을 조용히 탐색하고, 공간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과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병산서원은 완만한 경사지에 채 나눔 배치를 적용한 좋은 예이다. 축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구성된 이 서원은 마당을 중심으로 가장 중심 건물인 입교당을 경사면 상부에 배치하여 위계를 드러낸다. 동재와 서재는 대칭으로 좌우에 배치되어 균형감과 안정감을 준다.
또한, 만대루를 경사면의 가장 하부에 배치하여 점층적인 구성을 완성했다. 이러한 배치는 단순히 건축물의 위치를 정하는 것을 넘어, 공간적 조화를 통해 경사지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병산서원 들어가기
병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좁은 도로로 이어져 있다. 낙동강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병산을 마주하고 화산을 등진 채 고요히 자리 잡은 병산서원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조선시대 서원 건축으로 손꼽히며, 아늑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순우 선생님은 그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한국 건축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 건축은 조촐하고 의젓하며 한국의 자연 풍광과 그 크기가 알맞다. 즉, 사면의 자연 풍광 속에 조화시켜 그대로 편안한, 그리고 자연의 한 끝이 집 뜰일 수도 있고, 이 집 뜰은 담을 넘고 들을 건너서 사위의 자연 속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 한국 건축의 생리인 것이다.”
또한 그는, “한국 건축은 먼 곳에서 바라볼 때 한층 눈 맛 나는 특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금부터 ‘한국 전통 건축의 교과서’라 불리는 병산서원을 탐구해 보려 한다. 낙동강 쪽에서 서원을 바라보면, 복례문과 만대루의 지붕만이 웅장하게 드러난다. 병산서원은 배산인 화산을 등지고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모든 서원이 복례문과 만대루 뒤에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진 2>
복례문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병산서원 입구 역할을 하는 솟을삼문, 즉 복례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복례문이 만대루를 가로막으며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원래 병산서원의 정문은 풍수 원리에 따라 측면에 있었으나, 1921년 정면으로 이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에 설치된 복례문의 위치는 당시 건축사의 의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복례문의 위치가 조금만 달랐다면, 병산서원의 전경은 완전히 다른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현재 복례문이 만대루의 전경을 가로막고 있으며, 정문을 통과해 보면 복례문과 만대루 사이의 공간이 너무 협소하여 만대루 앞 정원이 초라해 보인다.
광영지라는 연못 역시 초라한 인상을 준다.<사진 3> 만대루에 앉아 병산 쪽을 바라볼 때도 복례문의 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복례문의 위치는 먼 곳에서 만대루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앞으로 당겨 배치했어야 했다. 이렇게 배치했더라면 만대루의 전경이 잘 드러나고, 정원의 크기도 조화로워졌을 것이다.
더 나아가, 복례문 자체가 없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복례문의 부재는 병산서원의 경관과 만대루의 기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만대루
복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대루라는 건축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 건축물의 아래 뚫린 공간을 통과하여 누하진입을 하게 된다.(누하진입: 누각 아래를 통해 진입하는 방식, 사진 5)
누하진입의 사례는 사찰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과 마주하는 곳에 세워진 1층 또는 2층 구조의 전각을 누각이라 한다(사진 4). 사찰 건축에서는 대웅전으로 가는 세 개의 문, 즉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이 있으며, 이 중 마지막 문인 불이문의 역할을 누각이 맡는다.
불이문은 “이 문을 왕래하는 이들이 누구나 진리를 깨닫고 잊었던 본성을 되찾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불이문을 통과하는 것은 속세와 구별된 부처의 세계에 들어섰음을 상징한다.
사찰 건축에서 누하진입은 대웅전의 위엄과 위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병산서원에서 누하진입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강학 공간인 입교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누하진입은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입교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물들의 위계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만대루 아래로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좁은 계단이 나타난다.<사진 6> 계단은 공간적 상승감을 부여하며, 다음 단계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건축적 장치다. 만대루 아래의 계단은 잠시 시각을 차단하여 속도감을 줄이고 긴장감을 조성하며, 앞으로의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계단 끝에 다다르면 숨을 고르며 좌우를 살펴보게 된다. 정면에 시야가 고정되면서 입교당과 동·서재가 만들어내는 공간적 위계가 느껴지고, 마당의 중심에 서게 된다.<사진 7> 이 과정은 단순히 입교당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계단을 통해 수직 상승감을 체험하고, 한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리듬을 느끼게 한다.
출입문에서부터 적절한 거리와 눈높이를 유지하도록 설계함으로써, 입교당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어 긴장감과 권위가 고조된다. 기념비적 공간이나 신성한 공간은 순서상 맨 끝에 배치될 때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유홍준 선생님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병산서원이 병산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병산서원의 정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건축적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를 통해 자연공간을 건축공간으로 전환하는데,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만대루다”라고 언급했다.
만대루는 뼈대만 있는 건축물로, 내부와 외부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공간의 역할을 한다. 비어 있는 건축물로 설계된 만대루는 병산과 낙동강을 내부의 작은 중정과 연결시켜 병산과 낙동강을 병산서원의 정원으로 변화시켰다.<사진 8>
매개공간은 전이영역 또는 전이공간이라 불리며, 상반된 두 영역을 연결해 주는 중간 지대다. 이 공간은 내부와 외부의 상호 관입을 이루기 위해 내부 공간을 비우거나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한국 전통건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매개공간의 활용이다.
만대루가 비어 있지 않았다면 병산과의 단절은 물론, 내부 중정이 답답한 작은 마당으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작은 마당은 공간의 크기보다는 정적인 성격을 의미한다.<사진 9> 또한, 만대루가 없었다면 병산과 낙동강의 전경이 내부 공간을 압도해 위압감을 주고, 내부 공간은 그 역할을 잃었을 것이다.<사진 10>
자연이라는 커다란 공간 속에 인간을 위한 공간을 한정하여 3차원의 공간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4차원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 건축사의 임무가 아닐까? 만대루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비어 있는 공간, 열린 공간, 경치를 감상하는 공간이자 놀이 공간으로서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는 건축물이다.
만대루의 1층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은 정질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다. 이러한 주춧돌 위에 세워진 기둥은 생동감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자연스러운 기둥은 생기와 열정을 품고 있으며, 육감적인 곡선미를 보여준다. 인간 척도에 맞춘 이러한 설계는 건축물이 넓더라도 결코 압도적인 크기로 느껴지지 않게 한다.<사진 11>
마당
마당(안뜰)은 한국 전통 건축에서 중심적인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건축에서 마당은 단순히 비워 둔 공간이 아니라, 장소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우리 전통의 마당은 행위의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정원으로 꾸미지 않았다. 안뜰은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공간은 단순한 비움이 아니라 주변과의 연계를 통해 발전하고 목적성을 달성할 수 있다.
일본의 건축사 요시노부 아시하라는 그의 저서 외부공간의 미학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당 공간의 폭이 좁고 벽이 높으면 협소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반면, 마당 공간의 폭과 벽의 높이가 비슷하면 균형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벽의 높이보다 폭이 두 배로 넓어지면 공간이 널찍한 느낌을 준다.”<그림 3>
병산서원의 마당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며, 균형감과 널찍한 공간감을 모두 지닌 것으로 보인다. 병산서원의 마당 비율은 동재와 서재 사이의 거리 11.6m와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의 거리 16.4m로 구성되어 있다. 이 비율은 마당 공간을 시각적으로 안정적이고 널찍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흥미로운 점은 입교당에서 내려다본 마당과 만대루에 앉아 바라본 마당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입교당에서 내려다본 마당은 만대루의 지붕이 낮은 위치에 있어, 널찍하고 시원한 인상을 준다. 반면, 만대루에서 입교당을 향해 바라본 마당은 아늑하고 균형감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입교당에서 바라본 마당과 만대루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아 병산을 바라보면, 만대루가 마치 조망을 담아내는 그림의 틀처럼 펼쳐진다. 그 그림 너머로는 자연 병풍처럼 병산이 펼쳐져 있다. 이 공간은 건축물과 자연이 상호 공존하며 서로를 인식하게 해주는 느낌을 준다.
만대루의 긴 지붕 위로는 병산이 보이고, 지붕과 마루 사이로는 낙동강이 흐르며, 마루 아래로는 대문 너머의 길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사진 12> 병산을 바라보고 있자면, 건축물이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을 건물군 내부로 끌어들인 듯한 인상을 준다.
만대루는 동재와 서재 사이에 맞추어 작게 짓는 대신, 두 별채의 지붕선을 넘어 길게 설계되었다. 긴 지붕의 양 끝단 처마 모서리가 별채와 겹쳐 보임으로써 만대루는 실제보다 더 길어 보이며, 지붕은 수평 방향으로 확장되고 팽창된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만대루를 통해 들어오는 병산의 풍경도 실제보다 더 넓고 크게 느껴진다.
입교당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본 만대루는 동재와 서재 사이에 중첩되어 훨씬 중량감 있고 힘이 넘친다.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면, 중첩된 건축물들이 그림처럼 공간을 구성하며 동재와 만대루 사이에 명확한 안 모서리를 형성한다. 이러한 구성은 공간의 질을 높이고, 공간을 한정시켜 친밀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마당은 마치 따뜻하게 포옹받는 듯한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그림 4>
입교당 마당은 강학 공간이라는 목적성을 가진 정적 공간으로 느껴진다. 만약 만대루가 그림 4와 같이 두 별채 사이로 건축되었다면, 어떻게 느껴졌을까? 마당의 강력한 한정된 공간은 상실되고, 만대루는 홀로 서 있는 듯 보였을 것이다. 명확한 안 모서리가 사라지면서 마당의 아늑한 이미지는 없어지고, 어수선한 장소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대루가 다른 서원의 누각에 비해 과도하게 큰 규모로 지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병산서원과 그 주변 자연 경관의 조화를 극대화하기 위한 설계로,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재와 서재
벽은 공간을 시각적으로 차단하여 한정된 공간을 형성한다. 벽을 활용하여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사면을 단순한 벽으로 구분하여 변경 가능한 명확한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 경우 벽은 결정론적 사고보다는 모호함을 통해 공간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둘째, 사면의 벽을 장식 등으로 고정된 형태로 구성해 명확하고 변하지 않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벽은 시각적으로 차단된 공간을 형성하지만, 회랑을 설치하면 한정된 공간이 풍요로운 공간으로 변화한다. 유럽에서는 중세 수도원 건물에서 Cloister(안뜰을 둘러싼 회랑)을 만들어 중정을 풍요롭게 구성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도 경복궁 근정전 앞 광장을 에워싸는 회랑을 통해 광장이 답답하지 않고 풍요롭게 느껴지도록 했다.
한국 전통 건축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처마를 돌출시키고 툇마루를 설치하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은 회랑과 유사한 매개 공간의 역할을 하며, 마당을 더욱 풍요롭고 개방감 있게 만들어준다. 병산서원의 마당 역시 건물의 벽체로 완전히 차단되지 않고, 처마와 툇마루 사이로 벽체가 드러나 마당을 풍요롭고 안락한 공간으로 연출한다.<사진 13>
동재와 서재의 내부 공간 구성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방과 한 칸의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성은 벽체가 처마와 툇마루 사이에 조용히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움과 채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시각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형태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보이게 한다.
입교당
서원의 중심인 입교당은 강학 공간으로, 규모에 걸맞은 대청마루를 갖추고 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채움과 비움이 조화를 이루어 답답하지 않고 풍요로우면서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사진 14>
유럽 건축에서는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시각 동선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일본 건축에서는 특정 장소에 직접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체험 동선을 주로 사용한다. 한국 전통 건축은 이 두 가지 동선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입교당 대청마루 북쪽 벽면의 3개의 개구부는 시각적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이 개구부를 열면 입교당 배면의 뒷마당이 살짝 보이는 시각 동선이 되어, 배면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반대로 개구부를 닫으면 뒷마당의 사당과 장판고를 직접 보기 위해 배면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체험 동선을 형성한다.
우리나라 여름은 고온다습한 기후로 통풍이 매우 중요하다. 입교당의 강학 공간인 대청마루에는 ‘들어걸개문’을 설치하여 여름에는 자연스럽게 통풍을 유도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 따뜻함을 유지했다. 이 들어걸개문은 건물 형태의 변화를 유도하며,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들어걸개문은 분합문이라고도 불리며, 네 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장씩 접을 수 있고, 접은 문을 포개면 하나가 된다. 네 개의 문이 하나로 접히면 이를 들어 올려 상부의 걸쇠에 거는데, 이 방식 때문에 ‘들어걸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들어걸개문은 자연을 받아들이는 한국 전통 건축의 상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한국전통건축에서의 선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은 선(線)에 있다.
특히 한국 전통 건축의 지붕선은 살아 숨 쉬는 듯한 유려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동재와 서재, 만대루의 용마루에서 내려오는 길고 가느다란 숫기와의 선들은 수직으로 연속되며 단정하면서도 경쾌한 리듬감을 준다.<사진 8>
입교당의 측면 지붕선 역시 아름다움을 더한다. 리드미컬한 숫기와의 선과 하늘을 향해 살짝 들린 처마 끝은 과하지 않은 추녀 곡선과 어우러져 마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사진 15>
만대루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처마의 곡선과 서까래의 선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듯한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사진 16> 또한, 만대루 2층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면 들보와 서까래의 자연스러운 선들이 물결치는 낙동강의 오래된 나룻배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17>
한국 건축미의 특징은 자연에 맞서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데서 비롯된다. 병산서원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자연을 품은 건축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물이 자연 속에 연속적으로 스며든다는 점이다.
예술은 느낄 수 있는 어떤 감각적인 것이지, 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술은 인간과 본능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더해질 때, 건축 예술에 대한 충족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믿는다.
글·사진. 이장백 Rhee, Jangbaek (주)린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이장백 건축사 · (주)린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범건축, 기전건축, 원양건축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24년, 삼육대학교에서 12년 동안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동탑산업훈장(제2787호)을 수상하였다.
rheejangbae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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