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변두리 이야기’꿈같은 수원, 변두리 생태계를 사수하다 2025.2

2025. 2. 28. 09:2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City, suburban tales’ Dream like Suwon, protecting the outskirts ecosystem

 

 

 

1. 미래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까
(1) 정체성
수원(水原)이라는 지명은 일전에 ‘매홀(買忽)’, ‘수성(水城)’, ‘수주(水州)’ 등으로 불렸다. ‘물’이라는 뜻이 이름에 들어 있다. 수원은 통일신라시대(경덕왕)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설이 있으며, 매홀에서 ‘매’는 ‘물’을, ‘홀’은 ‘고을’을 말하는 ‘물 고을’이라는 발음 표기로 추정된다. ‘수성군’은 고려 건국 초기 태조 23년(940년) 수주(水州)로 승격되어 원종 12년(1271년) 수원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면서 ‘수원(水原)’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한자 지명인 수성, 수주, 수원의 명칭은 모두 매홀, 즉 ‘물 고을’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 수원부→수원군→수원부로 변화하다가, 조선 시대에 수원도호부에서 수원군→수원부→화성유수부→수원군 등으로 바뀌고, 1949년 8월 15일 ‘수원시’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 어색하지만 오늘 ‘수원특례시’로 부르고 있다.


수원은 6.25 전쟁 이전부터 교통의 요지였으며, 자립도가 대체적으로 양호한 도시였다. 물론 1차 산업인 농업도 활발해 도시 변두리에서 먹을 만큼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다. 수원은 화성(水原城, 수원성)을 중심으로 교통과 성(城) 내·외 민가(民家)가 형성되었다. 필자가 수원에 정착할 때만 해도 시멘트 블록과 판자로 지은 판자촌이 도시 변두리에 꽤나 형성돼 있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강남에서부터 후끈 달아오른 치맛바람은 수원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도시의 확산 속도는 택지개발, 구획정리사업과 함께 구 시청의 살림살이를 신청사로 옮겨가면서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주거지와 주택확산은 집 장사꾼들의 손에 농락당하는 서막에 이르렀다. 초기 개발은 그냥 빈 땅에 빨간 벽돌, 이른바 양옥집을 꽂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시절 도시 변두리는 출·퇴근 청량리행 전철과 즐겨 타던 83번 시내버스에서 복사꽃, 배꽃, 벼 나락이 익어가는 들판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너무도 빨리 달아났다.


수원은 오늘이 있기까지 한때는 대기업의 지방 세수가 행정 자립에 큰 기여를 했으며, 타 지역에서 들어오는 인구 증가, 이른바 외지인 유입이 꾸준히 늘면서 어느 순간 원주민보다 이주민이 더 많아졌다. 2018년 즈음에는 아파트 세대수가 주택의 가구 수를 앞서기 시작했다. 수원은 수도권 과밀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주거 밀도를 아파트로 대체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지난 세월 수원의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계획은 역사의 도시로 굳어진 이미지 안에 갇혀 있었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세상 변화에 그때그때 안주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판단된다. 

 

1950~1960년 수원화성과 성 내·외 민가가 자리하고 있다 ⓒ 수원화성박물관
1950년 화성 (화서문과 서쪽 공심돈) 멀리 농지가 펼쳐진다 ⓒ 수원화성박물관

지금 수원은 선대들이 살아온 지난 시절보다 도시의 성장은 꽤나 성숙해 보일지 몰라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개발, 변질 등으로 곪아있는 지역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혼탁한 환경 속에서 ‘구 주거지의 아파트 짓기’는 아쉽게도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간단하게 짓기와 거주에 대한 현재 사례를 들자면, 시청과 수원역 사이 남·북으로 길게 위치한 구 주거지를 동·서로 가르는 상당한 면적의 도시장벽이 하나둘씩 콘크리트 덩어리로 메워지고 있다. 이 지역은 수원의 도시 형성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주거환경개선과 도시환경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조금씩 점차 뭉개버리고, 깍두기 같은 모양으로 장승 같은 돌덩어리가 빡빡하게 세워질 것이다. 아마 이 사업이 완성될 즘에는 수원을 동·서로 분리하는 거대한 무언가가 형성될 것이고, 이곳은 서울에서 밀려난 외지인의 제2의 고향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평생 살아온 이들은 미리 통째로 웃돈을 받고 팔았든지, 거주환경이 취약한 수원 변두리로 이사할 것이다. 앞으로도 원주민들은 꾸준히 양보해야만 할 것이고, 이는 짓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진행될 것이다. 한마디로 ‘짓기는 있는데 거주는 불공평’하다.
이 지역의 ‘비움과 채움’의 미학에 대한 진정성은 잘못된 자본주의 경제학에 따라 이미 사라졌다. 주거지는 공동체의 위계도 질서도 망가졌다. 단지계획의 학문적 방법론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으며, 건축디자인의 정체성은 더욱 그렇고, 도시적 언어에 대해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 동네가 우리 단지로 바뀌어, 또렷한 무리의 영역으로 범접하지 못하는 ‘비대칭 마을’들이 군집하고, 소통할 수 없는 ‘비대칭 민심과 감정’만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단지 안팎의 사회적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시민들을 바라보자면, 이웃이라는 커뮤니티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점차 유리 벽 같은 차가운 장벽만 높아질 것이다. 분화해 가는 악성 세포처럼 잘게 쪼개지고, 집단화와 이기주의가 만연할 것이다. 흡사 남수원지역에 늘어서 있는 대규모 아파트들처럼 말이다. 밤이 되면 높은 담장 안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조명 아래 여기는 “어느 브랜드 아파트 (괄호 열고)어느 마을이에요.” 외치는 사인몰만 남아 스스로 파편화(破片化) 될 것이다. 한편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는 황량한 대로는 오직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되어, 허전함을 채운 가로수와 인적 없는 보도블록 사이로 카메라만이 불법주차단속과 치안 유지에 여념 없을 것이다. 

도시가 먼저 보여주는 ‘정주(定住)’ 공간으로의 안정과 편안함 그리고 이웃들 간의 이야깃거리는 사라졌다. ‘채움’에 급급한 도시는 회색지대가 되어 웃음소리 없이 노인들만 가득한 단지형 양로원이 될 것이다.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현대 도시의 운명인걸까. 주거환경 개선, 우범화와 할렘가를 막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수원성 사대문 언저리의 공동화현상은 내버려 둬야 하는가? 유동 인구의 생활패턴이나 지역성, 거주성 등의 연구는 고사하고, 수원을 관통하는 교통량은 물론 ‘역(驛)’과 역이 만나야 하는 기초적인 교통망 계획과 주차계획조차 아쉽다. 


도시공학적으로 수원의 주거지 확산 과정을 보면, 개발(기반 시설, 공공건축 포함)도 편식으로 집행되었음을, 지난 위성사진의 변천 과정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수원 권선구(區) 서쪽 도시 변두리의 개발이 부진한 지금, 이 지역을 바라보면 앞서 언급한 편식한 개발 행위가 오히려 전화위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개발을 살펴보면, 한국이 신도시 계획에 응용한 교과서와 같은 ‘페리’의 근린주구 개념을, 수원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수원은 단순히 서울의 서브(Sub) 역할을 담당하는 위성도시 개념으로의 첫발을 잘못 디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혹여 아직도 아파트와 상가 건축으로 세수를 충당하려는 생각은 아니길 바란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교통망과 주차계획이 실패한 상황에서, 아파트와 상가 분양은 지나친 시대착오라고 생각한다. 지금 수원에 새로운 수혈은 필수이며, 변화의 동기화가 절실하다 하겠다.

수원의 면적은 작아서 일찍이 ‘친환경 전원도시’로 입지를 굳혀야 했다. 그리고 실속 있고 여백이 풍성한 도시 공간으로의 도시재생에 대한 과감한 용단이 필요했다. 전원도시라 해서 논과 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원의 자랑인 ‘정조와 화성’의 계승으로 조화롭게 매치될 것들이 꾀나 많은 것으로 판단되며, 덤으로 더 보여주고 자랑할 만한 먹거리 창출을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고찰했어야 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전략적 사례들과 물리적 실증을 찾아볼 수 있다. 수원은 작은 도시이나, 역사도시로 그 안에 보물들이 숨어있어 4차 산업혁명을 포용할 수 있는, 역사·문화·IT 3박자가 갖춰진 알토란 같은 혁신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수원은 옛부터 ‘유천(柳川)’이라 불렀다. 오늘 방화수류정을 바라보는 용연지(龍淵池)의 늘어진 수양버들을 바라보면, 1996년 즘 도시 내 하천 생태계 복원 사업으로 다시 돌아온 ‘수원천(유천)’에서 그 옛날 선비들의 삶의 흔적을 버드나무의 멋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1950년 방화수류정과 수원천 ⓒ 수원화성박물관

짧아진 봄날의 ‘유천’에, 수양버들에는 몇 안 되는 연두색 꽃술이 핀다. 물가를 좋아하는 이 나무는 강인한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한다. 봄날 물오른 가지로 피리 불던 그 버드나무 껍질 속에는 수십억 명을 살린 아스피린 원료가 숨어 있다. 김수영의 수원 예찬처럼 18세기 수원은 생태도시였다. 현재 ‘기후 위기’ 시대를 맞이한 수원은 이백 년 전 그 생태도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지금 회귀(回歸)하지 않으면, 짐 위에 더 큰 짐이 가중될 것이다.


전국의 지방 도시는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소멸되기 시작했다. 지금 도시학자들이 걱정하며 해법을 제안해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우리는 죽어가는 도시들을 직접 보게 될 것이고, 그 소멸의 파고는 수도권을 향하여 물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올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같은 배 위에서 키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인으로서의 나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니콜라스 머레이 버틀러는 도시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무엇이 창조되는지 모르는 사람, 다른 하나는 무엇이 창조되는지 구경만 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무엇을 창조하는 소수의 사람.” 

 

 

수양버들과 방화수류정(수원성) ⓒ 천서진
수원천(유천-柳川)의 버드나무 ⓒ 천서진

(2) 마지막 남은 뜰에 서서 
예전에는 버려진 변방이었던 뜰. ‘황구지천’이 흐르는 이 지역은 수원시 남서쪽 고색동에서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 의왕시 남단 왕송호 둑에 보이는 경계까지 길이가 무려 6.1킬로미터에 달하며 평균 폭이 1.1킬로미터 이상으로, 생물자원이 꽤 풍부하며 대부분이 농지이다. 이 지역은 구 주거지인 단독주택이 열을 지어 있고, 아파트 단지가 줄줄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일부 개발 중인 주거지로 인해 이 광활한 농지를 좌·우로 둘러싼 긴 콘크리트 띠가 형성된다. 칠보산과 아파트군, 농지, 단독주택 군이 서로 켜를 이루고, 스카이라인도 좋은 완충지역이라 하겠다. 앞서 언급했던 수원의 도시 변두리는 적지 않은 자급자족이 이뤄졌고, 불행 중 다행으로 전투기의 소음이 현재까지 이 지역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본다. 이 지역의 지형은 낮게는 3미터 이상, 깊게는 5~6미터까지 저지대(低地帶)이기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이곳은 도시 변두리 농업이 남아 있다. 저농약을 사용하는 친환경 농업일뿐더러, 땅은 도시농부의 손만 탄 영역이어서 인위적 행위만 없으면 제법 흙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가을이 되면 족보 있는 철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다. 

지난여름 수원도 역사상 가장 긴 여름을 맛보았다. 심한 열대야로 남녀노소 고통 받았고, 일본열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하루에 800밀리미터 이상 물 폭탄을 맞이한 놀라운 상황을 매스컴으로 볼 수 있었다. 바다의 수온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서 앞으로 슈퍼태풍 등 기후 위기의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일들은 비단 일본이나 중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태풍 반경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들이닥칠 것이다. 


어느 무더운 밤 실개천에 불과한 황구지천의 허름한 오솔길을 걸어보니, 그간 무심했던 것들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큰 홍수를 담당하는 물길이 될 수 있겠구나. 다양한 생물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이들의 생태학습을 위한 못(池)이 두 곳 정도 있으면 좋겠다. 도시농부들에게 꼭 필요한 옥토가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수원 시민에게 생명력을 선사하는 녹색공간이 되겠구나. 그날 저녁 기온을 확인해 보니 황구지천은 내가 사는 지역보다 온도가 3~4도가 낮았다. 일전에 광교산 시내버스 종점 지역과 1번 국도(교육청사거리)와의 여름밤 기온 차이가 무려 5~6도 차이가 나는 것도 놀라웠지만, 여기 황구지천의 밤 기온을 확인하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원에는 ‘광교호수공원’이 있다. 나무 몇 그루를 남겨두었다고 생태공원이라 부른다. 잘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은 땅거미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수십만 마리의 곤충들이 매일 죽어가는 곤충들의 도살장으로 변한다. 이곳은 화려한 야경을 선사하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이들만을 배려한다. 물론 낮에는 멋없는 구조물만 눈요기로 호수를 주시하고 있다.

도시의 안정적 인프라 구축에 생태계, 이른바 ‘녹지’는 법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녹지가 미래 생명의 보고임은 틀림없다. 생태계는 ‘도시를 위한 안정적 공급’자이며, 재원의 원천인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 도시들은 일찍이 생태 도시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도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오늘날 서수원의 황구지천은 콘크리트 덩어리로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다. 수원은 2020년부터 ‘황구지천’ 허리를 가로지르는 나들목 교량 하부 저지대에, 제법 큰 규모의 공사로 공공하수처리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결국 보호의 필요성이 절실한 넓은 황구지천은 둘로 나뉘게 되었다. 물론 건설 중인 시설은 시민에게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 위치에 이 모습으로 공사를 해야 했을까? 공사가 완공되면 지하구조물 위 지상은 주민 편의시설과 운동시설로 사용되고, 지표는 녹색공간으로 대체하는 잔디밭과 여가시설로 주민에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 보이는 높은 철 구조물들과 야간조명을 위해 조명설비가 높게 세워질 것이다. 주민에게 다가올 이 시설은 어떤 역할을 할까? 도시 환경적 물음이 남는 대목이다. 


생태계에 대한 도시인들이 관심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지역사회에서 보전에 대한 합의도 힘들다. 그리고 보전을 위한 유지는 더욱더 인내가 필요하다. 수원은 ‘반딧불이화장실’로 말로만 반딧불이를 보여준다. 진짜 반딧불이 축제는 ‘무주’에서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 도시 변두리 생태계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인용하겠다. 일찍이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의 주장에 따른 ‘도시의 다양성’을 함축하자면 결국 ‘생태계(자연)’는 인간과의 관계일 것이다. 도시는 ‘도시공학’과 ‘생태학’과의 상관관계가 있어, 일찍이 ‘경제(학)’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생태학의 중요성을 들여다보면, 오래전 “식물 군락에 관심을 가졌던 식물학자들은, 식물종(Species)들의 상호 의존성을 경제적 관점과 거의 유사하게 판단했고, 이 유기체들의 자연 공동체에 대하여 ‘경제(Economy)’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경제(經濟)’라는 어근은 집을 뜻하는 ‘oiko’와, 관리를 뜻하는 ‘nomy’라는 ‘그리스’ 어근에서 파생되어 집 관리를 뜻하는 것으로, 곳 ‘생태학(Ecology)’ 이른바 집을 뜻하는 똑같은 어근으로 보고 있다.” 즉 경제는 생태이며 자연이라는 뜻이다. 도시는 자연 안에 있어야 한다. 
이제 과학을 지나칠 정도로 신성시하는 시대가 되었고 우리는 그 과학으로 자연을 파괴해 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자연은 반드시 도시에 보복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학과 인간이 자연에 피해를 주면 다가올 보복에 대하여 미신보다 더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환경의 피해들은 우리의 변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거는 약속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받은 만큼 돌려줄 뿐이다. 


일찍이 에버니저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도시’ 중 하나인 영국의 레치워스(Letchworth)는 노동자 빈민을 위한 박애 어린 실천이었고, 그 뿌리는 풍성한 녹지대(Greenbelt)를 기반으로 했다.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물’은 도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요소 중 하나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우리가 두려워하는 물은, 위험할 정도로 불안정한 지구에서 도시를 재구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래서 도시인들이 청개구리처럼 물을 두려워하는지는 모르지만, 기후변화의 시대에 물 관리가 소홀해지면, 그 얄팍한 도시의 마음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2. 닫는 글
살기 좋은 도시는 꿈이 보여야 한다. 꿈이 있는 도시들의 소통은 국가 전체의 에너지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착취(정치·경제·교육)가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는가? 지금은 ‘불평등’을 포용하지 못하고 자기 노선에 따르라는 강요뿐인 사회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착취적 관습에는 성장하는 두 가지 제도가 숨어있다. 하나는 “지속적인 성장은 혁신이 있어야 하는데, 혁신은 반드시 창조적 파괴를 수반한다. 때문에 기존 엘리트층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착취적 정치, 경제 관습은 시너지효과를 내므로, 일단 뿌리내린 이 더러운 관습은 끈질기게 거듭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이렇게 지방으로부터 시작해 중앙으로 전이되는 강도에 따라 증명되는 것이, “‘빈국(貧國)’과 ‘부국(富國)’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세월 수원 변두리 동(洞)에 사는 역전의 용사들의 노고는, 수원 발전에 크게 손을 보탠 분들이다. 오래전 땅덩어리를 두부 자르듯 열 개씩 잘라낸 구획정리사업에 작은 땅 하나를 받아 자식을 키우던 이들의 1층 양옥집 대문 앞에, 어느 날 개념 없는 브로커 건설회사가 시(市)로부터 ‘나홀로아파트 사업 승인’을 얻어 건축이 되는 현실에 봉착하면, 그들은 반평생 살아온 ‘정주’를 벗어나 변두리로 이사할 것이다. 그리고 나홀로 아파트가 완공된 후, 집의 대문을 열면 녹지 않는 빙판이 가득한 골목길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마주하는 집은 4시간 이상 볕을 쬘 수 있는 권리를 받았지만, 이 집은 여름날 3시부터 7시까지 서향 빛만 보게 될지 누가 알랴. 


내가 아는 수원 토박이들은 지금 내 몸 같은 동네에서 밀려나 도시 변두리에 둥지를 틀고 있지만, 환경만 바뀌었을 뿐 처음 만나던 그때와 같다. 모두가 수원화(化) 되어가던 그 시절, 혈혈단신으로 정착한 이주민들은 참으로 열심히 살아냈다. 돈을 벌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이치(理致)’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지금 살아있는 한 도시는 수혈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단, 포기하지 않는다면. 생태계를 무시하는 도시인은 모두가 파괴자로 간주해야 한다. 미래에는 아니 지금 우리의 눈은 무언가에 가려져 있어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사회가 교만에 차 있지 않고 전체주의나 관료주의를 맴돌지 않는다면, 수원은 분명히 살만한 생태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없다는 것이다.”

 

 

 

 

글. 천서진 Cheon, Seojin 종합건축사사무소 아키리움

 

 

천서진  건축사 · 종합건축사사무소 아키리움

 

대한민국 건축사(KIRA)로 서울시립대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건축가협회·US-가치공학협회 정회원이며 현대건설(주), 김중업건축(주), 맥 종합건축(주) 등에서 근무한 바 있고 경기미술대전, 한국건축전 등에서 수상했다. 「교회건축의 노인프로그램 도입에 관한 설문조사 연구」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고 「지역사회 노인을 위한 종교시설의 활용 가능성 연구」 논문 등을 발표했다.

a7w7ar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