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최고봉 대만 옥산(玉山 : 3,952m) 등정기(2024년 11월 19일 ∼ 22일) 2025.2

2025. 2. 28. 09:2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Climbing Yushan, Mount Jade in Taiwan (3,952 m) – the Highest Peak in Northeast Asia (November 19-22, 2024)

 

 

 

 

대만(타이완)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 지진 지역으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을 이루고 있다. 중앙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으며, 우리의 백두대간에 해당한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이 284개에 이르며, 그중 옥산 주봉(主峯)이 가장 높다.

옥산(위산, Yushan)은 용이 누워 있는 듯한 산세와 옥황상제가 사는 곳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산은 동북아시아 최고봉으로, 일본의 후지산보다 200미터 더 높다. 7년 전 동남아시아 최고봉인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산(4,095m)을 등반한 이후, 3천 미터 이상의 고산을 오른 것은 오랜만이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산장 예약이 쉽지 않아 이번에야 다녀오게 되었다. 등반 4개월 전부터 선착순 예약 후 추첨으로 대기자가 2,000명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첫날 타이베이 도원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마침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해외 원정 산행에서 숱하게 비를 만났던 터라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의현(嘉義縣)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산행을 시작할 즈음 다행히 태풍이 중국 쪽으로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배낭에 우의와 등산 장비를 철저히 갖춘 뒤 이른 아침 옥산을 향해 출발했다.

도중에 아리산(阿里山, 2,481m)을 경유했는데, 중앙산맥 위로 구름에 가린 고봉들이 히말라야를 떠올리게 했다. 석회 성분이 많은 이 산에는 편백나무(히노키)가 많다. 일제강점기 50년 동안 수많은 나무가 일본으로 실려 갔다고 한다. 아리산은 원주민들의 거처였으며, 지금도 산 위에 마을이 남아 있다. 산비탈에는 우렁차와 녹차 밭이 눈에 띄었다. 차 덕분인지 이곳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90세가 넘는다고 한다. 풍경은 중국과 일본의 모습을 합쳐 놓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1> 중앙산맥 고봉 위로 드리워진 구름

아리산국가풍경구 앞에서 내려 잠시 산세를 감상한 뒤 옥산의 입구인 타타가로 이동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가자 멀리 고봉 위로 흰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사진 1>
우리나라는 늦가을 단풍이 절정이지만, 이곳에서는 단풍을 볼 수 없었다. 대신 중국 옥룡설산과 뉴질랜드 남섬 설산에서 보았던 이끼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쯤 가다 보니 “玉山國家公園” 표지석이 눈에 들어왔다.

오전 9시 40분, 타타가 동푸산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포장도로를 따라 약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동푸관리사무소가 나타났다. 현지 산악가이드가 입산 신고를 한 후, 우리는 9인승 미니밴에 탑승해 옥산 등산로의 시작점인 타타가안부(2,610m)로 이동했다. 약 15분이 걸렸다.

 

<사진 2> 등산로 입구(타타가안부)에서 산행 시작 전 일행들과

타타가안부에 도착한 후, 일행 다섯 명과 함께 무사 등정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친 뒤 본격적인 산행길에 올랐다.<사진 2>

 



타타가안부에서 출발 배운산장까지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8.5킬로미터였다. 국내 산이라면 대수롭지 않을 거리지만, 산행 초반부터 약간의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북알프스와 페루 마추픽추에서도 겪어 보았던 증세였는데, 이럴 때는 그저 천천히 걷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일행 대부분이 50∼60대였는데, 가장 고령인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산증 약을 미리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머리가 아프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배낭의 무게는 어깨를 짓누르고, 숨은 가빠졌다. 다행히 가이드가 중간중간 멈춰 쉬는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갈수록 길은 험해졌다. 좁은 돌길이 이어졌고, 오른쪽은 벼랑이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마치 중국의 차마고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을 깊게 몰아쉬며 주변 경치를 눈에 담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고행이 아닌 수행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산행을 시작한 지 약 2시간 후인 오전 11시 7분에 맹록정(2,838m)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원숭이를 닮은 바위와 대만 지도를 연상시키는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배운상장 5.8km”를 알리는 이정표를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가던 가이드의 모습이 안개 사이로 보였다. 60대 초반인 그는 수십 년간 옥산을 드나든 베테랑이었다. 문득, 악천후 속 백두산 종주 당시 담배를 물고 백운봉을 성큼성큼 올라가던 조선족 가이드가 떠올랐다. 40년 넘게 등산을 해왔지만 이들 앞에서는 아직도 아기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 3> 흰눈썹꼬리치레 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걸어가다 보니 오후 12시 50분에 백목림휴식정(3,096m)에 도착했다. 여기서 약 20분간 쉬며 도시락으로 김밥, 샌드위치, 주스를 먹었지만, 식욕이 없어 절반도 먹지 못했다. 산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각자 배낭에 넣어 내려가야 했다. 눈앞에는 줄기가 하얀 白木林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그 위 봉우리에 짙은 운무가 흩어지면서 간간이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때마침 이곳의 보호종인 흰눈썹꼬리치레 새 한 마리가 나타나 눈을 맞추었다. 마치 노고를 위로해 주는 듯한 그 모습에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다.<사진 3>

다시 배운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남은 거리는 3.5킬로미터였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거대한 암벽이 나타났다. 이곳은 대초벽(大峭壁)으로, 여기 암벽에 등을 기대면 기(氣)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진 4> 운무로 덮인 산의 모습

길을 계속 가면서 자태가 아름다운 거목과 오래된 고목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향나무는 마치 춤을 추듯 서 있었다. 바위틈에서 피어난 야생화를 보며 걷다 보니, 멀리 운무로 덮인 산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했다.<사진 4> 저 멀리 배운산장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가까워 보이는 거리와 달리 여전히 1시간은 더 걸어야 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도 발걸음을 이어갔고, 해지기 전인 오후 4시 50분에 오늘의 목적지인 배운산장(排雲山莊, 3,402m)에 도착했다.

배운산장은 116명이 머물 수 있는 2층 구조의 침상을 갖추고 있었으며, 외국인에게는 금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하고 24인만 배정된다고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침낭을 대여받고, 2층 끝방의 2층 침상으로 올라가 잠시 누웠다. 피로를 풀기 위해 일행에게서 받은 고산증 약을 한 알 복용했지만, 머리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해발 3천 미터에서는 산소가 30% 줄어드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사진 5> 배운산장에서의 저녁노을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밥과 국, 반찬을 식판에 담아 먹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아 절반 정도 남겼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와 보니 산 아래로 저녁노을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하현달과 펄럭이는 대만 국기가 어우러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사진 5>

일찌감치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밤 8시에 소등했지만, 옆자리에 누워 있던 외국 남자들이 코를 심하게 골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통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머리 통증은 계속됐고, 잠은 오지 않아 그저 누워 있다가 이튿날 새벽 2시에 일어났다.
“동북아 최고봉 옥산 등정, 고난 속에서 찾은 성취”
새벽 3시에 정상을 향하여

잠을 한숨도 못 자 머리가 띵하고 멍한 상태였다. 침낭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배낭에 챙긴 뒤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가 보니, 깜깜한 하늘에 왕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 산장에서 본 광경만큼의 감흥은 아니었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아침으로 흰죽을 조금 먹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새벽 3시에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산장에서 정상인 주봉까지의 거리는 2.4킬로미터였다. 길은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었고, 갈수록 험한 돌길로 이어졌다. 오른쪽은 깎아지른 벼랑이어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앞서 가던 일행 중 한 사람이 고산증으로 구토를 하기도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앞사람과 불빛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끈기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정상 아래에서 세찬 바람을 막아주며 대피소 역할을 하는 풍구(風口)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건네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옷을 껴입은 뒤 배낭과 스틱을 두고 마지막 힘을 내어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사진 6> 동틀 무렵 하늘 모습

길은 미끄럽고 날카로운 바위로 이어졌으며, 옆은 끝을 알 수 없는 벼랑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안전시설은 없었고, 차가운 쇠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했다.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하며 서서히 날이 밝아졌다. 발밑에 펼쳐진 구름 위로 황금빛 하늘이 물들어가며 장관을 이루었다.<사진 6>

마지막으로 숨을 몰아쉬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먼저 도착한 가이드가 하이파이브를 청했고, 나는 감탄하며 “아∼∼” 소리만 낼 뿐이었다. 먼저 온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렸다가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 소리는 요란했다.
“운해와 함께한 여정, 옥산 정상에서의 감동”

 

<사진 7> 정상에서 보는 풍경
<사진 8> 하산길에

한자 문화권에서 자연은 곧 하느님이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하느님, 옥황상제의 음성처럼 들렸다. 사방으로 펼쳐진 산세는 마치 청룡이 꿈틀거리듯 신령스러웠다. 용이 승천하는 듯한 그 기운이 산을 따라 퍼져 나가고 있었다.<사진 7>

‘벼랑 끝까지 올라간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다’, ‘감동의 크기는 고난에 비례한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장엄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운해의 멋진 광경을 본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하산을 시작했다. 정상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은 세상을 다 얻은 듯 가슴이 벅찼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지만, 발길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사진 8> 내려오는 길에 뒤늦게 올라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거의 쉬지 않고 걸은 끝에 오전 7시 20분에 배운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에서 가이드가 제공한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운 뒤, 8시 30분에 하산을 서둘렀다. 여유롭게 지루한 길을 따라 내려오니 오전 11시 50분에 타타가 안부에 도착했다. (하산 소요 시간 : 3시간 20분)
1박 2일 동안 22.4km를 걸은 여정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마음은 한층 편안해졌다. 이후 타이중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타이베이 호텔에 도착해 피로를 풀었다. 호텔에서의 여유는 산장에서의 경험과는 극명히 대조적이었다. 다음 날에는 아류지질공원과 고궁박물관을 관람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다녀와서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다르고, 삶의 방식 역시 제각각이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에 무엇 하러 힘들게 그런 산에 가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고통 속에서 성취감과 삶의 보람,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고난을 감당해 내면 그것이 살아갈 힘이 되고,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여정에서 돌아온 다음 날 새벽, 여느 때처럼 동네 뒷산인 불암산에 올라갔다. 역시 우리나라 산이 가장 좋았다.

 

 

 

 

 

 

글·사진. 이종호 Lee, Jongho 시원 건축사사무소

 

 

이종호  건축사 · 시원 건축사사무소

 

연세대 공학대학원을 졸업(공학석사)했다. 현재 시원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풍수지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대한건축사협회 등산동호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1회 간향건축문학상 수상 및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특별자치시) 수필 공모전에서 당선(국무총리상)했고, 노원문화정보센터 등의 설계공모에 당선된 바 있다.

leewoon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