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오딧세이 아픈 역사가 빚어낸 음식, 그리고 특화된 거리 2026.6

2026. 6. 30. 10:4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Food derived from painful history, and specialized streets

 

한 도시의 이름을 내건 음식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맛에 담긴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 특성까지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안동찜닭이나 전주비빔밥처럼 말이다. 이처럼 도시 하나가 맛에 담겼음에도, 해당 도시에 그 음식으로 특화된 공간을 찾기란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있다 해도, 음식 유명세보다 공간이 알려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의정부엔 부대찌개 거리가 있다.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부대찌개가 의정부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은 무척 남다르다. 아니, 우리 민족 최대 비극인 분단과 전쟁, 그리고 휴전 후 주둔하게 된 미군 부대가 그 배경이니 더욱 그러하다.
양주군 시둔면 의정부리로 1922년 군청이 이전해 온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시둔면이 의정부읍으로 승격한다. 그 상태에서 분단을 맞아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고, 의정부는 군사도시로 급격하게 변모한다. 무엇보다 미군 주둔지로써, 서울 북쪽에서 강력한 방어선 역할을 담당해야만 했다. 이후 1963년에 의정부시로 승격, 양주에서 분리된다.

 

역 주변의 옛 미군부대 자리 © 이영천

 

미군과 제일시장
1911년 10월 15일, 경원선 1차 구간(용산∼의정부, 31.2㎞) 개통과 함께 의정부역이 운영을 개시한다. 지금의 원도심인 당시 의정부리가 역을 중심으로 번성하였으리란 추정은 그래서 타당하다. 읍으로 승격 당시, 중랑천 서쪽으로 어엿하게 시가지가 번성 중이었다.

군사도시 특성은 주둔군과 기지의 존재, 작전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해방과 함께 그어진 38선으로 의정부의 군사적 중요성이 특히 부각된다. 한국전쟁 발발 이틀 동안, 의정부는 서울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1953년 그어진 휴전선으로, 군사도시로써 의정부의 면모는 더욱 도드라진다. 북으로 동두천, 포천, 연천, 철원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의 중요 거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군의 주된 주둔지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군 도시’로 변모한다. 총 9개 미군 부대가 주둔하는데, 시내 중심지 인근 비교적 좁은 공간에 7개가 밀집되어 있었다. 의정부역 주변에 2곳, 가능동과 녹양동에 각 1곳, 금오동에 3곳이다. 의정부 주둔 미군은 대부분 전방 전투부대를 보조하는 보급부대다. 따라서 각 부대 안에 보급 철로와 물품을 보관하는 커다란 창고를 두었다. 이들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이 전쟁 후 허기진 우리 생활 곳곳까지 파고든다.
전쟁 상흔으로 의정부도 쑥대밭이 된 시가지만 남는다. 휴전 후 파괴된 시가지를 복구하며,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다진다. 그러함에도 의정부엔 음성적으로 흘러나온 미군 부대 물품이 어느 지역보다 풍성했다. 한때‘의정부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돌 만큼 흥성한 제일시장이 이때 생겨난다. 그렇게 흘러나온 온갖 보급품이 제일시장에서 유통된다. 이런 기능으로 제일시장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고, 이후 부대찌개가 탄생하게 되는 거점 역할을 떠맡게 된다.

제일시장 입구 © 이영천

 

부대찌개의 탄생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끓인다’는데 있다. 물론 서양 요리에도 스튜(stew)처럼 끓이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끓여내는 우리 음식문화는 무척 다채롭다. 재료를 우리거나 고아 국물을 내는가 하면, 맑은 물을 붓고 조미나 간을 맞춰 끓이거나 조리는 국물이 있다. 물론 국물에 들어가는 내용물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이유로 국물을 내는 음식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각각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지만, 국물이 가미된 음식에‘탕, 국, 전골, 찌개’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물의 조제법이나 농도, 내용물에 따라 다르다는 걸 우린 관념으로 인식한다. 이를테면 미역국을 미역탕이라 부르지 않듯 말이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 중 단연 으뜸은 먹거리였다.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미군 음식은, 당시 우리 생활상에 비춰 무척 절실한 품목이었다. 햄, 소시지, 각종 육류가 음성적으로 흘러나와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유통된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이곳에선 ‘부대(部隊)고기’라 부른다. 음성적이어서 초기엔 유통량이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또한 육류라는 건 알겠는데, 무척 생소한 재료임도 분명한 사실이다. 배는 무척 고팠다. 그냥 잘라먹기에는 양도 부족할뿐더러, 우리 고유 음식문화와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의정부 부대찌개거리 초입 © 이영천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 이영천

 

김치찌개가 있었다. 김치에 고기나 생선 등의 재료를 넣어 끓여내는 우리 고유 음식이다. 김치찌개에 고기 대신 소시지나 햄, 통조림 콩으로 조리해 본다. 김치 특유의 신맛이, 조미된 소시지나 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냥 먹기보다 양도 풍부하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김치의 개운한 맛과 매운 양념의 칼칼한 맛이, 햄과 소시지에서 우려진 짭조름한 단맛과 잘 어우러진다. 국물은 또한 갓 지은 따스한 밥과 찰떡궁합이다. 부대찌개의 탄생이다.
전쟁 후 미군은 서울,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 주둔한다. 따라서 부대찌개는 미군이 주둔하던 곳 어디에나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량 차이는 있었을망정, 부대고기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이다. 초창기엔 미군이 주둔한 도시마다 특색을 갖춘 로컬-푸드 성격에 불과했다. 흘러나오는 부대고기의 명확한 한계 때문이다. 발달하지 못한 우리 축산업으론, 육류 가공품 공급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 유독 의정부 부대찌개가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규모의 경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제일시장이라는 기반에, 부대고기 보급원으로써 대규모 미군 부대가 있었다. 이렇듯 의정부 부대찌개는 오랫동안 명맥을 지켜나갈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돼지 등 육류를 활용한 부대고기와 유사한 가공품이 국내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한다. 고기가 주재료인 햄과 소시지가 식탁에 오르내린다. 그러자 힘겹게 명맥을 지켜오던 의정부 부대찌개가 상한가를 구가한다. 1990년대 급성장한 외식시장과 함께 선풍적 돌풍을 몰고 온다.

 

의정부 로데오 거리 © 이영천

 

부대찌개 거리
맛은 기억이다. 어머니 손맛이 깃든 맛을 평생 기억하는 이유다. 맛은 또한 창조다. 미각은 예민하다. 혀는 사소하고 미세한 차이의 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맛을 다룬다는 것, 더구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우엔 그래서 더욱 맛에 충실해야 한다.

미군 부대 재배치계획에 따라 의정부에도 미군 부대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제일시장도 더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품만을 거래하는 시장이 아니다. 그저 도시 어디에나 있는 왁자한 하나의 시장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시장 곳곳에 부대찌개 흔적이 역력하다. 지하 식당가 모습도 여전하다. 마치 부대찌개 원류가 이곳이다고 증언이라도 하듯 말이다. 의정부 로데오 거리로 변신한 제일시장 주변은 젊음의 열기로 늘 활기차다.‘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는 로데오 거리 북쪽에 있다. 경전철 역이 머문다. 196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몇몇 가게를 기반으로 1998년 30여 전문식당이 모여 만든 공간이다. 지금도 십수 개 점포가 경쟁과 공생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각각 점포마다 고유의 부대찌개 맛을 뽐낸다. 그러함에도 이곳 역시 제일시장 부대찌개가 모태임이 분명하다.
의정부에 분포한 부대찌개 점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모든 점포가 고유의 맛을 자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성화, 집단화에는 한계를 보인다. 집단화의 가장 큰 장점은 한 곳에서 같은 음식의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맛과 사연을 곁들여 2002년부터 유명 만화로 연재된 ‘식객’에 이곳 한 점포의 이야기가 풀어진다. 이로써 골목은 전국적 명성을 얻는다. 만화에 등장한 점포의 움직임에 따라 골목이 술렁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거진 맛의 원조 논쟁 등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상표권으로 몇 번의 특허 관련 송사도 벌였지만, 골몰을 찾는 식객들은 알고 있었다. 맛을 되새기고 구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맛은 역시 기억인 까닭이다.
부대찌개는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아픈 역사가 빗어낸 음식이다. 분단과 전쟁, 미군의 존재에 기대야만 했던 우리 모습이 오롯이 투영된 음식이다. 그래서 부대찌개를 먹을 때마다 우리 상흔과 아픔이 같이 떠오른다. 아울러 이를 극복해 낸 힘으로, 시고 달고 짭조름한 부대찌개 맛을 기억하며 함께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