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1. 10:5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ity Odyssey
May This Space with Railroad, Like Gyeongam-dong Railroad in Gunsan, Be Reborn
이곳 들판이 기름진 건 굽이굽이 흐르는 진위천 덕분이다. 용인에서 발원해 고을 몇을 적시며 서쪽으로 흐른다. 오산천과 황구지천을 만나 몸집을 불린 진위천이, 아래쪽 아산만을 향해 급격히 머리를 꺾어 휘도는 곳 너머에 아무에게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활주로가 길게 누워 있다. 오산 공군기지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에 의해 생겨났다. 하지만 행정구역은 평택 송탄이다. 미군 조종사들이 편의를 위해 Songtan(송탄) 보다 철자가 적은 Osan(오산)을 택함에 따라, 비행장 이름이 결정되었다.
어디나 그렇듯 미군 부대는 경비가 삼엄하다. 철옹성이 연상된다. 이 공군기지가 바탕이었는지, 평택은 2000년대 ‘미군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당연한 귀결이겠으나, 미군이 주둔하는 여느 도시처럼 이곳도 그들로 인해 생겨난 공간과 음식이 하나의 문화로 굳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몇 개 면을 통합한 진위군 송탄면이, 1938년 평택군 송탄면이 된다. 한적하던 이곳에 1952년 들어선 공군기지 때문에 법칙처럼 기지촌이 따라온다. 그렇게 확산한 기지촌과 미군 부대를 바탕으로, 불과 10여 년 사이 급격히 팽창하여 1963년 송탄읍이 된다. 1981년 송탄시로 독립했지만, 1995년 다시 평택시에 속한다.
공군기지에 잇닿은 공간은, 미국의 여느 카운티(county)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공간은 그러나 2000년대 초반 극심한 갈등에 내몰렸다. 대추리에 재배치되는 미군에 따라, 공간을 지배하던 기지촌이 큰 변화를 맞으면서부터다. 관광특구 지정을 놓고, 관청은 물론 경제적 기반을 잃지 않으려는 상인회와 시민단체 사이의 깊은 갈등이었다.


그들의 관문
엄밀한 의미에서 항(港, port)은 화물이 주체다. 선박보다 뒤늦게 발명된 비행기의 발착 시설에도 항을 붙이니, 곧 공항이다. 공항은 그러나 화물보다 오히려 여객이 주체다. 군사 목적의 전투비행단 기지를 또한 ‘Air force base’라 부른다. 그렇다고 공항과 차별화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 귀빈은 성남 비행장이나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게 통례다. 나라를 대표하는 우리 하늘에, 우리 공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만은 예외다. 그들은 이곳 오산 공군기지를 이용한다. 우리나라를 오가는 미국 대통령은 물론 고위 관료들의 전용 비행장이다. 공적 업무로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면 그들은 반드시 이 공군기지를 이용한다.
주한 미군 재배치의 깊숙한 이면까지 헤아리긴 어렵다. 상식에 기반하여 추측해 보면, 북한보다 중국 견제에 역점을 두려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결과로 평택은 이제 주한 미군의 본산으로 탈바꿈하였다. 서울 용산이 누리던 지위와 권한이 온전히 평택으로 옮겨진다. 대추리는 한국 속 완벽한 미국이 되었다. 오산 공군기지와 연계된 우리 해군 기지인 평택항까지, 군사적으로 완벽한 체계를 갖춘 셈이다. 이 도시는 어느덧 그들의 유일한 관문이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혜국으로서 그들이 누리는 지위는 논외로 하자. 동아시아로의 회귀나 중국과의 패권 다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같은 담론도 차지하자. 하지만 지난 80여 년간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관계 속에서, 주한 미군의 존재와 그 무게만큼은 역사적 사실이다. 명과 암이 공존했고,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복잡한 서술에도 결국 남북분단이라는 풀리지 않는 현실 모순이, 기울어진 관계 해결을 가로막고 있음을 우린 명확히 알고 있다.
철길 풍경
공군기지와 더불어 송탄의 공간구조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다름 아닌 철도다. 공군기지가 들어선 1952년, 지금의 송탄역이 신호장(열차의 교차 운행과 대피를 위해 설치한 선로)으로 문을 연다. 그때는 순전히 공군기지만을 위한 시설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가 커지면서 지금의 송탄역으로 재탄생하였다. 대추리를 잇는 미군 전용 철도가 평택-포승선으로 탈바꿈하였듯 말이다.
송탄역에서 분기하여 공군기지로 향하던 철길도 분명 그때 생겨났으리라. 군산 경암동이 일제 강점기 종이 공장으로 향하는 철로였다면, 여기는 순전히 미군을 위한 철길이다. 철길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경암동과 매우 흡사하다. 이 좁은 철길로 기차가 다녔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미군 보급품도 분명 이곳 철길로 운송되었을 것이다. 흡사 곡식 낱알을 떨구듯, 그중 뭐라도 철길 가에서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미군 부대에 기생해야만 했던 헐벗고 굶주린 우리 과거가, 활자처럼 이 공간에 박혀있다. 하지만 길은 누추하지 않다. 오히려 곧고 당당하다. 언덕도 없이 평탄하다. 철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다. 이 철길처럼 우리 삶도 과연 그렇게 곧고 당당해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송탄역에서 공군기지 앞까지 약 8백여 미터 철길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이 벽화 거리로 얼굴을 바꾸었다. 멋스러운 벽화들이 즐비하다.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흡사 미국의 어느 골목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규모는 작지만, 국제시장이라는 오래된 장터가 또한 이웃한다.

장터의 먹거리
부산 국제시장처럼,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이 여기 국제시장에서 사고 팔렸을까? 국제시장의 존재로, 송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먹거리 몇이 태어난다. 모든 게 미군 부대 영향이다. 미군 부대가 주둔하는 어디나 그렇듯, 흘러나온 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탄생한다. 부대찌개다. 송탄 부대찌개도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의정부와는 재료부터 다르다는 설명이다. 일종의 차별화로, 이곳이 고향인 분들에겐 분명 잊지 못할 추억의 맛이리라. 이 맛을 즐기려고 부러 먼 길을 찾는 발길도 상당하다. 프랜차이즈로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햄버거도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곳 햄버거가 상당한 평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3대 버거가 있을 정도란다. 분명 미군을 상대로 시작되었을 터이다. 그렇게 시작된 햄버거가, 서구화하는 우리 식문화를 따라 점차 토착화하지 않았을까. 명성에 걸맞게, 이를 즐기려는 젊은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좋은 징조다.
송탄 당면 떡볶이가 유명해지게 된 사유는 분명치는 않다. 미군과의 연관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맛으로 유명해진 건 엄연한 사실이다. 추측하건대, 같은 자리에서 변치 않는 맛으로 옛 추억을 소환시켜 낸 성실함이 제1의 요인 아닐까. 이미 맛집으로 송탄에서 유명해진 상태에서,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떡볶이는 익숙한 맛이지만, 이곳 당면 떡볶이는 좀 색다르다는 평이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아련함으로 수십 년은 찾았음이 분명한 중년여성 여럿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공간 지속성은
미군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도시와 평택은 달랐다. 지역 경제의 상당 부분을 미군에 기댔던 파주나 동두천은, 미군 재배치로 큰 타격을 받았다. 결국 그들 도시가 잃어버린 기회비용을 평택이 다 차지한 모양새로 귀결되었다.
그래서인지 평택은 온통 공사판이다. 미군 재배치에 따른 특별법으로, 많은 재정이 투입되었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교통시설 등 인프라가 개선되었다. 반도체 산업의 입지는 평택에 또 다른 활력소로, 급격한 인구를 몰고 올 것이다. 이로 인한 도시 내 공간 불균형 또한 심화할 것이다. 기존 도심은 슬럼화가 가속화할 것이고, 자본 흐름에 따라 편차가 극심해질 것이다. 공간의 기능적 재배분이 그만큼 절실해졌다. 다행히 평택은 다양한 기능이 입지 가능한 도시다. 그게 생산이건 물류건 소비건, 특화해 낼 필요가 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항만을 다 갖추었다. 추상적인 국제도시라는 구호보다 융·복합형 도시로 거듭나야 할 당위성이다.
군사적 여건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미 공군기지가 이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군기지는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지형적 조건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군기지 존재는 앞으로도 송탄의 도시 공간구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공간 지속성은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한다. 친환경은 물론 문화 다양성과 접근성, 생산과 소비기능이 제대로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 송탄은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하는 공간구조다. 부대찌개나 햄버거처럼 공간구조도 철저한 차별화가 필요한 이유다. 기지촌이라는 아픔을 기억해야 하듯, 여러 요소를 잘 지켜내야만 공간 지속성이 담보된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글·사진.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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