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천 물길공원 계획자하문紫霞門 2025.2

2025. 2. 28. 09:5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Baegundongcheon Water Way Park Masterplan Jahamun

 

 

 

 

발원지 백운동천(白雲洞天), 물길 백운동천(白雲洞川)
동천(洞天), 하늘이 열리는 신선의 경역.
백운동천은 청계천 발원지 중 하나로서 청계천 지류 중 가장 긴 청계천 원류로 확인된다.
白雲洞天은 발원지요 白雲洞川은 물길이다.
한양도성의 주산인 북악산과 인왕산을 경계 지으며 능선과 계곡을 형성한다. 옥류동천과 만나 청계천으로 흐르는 수계를 형성한다. 1925년 암거화 된 뒤 지금은 길이 되어 자하문로와 새문안길로 명명되지만 아직도 길 아래엔 또 다른 흐름이 있다. 삼청동길이 된 삼청동천과 함께 경복궁을 좌우로 감싸 흐르며 청계천 초입에서 합수되는 한 물길을 이룬다.

 



풍경과 시, 문화와 인물
백운동(白雲洞) 저 속엔 흰 구름이 그늘졌는데,
백운동 밖엔 홍진(紅塵)이 깊었네 -강희맹(姜希孟)

백운동은 인왕동, 청학동, 쌍계동, 삼청동과 함께 조선시대 한양의 5대 경승지 중 하나로서 용재총화, 아정유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등, 시대를 관류하며 그 풍경이 기록으로 남겨진다. 강희맹을 비롯한 조선의 사대부들은 각자의 시어로 이곳 풍경들을 남겼으며, 겸재 정선의 담대한 미감은 그 풍경들을 시어로 승화시킨다. 거친 듯 섬세한 붓질로 쓸어내린 인왕제색도의 감성 풍경이 장동팔경첩의 백운동과 창의문의 구체적 실경으로 접사된다.
대한제국 법무대신 동농 김가진이 1919 상해임시정부로의 망명 전까지 수많은 활동을 했던 공간은, 지금 새로운 문화생성을 위한 장소로써 또 다른 미래를 기다린다. 구한말, 눈 내리는 창덕궁 애련장과 비 내리는 백운장 몽룡정이 하나의 풍경으로 실재하게 하는 사람의 역사를 그려본다.

 



이 땅의 형상 지적도, 지번도
백운장 일대의 지적현황은 일제강점기 1912년 최초의 근대적 측량이 이루어진 이후 2024년 현재까지 변화가 없는 것이 쉽게 확인된다. 자하문터널과 개발이 제한된 보전녹지지역이 다수 포함되고 종교시설이 입지한 연유일 것이다. 구거의 형태와 동일한 지적현황이 100여 년이 넘는 세월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사람이 그린 땅이 지도다. 지도의 물길만 가지고도 지형은 복원된다. 소유의 땅금만으로도 지형은 복원된다. 물길과 물길 사이는 능선이 되고 계곡의 길이는 산의 높이를 뜻한다. 두 개의 큰 물길로 모여지는 샛 물길들이 만들어내는 불연속선들의 중심선들, 산과 산의 능선이 된다. 길은 물길에 의지해서 만들어지고 물길을 거스르는 것은 고갯길이다.
이 땅 위에 최초의 땅금이 그어질 때, 소유의 경계는 자연형상을 따르고 땅과 사람의 동거형식을 반영한다. 관계의 흔적을 추상한다. 땅금은 땅의 형국을 사람의 삶 속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이 땅의 변화과정에 대한 구조적 기록이다.

 

 


물길회복은 숙명이다
집들은 나무보다 빨리 자라고 도시는 숲보다 빨리 커진다. 기억할 과거를 잃어가는 땅,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들을 찾기 힘든 땅.
우리가 정주할 풍경의 무게를 잃어버렸다. 기품을 잃어버렸다.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것들을 찾기 힘들다.
길들은 새롭게 생겨나게 마련이지만 바퀴들을 위한 길은 더 이상 물길을 흉내내지 않는다. 길은 머무를 마음이 없다. 달려갈 다른 곳에 마음을 외도할 뿐, 주변을 외면하며 주변의 이야기들을 귀담으려 하지 않는다. 길 위에서는 아무런 축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길은 우리의 사회상이며 현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길은 문화의 외연이다.
물길을 덮고 계곡을 뚫은 자하문터널, 상처를 보듬을 치유가 절실하다. 물길회복의 숙명을 함축한다. 그러나, 이 땅의 개발 및 매각 추진은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일단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생태 및 환경, 그리고 역사복원은 불가역적이다. 돌이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다. 사유화된 물길 영역, 공공영역으로서의 환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대한제국의 거시적 운명과 공명하는 백운장, 땅의 역사
대한제국 시절, 동농 김가진이 비원장의 직책으로 창덕궁 중건을 완수하고 남은 자재와 땅을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이 땅에 백운장을 일구었다 알려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우리 땅의 국권이 상실되고, 이 땅 또한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곧이어 반환소송을 이어가지만 3.1운동과 1919년 동농의 임시정부로의 망명, 1922년 동농의 사망으로 소송은 중지된다.
해방 후 환국한 동농의 아들 김의한이 미 군정으로의 반환소송을 다시 이어가면서 김구, 이승만, 김규식, 오세창,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와 건국사를 같이한 역사적 네 인물의 탄원보증에 대한 연명 서한이 동시에 작성된다.
1950년 2월 “그 건물의 기지와 운치를 손상치 말고 장차 서울을 자랑할 만한 목적을 이루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가 있었으나, 그해 6·25 동란 발발과 김의한의 납북으로 반환소송이 끝이 난다.
모리배들과 일상적 파렴치한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조차 최소한의 염치도 없이 이 땅 위에 흘린 세속적 탐욕들. 누군가의 진정한 주인에게 돌아가야 할 운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1년 5·16군사혁명 과정인 1963년 모르몬교에 매각되어 현재까지 점유된 이 땅은 다시금 우리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는 그 당위성에 순명하려 한다.

 



우리 시대의 자하문(紫霞門)
조선말 국유 모범림 조림지역으로 자연림 식생 및 생태환경이 주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오톱 1등급 지역이다. 오랜 시간, 인공의 개입이 최소화된 생태보존지역이다. 1907년부터 1911년까지 소나무, 참나무, 오리나무 등의 지속적인 식재사업이 이뤄졌고, 1913년 백운동의 송림 간벌이 시행됐다. 물길 복원과 연계해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산과 물이 공존하는 도시의 환경적 가치를 배가하고 인왕산의 열린 입구를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백운동천 물길을 따라 없던 길이 생기고 터널로 훼손된 토목영역, 겸재 정선의 그림 속 풍경 백운동을 환경과 생태, 지리와 역사를 품은 인문영역으로 복원한다. 노새 끌고 등짐 메고 고개 넘던 예전의 자하문/창의문. 한 달 차량 통행량백만 대가 넘는 자금의 자하문터널. 우리 시대의 새로운 자하문으로 거듭난다.
도성 안을 내려보고 북악을 올려보는 망악루. 백운공원을 배경으로 품는 쉬어가는 휴게실, 바람 드는 책집, 햇살 망루가 된다. 풍경이 된다.

 



학술자원으로서의 문화자원
조선시대 경화사족의 별서공간이 근대화 과정을 통해 변모해가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록물들이 현존한다.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그 시대의 지형 및 백운장 측도, 1954년 재해 복구를 위한 실측도면과 계획도면, 소송과정에서 작성된 해방직후의 수기도면, 귀속재산 매각소청을 위한 측량도면 등, 각종 도면과 사진, 신문기사들과 더불어 하나의 연대기를 형성한다.
이처럼 다양한 학술적 자료가 축적된 문화자원도 드물다. 창조적 복원이 소구되는 소이연이다. 청운문학도서관, 윤동주문학관 등, 주변의 문화시설과 인접하면서 프로그램의 공유와 확장 및 연계가 밀접하게 이뤄진다.

 

 

 

 

창의문도 _ 겸재 정선 ① 백운장 집터 ② 자하문 터널

 

白雲洞天은 발원지요 白雲洞川은 물길이다. 왼쪽의 물줄기가 백운동천이다. 청계천 발원지 중 하나로서 청계천 지류 중 가장 긴 청계천 원류로 확인된다. 위쪽에 있는 창의문을 중심으로 왼쪽이 인왕산, 오른쪽이 북악산이다. 백운동천이 인왕산 자락에서 흘러내림을 알 수 있다. 백운동천 왼쪽 언덕이 지금의 자하문터널 위다.

 

 

 

백운동도 _ 겸재 정선 (1730년. 동농문화재단 소장)

 

성벽의 오른쪽 완만한 곳에는 문루가 사라진 창의문(彰義門)이 보인다. 화면 하단에 나귀를 탄 사람은 아마도 창의문으로 난 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오는 사람일 것이다. 이 그림은 정선이 그의 나이 55세에 그린 것인데, 김가진의 구장품으로 추정된다. 1903년 김가진이 백운동에 백운장(白雲莊)을 지을 때 오세창이 기념으로 백운동도를 선물했는데, 김가진은 그 감사 편지에 ‘선물 받은 백운동도가 정선의 55세 작품’이라 언급했다.

 

 

 

백운동도 _ 겸재 정선(영조2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운동 안은 백운에 가리고, 백운동 밖은 홍진(紅塵·붉은 티끌, 세속의 기운)이 깊다. 외길을 굽이돌아 구름 속 드니, 홀연 놀랍게도 성시(城市)는 숲 속에 묻힌다. 시냇물 콸콸 졸졸 제 소리 간 곳 없고, 장송(長松)은 서로 가려 바람에 슬피 운다. 안개덩굴 사이사이 등성이 드러나나, 화당(華堂·화려한 집)은 조용하여 언제나 그윽하다….

 

 

 

백운동천(白雲洞天) _ 각자바위 탁본 (1903년. 김가진 후손 소장)

 

백운동천(白雲洞天)은 김가진이 백운장을 지을 때 그곳 암벽에 새긴 글로, 광무 7년 계묘년(1903) 중추(8월)에 썼다는 관지가 함께 새겨져 있다.

 

 

탑바위길 / 윗집터길 / 갈래다리길
오름계곡길
계곡다리길 / 바위계단길 / 오름축대길
중간집터길

물길과 걸음길. 기존 지형을 따라 이미 형성되어 있는 숲길들.
장소를 안내하고 풍경길을 인도한다.

 

 

집터

이승만, 의친왕, 오세창 망명객들의 방문이 기록으로 남겨진 터.
김가진, 김의한, 정정화 망명의 회한이 흔적으로 남겨진 터.

 

 

청계천 수원 중 가장 긴 계곡, 청계천의 발원지.
낙엽층을 걷어내고 바위를 드러내어 물길을 회복한다. 상류와 하류의 끊어진 물길을 생명으로 이어준다.

 

 

바위

서울, 화강암의 도시 북한, 도봉, 북악, 인왕 등이 하나로 연결된 화강암 덩어리.
부엽토, 낙엽들을 걷어내어 겸재 정선의 바위산, 풍광을 드러낸다.

 

 

 

백운장 엽서(1925년 추정)

‘백운동천’ 각자바위 옆의 몽룡정

동농 김가진이 직접 현판을 써서 붙인 정자 ‘몽룡정’. ‘광무 7년(1903) 초가을’이라는 휘호 일자가 보인다.

 

 

 

백운동 몽룡정 (白雲洞 夢龍亭)1914년, 57.0×165.0

동농 김가진의 백운장 경내에 있던 몽룡정을 그린 그림이다. ‘경산(景山)’이 그렸으며, 우측 상단에 김가진이 직접 쓴 시가 있다. 하단 오른쪽으로‘백운동천’ 바위 글씨의 ‘天’자가 보인다. 

 

부용정(芙蓉亭)과 부용정 현판
2. 애련정(愛蓮亭)과 애련정 현판
관람정(觀纜亭)과 관람정 현판

김가진은 1903, 1904년 농상공부대신 시절 비원장 직책을 겸직했다. 창덕궁 후원의 여러 전각과 정자들을 중건, 수리하기 위한 고종의 칙명을 받았다. 백운장의 중건 및 수리 기간이 곧바로 후속되어 창덕궁 후원에서 남은 자재와 땅을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전언과 일치한다. 부용지 권역의 부용정, 희우정. 애련지 권역의 애련정. 금마문. 관람지 권역의 관람정, 존덕정. 옥류천 권역의 소요정, 태극정 등, 편액 15건과 주련 74건의 현판 탁본, 대부분의 실물이 현존되고 있어 김가진과 백운장, 그 인물과 장소에 대한 실체적 감회를 더욱 새롭게 한다.

 

 

 

백운동 물길공원 _ 다섯 개의 물집, 그리고 책집

 

 

 

 

동천(洞天). 하늘이 열리는 신선의 경역.

북악을 경계지으며 인왕을 품어 하늘로 열리는 청계천의 발원지 백운동천. 한양도성 내 5대 풍경명소. 대한제국시대부터 국유모범림 조림지역으로서 비오톱 1등급 생태환경지역. 바위를 드러내고 물길을 이어준다. 인왕산 진입마당으로서의 공원화 계획이 요청된다.
터널로 훼손된 토목영역. 환경과 생태, 지리와 역사를 품은 인문영역으로 복원한다. 능선과 계곡을 형성하는 수계(水界)를 회복한다. 이 땅의 정체성, 도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생명으로서의 땅, 물길과 숲길, 자연과 함께하는 메트로폴리스. 인문도시 서울, K-CITY를 천명한다.
겸재정선의 백운동, 창의문으로 회화된 실경산수. 구한말 수준 높은 우리 건축물의 실측도면과 사진 등 다양한 기록들이 현존하는 학술적 의미. 4대에 걸친 독립운동 가족사가 이야기로 남아 있는 문학적 서사. 이승만, 김구, 김규식, 오세창과의 깊은 인연이 한 건의 문서에 동시 기록으로 남겨진 땅. 그래서 땅은 역사인 것이다.

청계천 원류로서의 물길풍경을 재현하면서 공원도서관, 숲속 도서관으로서 책 읽는 공원인 백운문학공원으로 계획된다. 기존의 물길과 지형, 그리고 집터를 따라 다섯 개의 물집과 세 개의 책집이 걸음길을 형성한다.
영역의 최상부에 발원지수공간1가 계획되며 몽룡정과 각자바위수공간2, 백운장수공간3, 저류지수공간4, 영역의 초입에 벽천지수공간5가 계획된다. 수공간으로 이루어지는 파빌리온, 풍경으로서의 걸음길, 다섯개의 물집으로 계획된다.
또 다른 물길과 걸음길을 따라 백운산장책집1, 집터산장책집2, 자하문망악루책집3, 책읽는 작은 도서관인 책집을 계획한다. 기존의 청운문학도서관과 긴밀히 연계된다.
푸른 폐부로 정화되는 힐링 장소로서 숲으로의 초대가 이루어지는 도심 속 쉼터, 백운문학공원으로 거듭난다.

 

 

 

 

자하문紫霞門

터널로 훼손된 토목영역.
환경과 생태, 지리와 역사를 품은 인문영역으로 복원한다.

 

자하문
등짐지고, 노새 끌고, 걸어넘던 과거의 자하문(창의문). 
한달 100만여 대 차량이 들고나는 현재의 자하문터널. 미래 시대의 실질적 자하문으로 새롭게 상징된다. 터널 좌우는 녹색생태로, 터널 상부는 생태망루로,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생태거점이자 인문도시 수도 서울의 정체성을 천명한다.
땅이 품은 역사를 밑거름으로, 상처에서 치유로의 승화과정이 이야기로 서사되는 여정. 인문회복을 통한 도시의 지속가능성, K-CITY 수도 서울의 문화역량을 천명한다.
자하문터널 상부에 자리하면서 도시와 자연의 극적 경계를 형성한다.
백운동 문학공원의 녹색 배경을 품고, 위압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도시와 대응한다. 햇살과 바람을 끌어들이며 책 읽는 망루, 망악루 책집이 계획된다.

 

 

 

책집 하나 _ 망악루

 

 

물집 셋 _ 백운장

백운장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 자료와 사료를 수집 분석한다.
고증을 거쳐 구조를 복원하고 공간을 재현한다. 복원과정 또한 학술적 기록으로 보존된다. 집터는 물을 담는 저류지로서 수공간을 형성한다. 일부분은 투명한 외피를 통해 안과 밖을 풍경으로 겹치게 하고 숲지붕, 하늘지붕을 천장으로 치장하고 암벽과 수벽을 풍경벽으로 인도한다.
투명한 외피가 밖으로 드러내며 숲과 하늘이 지붕이 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사랑채 영역의 닫힌 외피와 행랑채 영역의 열린 외피가 극적 대조를 이룬다. 목구조의 그림자가 안으로 드리우며 겹치는 동적 풍경을 경험한다.

 

 

 

책집 셋 _ 백운산장


청운문학도서관의 입구로서 백운문학공원의 입구가 된다. 무겁지 않은 여러 프로그램들을 수용하면서 작은 책집으로서의 휴게소가 된다. 만남의 장소로서의 친근함이 배려된다. 수공간들을 연계하면서 지형 위에 떠 있고 지형 속으로 스며든다.

 

 

 

 

물집 넷 _ 저류지


물을 담고 순환하는 저류지. 수면과 그늘지붕이 낮과 밤의 빛으로 상호 간섭하는 침묵의 공간. 사색의 프롬나드를 풍경으로 회화한다.

 

 

물집 다섯 _ 벽천지(壁泉池)

예전의 물길이 자동차길로 변화된 자하문로.
길을 굽어 돌아 오르면 마주서는 자하문 터널.
열린 수공간이 펼쳐지면서 白雲洞川 물길을 벽천으로 새긴다.
돌축대로 형성된 기존지형이 공간으로 전환된다.
프로그램 영역으로서 인왕산 오름길의 마중공간이 된다.
다리를 건너 진입하며 외부의 수공간이 내부로 연계된다.

 

 

 

 

 

 

글·사진. 허서구 Huh, Seogoo 허서구건축사사무소

 

 

허서구  건축사 · 허서구건축사사무소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the Berlage institute에서 잠시 공부했으며 현재 허서구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6년간 양평에서 작업했고,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문화비축기지 등의 작품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seogoo4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