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K-건축을 심다…“낯선 시장이라도 돈 아닌 실력과 신뢰로 길을 열어야 해요” 조창곤 건축사 2025.5

2025. 5. 31. 10:31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Planting K-architecture in Mongolia… “Even in an unfamiliar market, we need to open the way with skills and trust, not money”

 

 

조창곤 건축사(주.경진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몽골 건축 교육에 활용되고 있는 교재를 앞에 두고 있다. 교재는 한국의 건축계획 및 시공 내용을 몽골어로 현지화한 것으로, 현재 울란바토르를 포함한 7개 대학에서 공식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도시계획부터 교육·제도까지 몽골 현지에 뿌리내려 “설계는 기본, 신뢰·시스템이 해외시장 진출 열쇠”

 

 

한국 건축사의 설계도면, 도시계획이 지금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의 새로운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다. 초원 한가운데 세워진 교회와 아파트 단지. 이 변화의 시작엔 조창곤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2013년 설립한 ‘경진 아키텍처 노마드(KAN, Kyungjin Architecture Nomad)’가 있다.
지금 몽골은 한국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건축 수요 또한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상황으로, 경기 활황기 한국과 유사한 환경 속에서, 조창곤 건축사의 실무 경험과 설계 방식이 현지에서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

“당시 몽골 조달청장이 송도를 다녀갔는데, 한국의 도시계획과 건축 시스템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에 몽골에서 직접 요청이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현지 법인을 설립하게 됐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Bavaria motors LLC 자동차 showroom ©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조창곤 건축사의 몽골 활동은 국가 차원의 초청으로 시작됐다. 당시 몽골 정부는 자국 내 4개 지역의 도시기본계획 수립을 그에게 맡겼다.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러시아식 도시구조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현대적인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현지에서도 한국식 설계 방식의 우수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작업한 설계도서는 현지 언어로 번역돼 기준 자료로 활용됐을 뿐 아니라, CG로 제작한 도시 홍보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몽골 전역에 퍼졌다. 결과적으로 한국식 도면 품질이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도시 설계뿐 아니라 아파트, 교회, 학교 등 단위 건축으로도 활동이 확장됐다. 그는 “몽골은 아직도 지상 주차장을 조경 면적에 포함시키는 등 개념 자체가 다르다”며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담장을 허물고, 평면도 한국식으로 바꾸는 실험을 했다”고 했다. 그가 설계한 교회는 울란바토르시의 시범 사업에 채택되기도 했다.

한국과는 다른 업무 환경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는 “우리가 하루 만에 할 일을 몽골에서는 이틀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설계비는 낮고, 작업 속도도 느려, 결국 받는 대가는 60∼70% 수준에 불과하다”며 “투그릭(몽골의 공식 통화 단위) 기준으로 보면 대가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결과물을 맞추려면 손이 더 많이 가서 도면 품질을 높이고, 설계도서도 한국식 기준으로 다시 작성해, 지금은 현지에서도 한국식 설계 품질을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DRG LLC 1500 세대 아파트단지 ©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몽골 울란바토르 도심 외곽에 조성된 HOR ENC LLC 392세대 아파트 단지 전경. 조창곤 건축사(주.경진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아 한국식 아파트 설계 방식을 현지에 적용한 사례다. ©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2016년부터 그는 몽골 국립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의도 시작했다. 조 건축사는 “처음엔 복사본 몇 장으로 수업을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예 책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교재는 한국의 건축계획 및 시공 내용을 몽골어로 현지화한 것으로, 지금은 울란바토르 포함 7개 대학에서 공식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몽골 건축교육에도 한국 건축사의 전문성과 기준이 반영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런 교육 협력은 실무 인재 양성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현지 학생을 한국 본사로 초청해서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며 “다시 몽골로 돌아가 현장 실무를 하도록 했는데, 그 중 한 명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계를 배워, 몽골 건축사 시험 제도에 ‘장애인 시설 항목’을 신설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에서 배운 걸 토대로 몽골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 건축문화와 제도 발전을 위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매년 수천 권의 전문서적을 무상으로 배포하고, 한국의 설계도서 기준을 번역해 몽골 건설부에 제공한 결과, 현재는 이를 토대로 현지 법령이 제정되고 있다. 설계뿐 아니라 기술·교육·제도가 함께 나아가야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결과다.

현재 경진건축은 몽골 외에도 인도, 미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한국 본사에는 약 12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마지막으로 조 대표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후배 건축사들을 향한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몽골에서는 건축사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 현지 건축컨설턴트 없이 도면을 제출하면 인허가 자체가 불가능하다. 반드시 협업해야 하고, 제도나 언어, 설계 관행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들어올 게 아니라, 먼저 제도를 이해하고 충분히 파악한 뒤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처음부터 투명하고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지 건축사와 갈등이 생기고, 제도적 제약 때문에 업무가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덧붙여 “몽골은 토지 소유 개념도 다소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특히 도시 외곽은 무허가 점유지인 경우도 있어, 반드시 등기 여부나 권리관계를 사전에 확인해야 하고, 설계 계약 전엔 토지 관련 서류 검토와 현장 확인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창곤 건축사가 참여한 ‘초이발산시 상업지구 계획안(Choibalsan City – Commercial District Plan)’ 조감도. 상업·업무·주거 기능이 복합된 도시계획으로, 몽골 동부 지역의 중심 거점 개발을 목표로 추진됐다. ©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The Church of Jesus Christ Latter 교회 FACADE REMODELING ©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인터뷰 조창곤 건축사 Cho, Changgon (주)경진 건축사사무소

글·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