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30. 12:10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Humility
and Confidence
건축사는 참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직업이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듣는 것에서 설계가 시작되고, 다양한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야 한다. 실제 건축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시공자와 현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로는 서로 다른 요구가 충돌하기도 한다. 결국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며 하나의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서 건축사에게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겸손’을 이야기하고 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겸손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더 나은 답을 찾으려는 태도이다. 건축주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삶과 공간에 대한 생각이 있고, 관계전문가와 시공자에게는 각자의 경험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은 건축사의 판단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은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건축사의 뜻을 강하게 관철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건축주를 설득해야 할 때가 있고, 완성도와 안전을 위해 양보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을 조금 내려놓았을 때 사용자의 만족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설득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 역시 건축사의 전문성이다.
그러나 자신감을 가져야 할 곳에서 지나치게 겸손해지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의 전문성과 업무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못한다. ‘건축사’라는 호칭조차 제대로 불리지 않는 경우가 있고, 정해진 기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업무대가를 요구받기도 한다. 업무와 책임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까지 별도의 대가 없이 요구받는 상황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건축사의 전문적인 판단과 서비스가 가진 가치를 스스로 알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적정한 설계대가를 요구하고 업무의 범위와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전문가가 가져야 할 태도이다.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사회에 알리고 증명해 나갈 때 건축사의 역할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가끔 이 두 가지 덕목을 반대로 적용하는 데서 생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 지나친 자신감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한다면 사용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건축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반대로 업무대가와 전문성에 지나치게 겸손하다면 그 영향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낮아진 기준은 다른 건축사의 대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건축사 전체의 가치를 낮출 수 있다. 겸손과 자신감은 서로 반대되는 덕목처럼 보이지만 건축사에게는 함께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 앞에서는 겸손하되, 자신의 전문성과 가치 앞에서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어디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어디에서 앞으로 나아갈지를 판단하는 균형감이 중요하다. 건축계에 남아 있는 여러 문제 역시 이 두 가지 덕목의 균형에서 작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호 건축사지에도 이러한 균형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소개한다. 건축주의 생각을 듣고 관계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조율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건축사로서 자신의 판단을 내린 결과물들이다. 서로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스스로의 가치에는 조금 더 당당해진다면 건축사라는 직업과 우리가 만드는 건축도 함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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