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31. 12:0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Bidding Farewell to Our Virtuous Leader...
In Memory of the Late Lee Eui-koo,
23rd President of the Korea Institute of Registered Architects (KIRA)
지난 6월 5일, 87세에 지병으로 우리 곁을 떠난 대한건축사협회 23대 이의구 회장님과 필자는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과 간사, 본협회 회장과 편찬위원장 등 공적인 관계와 이후 15년간 그의 사무실에서 협동 건축사 업무를 하면서 30여 년을 함께 하였다. 이에, 그와 지낸 나날을 돌아보면서 진솔하게 고인을 기리고자 한다.
서울건축사회 회장 시절, 그는 ‘서울특별시건축사회 30년사’를 발간하였다. 그런데 발간위원장이 서울의 500년 건축 역사도 담아야 하니 예산을 늘리고 자료수집 착수금도 미리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 그는 예산 관계로 위원회를 해체하고 당시 간사로 서울 건축사신문 편집국장이던 필자에게 혼자 만들어 달라 부탁하였다. 무리한 요구였지만 그의 간절함을 뿌리칠 수 없어 8개월 집필 끝에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특히 신협 복지회까지 섭렵하고 회원 수와 수주건별 통계 등을 그래프로 정리한 부록은 교수들의 논문에 인용되기도 하였다. ‘봐라, 하면 되잖니?’ 출간 후 그가 필자에게 한 말이었다. 이는 부당한 것을 타파하는 용(勇)이요,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지(智)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시 건축 심의는 교수들의 반대로 단번 통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취임 후, 서울시 체육대회 때 자신의 판공비 두 달 치를 후원금으로 내며 공무원들의 호의를 사고, 설계 의도를 사전 파악하여 교수들을 설득함으로써 재심을 대폭 줄였다. 회원들이 이를 감사히 여겨 접대하려거나 선물을 들고 와도, 그는 회장으로서 회원을 위해 당연한 일을 했다면서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후 그가 본 협회 회장이 되어 비예산 사업으로 아카시아 포럼을 유치한 후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들은 기꺼이 동참하였고, 결산은 흑자를 내어 협회 최초로 잉여금을 만들었다. 이는 회원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인(仁)이다.
건축문화대상은 원래 협회와 신문사가 따로 운영하던 것을 정부가 나서서 공동주최하게 되었는데, 관은 언론에 약하기에 심사위원의 비 건축인 선정 등 신문사의 횡포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취임 첫해, 작품의 출품 거부 운동을 통하여 이를 바로 잡았다. 그로 인하여 자신에게 세무조사 등 위협이 가해졌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하였다. 이는 용(勇)이다.
같은 시기 세계는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하여 자유무역의 열풍이 불었고, 건축계에도 휘몰아쳤다. 우리 건축사협회도 UIA에서 주관하는 국제적 기준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UIA는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점하고 있었다. 그는 끈질기게 기득권을 고수하는 건축가협회 역대 회장들의 욕설과 비하 발언에도 개의치 않고 설득하는 한편, UIA 본부를 방문하고 거기서 만나기로 한 회장이 안 오자 스위스 그의 집까지 비행하여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결국, 건축 3단체가 연합한 FIKA를 결성하여 가입에 성공하였고, 퇴임 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을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으로서 3연임을 하면서 기금을 모으고 때로는 사비를 투입하여 초석을 다지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계획과 용인(用人)에서는 지장(智將)이요, 행동에서는 용장(勇將)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퇴임 후, 협회장 선거철이 되면 회장과 감사 후보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선물을 가져오고 식사 때를 맞춰 접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물은 사양하였고 부득이 받게 되면 반드시 그 금액만큼 현찰로 선거캠프에 전달하였다. 식사도 내 집에 온 손님이니 내가 내야 한다면서 거꾸로 대접해 보냈다. 이는 의(義)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후일, 어떤 후보는 ‘후보로서 식사 대접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그가 본협회 회장에 출마하였을 때, 필자는 두 번 모두 선거캠프를 지켰다. 그런데 당선 후 이사진에는 경쟁자 진영의 선거 참모장을 지명하고 필자에겐 편찬위원장을 위촉하였다. 협회의 생태도 정치판과 같은데, 화합을 위하여 반대편에서 으르렁대던 참모장을 발탁한 것은 덕을 지닌 대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이 회장은 이집트에서 열린 UIA총회행 비행기 표를 대량 구매하여, 보너스 항공권 1매가 생겼으니 함께 가지고 하였다. 필자는 마음만 감사히 받겠으니 저보다 더 많이 공헌한 회원이나 직원을 데려가라고 사양하였다. 이는 회장의 예(禮)와 신(信)을 필자가 예와 신으로 답한 것이다.
그는 초아의 봉사를 기치로 내건 로타리안으로 3640지구(서울) 총재를 역임하고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봉사하였다. 그가 서거하기 20일 전 찾아뵈었을 때, 그는 ‘작년에 아내 몫까지 40만 불을 로타리 본부에 기부하여 마지막 버킷 리스트를 완료했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인(仁)은 모교에 억대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회원들의 어려움을 돕는 등 부지기수이다.
그는 모든 사안에 대하여 옳은 일은 옳다 하고 그른 일은 언제 어디서나 그르다고 말하였다. 사람에 대한 충고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공익과 상대에 대한 사랑의 배려이니, 그의 이름처럼 의(義)를 구(求)하고 실천한 것이다.
평소에도 그를 좋아했지만 회고해 보니, 그는 인의예지용(仁義禮智勇)의 오상(五常)을 고루 갖춘 우리 시대 건축계의 덕장이었다. 인생의 여정 속에서 지향하는 바가 같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기쁨이요 행복이다. 그는 필자의 사표였다.
아! 슬프다.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바른말로 후배를 키워왔던 우리의 리더는 지금 하늘나라에 있다. 이제 누가 있어 건축계의 리더들에게 공의에 입각한 옳음과 그름을 말하겠는가. 이제 그는 우리 세대의 표상으로, 영원한 건축계의 덕장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편히 쉬소서. 합장
글. 장양순 Chang, Yangsoon
前 본협회 이사 및 감사·본지 및 대한건축사신문 편집국장·건축사사무소 창건축

장양순 건축사, Columnist · 건축사사무소 창건축
홍익대 및 동 대학원에서 한국건축사를 전공하고, 대한건축사협회의 임원으로 본지 편찬위원장, 건축사신문 초대 편집국장과 건축문화대상 시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홍익대, 강원대, 명지대 및 한서대에서 40년 간 제자를 육성했다. 저서로 『한옥 건축학개론과 시로 지은 집』, 『툇마루 한담』 등이 있고, ‘본 협회 50년사’ 건축사지 500호 별책 등을 편찬했다. 가곡 ‘논개’, 동요 ‘무지개 떴다’, ‘건축사 찬가’ 등 작곡 활동과 더불어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cyss11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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