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31. 10:4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An Old Marketplace That Appeared at the Node of Gwandong-daero
결절점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들인다. 이는 지리적으로 필연이다. 보행이 전부이던 시절에도 결절점은 있었다.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나 주막, 관청 같은 곳 말이다. 사람이 모이자, 이런 길과 시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교역이 벌어진다.
나루터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강이나 하천을 건너려면 배를 기다려야 하고, 그런 자리에 안성맞춤으로 장터가 생겨났다. 세월이 흘러 나루터에 돌다리가 놓였어도, 이 역시 훌륭한 결절점이었다. 이미 터를 잡은 장터가 영역을 넓혀가며 시장으로 커나간다. 시간의 층위를 따라 시장은 한 지역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 강이나 하천을 끼고 있는 도시의 형성에서부터 확산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과정이다.

국도 6호선(경춘로)이 지나는 교문동과 수택동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이곳엔 왕숙천으로 흘러드는 제법 큰 하천이 지난다. 구리역 남쪽, 경춘로 아래 복개된 주차장이 그 흔적이다. 이 하천에도 물론 돌다리가 있었다. 본디 큰 다리라는 뜻의 ‘한다리’가 어음 변화로 ‘흰다리’가 되었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백교(白橋)였다가 행정구역 변화로 橋門洞(교문동)의 橋(교)로 남았다. 한다리 남쪽에 옛날부터 자리한 장터를 1960년대 시장으로 설립, 지금의 ‘구리 전통시장’으로 자라났다.
잘 지켜낸 시장
수도권이 광역화하기 이전, 구리 전통시장은 서울 동쪽에서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방 수십여 리를 아우르며 오랜 전성기를 구가한다. 변곡점은 1980년대 말 도래한 ‘마이카시대’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도시와 국토 공간에까지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도로교통이다. 교통체계 변화가 공간 변화의 추동 요인이었던 셈이다.

전국이 자동차 교통체계로 급속히 빨려든다. 이에 맞춰 도시 공간도 흐름을 뒤따라가기 바쁘다. 곳곳에 교통난 등 도시문제가 생겨난다. 특히 주차 문제가 골칫거리로, 밀집된 원도심은 더욱 해결 난망이었다. 곳곳에서 주차장 확보 경쟁이 일어난다. 공간 생존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대형 백화점과 규모를 갖춘 소매점도 마찬가지 숙제였다.
교통체계 변화와 주차장 확보에 가장 민감하게 노출된 시설이 재래시장이다. 보행과 대중교통에 의존해 성장해 온 한계가, 주차장과 결부되어 존립에 직결된 문제로 다가들었다. 취약성이 드러난 재래시장이 쇠락과 퇴락을 거듭한다. 갖은 활성화 대책이나 캠페인을 벌여봐도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결국 주차장이라는 인프라 확보 문제였다. 고객을 끌어들이는 소프트웨어도 무척 중요했지만, 너른 주차장을 확보한 백화점 등 현대식 소매점과 경쟁에서 뒤 쳐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비교적 잘 지켜온 곳 중 하나가 구리 전통시장이다. 충분치는 않으나 주차장을 확보해, 무엇보다 이용자 편의를 고려했다. 아울러 이웃한 공간과 상생을 도모하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이 발길을 끌어들일 고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로써 재래시장 기능이 세련된 감각 및 인프라와 결합한다. 고객이 놀고, 즐기며, 느끼고, 즐겁게 먹고 가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심지어 불과 수백 미터 거리에 경쟁 관계의 거대 백화점을 두고서 말이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와 흔적,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상생하는 공간
시장통 포장마차에서 팔던 곱창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 바짝 익힌 곱창을 매콤한 초장에 찍어 상추쌈 하는 맛은 가히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적었다. 시장통 포장마차에서 성공한 상인들이 인근에 점포를 얻어 독립하기 시작한다. 맛과 가격이 보장되었으니, 발길을 모으는 건 정해진 순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젊은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렇게 만들어진 골목이 ‘돌다리 곱창 골목’이다.
2005년 개통된 구리역은 곱창 골목을 한층 더 키우는 가교로 작동한다. 한창 번창했을 때 50여 업체가 성업하기도 했다. 곱창 골목이 유명해지니, 다른 음식과 함께 지금 같은 먹거리 문화가 갖춰졌다. 몇몇은 근동에서 소문난 맛집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통 발달이 늘 순기능만 가져다준 건 아니었다. 고속·광역화한 도로교통은 거꾸로 공간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여러 사정이 있었을 것이나, 돌다리 곱창 골목의 상대적인 축소도 발달한 교통에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수 개로 규모가 줄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구리 전통시장과 끊임없는 상생을 모색하고 있다. 태생지가 시장이었음을 기억하는 까닭일까? 시장과 곱창 골목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우선 기능적으로 보완관계다. 장을 보고 허기진 배를, 값싼 곱창으로 달랠 수 있다. 아련한 옛 정취는 덤이다. 활성화를 위해 매년 개최하는 행사도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이런 노력으로 젊은이 발길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왁자지껄하고 사람 내음 물씬한 풍경이 늘 펼쳐진다. 정(情)이 물처럼 넘쳐흐르는 공간이라는 얘기다.
관동대로 옆 장터
공간 생명력은 무엇보다 발걸음이다. 발길이 닿고, 머물다 가야 한다. 이는 한 공간에서 보고, 즐기고, 맛볼 수 있어야 한다는 다른 의미다. 이를 어떻게 꾸릴지가 공간 지속성을 담보하는 생명력이다. 완벽하지는 않으나, 구리 전통시장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변신 중이다. 백화점 못지않은 다양성은 시장이 내세우는 강점이다. 이를 통해 젊은 발길이 머물고 다시 찾게 되는 장소기억을 담보해 냈다. 2030이 5060과 함께 골목을 채워가는 모습에서, 시끌벅적하던 옛 저잣거리가 연상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개선된 시설이라는 하드웨어에 유연한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결과다. 원도심 상징으로 시민참여를 통해 ‘와구리’캐릭터를 상표화했다. 무엇보다 고령층 이용자를 위한 ‘장보기 서비스’가 혁신적이다. 도우미가 대신 장을 봐주는 혁신적 아이디어다. 매년 봄밤이면, 시민참여로 이뤄지는 길거리 공연은 또 다른 볼거리다. 정기적 문화공연과 상인이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은 이미 하나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모든 게 공간을 지켜내려는 시장 상인과 그 공간을 사랑하는 고객의 자발적 참여가 만들어낸 결과여서 더욱 값져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장터의 변신은, 옛길인 관동대로(평해길)와 함께한다. 서울에서 강원도 및 경상 북부를 오가던 길이다. 시장 서문∼동문으로 이어진 저잣거리 형태로 명맥을 지키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길은 지형 극복의 결정체다. 가장 짧고 험난하지 않은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길이 나기 때문이다. 길은 또한 교행과 만남의 장소다. 길을 통해 사람과 물자, 정보가 교환되고 소비된다. 따라서 자연스레 장시(場市)를 형성시키는 바탕이 되었다.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동쪽에서 관동대로는 이런 역할을 도맡았을 터이다. 이제 흔적으로만 남은, 그리 멀지 않은 전통을 이어받아 다시 현재라는 시간을 쓰고 있다. 옛길은 분명 무척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재래와의 공존으로
지리적 중심성은 몸이 기억하는 특성 중 하나다. 몸에 새겨진 DNA 지도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어느 공간에 서건 중심을 향하기 마련이다. 공간 중심은 그래서 구심력이 강하다. 구심력이 해체되면 공간은 필연적으로 쇠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을 지켜내려면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구리 전통시장과 주변 공간은 일정 구심력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스토리텔링이 약해 보인다. 서울로 향하는 인문 지리적 관문이다. 관동대로의 역사, 옛 저잣거리가 품은 이야기, 장돌뱅이들이 봇짐 매고 나귀 끌고 걸었을 낭만은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 감이다. 지나온 시간을 풍미한 흔적이자 오랜 기억이기 때문이다.
현대 감각에 어울리는 변신한 옛길이라는 전형 하나를 세워 보는 건 어떤가? 전주 한옥마을의 변신이 매번 새로움으로 다가들듯, 하회마을이 지켜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듯 말이다. 이곳은 서울 동쪽에서 거의 유일한 ‘오래된’ 공간이다.
얼핏 우리 도시 여느 곳이나 진배없어 보이는 시장에서, 전혀 새롭게 돋보이는 공간을 보았다. 상생은 물론 공간을 지켜내려는 주체들의 노력, 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깡그리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열악하나마 이어 온 공간을 지키고 가꿔가는 일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사람과 세대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하고, 공간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일이다.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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