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31. 10:50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A sketch of the time as a memory “Let’s live with at least one exciting thing”
방명세 건축사의 첫 개인전,
‘또 다른 시선, 필드스케치와 아카이브’
20여 년간 KOICA ODA 사업에 참여해 아이티, 과테말라, 파라과이, 세네갈, 에티오피아 등 국가를 오가며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주)정림씨엠건축사사무소 방명세 대표(서울특별시건축사회). KOICA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수행하는 교육·보건·인프라 분야의 공공 개발 프로젝트다.
방명세 대표는 건축 현장에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 공기와 시간까지 수첩에 담았다. 그렇게 수첩에 남겨 온 수백 장의 스케치 중 일부가 서울 인사동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시의 이름은 ‘또 다른 시선 – 건축사 방명세의 필드스케치와 아카이브’. 출장지에서 펜을 들어 수첩 한 장에 남긴 스케치들이 쌓여 하나의 전시가 된 것이다.
전시는 처음부터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출장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첩에 그림을 남기게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기록이 된 셈이다. 일정 정리를 위한 습관이자,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출장 중 떠올린 생각이나 장면을 정리해 두는 용도였어요.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됐고요.”
그는 자신의 습관에 대해 “오래전 학생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아 종종 했던 일이 그림이었고, 이렇듯 그는 종이에 손을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예비 건축사 시절에는 설계에 직접 참여하면서 스케치를 자주 했지만, 사내 본부장이 된 이후로는 스케치를 할 기회가 자연스레 줄었다. 마케팅, 조직 운영, 대외 협의 등 관리 업무가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표로서 떠난 출장지에서 다시 수첩을 펼치게 됐다. 눈앞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메모와 간단한 스케치를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전시의 계기가 된 건 2022년 가을 중남미 출장을 떠나기 전, 경유지인 맨하탄 브루클린 다리를 그린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는 “그때 마음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구체화하기 위해, 업무에 활용하던 OKR(목표 및 핵심 결과) 방식을 개인 시간에도 적용했다. 목표는 ‘글을 쓰고 스케치하기’, 실천을 위한 구체적 방식은 ‘비행기나 호텔에서 모니터를 켜지 않기’, ‘조식 전에 하루를 정리하기’로 정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수년간 다녀온 KOICA 사업지의 풍경과 사람들이 등장한다. 과테말라의 경찰학교 과학수사센터, 파라과이의 보건소, 세네갈의 유치원, 에티오피아의 병원 등, 스케치는 하나하나 그가 머물렀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철문으로 닫힌 중남미의 한인타운 식당, 진료를 기다리며 기다림 속 발걸음을 옮기는 임산부들, 공사장 옆을 뛰노는 염소들도 그의 펜 끝에서 남겨졌다.
그는 스케치를 계속하면서 시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전엔 건축을 중심에 두고 사람은 배경처럼 넣었어요. 지금은 사람이 중심이고, 그 뒤에 건축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직접 설계하거나 감리했던 프로젝트 외에도, 단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려진 장면들이 많다. 그에겐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시 수익이 발생할 경우, KOICA 측에 기부할 계획도 전했다. 현장에서 함께한 기술자들, 현지 직원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실제로 일부 스케치는 현장 요청으로 제작돼 전달되기도 했다.
“그림을 받은 분들이 그걸 사무실에 걸어두시더라고요. 본인의 일이 누군가에게 기록됐다는 걸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수첩을 꺼내며 “호텔 방에서, 비행기 좌석에서, 조용한 아침 식탁에서 하루를 정리하듯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에게 스케치는 업무라기보단 습관에 가깝고,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가치 있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저에게는 그 일이 스케치였죠. 스케치를 하며 남긴 기록 덕분에, 함께했던 현장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드러날 수 있었고, 제 삶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흔적이 남았습니다.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어요. 가슴이 뛰는 일을 하나쯤은 품고 살자고요. 그 일이 어떤 모습이든, 결국 자신을 사랑하고, 시간을 사랑하는 일이 되니까요.”
인터뷰 방명세 건축사 Pang, Myungse (주)정림씨엠건축사사무소
글·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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