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1. 10: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Jongno-gu Regional Architects Association’s Visit to Mt. Baekdu
“Looking at the North, Embracing Mt. Baekdu and the Tumen River”
떠나며
언제부턴가 계획하거나 진행 중인 일이 너무 순탄하면 덜컥 불안해진다. 오히려 작은 ‘말썽’이라도 생기면 ‘그러면 그렇지’ 하고 마음을 놓게 된다.
큰 일을 앞두고 어김없이 머피의 법칙이 발동됐다. 허들도 꽤 높았다. 백두산행을 열흘 앞두고 말 그대로 ‘발모가지’가 부러진 것이다. 산에서 접질린 것으로 골절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덕분에 이번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백두산의 두 이름 : ‘長白山’이라 쓰고 ‘백두산’이라고 읽는다.
불안한 몸 상태에도 기대감에 취해 출발한 일행을 맞아준 것은 연변 공항의 투명한 하늘이었다. 미세먼지 하나 찾기 힘든 하늘은 이곳이 얼마나 청정한 지역인지 온몸으로 실감케 했다.


투명하고 가벼운 대기와 달리, 우리가 마주한 분위기는 조금 무거웠다. 동북공정과 소수민족 정책에서 비롯된 삼엄함 때문이었다. 종로구지역건축사회가 준비해 간 현수막은 아주 제한적인 곳에서만 펼칠 수 있었다. 원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제지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넓은 손수건조차 플래카드로 오해받아 소란이 생기기도 했다.
동북공정의 단면 중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역시 '장백산'이라는 이름 그 자체였다. 백두산을 발원지로 삼았던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왜곡함으로써, 백두산 전체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이 중국에 있음을 주장하려는 의도다. 중국은 이미 2024년 백두산의 중국 영역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하며 명칭을 '장백산'으로 공식 등록했다. 이러한 공정은 단순한 관광지 개발이나 명칭 변경을 넘어, 한반도의 역사적 상징을 지우려는 시도로 보였다. 백두산이 보여주는 수려한 자연경관에 감동하면서도,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이 이따금 끼어들었던 이유다.


천지 : 프레임에 담기지 않는 경이로움
일본 지브리 미술관 내부는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도록 두면 좋을 텐데, 부모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거기 서봐'라고 하지요. 어디를 가든 카메라에 찍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세리머니일 뿐입니다. 그보다 자신의 눈으로 봐주세요. 이 시간을 소중히 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촬영을 금지했습니다." 카메라 렌즈가 아닌, 눈과 마음으로 온전히 담아가라는 뜻이다.
일견 수긍이 가는 말임에도 평소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에 무게를 두는 편이다. 기억의 한계를 넘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을 보정하는 도구로서 사진은 훌륭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거기 어땠어?”라는 질문에 긴 말 대신 던지는 한 장의 사진이 훨씬 더 훌륭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여러 명이 함께한 동행이라면, 그때의 분위기와 감동을 상기하고 공유하는 데 사진만 한 매개체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천지가 어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사진과 설명으로는 도저히 그 감동을 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저 “거긴 직접 가보지 않으면 몰라”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던 천지의 스케일, 이틀 연속으로 안개 없이 천지를 훤히 마주한 경이로운 행운,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과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올라가 마주한 압도적인 풍경까지. 그 공기 속에서 느낀 감동은 프레임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천지의 감동은 사진과 말로 옮기기 어렵다. 직접 눈과 마음에 담아야만 한다. 물론 모두에게 이런 천지의 얼굴이 쉽게 허락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연변의 조선족과 연변대 남문의 밤
이틀간의 백두산 일정을 마치고 옮겨간 마지막 숙소는 연길에 위치한 카이로스 호텔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서 얻은 청년의 숙연함을 가슴에 묻은 채 마주한 연길 시내는 온통 정겨운 한글 간판들로 가득했다. 핏줄의 이끌림 같은 반가움도 잠시, 가이드의 설명은 사뭇 다른 현실을 말해주고 있어 마음이 씁쓸해졌다. 조선족 사회는 최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중화민족 통합 기조 아래 큰 구조적 변화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감소와 공동체 해체 속에 고유의 언어와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진,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는 셈이다.


그 무거운 현실의 이면과 별개로, 마지막 날 밤 연변대 남문 앞의 풍경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서울의 홍대나 강남을 옮겨놓은 듯한 엄청난 인파와 활기가 거리를 메웠다. 저마다의 콘텐츠를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젊은이들의 활기, 화려한 네온사인과 야시장의 노점들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번화함 속에서 즐긴 양꼬치 만찬과 밤거리 산책은 역시나 종로구지역건축사회다웠고, 역대급으로 즐거웠다.
두만강 : 가깝고도 먼 경계의 서시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현지에서 '도문'이라 불리는 두만강이었다. 상류에 해당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수심이 얕고 폭도 넓지 않았다. 우리가 서 있는 도문 쪽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건너편 풍경이 묘한 대비와 긴장감을 주었다. 멀리 보이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와 펄럭이는 인공기만이 저곳이 북한임을 소리 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동포에 대한 감정 때문일까. 왠지 모를 상실감과 유대감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모든 국경이 다 이런지 모르겠지만, 눈앞에 두고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분리와 연결의 심상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돌아오며
당연한 일 같지만, 감사하게도 큰 사고 하나 없이 모두가 무사히 일상의 좌표로 복귀한 여행이었다. 심지어 출발 전부터 부상을 입고 온 '두 명의 교통약자'가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매 순간이 순탄했다. 이는 세심한 리더십과 회원들의 성숙한 이타심이 함께 빚어낸 값진 성과가 아닐까 싶다. 교통약자 중 한 명이었던 나에게 이번 여행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도 포기를 만지작거려야 했을 만큼 큰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여러 회원님의 따뜻한 배려와 도움 덕분에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3박 4일이라는 일정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인상적인 장면과 즐거움으로 꽉 찬 여행이었다. 이제는 일상으로 복귀한 모든 회원들의 일상에 천지의 맑은 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기분 좋은 설렘으로 우리의 다음 동행을 기다려본다.
글·사진. 김성식 Kim Sung Sik
종로구지역건축사회 홍보편찬위원장·(주)재인건축사사무소

김성식 건축사 · (주)재인건축사사무소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 및 도시설계전공을 수학했다. (주)마이건축사사무소, 에이앤유건축사사무소(주), (주)종합건축사사무소시건축 등에서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부터 (주)재인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9년, 2020년 중앙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후학들을 지도한 바 있으며, 대표작으로 용인 HIFS교육연구시설, 홍성군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비티글로벌 혁신본부 사옥 등이 있다.
tjd04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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